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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선언」 2328

LNCK 2010. 2. 25. 20:21

◈「행복 선언」에서 퍼온 글들                    눅15:31                         가톨릭 글 스크랩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눅15:31



♥1. 만족하는 법을 배우자


「개미」와「뇌」를 쓴 프랑스 유명한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말한다.

“가장 똑똑한 뇌는.. 지금 현재 여기서 만족하는 뇌다.”            주1)


이 말은 행복의 비결을 ‘자족’이라고 보았던, 소크라테스의 통찰과 일치한다.

(소크라테스를 논하지 않더라도, ‘자족’은 중요한 성경적 가르침이죠)


닉네임조차 ‘행복한 바보 성자’라 불리어지는 나스루딘의 이야기 역시

만족, 곧 자족의 지혜를 전한다.


매일 콩하고 빵만 먹는 나스루딘에게, 하루는 어떤 부자 한 사람이 찾아와 말했다.


“선생님, 임금한테 잘 보일 수 있게 말하는 법만 배우면,

이렇게 고생 안 하고 좋은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살 수 있는데,

왜 이런 데서 누추하게 고생하십니까?

훌륭하신 분이 이렇게 사는 건 안타깝습니다.”


나스루딘이 대답했다.

“당신이 나처럼 콩하고 빵만 먹으면서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면,

가서 그 따위 이야기는 안 해도 될 텐데 말이오...”


세례요한이 ‘회개하라’고 설교했을 때

군인들이 와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을 때

‘네가 받은 봉급으로 자족하라’고 합니다.


기도할 때 주어진 것을 감사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것을 청하면.. 은총이 따르지 않습니다.



♥2. ‘소유 지향의 삶’과 ‘존재 지향의 삶’이란?


소유지향의 삶을 살면

샹들리에가 걸려 있는 천장만 보며 살지만,


존재지향의 삶을 살면

별이 빛나는 하늘을 보며 살 수 있다.

하나님이 매달아 놓으신 더 멋진 샹들리에(별)를 바라보며 살 수 있다.


소유지향의 삶을 살면

자신의 울타리 안 정원만을 즐기지만,


존재지향의 삶을 살면

온 지구를 정원으로 즐길 수 있다.


요컨대, 진정한 부는 소유하는 자의 것이 아니라.. 누리는 자의 것이다.

이 깨달음은 우리에게 엄청난 해방감을 준다.


왜 우리는 죽을 때까지 돈을 모아야 되고,

큰 집을 지어야 되고 아등바등하며 인생을 허비해야 하는가.


따지고 보면,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가 허둥지둥 죽는 것이

많은 이들이 걷는 코스가 아닌가. 그건 비극이다.

그러기에 아예 생각을 바꿔 ‘지금 주어진 것을 누리라!’는 것이다.


인생 여정에 있어서 존재와 소유의 싸움이 계속되는 데,

‘존재가 소유를 지배하느냐’ 혹은

‘소유가 존재를 정복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의 성패가 달려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존재와 소유>라는 책에서 ‘현대인들은 자아를 상실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소유(having)가 존재(being)를 소유(having)해 버려

(내)존재가 상실되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나의 자아는 어디 가서 찾아야 할까요?



♥3. 누릴 줄 알면.. 자유롭고 행복한 사람이 된다.


세상에서 제일 큰 집을 갖기로 작정한 달팽이 한 마리가 있었다.

달팽이는 곧 아름다운 큰 집을 만들어 화려하게 꾸며놓고.. 행복해했다.


세월이 지나 달팽이가 살던 양배추에는

더 이상 먹을 것이 없게 되어 이사를 해야 했다.


그러나 달팽이는 (지어 놓은) 집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한 어린 달팽이가 말했다.

“나는 작은 집을 가져야지. 어디든 가고 싶은 데로 갈 수 있게 말이야.”


달팽이는 소유로 인하여 자유를 잃었다.

하지만 어린 달팽이처럼 그냥 누리려 할 때는.. 다시 자유를 회복하게 된다.

누릴 줄만 알아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욕망은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자라나면 죽음을 낳습니다.” 약1:15

결국 소유의 욕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4. 소유하려 하지 말고 누려라


첫째 비결은 그냥 누리는 것이다.

모든 것은 소유하는 사람의 것이 아니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의 것이다.


꽃은 꺾어서 화분에 담을 수 있다.

그러나 봄은 화분에 담을 수 없다.


누리는 것이 곧 지혜다.


장미 한 송이가

자신이 지닌 향기를 다 표현하는 데는 12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 말은 곧 하나의 장미향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12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순간 반짝하고 향기를 누리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는 얼마나 피상적으로 누리며, 순간적으로 사는가.        


어느 유명한 문학 작품에

어떤 도인이 나귀를 타고 산천을 유람하다가

그만 웅장한 산의 위용에 넋을 잃고 황홀경에 빠져서

날이 저물어 가는지도 모르고 오랫동안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그때 당나귀가 휭휭하며 돌아가자고 울어댑니다.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 자기 마음에

온전히 그 산 모두를 담아 마을로 내려옵니다.


이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산의 등기 소유자가 진정 주인이 아니고,

그 산을 마음 가득히 품고 향유하며 누리고 사는 자가

바로 어떤 의미에서는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당나귀는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범인을 가리키고

마을로 내려가는 행위는, 초월적 자아가 다시 에고로 돌아가는 상징입니다.



♥5. 우리가 구가해야 할 ‘영의 가난’


영의 가난poor in spirit이란.. 한 마디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주님을 갈망하는 배고픔이다.

곧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면서

자신의 삶을 몽땅 하나님께 의탁하는 자세다.


그러기에 자신의 소유, 능력, 재물에

자신의 안전을 맡기려는 사람은.. 영으로 가난한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이렇게 '영으로 가난'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소유로부터 자유로워 진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 부분의 마지막에,

큰아들을 향해 아버지가 한 말에서처럼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눅15:31


우리는 영의 가난 가운데,

온전한 ‘아버지의 것을 다 누림’을 가져야 하겠다.


산상설교에 처음이 ‘마음이 가나한 사람들은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5:3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그 뜻에 석연치 않아 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마음을 비운 사람’, ‘욕심 없는 사람’, ‘겸손한 사람’ 등으로 해석합니다.

(이런 해석은 6째 복인 ‘마음이 청결한 사람’에 해당될 것입니다.)


‘마음’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프네우마티(pneumati)입니다.

이 단어는 본래 ‘영’, ‘바람’, ‘호흡’ 등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마음’보다 ‘영’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적합합니다.

그래서 개역은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번역했습니다.


‘영/심령’이 가난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립되는 상태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진정한 행복/8복은

그 시작이 ‘영의 가난’에서 출발합니다.


내 영(혼)이 먼저 가난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갈급하며, 하나님으로 내 영에 가득 채우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다윗은 알았습니다. 자신의 왕위도, 자신이 살고 있는 궁전도

하나님의 가호 없이는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릴 물거품이라는 것을.


그리고 현재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온통 하나님으로부터 선사된 은총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았기에

그는 언제나 ‘영으로 가난한’ 사람이었습니다. <언>



물살이 빠른 강을 건널 때는 나룻배에 짐을 많이 싣습니다.

때로는 ‘큰 돌’을 싣기도 합니다. 빠른 물살에 배가 휩쓸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삶의 짐’을 무겁게 하거나, ‘시련의 바위’를 싣기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통이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고통을 주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불평 없이 받아들일 때, 믿음이 성숙됩니다.


사람들은 ‘삶의 짐’을 가볍게 하려고 재미있는 것, 편한 것만 찾습니다.

그러다가는 ‘세속의 물살’에 그냥 떠내려가고 말 것입니다.



수도원에 들어올 때는..

제가 세상을 위해 훌륭한 봉사를 하고자 했습니다.

'더 많은 사랑을 나누고, 더 많은 땀을 흘리며, 사람들 가까이에 다가가 도울 수 있는

그런 수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훈련을 거치고 수도회에 배치 받고 나서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더 열심히 살면서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

더 많이 봉사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런데 그때 양육 담당 신부님은 제게

자꾸 이것에 대해서 묵상을 반복해서 시켰습니다.


‘주님을 위해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자 한다’는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며

반복해서 묵상을 시키는 양육 담당 신부님을.. 그때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혈기 왕성한 제가 물러서지 않고 끝끝내 버티자

신부님은 제게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는 의지를 갖기보다는

그리스도께서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달라’는 것을 두고

묵상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제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제 무의식 속에 잠긴 것은 

무엇인가 열심히 착한 일을 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깨닫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씨앗을 마음에 받았습니다.

그 말씀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이 나를 통해 무엇을 하시도록

나를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자꾸 내가 내 의지적으로 무엇을 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내가 일하는 것이고, 내가 성장하는 것이고, 내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열심히 일하고, 사랑을 베풀고, 내 노력으로 열매를 맺어서.. 하늘에 복을 쌓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봉사하지 못해서, 기도하지 못해서 괴로워합니다.

그런데 먼저 우리가 돌아보아야 하고, 점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봉사하지 못하고, 많이 기도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 안에 하나님을 향한 내적 충만함(생명)이

자리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를 사랑하게 하고 행동하게 하는 힘은.. 다른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 실천의 근본은 자신의 힘과 의지, 용기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 원리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의 체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것이 내 속에서 생명의 역사를 막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지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분은 먼저 우리에게 당신 안에 머무르라 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더욱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당신의 좋은 땅에 머무르며, 당신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자연히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


주1)

캐나다의 리코크라는 문학가가 「오늘」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권고의 글을 준 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짧은 인생은 이상하다.

어린 아이는 ‘내가 큰 아이가 되면...’ 이라고 말한다.

큰 아이는 ‘내가 성인이 되면...’ 이라고 말한다.

성인이 되어서는 ‘내가 결혼을 하면...’ 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결혼한 후에는 그는 또 ‘내가 은퇴하면...’ 이라고 말한다.


마침내 은퇴하였다. 그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거기에는 찬바람이 불고 있을 뿐 모든 것은 이미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아! 늦게 깨달았다. 현재 살고 있는 그 가운데에 인생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입니다.

항상 미래만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현재라는 이 순간을 소홀히 하고 있는

우리들의 우둔한 모습들을 꾸짖고 있는 글이 아닐까 싶네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늘’이라는 값진 선물을 주셨지요.

문제는 그 소중한 선물을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우리 각자의 모습입니다.

혹시 더 큰 선물을 받을 것이라는 헛된 기대 때문일까요?

그래서 ‘오늘’이라는 또한 ‘지금’이라는 이 순간을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대신에 ‘내가 .... 이 되면’이라는 조건이 담긴

미래의 시간만을 바라보면서 정작 현재를 소홀히 여기고 있습니다...                                   ▣ 크리스천 삶(리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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