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님의 임재의 통로로 쓰임 받기를 겔37:1 -스크랩/축약/출처-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겔37:1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임재/존재의 무게감을 체험합니다.
만약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계시지 않는다면
그 예배당에는 사람들의 존재만 가득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사람의 소리만 난무하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의 소리는 '시끄럽고 거슬립니다.'
지금 이 방에 어떤 사람이 들어오면, 그 사람의 존재의 무게가 있습니다.
그 존재의 무게가 가벼운 사람도 있고, 무거운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존재의 무게보다,
하나님의 존재의 무게를 더 무겁게 느끼지 못한다면
예배가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지금 강의를 하면서, 제가 하나님의 존재의 무게보다
제 앞에 있는 여러분들의 존재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진다면
저는 지금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앉아 있는 여러분들도
강의를 하는 저의 존재의 느낌이, 하나님의 임재보다 더 크게/무겁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주일 예배나, 수요예배나, 새벽예배나, 골방 예배가
하나님 임재를 체험하는, 그 존재의 무게감을 느끼는 단계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혼자서 해 봅니다.
주님께서 하루에도 몇 번씩 저를 찾아오십니다.
너무나 반갑게 저의 이름을 부르시며 찾아오시지만
저는, ‘잠시만요!’ 하면서 하나님을 사무실 앞에 세워둡니다.
그러면서 제가 바쁘게 ‘하나님의 일’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을 다 끝내고 저녁 늦게, 피곤한 몸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주님은 아직도 거기에 서 계십니다. ‘얘기 좀 하자!’ 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은 몹시 피곤해서 이만 실례..’ 그러면서 또 외면합니다.
그러다가 인생이 곤란에 빠지고 어려움을 겪으면.. 하나님께 친한 척 합니다.
‘하나님 저 아시잖아요, 저예요..’,
‘여기 앉아서 제 얘기 좀 들어주세요.’ 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별 반응이 없는 것 같으면, 거래deal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이번에 이 문제만 해결해 주시면,
보답하는 양, 제가 깨끗하게 무엇 무엇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면, 위로부터의 ‘기름 부으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첫 번째 특징은 기름 부으심입니다.
기름 부으심의 한 가지 특징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예배는 ‘위로부터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강단을 통해서..
회중에게로 흘러가야 합니다.
그 회중을 통해서.. 마침내 세상으로 흘러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내 일상의 삶 속으로,
가정과 직장으로,
민족과 열방 가운데로 흘러가야 합니다.
만약 그것이 위로부터 아래로 흘러가지 못하면.. 역류현상이 일어납니다.
세상의 구정물이 교회 안으로 흘러들어오고,
교회는 질시와 반목으로 어려워집니다.
교회가 세상에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은.. 역류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에서 세상으로 은혜의 강이 흘러나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61:장의 말씀처럼.. 기름 부으심이 흐르면
복음이 선포되고, 해방이 선포되고, 치유가 일어납니다.
에스겔 47:장의 환상처럼..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바다를 이루고
물고기가 가득하고, 강변에 수목이 가득하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은 흘러나갑니다.
절대로 한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새벽기도를 맡아서 하게 되었을 때
기도로 준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예배의 자리를 회복하라는 꿈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가지고 새벽기도 예배를 처음 맡아서 하는데
가보니 불평, 불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어느 집사님, 어느 권사님, 어느 장로님들이 오셔서
‘찬양 인도자가 성실하지 않습니다.’
‘찬양 선곡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 나오는 그 CD 음악 바꾸면 안 될까요?’
‘볼륨이 너무 큽니다. 또는 너무 작습니다.’ 등의 말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거기서 저는 ‘네, 알겠습니다.’ 라고만 짧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정성으로 진심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시일이 좀 지난 후에 사람들의 불평의 소리, 불만의 소리가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기름 부으심입니까, 역류현상입니까?
교회 안에 예배에 기름 부으심이 없으면, 하나님의 임재 체험이 없으면
역류현상이 일어납니다.
교회가 시끄러워지고, 사람들의 소리가 가득해지고,
어디서도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예배 가운데 위로부터 임하는 기름 부으심이 있으면
은혜가 넘치고, 질서가 세워지고,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다음 단계는 세상을 향한 거룩한 비전을 갖게 됩니다.
성령이 세상으로 흘러 나갑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이유, 교회 가운데 만나주시는 이유는
험난한 세상 가운데 들어가서,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세상에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을 미치라는 것입니다.
부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회가 세상의 영향력을 받지 않고
교회가 세상에 영향력을 주는 것이 부흥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예배에,
주님의 임재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영광이 환하게 나타나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의 균형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하나님의 보좌가 펼쳐지고
하나님이 예배를 기뻐 받으시는 자리에는
‘말씀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가 함께 일어납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 Spirit 과 진정 Truth 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4 :23)
제도화된 교단교회의 영성적 전통에 따라서
‘말씀중심의 교회’와 ‘성령중심의 교회가 나뉘어져 있습니다만,
그러나 말씀과 성령은 함께 일하시며, 함께 역사하십니다. 이게 정상입니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엡6 :17).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의 말씀)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이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벧후1 :20~21).
System은 Spirit을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형식을 넘어서서 예배의 열정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익숙한 언어와 순서와 방식이, 하나님의 임재를 깨드려서는 안 됩니다.
말씀의 기초가 없으면, 성령의 불이 빨리 식게 되어있습니다.
진정한 성령운동은, 말씀운동을 지향 (방향을 정하고 나아감)하며,
진정한 말씀운동은, 성령운동을 지향합니다.
▲주님이 임재하시면,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게 됩니다.
‘영광’은.. 하나님의 존재의 무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느끼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게 아직 미숙하면, 도리어 어색함을 느끼게 됩니다.
만약 누군가를 만날 때, 무엇인가 얘기를 계속 하지 않으면 어색함을 느낍니다.
그것은 그 사람과 친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듯이 예배를 드릴 때,
예배가 물 흐르듯 흘러가지 않고, 찬양하다 멈추어지고..
이렇게 어색함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아직 하나님을 모르고 있고, 하나님과 친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예배가 하나님의 임재 안으로 달려가면, 앞에서 인도자만 찬양하지 않습니다.
회중석에서도 고백과 선포가 솟아나기 시작합니다. 이게 회중예배 방식입니다.
회중석에서 오히려 압도하는 무게감이 느껴져서, 그것이 강단으로 전달됩니다.
원래 초대교회는 이런 회중예배 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이 지금은 너무 많이 무너져 있습니다.
그 분의 빛 앞에 나의 추함이 다 드러나고
영혼이 충격을 경험하고, 전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데
당신은 그 하나님의 임재의 문 앞에 서서, 그 문을 열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리고 회중들을 향하여 열어줄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예배는 순간 속에서 영원을 접속하는 것입니다.
구경꾼이 되지 말고 참여자가 되어야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성령을 사모하는 예배가
영적체험에 대한 자랑과, 신비주의로 끝이 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본질에서 벗어나지 마십시오, 껍데기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신기하기는 한데, 동경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데.. 거기에 빈껍데기뿐이고,
성령님이 떠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비한 체험만 구하고, 하나님 자신을 구하지 않을 때.. 그렇게 됩니다.
우리의 예배는 기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주시는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선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을 구하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의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목말라하고 갈급해하십시오.
누군가 한사람이 회중석에 앉아있는 한사람이라도,
인도하고 있는 싱어 중의 한 사람이라도 그것을 목말라하면
성령의 임재가 사람에게 부어질 것이고,
그리고 그 통로 (그 사람)를 통해서 흘러 갈 것입니다.
이제 당신이 하나님의 임재의 문을 여십시오!
당신이 통로가 되어, 성령의 임재를 온 회중 가운데 흐르게 하십시오!
나아가, 그 생수의 성령이, 세상 가운데로 흘러나가는 통로가 됩시다.
우리 가정에, 우리 직장에, 우리 사회에
우리 자신이 생수의 강줄기를 연결해서, 메마른 대지에 물을 공급합시다.
....................................더 읽으실 분................................
▲하나님께서 사울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다윗을 선택하신 이유를 아십니까?
사울은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이 흩어지려고 하자, 자기가 서둘러 제사를 집전했습니다.
흩어지는 백성들을 모으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다윗은
왕권을 포기할 상황이 와도,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왜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까?
주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나를 건져주신 그 은혜 때문에.. 그 은혜를 갚겠다고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에 대해서 사모하지 않고,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드리지 않고,
그냥 하나님께서 복주시기를 바라며,
설교로 나를 감동 시켜 주시기 원하는데.. 하나님께서 그런 태도를 싫어하십니다.
‘나의 영광’ 중심적인 신앙생활 말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설교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설교를 보면서 우리의 반응이 ‘어떻게 설교를 저렇게 할까, 날 좀 감동 시켜주지..’
또한 ‘찬양을 저렇게 어설프게 인도할까? 조금 더 잘해 보지..’라고 합니다.
지금 누가 예배를 받고 있습니까?
너무나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나 중심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입니다.
나를 위한 예배, 내가 복 받기 위한 예배.. 거기에는 주님의 임재가 없습니다.
▲사람은 무엇인가 반복하다보면, 아주 쉽게 매너리즘에 빠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주일예배, 새벽예배, 교육부서 예배에 대해 기대감이 있습니까?
기대감이 없는 예배는 이미 죽은 예배입니다.
영혼들의 마음이 다 닫쳐있기 때문입니다.
기대감이 없는 채로 1년, 5년, 10년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있다면
영혼의 창이 완전히 철창으로 닫쳐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기대감은 어디서 오는 겁니까?
분위기가 멋있어서, 아니면 같이 나눌 대화가 너무나 재미있어서 입니까?
아닙니다.
만남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기대감은 상대방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누구를 만납니까?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데, 내게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대감을 주실 수 없는 분입니까?
아니면 기대할만한 분이 아니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배에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려면,
집에서 이런 마음의 준비, 기대감을.. 기도로 준비하셔야 합니다.
▲왜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것일까요?
①아직 맛보지 못했기 때문에, 눈이 가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시34:8
②맛보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갈급함이 없고 주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③맛보고 싶은데 맛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예배가 매너리즘에 빠져있어서
하나님 임재의 통로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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