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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도 복된 길 2340

LNCK 2010. 3. 5. 12:27

◈돌아가도 복된 길이 있습니다.                       출13:17-22               -출처보기/정리-


 

▲언약의 하나님

①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너와 네 자손들에게 주리라’

하셨던 약속(언약)의 땅입니다.

창26:3~5절(주1)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언약)하셨습니다.


②이삭과 맺은 언약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그 자손 이삭과도 계속 맺어 가십니다. (주2)


③야곱과 맺은 언약   창28:13~15  (주3)

야곱의 일생을 보면,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그 중 최대의 위기는, 야곱의 딸 ‘디나 사건’으로,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성을 살육하고, 나머지 형제들이 그 성을 약탈한 사건입니다.

이제 야곱 가문은.. 주변 헷 족속에게 심한 악취를 풍겼으므로,

보복을 당해 완전히 멸망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벧엘(창28장에서 언약을 받은 지점)로 올라간 야곱 가문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주변 족속들이 야곱을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이 모든 이유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계속 언약을 맺으시고,

맺은 그 언약에 신실하시므로..,

그 언약이 이루어지도록.. 늘 그들의 편이 되어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언약이 약 70년간 깨어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갈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 언약이 완전히 깨어진 것은 아닙니다. 70년 동안 잠시 깨어졌었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지낼 동안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관련글  하나님의 영광은 바벨론에서

④(출애굽 때) 모세와 맺은 언약

4백 년이 지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죽었지만

하나님은 그들 족장들과의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바로 왕의 학정아래 신음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찾아오셔서

강퍅한 바로와 애굽을, 10재앙을 통하여 심판하시고

억압받던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출2:24~25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remember, 기억)하셨더라.


⑤이 언약은 다윗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언약으로 이어집니다.

‘언약’이란 말이 뜻하는 것은..

하나님은 언약에 절대 신실하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언약을 파기 안 하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단 한 번도, 언약/계약을 파기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의 언약’은 매우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출애굽 광야 여정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비록 길을 돌아가기는 해도..

하나님은 그 언약에 신실하셔서, 반드시 언약(구원)의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initiative를 보게 됩니다.



◑1. 돌아가는 길이, 완전히 나쁜 길만은 아니었습니다. 섭리가 있었습니다.


▲두 갈래 길

본문 출13:17~18절에 보면 가나안으로 가는 길이 2갈래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과 ‘홍해 광야 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 갈래의 길 앞에 섰습니다.

 

출13:17,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지중해 해변 길)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


① <블레셋 해변 길>은 지름길입니다.                           *via maris 

지중해 해안을 따라 난 해변 길로서  

가나안 지경에서 애굽으로 오가며 무역을 하던 대상들이 지나 다니는

넓고도 가까운 지름길입니다.

애굽에서 이 길로 곧장 가면 가나안까지 4일이면 갈 수 있습니다.


② <홍해 광야길>은 돌아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18절에서 “광야 길”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데,

이 길은 광야를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왜냐면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직선거리가 아닌 돌아서 가는 길입니다.

광야를 지나서 가야하는 멀고도 험한 길입니다.

하나님은 두 갈래의 길 앞에 서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고, 멀게 돌아가는 홍해 광야의 길을 택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멀리 돌아가는 길보다는.. 지름길을 가기 원하고

좁고 험한 길보다는.. 넓고 평탄한 길을 가기 원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시는 방법이

우리 인간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깝고도 편한 지름길을 택하지 않으시고

멀고 험한 홍해 바다의 광야 길로 백성들을 가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돌아서 멀고 험한 길 가게 하시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문제 제기

(주님이 때로는 내 인생을 멀리 돌아가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이스라엘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블레셋 사람의 길, 즉 지름길은.. 쉽고 가까운 대신

그 길목에는 일찍이 철기 문화를 발달시켜 각종 철 병기로 무장하고

서로 동맹을 맺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블레셋 족속의

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가드, 에그론과 같은 5개의 큰 도시 국가들이 있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아직 출애굽 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조직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고 군사력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막강한 블레셋 군대와 맞부딪치게 되면 쉽게 낙심하고 절망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히 이길 수 있었겠지만

믿음이 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리 낙심하고 시험에 들것을 우려하셔서

광야 길로 가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2.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목적 때문입니다. 

출3:12절에 의하면, 출애굽의 1차목적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

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출3:12

 

즉 백성들이 애굽에서 거주하던 400년 동안 중단됐던 예배를 드리게 함이었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 길이지만 광야 길로 가야했습니다.


▲3.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목적은.. 연단 때문입니다.

'연단'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오른쪽을 클릭해서 보세요. '홍해 광야 길'로 인도하신 이유

 

 

◑2. 돌아가도 복된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길로 돌리신 것처럼

성도들의 인생길을 번번히 돌리실 때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고난과 환난을 당하고 모든 고생을 다하며 길을 가게 하십니다.


남 안 당하는 모든 역경을 다 겪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돌아가는 그 길이 복된 길일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때가 돌아가도 복된 길일까요?


▲1. 소망 있는 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돌아가는 길이라도 그것은 가나안을 향한 길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꿈의 땅입니다. 희망의 땅이요 대망의 땅이었습니다.

그 땅을 가는데 조금 돌아가면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소망이 있으면 돌아가도 복된 길입니다.

마7:13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좁은 문은 고난의 길이만 생명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아무리 넓고 편해도, 마지막에 멸망당하는 길이라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가나안의 소망 때문에 광야 길도 복인 것입니다.

광야길 좁은 길 돌아가는 길을 갈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나안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가나안(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아무 근거 없이 혼자 기다리고 바라는 것은 희망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희망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성도는 희망이 아니라,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광야의 길은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그 길은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소망의 길이었습니다.

왜냐면 약속의 땅을 향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 약속되어 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말기암 환자나, 불치병 환자가 바라는 것은,

  10~20년이 걸려도 좋으니.. 오늘 조금이라도 치료의 징후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일단 조금씩이라도 치료가 되기 시작하면,

  10년을 기다려서라도 반드시 고칠 수 있다는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가나안)에 안착할 수만 있다면,

  40년이 아니라, 4백년이 걸리면 어떻습니까? 좀 돌아가더라도 별 문제없습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셔서, 반드시 그 언약을 이루실 것입니다.

                                                                                           ※관련글 단체전과 개인전

  그렇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소망을 두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딤전 4:10절에보면 살아계신 하나님께 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오늘 예수 따르는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위로 받을 소망이 있고, 하나님께 상 받을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복 받을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길이 축복의 길입니다.


▲2.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 

하나님이 백성들을 홍해의 멀고 험한 길로 가게 하셨지만

그들 홀로 가게 하지 않으시고

그 길에 하나님이 함께 가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하나님이 “인도” 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출13: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출13: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


출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인도하셨다는.. 적극적으로 그들의 노정에 개입하셔서

가야할 방향과 때를 정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3:21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 앞서 행하사....”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앞서서 가셨다는 것입니다.

앞서가시면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길을 예비하시고 대적들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신1:33절에도 ‘하나님이 앞서 행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는 너희 앞서 행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자니라


특히 출23:28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왕벌을 보내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은 오늘도 적극적으로 믿음의 사람들에 삶에 개입하셔서

앞서 인도하시고, 갈 길을 예비하시고, 도우시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입니다.

 

▲3.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함께 하시는 길 

돌아가는 그 길이지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출13:22,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떠나지 아니했다’고 하는 것은 언제나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험한 길 가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험한 길 가게 하신 하나님이, 그 길을 책임지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이 가는 길은 아무리 넓고 편해도..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은 비록 멀고 험해도.. 기쁨의 길이요, 축복의 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무엇입니까?

요14:26절에,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즉 성령님이 오늘날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잘못할 때 말씀으로 책망하기도 하시고,

슬픔에 잠겼을 때는 다가 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힘을 잃고 넘어졌을 때는 일으켜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합니다.

내 곁에서 (맴도시며) 나를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때로 험한 길, 멀리 돌아가는 길로 가게도 하시지만

결국은 우리를 도우셔서 영광스런 목적지까지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편하고 가까운 지름길이

항상 최선의 길이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때로는 돌고 돌아 멀게만 느껴지고 가고 가도 끝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그 사랑하는 자녀에게 언제나 선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은 빗나가는 적이 없고 실수함이 없으신 것입니다.



▲마치는 말 

주님 없이 편한 길 가기 원하십니까?

좁은 길 험한 길 광야길이지만 주님이 동행해주시는 길로 가기를 원하십니까?

 

선택은 자유이지만.. 비록 길은 험할지라도

주님과 함께 걷는 길이 훨씬 안전하고 복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과 걷는 길을 가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주와 함께라면... 돌아가는 길도 복된 길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내 길의 구름 기둥으로 삼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불기둥으로 삼아서 열심히 걷는 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멀고 험한 인생길에서 주님만 바라봅시다.

그분만 의지하고 낙심하지 말고 열심히 저 앞에 보이는

우리의 영적 가나안인 천국을 향해 전진합시다.



주1) 창26:3~5 아브라함 언약 (몇 군데 더 나옴)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주2) 창26:24 이삭 언약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주3) 창28:13~15 야곱 언약 (몇 군데 더 나옴)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할찌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광야 40년 여정은 <자아의 깨어짐> 기간이었다... 인생은 영의 성장을 위한 것                                            영적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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