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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택시기사? 2353

LNCK 2010. 3. 13. 21:50

◈하나님이 택시기사?                        잠2:1~6                          09.10.29.인터넷설교 녹취


▲예1.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성적표로 평균 80점을 받아왔다.

90점대를 획득한 과목이 한 과목도 없었다.

(그 성적표 앞에서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엄마에게 있어서, 지혜롭고 명철한 것일까?)


엄마의 마음속에 자기 나름대로 정한 목적지가 서울대학교이다.

그런 마음으로 살다가, 80점짜리 성적표를 보면.. 엄마는 죽음을 경험한다.

그것도 강남의 학교가 아니라, 경기도의 어느 학교에서

자기 아이 성적이 평균 80점대이면.. 살맛이 나지 않을뿐더러

하나님 원망까지 하게 된다.


그런데 엄마의 목적지가

‘우리 아이 실력에 맞는 대학에 들어가서,

우리 아이가 하고 싶은 전공을 택해서 공부하도록 뒷바라지 한다’

자기 자녀에 대해, 이런 목적지를 갖고 있으면,

80점짜리 성적표를 보고도.. 마음에 전혀 괴로움이 없다.


여러분, 삶의 목적지가 어디냐에 따라서

지금 나의 처신과 처방이 달라진다.


여기서 삶의 지혜와 명철이 생기거나/안 생기는데

내 삶의 목적지를 올바로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삶의 목적지/목표에 따라.. 내 생활의 대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2. 우리 가정에 경제문제가 생겼는데,

그것을 내가 문제로 알고 있다는 것은

‘금년에 우리 가정은 얼마를 벌어야 한다’는 나름대로 목표를 정해 놓았기 때문에

(앞서 서울대 목표처럼)

지금 자기 가정에 경제 문제가 생긴 것을 감지하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도달하고 싶은 목적지에 서서

그 목적지(미래적 성취상황)에서, 지금 현실을 바라본다.


그러니까, 내가 ‘금년에 우리 가계에 흑자 얼마’ 이런 목표/목적지를 정해 두었으면,

그 목적지에 마음을 두고, 지금 현실을 보니까

지금 현실이 ‘큰 일 났다!’ 이렇게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스스로 답을 찾기 시작한다.

‘이 큰일 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가?’


▲하나님은 택시기사?

그래서 우리 신앙생활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성도들이 모두가 ‘하나님을 택시기사로 부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우리 각자가, 자기의 세상적인 목적지를 이미 나름대로 다 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택시기사밖에 안 된다.

 

내가 내 갈길, 내 목적지를 다 알고 있으면서

날마다 기도한다는 것이

택시기사보고 ‘이리 갑시다. 저리 데려다 주세요!’ 하고 있다.


좀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이렇게 표현해서 죄송하지만),

우리가 택시타면서 요금 내듯이

교회 가서 헌금 드리고, 또 봉사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우리 아이를 하버드 대학에 데려다 주세요!’ 하면서.. 얼마 헌금(요금)내고..

(그런데 택시기사가 내 말을 잘 안 들으니까, 내가 늘 ‘불편신고’ 하는 것이다.)


내가 목적지를 딱 세워두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마치 택시 탄 기분으로, 하나님께 ‘이리 저리 갑시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혜(or 명철)란 무엇인가?

삶을 잘 꾸려나가기 위한 어떤 훌륭한 수단과 방법을 찾기 이전에

무엇보다 <올바른 목적지를 갖는 것>이다.


그 바른 목적지를 정해 놓고,

그 올바른 목적지(천국)에서 지금 현실을 바라볼 때

내가 지금 당면한 현실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지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목적지인 천국의 보좌 앞에서.. 오늘 나의 모습을 살펴보면

혹시 외로운 오지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어도.. 괴로울 게 하나도 없다.

(이게 바로 지혜로운/명철한 삶이다. 올바른 목적지에서 오늘을 바라보는 것!)

 

     지혜와 명철의 반대는 ‘어리석음’인데,

    ‘어리석음’ 하면.. 성경에서 ‘어리석은 부자’가 떠오른다.


그가 농사가 너무 잘 되어서, 엄청난 수확을 거두 게 되었다.

어리석은 그는, 자기가 영원히 그 수확을 누리고 즐길 줄 알았다.

창고를 더 지으면.. 그 부의 축적을 자기가 세세토록 누릴 줄 알았다.

창고를 더 짓는 것은.. 최고의 지혜 같았지만.. 최고의 어리석음이었다.

 
자기는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주님이 보실 때는

그는 그날 밤에 죽어서, 지옥으로 가는 길이었다.

이렇게 자기의 최종 목적지를 모르고 있었으니.. 어리석다는 것이다.


자기가 어디로 가게 될 것인지를 모르고, 자기 임의로

세상적 관점으로 보기에 그럴 듯한 목적지를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어리석음’이다.


▲예수 믿으면서도, 늘 불평이 나오는 이유

‘내가 S대에 들어가기만 하면.. 내 인생이 행복할거야!’

‘내 아이를 S대에 넣기만 하면.. 내 인생이 행복할거야!’

그러면서 초등학생 때부터 아이를 닦달하니까.. 지금을 불행하게 산다.


‘사업은, 내 생각에 이렇게 이렇게 되어야 해..’

이렇게 자기가 목표를 나름대로 세우고 가는데,

그런데 그게 ‘어리석은’ 길이 될 가능성이 크다.     ↔ ‘지혜로운’

내 스스로 목적지를 정해 놓기 때문이다.


오늘 나의 모든 고민/불만/탄식이라고 생각되는 것들..

이 모든 것이

따지고 보면.. 내가 설정한 목적지..

그것을 달성하지 못한데서 나오는 고민/불만/탄식이다.


▲스데반의 예를 들면,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

거기서 스데반은, 자기의 마지막 목적지를 본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이 보좌에 앉아 계시고, 

그리스도께서 보좌 우편에 서 계신다.


그 마지막 목적지를 자기 마음에 두고서

돌에 맞는 자기 현재 상황을 바라보니까,

자기가 어떻게 이 상황을 대처해야 되는 것인지.. 지혜가 나오게 된다.


    그러므로 지혜와 명철이란,

    올바른 목적지(영원한 천국)에 서서, 오늘 현실의 나를 바라 볼 때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알게 되는 것이.. 바로 지혜와 명철이다.


그래서 스데반은,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드리게 된다.

목적지를 바로 알았기 때문에

지금 자기가 가는 길에 대한.. 올바른 지혜와 명철이 나온 것이다.


▲참 성도는.. 현실적인 문제에, 좀 더 느긋하고 여유로워 진다.

①지금 내 자녀가 공부를 못한다고 치자.

그러면 여러분, 목적지가 무엇인가? 내 자녀의 마지막 목적지점이 어디인가?


보좌에 계신 하나님 앞에 가는 것이, 마지막 목적지라면

애가 지금 공부를 (잘 해야 하지만) 조금 못하는 것이.. 뭐가 그리 큰 문제인가?


그리고 지금 공부가 조금 뒤쳐져도, 중학교/고등학교 가서

얼마든지 잘 할 수 있을 터인데... 뭐가 그리 하늘이 꺼질 듯 낙심하는가?


    공부 못하는 것을 합리화하면서, 스스로 찌질하게 살자는 뜻이 아니라,

    그런 현실적인 문제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할수록.. 문제는 더욱 악화될 뿐이다.


    좀 더 거시적인 안목으로, 신앙적/영원한 안목으로

    현실의 문제를 바라보면

    좀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해결책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②내가 지금 직장이 없다는 문제도..

또 심기일전해서, 기도하는 중에, 다시 괜찮은 직장을 찾으면 되는데..

자꾸 잘 나가는 동창과 비교하면서,

낙심하고, 하나님 원망하고.. 그러니까 일이 더 꼬여버린다.


목적지(천국, 하나님 우편)에서.. 지금 내 현실을 보자는 것이다.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하지만.. 직장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어떤 초조함과 강박관념이 없으니까

결국에는 좋은 직장을 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영생에도 좋은 직장을 구한다.

그게 지혜와 명철이라는 것이다.



▲마치는 말

지혜를 구하라.. 는 말씀은   잠2:1~6

내 마음이 ‘올바른 목적지’(천국)에 서서, 오늘 현실을 바라보게 될 때

비로소 올바른 지혜, 명철을 갖게 된다.


그렇지 않고, 내가 승객이고, 그래서 내 목적지를 내가 다 정해 놓고,

하나님을 택시기사로 부리면서,

‘이리 갑시다. 저리 데려다 주세요!’ 하다가는 ‘어리석은 자’가 될 뿐이다.


자기가 나름대로 정한 목적지에 자기 마음이 상상으로 도달한 상태에서 (상상이나 착각은 자유니까)

오늘의 자기 현실을 보면

예수를 믿으면서도, 늘 자족하지 못하고, 불평/불만하고 살 뿐이다.


결국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날이 우리 종착역이 되어야’ 하는데

결국 성경과 예수님이 가르치는 바는.. 영생eternal life의 관점에서 항상 말씀하시는데,

오늘날 나는,

항상 현실의 관점에서 성경을 읽고, 나의 현실을 가늠한다. 그 결과는 언제나 불평과 불만족이다. 


그래서 ‘그날은 그날이고, 일단 오늘 현실에서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게 주님이 정해 놓으신 길과 맞지 않아서,

자기가 정한 그 현실적 목표에 쉽게 도달하지 못하니까

늘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불만/불평/한숨/탄식한다는 것이다.


이런 삶을.. 잠언의 관점에서 보면.. 지혜가 없다는 것이요,

왜 지혜가 없는지 그 속을 들여다보니.. 다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있고,

하나님을 택시기사로 부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여러분, 잠언에서 전반적으로, 지혜를 찾으라고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이유는,

    그만큼 우리 속에는 ‘지혜가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우리 속에 있는 것은 ‘내 뜻, 내 계획, 내 의지’가 충만해 있다.


    잠2;5절은, 은을 찾듯이, 감춰진 보물을 찾는 것같이 지혜를 찾으라고 하신다.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지에서 미리 도달해 서서,

    오늘 내 현실을 바라보고, 해석하고, 나아갈 길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 당신이 가진 많은 딜레마가.. 저절로 풀릴 것이다.)


    예수를 믿고 십자가에 자기가 못 박힌 사람은,

    절대로 ‘내 뜻, 내 계획, 내 의지’를 앞세우지 않는다.

    자기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모두 못 박았기 때문이다...                                           ▣ 꿈, 비전, 소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