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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의 흥을 돋구는 하나님 찬양 2333

LNCK 2010. 3. 1. 23:18

◈사탄의 흥을 돋구는 하나님 찬양                    시137:1-9                  09.10.07.설교스크랩/출처 휘발 


아래 설교 내용이 정말 맞는지, 한 번 기도로, 각자 하나님께 여쭈어 봅시다.

 

 

▲사탄의 흥/즐거움을 돋구는 것과, 하나님 찬양은 사실은 같이 갈수 없습니다.

사탄이 기뻐하는 일이라면..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입니다.

사탄의 즐거움을 가중하는.. 그런 하나님찬양이란.. 사실 성립하지 않아요.

어떻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설교문 제목은 이상하네요)


비파야 수금아 깨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라 할 때에

그 하나님께 기쁨의 찬송을 드리는 일이

어떻게 사탄의 흥을 '돋구는' 일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표준말은 ‘돋우다’)


예를 들어보면 이런 거지요.

미식축구 있잖아요. 치어리더는 미식축구장의 꽃이라고 불립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팀의 치어리더가, 라이벌 팀의 쿼터백과 사랑에 빠져버립니다.

쿼터백은 미식축구에서 거의 두뇌의 역할을 하는 선수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팀에서 춤을 추며 응원을 하고 있습니다만,

마음은 상대팀 쿼터백을 응원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아마 요즘 기독교 중에 상당수가 아마 다 ‘사탄의 흥을 돋구는

하나님 찬양’을 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염려가 생깁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하여 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가 너무 기뻐서

하나님께 드려져야 될 찬양이

라이벌 팀의 승리를 위한 찬양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에요.


이게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이고, 우리의 신앙을 한번 돌아봐야만 하는

어떤 경각심을 일으켜주는 내용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물질이나 세상 정욕을 너무 사랑해서, 거기에 푹 빠져 있는 상태에서,

아무리 교회 나와서 하나님 찬양을 (이런 상황에서 잘 나오지 않겠습니다만)

자기 젖 먹던 힘을 다 짜내서, 열심히 발을 구르면서 찬양을 불러도..

오히려 마귀가 좋아한다니까요? ‘너는 내 편이야!’ 하면서 (이럴 수도 있습니다.)


▲본문 시137편 상황이, 이와 비슷합니다.

본문 시137편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강변에 앉아서 울었다는 거예요.

포로로 잡혀갔잖아요.


그래서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다 라는 말은  시137:2

‘다시는 수금을 타지 않겠다’ 라는 얘기입니다.   

‘수금을 묶어뒀다, 쓰지 않겠다’는 얘기에요.            *수금: 일종의 하프

찬양이라는 것을 자기 입에 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상황은, 

바벨론 여러 강변에서, 바벨론의 귀족들이 잔치를 벌이면서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사람들에게

‘너희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너희 신 여호와를 위하여 찬양하던

그 찬양을 한 곡조 불러봐라.’ 이러한 형국이 됐다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불렀던 그 하나님 찬양을

포로로 잡혀온 상태에서, 다른 우상을 섬기는 이방민족들이

자기들의 기쁨을 위하여 하나님 찬양을 한번 해보라고.. 요청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뭐라고 (자기 심경을) 노래하느냐 하면.

‘내가 어찌 이방 땅에서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내가 예루살렘을 잊어버리고 이 바벨론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내 안위를 위해서 그들이 요청하는 대로 시온의 노래를 부를 경우,

내 오른손이 말라비틀어질 것이고.. '


(그리고 지금 포로로 잡혀온 그 땅에서도, 즐거워할 일들이 조금은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즐거워할 수 있는 일, 그 일보다

내가 예루살렘을 더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어 버릴지로다.’ 하면서

지금 자기를 향한 저주를 하고 있는 거예요.   시137:3~6


그러면서 그 원수들을 향하여 원한을 품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시137:7~9


▲시137편의 영적 의미

여러분, 이것을 언뜻 (문자적으로) 보면, 그냥 민족주의에 사로잡혀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한에 사무친 노래처럼 보여요.


그런데 영적인 의미를 한번 생각해봅니다.

(이것이 성경에 채택되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히 민족주의가 아닙니다.

성경은 극단적 민족주의나 국수주의/쇼비니즘을 찬성하지 않거든요.)


그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온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는, '우상과 마귀의 포로된 상태'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나안복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에서 살고 있을 때에

포로가 되어버렸어요. (오늘 우리가 그렇지요?)

이방 사람들이 믿고 살아가고 있는 그 바알과 아세라신을 섬기고

다산과 풍요를 마음에 붙잡으면서.. 마음이 맘몬 우상에 사로잡혀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포로로 잡혀간 그제야, 내 마음이 깨달은 바가 뭐냐 하면,

이제 내가 제일 이 땅에서 즐거워하는 일보다, 예루살렘을 더 즐거워하지 아니하면.

(내 옆에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 사실을

이 땅에서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내 혀가 말라 붙어버려라...하면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서).. 드디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가나안복지에서 살 때에, 이러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았더라면

결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 정욕에 포로가 된 증거

나에게 뭐가 좀 있으면.. 중독으로 나타나고, 교만으로 나타납니다.

반대로 없으면.. 갈망하게 되고, 불평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내가 포로로 잡혔다는 증거이에요.


돈이 없어서.. 열망합니다. 불평합니다.

반대로 내가 돈이 좀 있음으로.. 그만큼 잘난 사람인 줄 압니다.

비싼 옷, 명품 옷, 명품 가방, 외제차.. 내가 수준 있는 사람인 줄 아는 거예요.


그러니까 소형차 타고 다니는 사람보다 BMW 타고 다니면..

내가 그렇게 잘난 사람인 줄 알고.. 세상에 취해버리고, 중독돼 버립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가짐, 일단 마음이 세속의 포로로 잡힌 상태의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돈에 취해서 돈 주셨다고 감사하고,

또 반대로 돈이 없어서 돈을 열망하면서.. 그런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일단 사로잡힌 자들이, 일단 세상에 제일 즐거워하는 것들에 마음이 뺏긴 자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그 우상들을 이루기 위해서, 그 바알들을 얻기 위해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사탄의 흥을 돋구는 찬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있음으로 중독되고, 그것이 있음으로 교만해지면서

내가 그렇게 잘난 사람인 줄 알고 착각하면서

교회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확대시켜서 모든 교회활동을 하면 할수록.. 사탄은 좋아합니다. 사탄은 기뻐합니다.


자기 편(간첩)을 하나님 나라에 침투시킨 것과 같은 형국입니다.

또는, 시137편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사탄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간 상태에서

‘여호와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지금 뭐에 사로잡혔어요?

무엇을 열망하고 있고, 왜 불평합니까?

하나님이 옆에 계신 것이 없어서 불평합니까?

하나님이 옆에 계신 것만을 열망합니까?


그게 아니라면 돈 때문이라면/ 자식 때문이라면/ 건강 때문이라면/

여러분의 승진과 성공과 형통과 부흥 때문이라면

여러분은 사로잡힌 자요/ 포로요..


그리고 바벨론에 사로잡혀간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의 귀족들 앞에서, 강변에서 잔치가 벌어지고 있을 때

하나님 찬양을, 그들을 위하여 노래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이 세상에서 제일 즐거워하는 것들에 사로잡힌 상태에서 하는

모든 하나님의 찬양과, 모든 교회의 활동은

다 하나님이 아니라, 오히려 사탄을 즐겁게 해주고,

사탄을 까무러칠 정도로 기쁘게 해주는 것이라는 거예요.


▲성도가 가나안 복지의 삶을 사는 마음가짐은 5, 6절에 이렇게 표현되어 있어요.


5절,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그 옛날 모든 것을 손으로 하며 살았던 시대에

‘오른손’은.. 권능과 능력과 활력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차라리 ‘내 오른손이 힘/기술을 잃어버리라’는 것이에요. 

그만큼 하나님의 임재를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라는 뜻이지요.


6절,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 하나님이 임재하심을 제일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어서 (이제는 다시는 이 세상에서 한마디도 말을 하지 말게 될지어다.)


이렇게 자기를 향하여 저주를 겁니다.

이게 바로 포로로 잡혀가서야 비로소 깨달은, 하나님 백성의 태도라는 것이에요.


즉, 내 자식의 성공이 나를 취하게/괴롭게 합니다.

돈이 나를 미치도록 즐겁게/괴롭게 합니다.

건강과 미모가 나를 졸도할 정도로 즐겁게/괴롭게 합니다.

 

만약에 내가, 하나님이 내 앞에 임재하시는 것보다

그 모든 세상 일들을 더욱 즐거워/괴로워한다면

내 혀가 말라붙어버리고

내 능력과 권능과 활력의 상징인 오른손이 말라붙어서 무능하게 되라고

아예 스스로 저주를 거는 것입니다.


이것을 일찍 깨달았으면 좋으련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간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는 겁니다.


어쩌실래요? 여러분.

사탄의 흥을 돋구는 하나님 찬양을 계속하시겠습니까?


일단 내 마음이 이 세상 그 무엇엔가 포로로 사로잡혀 있고

그것이 없음으로 열망하고, 그것이 없음으로 불평이 생기고

반대로 그것이 있음으로 중독되어서, 내가 교만해지고, 그것에 취해버리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자들이 교회에 아무리 많이 들어와도

그 모든 사람의 활동은.. ‘다 사탄을 위한 찬양이 되어버린다’는 겁니다.


사탄의 포로들이, 바벨론 강가에서, 하나님 찬양을 하고 있는 형국이라니까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강가 버드나무에 수금을 걸어매야 합니다.  :2

(‘수금을 걸어놓고, 노래를 중단한다는 뜻’이라고 서두에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그래서 찬양을 다 중단하자는 뜻은 아니고, 우상을 버리자는 뜻이죠.)


하나님아버지!

일단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이외의 무엇엔가 (우상에) 사로잡히고 난 뒤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하면 할수록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이 기뻐 어쩔 줄 모르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깊이깊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사탄의 흥을 돋구는 하나님찬양, 이제는 중단되기를 바라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 우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