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0

성경은 피의 역사

LNCK 2010. 3. 19. 22:27

◈성경은 피의 역사       히12:24          10.01.09. 설교스크랩, 편집

 

창세기, 출애굽기는 물론이고.. 모든 성경은 사실상 ‘피의 역사’입니다.

(설교의 뼈대가 마음에 들어서 스크랩/편집해 봅니다.)

 

 

당신은 크리스천입니까? 십자가의 능력으로 사는 진짜 크리스천입니까?

주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셨는데

우리는 아주 사소한 것으로 우리 믿음생활에 실족합니다.

십자가는 능력인데, 우리의 아주 사소한 것이 그 발목을 잡습니다.

 

왜요? 내 안에서 십자가가 능력이 안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능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쓰러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알기는 알아도.. 지식적으로 아니까.. 이게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혈의 능력을.. 지식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깨닫게 되시기 바랍니다.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해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셨습니다. 창3:21

 

... 하지만 하나님은 친히 가죽옷을 만들어 입히셨습니다.

가죽옷을 만들어서 입히려면, 먼저 누군가 피를 흘렸습니다.

 

하나님은 첫 사람 아담과 하와부터,

피를 흘려서, 범죄한 그들의 생명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가죽옷을 입혔다(덮었다)는 것은, 그들을 피로 덮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피는 장차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합니다.

주님은 피로 우리를 덮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가죽 옷’은.. 예수님의 십자가 이전에,

‘가죽 장막(회막)’의 예표일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시84:1)

장막은 짐승 가죽을 바늘로 기워 엮은 허름하고 허술한 텐트를 뜻합니다.

그런 자그마한 텐트가 뭐가 그리 아름다운가요?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 것은.. 거기에서 하나님과 '만남'이 있고, 

하나님과 만날 때.. 따뜻한 '하나님의 품'을 느끼며 아름다움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가죽 옷’은.. 옷이 없어서, 단순히 옷 한 벌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다시 만남을 통해서

따뜻한 관계의 회복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가죽 옷’이란 상징을 통해서요!  

 

그러므로 우리가 가죽옷(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한다는 것은

멀리 떨어져 있던 우리가

다시 하나님과의 따뜻한 만남의 관계를 회복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따뜻한 친밀함이 내게 없다면, 고갈되었다면.. 가죽옷을 입혀달라고 구하십시다.

주님의 보혈의 피로 나를 덮어달라고.. 간구하십시다.

 

 

▲2. 아벨은.. 양 떼의 첫 새끼들과 기름을 제물로 가져왔습니다. 창4:4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인정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 결과, 가인은 화가 나서, 아벨을 돌로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예배만 드리지 않았더라면,

가인과 아벨은.. 한 가족으로서 서로 사이좋게 잘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예배를 드리자..

아벨은.. 가인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예배는/복음은..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내게 합니다. 십자가의 원수인지, 십자가의 군병인지..)

 

세상에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나 결코 억울한 일이 아닙니다.

 

마23:35절에서, 예수님은 ‘아벨의 피’를 최초의 순교자의 피로 언급하셨습니다.

그 순교자의 피위에.. 교회는 세워져 내려왔습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교통사고나 암으로 죽을래요? 아니면 순교하실래요?)

 

교회는 예수님의 피 위에 세워지긴 했지만, 더 많은 피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첫 순교자인 스데반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증거하다가 목숨을 잃습니다.

초대교회는 피 위에 세워졌던 것입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1만 명이 넘는 순교자들의 피 위에서 꽃피어나게 된 것입니다.

개신교회도

신사참배 반대와 625를 통해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했습니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그분들 피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영생의 관점에서 보면, 순교는 가장 복된 길입니다.

 

아벨은,

양의 피로 제사를 드리다가,

결국에 자기 피를 바쳤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피를 우리에게 주시지만,

때에 따라서는, 우리의 피를 받으시기도 합니다.

 

예배는.. 예수님의 (큰) 피를 의지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나의 (아주 작은) 피를 드리는 헌신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작은) 피는.. 봉사, 희생, 헌신을 의미 

그래서 아브라함도, 자기 아들 이삭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나는.. 나의 피를 드릴 각오가 되어 있습니까?

 

받는 것도 기쁨이지만, 드리는 것도 기쁨입니다.

인격적 관계는.. 서로 주고 받는 교감이 일어납니다.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것은.. 인격적 친밀한 관계라 말할 수 없습니다. 

 

▲3. 피의 제단을 쌓은 노아

 

창8:20~21, 노아가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쌓고

정결한 짐승들과 정결한 새들 가운데 몇을 잡아 그 제단 위에 번제로 드렸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좋은 향기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해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

이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이다.

내가 전에 했던 것처럼 다시는 모든 생물을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노아의 피의 번제를 흠향하시고, 하나님은 홍수심판의 저주를 거두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보혈로 나의 저주가 끊어집니다.

내 과거의 쓴뿌리들. 내 삶의 저주라고 느껴지는 것들.

그것을 끊을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보혈입니다.

 

그런 과거의 쓴뿌리들, 내 삶의 저주라는 것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주관하려고 할 때,

예수님의 보혈을 찬송하는, 찬송을 드리십시오.

예수님의 보혈에, 내가 씻음 받았음을 선포하십시오.

그리고 예수 이름으로, 그 악한 권세를 물리치십시오. 명령하십시오! 

 

내 성품을 , 내 마음을, 나를!

도저히 바꿀 수 없었는데, 바꿀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보혈입니다.

이것은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바로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저주가 끊어짐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보혈에는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하나님이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소망을 주십니다.

 

오늘도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서

주님의 보혈로 우리를 덮어주심을 사모합시다.

바로 그때, 우리 삶의 저주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관련글 무지개는 십자가의 예표

 

 

▲4. 피의 제단을 쌓은 아브라함, 이삭

 

창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자손에게 이 땅을 주겠다."

아브람은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신 그 곳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창26:24~25, 그 밤에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해 네게 복을 주고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겠다."

이삭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계속 창세기에서 피의 역사들이 나옵니다.

그들이 제단을 쌓았을 때, 하나님은 계속 그들을 만나 주셨습니다.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피의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 짐승의 피는..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의 보혈의 예표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피의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언약’covenant이라는 말은.. 절대 깨어지지 않는 약속을 뜻합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 이후 성경의 인물들 모두

그들 중에 완벽한/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지금 우리와 뭔가 남달라서..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성정을 가진 인간이고, 똑같이 실수하고 허물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믿음의 조상’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 때문>이었습니다.

바꾸어 말해서, 언약이 아니었다면.. 그들도 실패하고, 패망했을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나라는 일류대학만 나오면.. 모든 게 잘 풀리던 시절이 한때 있었습니다.

직장과 사회에서.. 일류대학 학벌 덕을 톡톡히 보던 시절이었지요.

 

마찬가지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다른 특별한 무엇이 없었습니다.

그냥 ‘언약 백성이 된 덕분에’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끝까지 그들을.. 이끌고 가 주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그들이 잘난 점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나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예배의 제단을 쌓으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요즘도 그런가요? 한미정상회담 때, 항상 미국과 상호방위조약 재확인을 했습니다.

 

예배는, 십자가 보혈의 언약을 재비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재확인 하실 필요가 없으나)

내 쪽에서 종종 잊어먹으니까.. 내가 그 피언약을 재확인하면서.. 안심하는 것입니다.

 

 

 

▲5. 피로 구속함을 받은 출애굽

애굽을 떠나기 전, 모두 희생제물을 드렸습니다.

모두 어린 양의 피로, 문에 바른 것입니다.

재앙은 그 피를 보고, 넘어갔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전에 사탄의 왕국의 노예요, 사탄의 수하에 속해 있었습니다.

거기서 빠져나와야 되는데, 사탄이 (바로 왕처럼) 결코 쉽게 놓아주지 않습니다.

 

결국 사탄은 치명타를 맞고서, 자기 노예들을 풀어주는데,

그것은 어린 양의 피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이었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사탄의 노예로 붙잡혀 있습니다.

    그들의 눈이 가려져서, 아직 보혈의 공로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속(값을 치르고 자유함 얻음)함을 받은 것은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보배로 된 것이 아니요,

    어린 양 예수의 피로 구속함 받은 것입니다.

 

 

▲6. 피로.. 하나님과 동행/동거하게 됩니다.

시내 산에는 모세만 올라갔습니다.

어느 날 모세에게 제사장들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리고나서 짐승을 잡으라고 합니다. 수많은 소를 잡습니다.

반은 하나님의 단에 뿌리고

반은 백성들에게 뿌리라고 합니다.  출24:6, 8

 

그 역사 다음에 하나님께서 '내가 거할 장막을 지어라'라고 말하십니다. 출25:9

보혈은 단순히 죄가 사해준다는 것을 뛰어넘어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장막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함께 거하신다는 표였습니다.

 

그 장막은.. 피를 뿌린 후에 비로소 만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덧입을 때, 주님이 나의 장막이 되어 주십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거하시는 것입니다. 그 피 때문에!

 

리처드 마우 박사는 그의 책 '무례한 기독교'(Uncommon Decency)에서

"기독교인들의 과제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과의 동행을 통해서요!

Our calling is not to expand God's Kingdom but to reveal God's hidden presence.

 

 

▲은혜의 피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어떠한 새로운 생명도 태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 새 생명만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피를 함께 세상에 뿌립니다.

한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 이런 고통이 필요하다면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큰 고통이 필요하겠습니까?

 

바로 왕은 이스라엘 인구가 늘어나자, 태어나는 사내아이는 모두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모세는 이렇게 ‘피밭’에서 자라난 새로운 생명의 씨앗이었습니다.

이 순결한 어린 순교자들의 피는,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구원하는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무고한 베들레헴의 아이들이 피를 흘리며 순교하게 됩니다.

이 아이들의 순교 속에서 구원자가 태어난 것이고,

이 구원자의 피 속에서 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옆구리에서 빼어 낸 갈비뼈로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

옆구리를 찢으면 당연히 피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아담의 옆구리를 찢어, 그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로

죄를 씻으시고 생명의 물을 부어주시어

두 번째 하와인 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 단락 펀 글)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

성인 세례 교리를 마치고 면담을 하는데,

한 자매님이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신부님, 저는 성당에 다니면 좋은 일이 생길 줄 알았는데

교리 수업을 받은 이후부터 안 좋은 일만 자꾸 생겨요.

그래서 세례를 받을까/안 받을까 고민중이에요.”

 

저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자매님, 그건 당연한 거예요. 엄마가 아기를 낳을 때 고통스럽죠?

그건 세상에 한 생명을 나오게 하는 고통이에요.

고통 없이 이루어지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어요.

 

자매님은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 탄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귀들이 시기해서 그것을 막으려고, 얼마나 고통스럽게 만들겠습니까?

 

만약 어머니들이 해산의 고통을 두려워하여 아기를 안 낳는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고 나면.. 생명이 새로 태어난 큰 기쁨이 있습니다.

 

자동차나 비행기나 처음에 출발할 때, 가장 에너지가 많이 듭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속도가 나면 큰 힘이 들지는 않아요.

힘이 든다고 출발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 자매님은 잘 받아들이셨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펀 글)

 

    Freedom is not free 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받은 구원은.. 그저 받은 은혜이지만, 결코 값싼 free 은혜는 아닙니다.

    거기엔 그리스도께서 값비싼 피의 대가를 <내 대신> 치르신 것입니다. 

 

▲십자가라는 것은 힘든 것을 참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썩어질 우리를 받아주시는 것..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세리, 창녀 등의 죄인들을.. 단 한 번도 꾸짖은 적이 없으십니다.

돌아온 탕자도, 아버지가 꾸짖지 않으십니다. (자기가 스스로 의롭다는 바리새인들은 제외)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죄인됨을 인정할 때, 더 이상 꾸짓지 않으십니다.

다만 묵묵히, 내 죄를 대신해서 피를 흘려주십니다.

 

그런 십자가를 우리가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이 전부인지 압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전부인지 압니다.

아닙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더 큽니다.

 

우리가 잘못되었다고 혼내려고 하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보고 울고 계십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너무 쉽게 생각해요.

 

    ▲십자가를 이론이 아니라 실감하려면,

    내 편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아래 설교문을 참조합시다.

 

 

    날마다 십자가를 보라                                                                                                              ▣ 복음 관련     

 

.....................................................피 관련글 보기.........................................

 

 

자존심 회복의 피

 

 

피의 공명현상   (예수님 피와 우리의 피가 공명 현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사명감에서 오는 고난 (너무 '받는 은혜의 피' 쪽만 생각하면 균형을 잃으므로, '내가 흘리는 피'도 생각해야 합니다.) 

 

 

'분류 없음 > 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 변하면 도태됩니다 2365   (0) 2010.03.22
눈을 씻고서 현실을 올바로 해석하기 2364   (0) 2010.03.20
암세포도 자신의 일부로!   (0) 2010.03.18
고통의 의미 재발견 2359  (0) 2010.03.17
불편한 소식 2358  (0) 2010.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