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생각해 볼 문제 설교 스크랩, 편집
◑자살자 중에 유독 기독교인이 많은 이유
(먼저 과거에 자살하신 분과, 슬픔을 당한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의로를 표합니다.)
자살자들 중에 유독 기독교인이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면 그들 중에 왜 유독 기독교인들이 많을까요?
한 번 이렇게 생각을 해 봅니다.
①기독교가 현세적 성공 가치관을 너무 강조해서 전파하고,
거기에 혹해서 기독교에 들어온 사람들이
자기 현실이.. 자기 기대에 너무 미치지 못하니까
좌절감 속에서 오래 동안 방황하다가..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봅니다.
②바꾸어 말하면, 기독교가 내세적 가치관을 별로 심어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현실이 아무리 고달프고 어려워도
신자는 본향을 향하여, 현실의 괴로움을 인내하며 나아가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인데,
꼭 이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축복받아 성공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며,
현실에서 잘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뭔가 자기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라는 식으로 기독교 메시지가 계속 전파된다면
‘자살=기독교인’이라는 공식은 당분간 계속될 것입니다...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기 삶을 지탱할 어떤 고상한 (신앙적)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니까,
극단적인 길을 선택하는 것 아닐까요?
◑하루에 6만$과, 하루에 60$ 버는 사람의 차이는 신앙적으로는.. 없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는 운동선수 중 한 명은
뉴욕 양키즈의 야구선수 알렉스 로드리게스입니다.
그가 2004년 받은 연봉이 2천 만 달러였다고 합니다.
계약금이나 다른 benefit을 모두 제외한, 연봉만 말하는 겁니다.
이것을 365일로 나누어보니, 하루에 약 6만 달러를 매일 번 셈입니다.
2005년 8월 31일자 워싱턴포스트(신문)에 보니,
2004년 미 국민의 평균 가구 1년 소득이 약4만4천 달러였다고 합니다.
(세금을 제하면 훨씬 더 작겠죠?)
스타급 운동선수 한 사람의 하루 수입이
중산층 가족의 평균 1년 수입보다 많다는 이해하기 힘든 현실입니다.
▲그런데 신앙적/성경적/천국의 가치로 보면
하루에 6만 달러를 버는 그 선수가
하루에 60 달러를 버는 노동자보다.. 더 나은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온 우주보다 귀하다고 하셨던
영혼의 값이야 하루 60달러 버는 사람이나, 6만 달러 버는 인생이 같듯이,
둘 사람의 신앙적 가치는 동등합니다.
아니 누가 자기 시간을 더 값있게 사용하고 있느냐에 따라..
일당 60달러 근로자가, 일당 6만 달러 운동선수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더 소중할 수 있습니다. (물론 반대도 마찬가집니다.)
하루에 60달러를 버는 근로자가
어쩌면 하루에 6만 달러를 받는 사람보다 더 값있는 인생을 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비교를 현실적으로 하기 위해, 6만$ 대신에 6백$을 대입해도 마찬가집니다.)
▲인생의 가치는.. 시장경제가 매겨 주는 돈값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기독교 복음은
시장경제 논리에 그대로 접목된
축복의 종교로 타락해 버렸습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인생의 값을
자신의 연봉의 크고 작음으로 판단하려 합니다.
심지어 교회의 사역을 판단하는 데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합니다.
얼마나 많이 모이고, 얼마나 헌금이 많고, 얼마나 유명하냐에 따라
목사의 값도 달라지고, 교인의 값도 달라지고, 교회의 값도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심각한 오류이며, 참으로 부끄러운 죄입니다.
목회자 스스로가, 자신이 받는 연봉(사례비)과
자신이 결재로 운용되는 금액의 크기로
자기 스스로를 위대하게/왜소하게 생각한다면...
(그런 생각이 안 들 수 없겠지만)
그런 생각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라르쉬' 공동체를 방문했을 때, 보았던 한 피아니스트가 생각납니다.
아담하고 정갈하고 아름답게 지어진 예배당에 들어섰을 때,
피아노 앞에서 한 음악가가 정성을 다해 연주하고 있었고,
그 곁에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이 듣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그 한 사람만을 위한 음악회였습니다.
제가 음악에 대해 잘 모르지만, 대단한 수준의 음악가임에 틀림 없어 보였습니다.
그는 필경 개런티 한 푼 못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한 사람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눈을 감고 감상하고 있던 그 장애인은,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모습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생각할수록, 그 사람은 진정한 예술가요, 진정한 프로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에 정명훈 씨도
한국의 고아 및 결손가정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그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가
뉴욕의 카네기 홀(세계최고수준의 연주회장)에 가서 연주회를 가졌다고 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명훈 씨처럼, 교회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궂은일을 하면서
‘내 노동력이 얼마짜린데..’ 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쩌다가 한 번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만약에 계속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내가 세속적 가치관에 오염된 것입니다.
▲덧붙여서, 무조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의 예를
설교에 종종 등장시키는 것도.. 재고해 봐야 합니다.
그의 참된 믿음, 그의 영원한 가치를 거의 고려하지 않고,
그가 재벌이면.. 무조건 훌륭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금메달만 따면.. 무조건 훌륭하다는 식으로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면.. 무조건 훌륭하다는 식으로
노골적으로 설교에 소개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요?
김연O 선수가 우리나라에 몇 조 원의 경제효과를 가져온 것도 중요하지만,
수출 공단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또래의 자매들도,
그래서 벌은 돈으로 동생들 뒷바라지 하는 자매들도
균형을 맞추어, 함께 강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그 훌륭한 선수를 침이 마르게 칭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도, 그렇게 칭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만,
그렇게 꼭 성공한 사람들만 부각해서 칭찬한다면,
기독교와 사회가.. 다른 점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이렇게 기독교회마저도, 늘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만 부각해서 칭찬하다 보니
기독교인들 중에 영원한 천국의 가치관을 전혀 갖지 못하고 살다가
궁지에 몰리면,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로, 칭기즈칸을 생각해 봅시다.
그는 전혀 기독교적 성향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일으킨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의 수는 몇 백만 명이나 됩니다.
그런 희대의 살인자가
역사책에는 등장할 수 있지만,
설교시간에 예화로 들기에는 적합한 인물이 절대 아닙니다.
하늘위에서 하나님이 대노하실 일입니다.
물론 칭기즈칸의 좋은 점들을 본받자는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의 예를 드는 것과 균형을 맞추어
평생 떡볶이 장사를 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살았던 할머니의 예를...
<신앙적인 관점에서> 동시에 강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인=자살’이 확 줄어들지 않을까요?
▲정신과 의사 100명이 작성한 건강수칙 10가지는 이렇습니다.
① 긍정적으로 세상을 본다.
②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③ 반갑게 마음에 담긴 인사를 한다.
④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한다.
⑤ 누구라도 칭찬한다.
⑥ 하루 세끼 맛있게 천천히 먹는다.
⑦ 약속시간에는 여유 있게 가서 기다린다.
⑧ 일부러 라도 웃는 표정을 짓는다.
⑨ 원칙대로 정직하게 산다.
⑩ 때로는 손해 볼 줄을 알아야 한다. ▣ 크리스천 삶(리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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