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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듣는 신앙, 눈으로 뵙는 신앙 2379

LNCK 2010. 3. 30. 20:40

◈귀로 듣는 신앙, 눈으로 뵙는 신앙                       욥42:5                          08.12.18.설교스크랩

                                                                                                         *원제목 : 십자가의 내부설계도


▲서론 : 욥이 의인이었지만, 아직 ‘하나님을 멀리서 듣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욥이 수많은 고난을 거친 후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라고 고백합니다. 욥42:5


욥이 고난을 통해서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 하면,

멀리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이제 가까이서 눈으로 뵙는 단계로 올라갔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욥을, 욥기 서두에서 ‘동방의 의인’이라고 말할 때  욥1:3, 1:1참조

아직 ‘멀리서 듣는 단계의 의인’이었습니다.

진짜 수준에 올라간/십자가를 소화해 낸 의인은 아직 아니었습니다.


아직 하나님을 가까이서 뵈올 수 있는 의인이 아니었던 사람이

극심한 고난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을 가까이서 뵈올 수 있는 의인으로 바뀌어갔다는 점에 착안해서

이 욥기서의 전편의 내용을 이해해 나가려고 합니다.


욥이 고난을 통해서.. 세상을 추구하던 것들을 하나씩 끊게 되는데요,

이것은 우리가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들일 때, 믿을 때,

십자가를 받아들인 사람 안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동일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욥의 고난은

신약적 의미의 자기가 지고 가야하는 십자가 고난의
어떤 상징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고난 전.. 하나님을 (멀리서) 귀로 듣기만 하던 신앙


▲욥이 하나님을 뵙지 못한 이유 - 자기 눈에 덧씌워진 것이 많았습니다.

마5장 산상수훈에 보면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욥이 하나님을 귀로 듣기만 하고,

아직 하나님을 가까이서 뵙지는 못한’ 상태에 있었다는 것은

그의 마음이 청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도 됩니다.


자, 욥에게서 잃어버려진 것을 살펴볼까요?

재산을 잃었습니다, 자녀를 잃었습니다,

건강을 잃었습니다, 아내를 잃게 됩니다.

그와 동시에,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사회적인 모든 존엄성을 다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이 모든 것이 다 욥의 마음에/눈에 덮여 있었다는 것이에요.

자녀, 재산, 건강, 아내,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평판 등.

이런 것들이 다 욥의 마음에/눈에 덮여 있었기 때문에

욥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보고 있지 못했습니다.


▲오버 코트 비유

이 말을 이해하기 쉽게 비유해 보면

마치 겨울에 두꺼운 오버 코트를 입고, 등이 막 가려운데 긁어달라고 해서

오버코트 위로 벅벅 긁어줄 때.. 그런 느낌입니다.

뭔가 긁히는 것 같은데.. 전혀 시원하지 않은 느낌 말입니다.


그러니까 욥이, 하나님을 만나려 하는데,

‘귀로만 듣는 신앙’이란 것은,

마치 오버 코트를 입은 채로, 등을 긁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멀찍이 떨어져 있고, 아주 가까이 뵙지는 못한 것이죠.


그 이유는, 마치 오버코트처럼,

자녀, 재산, 건강, 아내. 사회적 체면, 자존심

이런 것들에 의해, 욥의 영혼이 두껍게 덮여있었던 것이지요.


이제 하나님께서 그런 것들을 벗겨 내십니다. 고난을 통해서요.

외적으로 다 벗겨 내셨습니다.

아무 것도 남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자연히 마음과 영혼까지 적신(벗은 몸)이 되게 하십니다.


당연히 욥이 너무 아파합니다. 괴로웠겠지요?

당연하지요. 아파합니다.

그런데 왜 아플까요?


이게 사랑의 대상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아플 것도 없지요.

그런데 상실의 아픔이 있다는 것은.. 그것들을 사랑했다는 증거입니다.


▲물론 욥은, ‘동방의 의인’으로서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1:3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1:1


아마 욥의 마음 깊은 곳에, 첫 번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서

또한 자녀와 재산과 이 모든 것들을 정을 붙이고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갔던 것이에요.

이것들이 두꺼운 오버코트처럼 욥의 영혼에 덮여 있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그냥 귀로만 멀찌감치 들릴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걸 다 벗겨내셨어요.

이제 욥기3장부터 계속해서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

얼마나 고통스럽고 얼마나 아파하는가가 욥의 말을 통해서

계속해서 나오게 됩니다.


왜 그렇게 아파할까요?

그것들이 자기 마음에 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이 사랑하는 모든 대상들이.. 내 마음에 살과 붙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아픔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1994년에 개봉된 <마스크>라고 하는 그런 영화가 있습니다.

고대유물인 나무 마스크를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도 전에

바이킹족들이 그 신대륙에 도착해서, 그 마스크를 저주와 함께 땅에 묻어 버립니다.


그런데 세월이 많이 지나고 현대에 이르러서

평범한 은행직원 스탠리(짐 캐리?)가

우연하게 그 나무 마스크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그 마스크를 썼는데

그 마스크가 스탠리의 얼굴의 살과 일치되어 버린 것이에요.

합치돼 버린 겁니다. 살이 돼 버린 겁니다.


그 마스크를 써서 살이 될 때마다 괴력이 생기고

기괴한 현상들이 스탠리의 신변에 나타나게 된다는 그런 영화입니다.


‘엄마’라고 하는 것은

엄마라고 하는 타이틀의 마스크를 썼는데

그게 자기 마음의 살이 되어버린 상태인 것이에요. 내 영혼에 붙어버렸어요.


'아빠'라고 하는 것, 살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마음에 살이 되어버렸어요.

내가 '재산'을 갖고 있다, 부자라고 하는 게 마음에 살이 되어 버렸어요.

영화의 마스크처럼.. 한 번 쓰니까, 절대 벗겨지지가 않는 겁니다.


▲세상이.. 내 영혼에 강력본드처럼 붙게 되어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믿는 특별한 은혜를 받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욕하지도 않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것들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붙은 그것을 벗겨낸다는 것이

욥에게는 살을 찢어내는 아픔이 됐다는 것이에요.


어느덧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것들을 내 마음에 살과 엉겨 붙어있는 상태로 살았다는 것이에요.


    ▲신약의 십자가와 비교할 때 공통점

    주님은 우리에게 자녀, 물질, 성공.. 이런 것들을 먼저 버리라고 하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아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죽고 부활한 다음에.. 그것들을 다시 갖게 하십니다.


    욥도.. 사명자로 살기 위해서

    먼저 다 빼앗아 가십니다.

    나중에 욥이 새롭게 태어난 후에, 고난의 십자가를 거친 후에, 하나님을 눈으로 뵌 후에 

    다시 갑절로 다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아브라함도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겠다'고 약속하시고는

    그 자식 이삭을 먼저 바치라고 요구하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한 이후에

    정말 하늘에 별과 같은 후손의 복을 주신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먼저는,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이 있을지라도,

    네 것을 다 십자가에 못 박으라, 바치라는 것입니다.


    욥도 철저히 ‘십자가’를 경험합니다.

    자기 목숨 빼고는.. 다 강제적으로 버리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평생 신앙생활을 하지만,

    하나님을 멀리서 귀로만 듣지, 가까이서 내 눈으로 뵙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버리지 못해서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해서입니다.

    너무 고통스럽거든요.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고통!

    (그러나 사명자는.. 강권적으로 다 버리게 하십니다. 욥처럼!)


그동안 누리고 있었던 게 감사한 거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자식이 내 것이 아닌데, 기르면서 기뻤고, 재롱떠는 것 보면서 행복했고

사랑을 쏟을 수 있어서 고마웠고.. 그러면 된 거지,

주님이 당신의 것을 되찾아가셨는데 왜 아픕니까?

내게 이미 살이 돼버렸다는 거예요.


재산의 상실이 왜 아픕니까?

그동안 나한테 허락하셔서, 남이 못타는 자동차 타고, 남이 못 먹는 식사 했고,

그랬으면 됐지.. 주님이 되찾아 갔다고 왜 억울하고 왜 아픕니까?

내게 이미 살이 돼버렸다는 거예요. 물질을 너무 사랑해서...


그래서 주님이 갖고 가셨는데, 찢김이 있는 거예요.

내 마음에 찢김이, 살이 찢어지는 아픔을 느끼는 겁니다.

 

     ▲다 뺏기고 나니까, 비로소 하나님이 보입니다.

여러분 이런 아픔이, 첨예한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이런 통증을 겪은 후에

이미 내 살이 된 것들을 다 뜯어내고 나니까

갑자기 욥 앞에.. 하나님이 떡 나타나신 겁니다.

이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이, 눈으로 보이는 겁니다. 아주 가까이서.



◑고난 후.. 눈으로 직접 뵙게 된 하나님


그동안도 이 하나님은 욥 앞에 계셨어요.

그런데 욥이 그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귀로만/말씀으로만 듣고 있었어요.


왜요? 자식을 사랑하고 있었고, 재산을 아까워하고 있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중에도

사랑하는 것들이 살이 되어버려서, 마음에 덕지덕지 덮여있어서

도저히 하나님이 보일 수가 없었다는 것이에요.


그걸 다 찢어지는 아픔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다 갖고 가시자마자

욥 앞에 하나님이 그 광채 나는 모습으로 보이게 된 겁니다.

'내가 주를 귀로 들었더니 이제 눈으로 봅니다.'라는 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바로 이것이에요. 욥기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욥이 잃어버린 것.. 우리가 그대로 잃어버리게 되는 겁니다.


자녀, 재산, 내 건강, 배우자,

가족. 부모, 사회적인 체면, 자존심, 명성

이 모든 것들을.. 십자가가.. 우리에게서 떼어내는 겁니다.


여러분 이런 말씀이 있잖아요. 이사야53:5절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여러분 그가 찔리고, 상하고,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고.. 

주님의 살점이 떨어져 나갑니다. 살점이 찢겨져 나갑니다.


주님의 몸이 십자가에 걸려있는 그 모습에, 내 마음을 그대로 갖다 걸면 돼요.

내 마음을. 내 마음을 그대로 갖다 걸면 (십자가를 깊이 묵상한다는 뜻) 

주님이 채찍에 맞으면서 살점이 떨어져 나갈 때

그 때 우리 마음에 살이 되어 붙어있는

내 자녀, 내 재산, 내 건강, 내 체면.. 이런 것들이 다 찢겨져 나가는 겁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욥이 당한 고통이.. 우리에게는 없는 거예요.

십자가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이 내 대신 십자가를 지셨으니까,

내게 그렇게 큰 고통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지고 가야할 내 십자가'는 반드시 있고,

그 작은 십자가의 고통은 있어야 정상입니다.

(몰라서 그렇지) 사실 우리 각자에게 이미 다 있습니다.


마음에 덮여있는 그 모든 것들을 제거한 뒤에

귀로만 듣고 있던 하나님을

마음으로 보게 하시는 역사가.. 십자가의 역사라는 겁니다.

그래서 전격적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만나게/깊이 교제하게 하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기독교 핵심(십자가)을 말씀드립니다.

선택받은 자들이, 예정된 자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뵙는 가까운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바로 기독교의 진리의 핵심입니다.


예정된 자들이란 뭐예요?

하나님을 사랑하는/믿는 마음을 넣어 주시는 겁니다.

그게 예정/선택이에요.


그런데 그 예정받은 사람들이

자식을 사랑하고, 재산을 사랑하고, 내 몸을 사랑하고

내 인생, 내 자존심, 내 체면, 내 사회적 위신을 사랑하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욥처럼, 하나님이 그것들을 떼어내게 하십니다.

그래서 삶의 고난을 통해서

물질을 떼어내고, 체면을 떼어내고, 자식까지 떼어내게 됩니다.

십자가 붙잡고 죽어가면서, 내 마음에서 그것들을 벗겨냅니다.


하루 벗겨, 이틀 벗겨, 한 달 벗겨, 일 년, 이 년 벗겨가면서

하나님이 선명하게 보이는 자리로, 점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여러분, 삶에 고난이 많으시죠?

    포기하라는 것입니다. 다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내 자아의 집착을 못 박고 죽으라는 것입니다.

    그걸 빨리 처리할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욥처럼, 부활생명 얻어서, 갑절의 회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죽을 때가 다 되어도, 절대 못 놓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가 죽을 것 같다나요?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냥 죽어버려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내 삶의 고난의 이유를 분명하게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것 다 죽이지 못하고, 다 내 손에 꽉 붙들고 있으면서

    ‘나는 평안하다. 나는 복 받았다’

    글쎄요. 어쩌면 영생구원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죽지 않았는데, 어떻게 부활할 수 있겠습니까?


▲마치는 말

여러분, 욥이 잃은 것들을 손꼽아 보시면서

십자가를 붙잡으시기를 바랍니다.


욥이 뭘 잃었습니까?

열 명의 자식을 잃었습니다. 모든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아내를 잃었고, 친구를 잃었고, 건강을 잃었습니다. 뭘 더 잃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네가 집착하는 것들을 내 놓으라’고 하십니다.

예를 들어서, 내가 물질에 집착이 없으면.. 굳이 내놓으라고 요구 안 하십니다.

내가 명예에 집착이 없으면.. 굳이 빼앗아가지 않으십니다.


내가 집착하는 그것들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하십니다.

그것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멀리하고, 영생마저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내가 십자가에서 달려 죽는다는 것은

욥이 잃어버린 것들을

이렇게 다 마음에서 잃어버리는 거예요.

실제로 마음에서 다 상실해 버리는 겁니다.


이렇게 마음에서 상실할 때(집착을 버릴 때).. 나중에 안 빼앗깁니다.

그런데 우리 중에, 누가 순순히 마음으로 버릴 수 있겠습니까?

결국은 환란풍파 만나서.. 다 어쩔 수 없어서 항복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신기한 것은

    항복한 그 자리에.. 행복과 평안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뵙게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자유하게 됩니다. 천국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그래서 멀찍이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이제 자기 눈으로 가까이서 뵙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욥의 상실과 고난을 통하여

십자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니 감사합니다.


실제로 우리의 자아가 죽지는 않더라도

실제로 우리의 재산이 몰수되지는 않더라도 몰수 된 것과 마찬가지로

자녀가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 외의 모든 것이 내게서 떠난 것과 마찬가지의 상태가

십자가를 통해 되게 하시고  (안 그러면 강제로 뺏길 날이 옵니다.)


그렇게 벌거숭이가 된 상태에서 청결해진 마음으로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꿈에도 그리던 우리 아버지를 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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