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0

낯선 사람이 야곱에게 싸움을 2411

LNCK 2010. 4. 20. 20:27

◈낯선 사람이 야곱에게 싸움을 걸어오다.         창32:24~26          10.04.04.인터넷설교 대강녹취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내게 닥치는 절박한 환경은

내가 그 절박한 문제를 신앙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즉, 얍복강을 통과하면서

내 근본적인 문제까지 송두리째 해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예를 들면, 남편이 바람을 피웠는데,

그런 남편의 문제를 갖고서,

아내가 야곱처럼 ‘얍복강 기도’를 결사적으로 드리다가

아내는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를 깨닫고, 회개하게 된다.

이런 체험을 하는 성도님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여럿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야곱에게 싸움을 걸어왔다.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씨름한 사람은,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이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낯선)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창32:24


야곱은, 자기가 먼저 형을 속였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하는데,

바꾸어 말해서, 자기 자아가 완전히 부서져야 하는데,

전혀 낯선 사람이 먼저 자기에게 씨름을 걸어오더라는 것이다.


형 에서가 4백인을 모아서, 대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목적은, 야곱의 강력한 자아/환도뼈를 깨뜨리기 원하셨다.

그래서 (낯선) 에서를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봐서는, 에서가 더 문제가 많고, 더 큰 죄인이겠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상황을 통하여,

택하신 백성 야곱이 회개하기 원하셨다.

그 강한 자기 자아가 깨어지기 원하셨다.


     욥의 세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욥이 회개하기를 원하셨다.

     그래서 (욥보다 더 악한) 세 친구들을 동원하셨다.


앞서, 하나님은 아내 여집사가 철저히 회개하기를 원하셨는데,

하나님은, 전혀 생소한 남편의 외도를 통해.. 여집사에게 씨름을 걸어오셨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데서, 문제가 터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패턴pattern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중소기업을 하는 어떤 사장이,

     자기 직원이 너무 말을 듣지 않아서, 늘 화가 났다.

     사장이 직원에게 무슨 훈시를 한 마디 하면,

     직원은 눈을 부릅뜨고 사장을 쳐다보며, 단호한 어조로 반박을 해왔다.

     ‘어휴, 저걸 즉시로 잘라버려야 하나... 그래도 내가 크리스천인데...’


     일상에서 ‘자기 자아가 죽기를 원하는’ 크리스천 사장은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다가.. 깨달았다.

     자기가 평소에

     ‘눈을 부릅뜨고, 항상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을 도저히 깨닫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 고치지 못하니까,

     하나님께서는 그 직원(낯선 사람.. 엉뚱한 사람이라는 뜻)을 사용하셔서

     자기의 진면목을 보여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나에게, 전혀 낯선 사람, 전혀 엉뚱한 사람이

내게 씨름을 걸어오고, 시비를 걸어올 때가 있다.


아마추어는.. 그 상대방을 열심히 비방하고, 대항해서 싸우지만

프로페셔널 크리스천은.. 단번에 자기 자신을 살핀다.

‘하나님이 나에게 무엇을 회개하기/고치기 원하시는 걸까?’

그러면서, 야곱처럼, 자아가 깨어지고, 점점 성화에 이르는 것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마귀의 직급 들임)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엡6:12



▲나의 환도뼈가 너무 튼튼해서 문제다.

진정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원하는 사람은,

그는 먼저 자기 환도뼈가 부서지는 ‘얍복강 체험’을 통과해야 한다.


(비슷하게 사도바울은, 나의 질그릇/육신이 부서져야,

그 속에 담긴 보배의 생명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고후4:7~10))


하나님이 간섭/섭리하지 않으셔도

자기 스스로 10년~20년 미래계획 다 세워놓고,

내 머리, 학벌, 능력으로..

세상에서 안정감을 누리며 잘 살겠다는 사람들이..

지금 우리 주변에 너무 많다.


이게 뭐가 문제인고 하니,

‘내 힘으로 쌓아올린 내 인생은 모래성이라는 것이다.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비슷한 말로 시한폭탄이라고도 한다.’

 

야곱이 자기 환도뼈가 부러졌다는 것은..

이제 자기 힘으로, 자기 삶을 꾸려 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야곱은, 결사적으로 천사를 붙잡고 매달리게 되는데...


만약에 야곱이 환도뼈가 부러지지 않았더라면,

또 도망가서, 남은 평생 에서의 낯이나 피하며 살았을 것이다.


환도뼈가 부러진 것은, 진정 야곱에게 축복이었다.

그는 자기 다리(환도뼈)를 의지하는 삶을 버리고,

이제 하나님만 간절히 의지하는 사람으로 변하게 되는데..

왜냐하면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다 바닥나야.. 비로소 얍복강 체험에 이른다.

나의 환도뼈가 무엇인가?

내가 든든하다고 생각하고, 내가 믿고 있는 것들이다.

-물질, 학벌, 경험, 자녀 등이다.


예를 들면, 자기에게 돈이 좀 남아 있는 사람은

끝까지 돈 가지고, 자기가 완전히 망할 때까지

갈 데까지 가는 것을.. 종종 본다.


그 ‘돈의 환도뼈’가 아직 부러져 쓸모없게 되지 않은 사람은, 

(야곱처럼) 처절하게 하나님을 붙잡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직 자기 수중에, 돈이 좀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여전히 자기 힘으로, 인생을 힘겹게 살아간다.


그래서 나에게 ‘학연, 지연, 인맥’이 없어야 축복이 된다.

그런 빽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므로.. 결국은 잘 된다.


교통사고로 남에게 상해를 입힌 일이 생기더라도,

학연, 지연, 인연이 없는 사람이

구치소에서라도 간절히 하나님을 붙드는 가운데

환골탈태하고, 새 사람 되는 것을 본다.


거기서 야곱의 얍복강 체험을 하는 것이다.     *지연地緣 : 같은 고향 사람

그런데 학연, 지연, 인연으로 해결하는 사람은.. 얍복강 체험을 못 한다.


▲인생에서 물질, 성공만 갖고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축복이 무엇인가?

어떤 물질적 축복,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 가정 세우기.. 이런 것들이 아닌가?

 

그런데 본문의 야곱은 하란에서 20년 동안 고생하면서..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다 얻은 상태이다.


물질도 상당히 모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했고,

자녀들도 쑥쑥 자라고 있었고, 가정도 든든히 세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축복을 다 받은 것 같은데.. 그것만으로 인생이 순탄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야곱은 지금 얍복강 가에서, 일생일대의 최대 위기를 만나고 있다.

자기가 그렇게 원했던 그 모든 축복들을 다 가진 것 같았는데,

야곱은 <그것만 갖고서는, 인생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얍복강 가에서...

자기가, 자기 힘으로 이룬 성공은.. 모래 위의 성처럼..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것이었다.


▲성공도 필요하지만, 인생은, 얍복강을 통과한 <믿음>이 필요하다.

얍복강에서 야곱은.. 비로소 결사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했다.

‘안 돼요, 하나님, 저를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저는 보내드릴 수 없어요!’

 

"날이 새려 하매, 나로 가게 하라..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창32:26


야곱은 비로소 깨달았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파수꾼의 경계가 허사’라는 것이다.  시127:1


자기 힘과 노력으로 세운 인생의 집은.. 얼마나 허약한 것이며,

오직 하나님이 자기 집을 세워주시지 않으면.. 자기 인생은 끝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얍복 강가에서

이제까지 전혀 경험해 보지 않았던 일을.. 코너와 궁지에 몰려서..

비로소 시도해 보게 되는데,

바로 <하나님과 기도로 씨름>하는 일이었다.


‘씨름’(레슬링)이란 말의 뉘앙스에서 나타나듯이

그냥 신사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결사적으로, 내장이 끊어지는 듯한 격렬한 기도를.. 야곱이 드린 것이다.

환도뼈가 위골 되었는데도.. 전혀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다.


‘하나님, 나를 도와주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저는 벌레와 같습니다!’

그런 외마디 소리가, 야곱의 입에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그러면서 야곱은, 점점 기도의 사람으로..

성화된 사람으로..

하나님만 간절히 의지하는 사람으로..

자기 힘과 자아를 버린 사람으로..

변화의 체험을 겪게 되었다.

그러면서 진정한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사람으로 변화되어 갔다.


.................................... 더 읽으실 분 ....................................

 

◑다시 읽는 야곱의 변화                              -이 글 출처보기-


(긴 내용을 많이 축약했습니다. 원문은 출처를 보세요.)


▲야곱의 훈련교관 에서를.. 어머니 태속에서 이미 정해 놓으셨다.

야곱에게 평생 넘어야 할 산처럼 여겨지는 것이 있었다.

바로 에서와의 관계에서 오는 문제였다.

하나님께서 야곱보다 더 강한 에서를

야곱에게 붙이신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 이미 야곱 쌍둥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형 에서의 후손이, 동생인 야곱의 후손을 섬기게 될 것에 대해 정해 놓으셨다 (창25:23).

 

(얍복강 사건을,

에서의 후손인 에돔 사람 헤롯이, 야곱의 후손인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사건의

예표로 보는 해석도 있다.)


야곱이 그토록 힘들어 하던 에서와의 관계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셨다.

야곱은 그것을 보는 믿음의 눈이 없었을 뿐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야곱에 집중되어 있었다.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고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에서는

야곱을 훈련시키기 위해 사용된 수단일 뿐이었다.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저 사람만 없으면 내가 참 편하게 신앙 생활할 수 있을 텐데”

라고 하며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가시 같은 존재인 그가

어쩌면 우리를 변화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에서와 같이 잠시 사용하는 연단의 도구일지도 모른다.

그런 일을, 하나님은 오래 전부터 미리 작정하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여정을 따라서.. 다 미리 예비된 길

밧단 아람에서 라반 밑에서 살고 있던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지시하셨다.

아버지가 살고 있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땅, 가나안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그는 20년 전에, 도망 왔던 길을.. 이제 거슬러 내려가야 했다.

야곱이 이제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여정은

그의 조부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가나안으로 내려왔던 길을 따라가는 것이었다.

밧단 아람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기 이전에 살았던 곳이었다.


그의 이 모든 여정 하나 하나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예비된 것이었다.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을 만나주셨던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나주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셨다.


▲가족을 먼저 후퇴시킨 야곱

야곱은 밤에 일어나 가족들을 깨우고, 짐을 챙겨서 얍복 강을 건너게 한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예물을 보내놓고 밤을 맞이한 야곱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방책을 세워도, 그것으로는 부족해 보였다.


두려워하던 그는, 일단 (무리들 중에서) 가족들을 먼저 강을 건너게 했다.

불안이 엄습하는 가운데, 재산은 포기하더라도

가족들만큼은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얍복강을 건너서, 가족을 보냈다는 것은, 밧단 아람에서 오던 길로의 후퇴를 의미했다.

그런데 얍복강을 건너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행위였다.

가나안을 향해 전진이 아니라, 에서를 피해서, 후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평소에 듣던 바, 야곱이 자기 가족을 먼저

방패막이로 에서 앞에 보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결국 하나님은 야곱의 엉덩이 뼈를 어긋나게 하는 방법을 쓰셨다.

유목민에게 있어서 이동성은 생명과 같다.

적이 쳐들어 와도 일단 도망가면 살 수 있다.

야곱은 에서에게 힘으로 이길 수 없으니까.. (유목민 문화인) 도망을 생각했다.


하나님은 그가 도망하기 위한 수단을 치셨다.

야곱이 끝까지 믿었던 것은 두 다리였다. 그 중에 하나를 치신 것이다.

극약 처방이었다. 야곱의 꾀는 완전히 꺾였고 최악의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 삶의 통찰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