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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2410

LNCK 2010. 4. 20. 11:36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다면         왕상3:4~15       10.04.11.설교스크랩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 에릭 리델

그는 스코틀랜드 사람으로서, 육상선수였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아주 보수적인 장로교 전통을 수백 년간 유지했던 나라이지요.

1900년대 중반까지도 주일엔 예배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전 나라가 아무 일도 안 하며 쉬었고,

심지어는 대중교통 수단도 운행을 안 할 정도였습니다.


에릭 리델은 이런 분위기에서, 15세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됩니다.

어리지만 그 신실함이 주변에 널리 알려질 만큼 믿는 모습이 남달랐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단거리 달리기에 소질을 보였는데,

1924년 파리 올림픽 때, 국가대표로 뽑혀서 올림픽에 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파리에 도착해서 자기가 뛸 100m 예선 경기 하는 날을 봤더니

주일Sunday이었습니다.

그래서 감독에게 찾아가서 “주일엔 뛰지 않겠습니다.” 통보하지요.


난리가 났습니다.

기록상으로 볼 때 분명히 금메달감인데, 그냥 금메달 하나가 날아가게 생긴 겁니다.

감독이 계속 설득했지만.. 에릭은 자기 결심을 바꾸지 않습니다.


결국 이 소식이 영국 전역에 알려지게 되고,

에릭은 단번에 전 영국 국민의 지탄을 받는 매국노가 됩니다.

심지어는 자기 고향인 스코틀랜드 사람들도 그의 처신을 못마땅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자기 경기를 포기했는데, 선수단에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400m 경기에 나가야 되는 에릭의 동료 선수 하나가

갑자기 부상을 당해서 출전이 어려워진 겁니다. 


에릭이 보니까 400m 경기는 평일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감독에게 가서, 400m 경기에, 자기가 대신 나가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지요.

그런데 100m 경기와 400m 경기는 ‘높이뛰기’와 ‘넓이뛰기’만큼 다르답니다.

그러니까 100m 선수가, 400m를 뛰어서 입상을 한다는 것은

전혀 기대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영국 팀 내 사정도 여의치 않아서, 에릭 리델 말고는 선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에릭은 400 m 경기에 출전하게 됐습니다.

운 좋게 예선을 통과해서 결승까지 갔습니다.


결승 경기 직전에 팀의 마싸지사가 에릭에게 쪽지를 하나 주었는데

거기엔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구약성경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라고 말씀합니다.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에릭은 그 말씀과 함께 결승전을 달렸습니다.


그날 400m 경기를 본 경기관계자들이나 관중들은

에릭이 뛰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엔 다들 웃었답니다.

왜냐하면 400m 를 뛰는데, 마치 100m를 달리듯이 처음부터 스퍼트를 하더라는 겁니다.


에릭이 200m 쯤 뛰었을 때, 다들 이제 ‘저 선수는 끝장이야’ 생각했답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끝까지 선두를 내 주지 않고 골인을 해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을 했습니다.


나중에 그가 이런 간증을 했답니다.       

“200m 까지는 내가 뛰었고, 나머지 200m는 주님께서 뛰어 주셨습니다.”


그를 비난했던 영국 국민들이, 하루아침에 에릭 리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무엇보다 자기가 믿는 바대로 행동했던 그의 신앙에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후에 이 에릭 리델은 중국에 선교사로 가서 거기서 여생을 마칩니다.

<불의 전차>라는 영화가 있는데, 바로 에릭 리델을 모델로 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요즘처럼 삭막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감동>입니다.

사람들은 감동에 목말라 있습니다.

그래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웬만한 시간적, 금전적 손해를 보는 것은 너끈히 감수합니다.


그런데 한 번 그런 생각을 해 보셨습니까?

감동하는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면.. 거기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즉 우리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감동시킨다면 거기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에릭 리델의 모습은 사람을 감동시키기에도 충분했지만

그 전에 먼저 하나님을 감동시킨 겁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이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본문 설명 : 솔로몬이 하나님을 감동시킨 이유


▲하나님을 감동시키니까, 패키지로 몽땅 다 주셨습니다.

요점은, 솔로몬이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했을 때

다른 좋은 것도 몽땅 다 주셨다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감동시켰더니 하나님이 좋으셔서 어쩔 줄 몰라 하시면서

있는 것/없는 것 다 부어 주셨다.. 그 얘기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가내 안전과 사업 번창 등 다분히 ‘이기적인 것들’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다 그랬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이 “마음에 들었다” 그랬습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 지라”  왕상3:10


여러분! 성경을 조금만 열심히 보신 분들이라면,

이런 표현 –‘주의 마음에 맞은 지라’ 하는 표현- 은 좀처럼 안 나옵니다.


모세가 기도할 때나, 한나가 기도할 때도, 이런 표현은 안 나옵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기도엔 이런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시고.. 몹시 흥분해 하시는 모습인 겁니다.


마치 뒤늦게 본 막내딸의 재롱이 예뻐서

어떻게 해야 될지 주체 못하는 나이 먹은 아버지와 똑 같은 모습인 겁니다.

아까운 게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솔로몬이 엄청난 복을 받습니다. 


    솔로몬이 받았던 복이 어떤 건지는 새삼 말씀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솔로몬이 가졌던 당시의 재산은, 빌 게이츠의 재산이 부럽지 않을 것이고,

    솔로몬이 이뤘던 학문적 성과는, 지금 식으로 노벨상 10개도 부족할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일이 왜 우리한테는 오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하나님과 우리 하나님이 다른 하나님도 아니고,

    또 하나님이 인색해지셔서 주기 싫어하시는 것도 아닐 텐데

    왜 우리한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느냐 그 말입니다.


▲1.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솔로몬

솔로몬이 하나님을 감동시킨 것은

첫째,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붙들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은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으로 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 왕상3:6~7       


▲은혜를 깨닫는 사람은.. 자기를 스스로 낮춥니다.

지금 솔로몬은 자기가 왕이 된 은혜에 대해서.. 감사와 찬송을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왕’이라 그러지 않고 뭐라고 부르지요?

‘종’이라 그럽니다.

‘종은 작은 아이입니다. 종은 출입할 줄도 모릅니다. 종은 은혜로 왕이 됐습니다.

종은 재판할 줄도 모릅니다..’


그렇게 말끝마다 자기를 ‘종, 종’으로 낮추는 이유가 뭐겠어요?

자기는 도저히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크신 은혜를 받았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하는 얘기입니다..

그렇게만 해도, 하나님은 충분히 감동받으십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을, 하나님이 비호감으로 여기시는 이유는,

'은혜'를 전혀 모르거나/잊어먹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은혜

보통 왕들은.. 자기가 왕이 된 것을 그저 당연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장남이고, 왕의 적자嫡子니까.. 왕이 되는 것은 그냥 당연한 수순인 거예요.

그런데 솔로몬은 그렇지 않지요?                     (*적자 : 본부인이 낳은 아들, 서자의 반대말)


다윗의 몇 번째 아들인지도.. 한참 계산해야 나옵니다. 위로 형이 많았습니다.

그런 그가 왕이 된 것이 너무 큰 은혜이고,

은혜에 대해서 정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겁니다.

‘나의 나된 것은 100 % 하나님 은혜입니다’ 하는 의식이 있다는 거예요.


솔로몬의 어머니가 누구지요?

밧세바입니다.

밧세바라 그러면 그 이름에서 주는 이미지가 있지요?.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다윗을 간음케 한 여자입니다.


그러니까 다윗 가문에 큰 오점을 남긴 그런 여잔데,

그런 여자를 ‘어머니’라고 부르며 큰 겁니다.

그런 어머니를 둔 사람이.. 어떻게 왕이 되겠어요?


지금 식으로 말하면 마돈나나 패리스 힐튼 같은 여자 밑에서

대통령이 나온다는 건데 그게 말이나 됩니까?

그런데 솔로몬은 그런 어머니 밑에서 왕이 됐습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하나님은 환경과 조건을 뛰어넘은 은혜를 주셨다는 겁니다.


(적용) 그런데 우리 모두에게도 그런 ‘은혜의 요소’가 있습니다.

‘나는 어머니가 밧세바라서 안 될 것 같아요’ 하는 부분이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면, ‘나는 키가 작아서요, 못 생겨서요, 뚱뚱해서요, 가난해서요.’ 등등

자기스스로 극복하기 어려운, 자기만의 한계가 다들 있다는 겁니다.

‘나는 이것 때문에 안 돼!’ 하는 부분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은혜는 그 모든 것을 뛰어넘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저나 여러분이나 (솔로몬처럼) 분명히 한계를 뛰어넘는 은혜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솔로몬처럼.. 그 은혜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까?

일천번제를 드릴 정도로 감사드리고 있습니까?


그 은혜를 붙잡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감동하세요.


▲그 은혜에 감사해서 1천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의 마음이 더 감동되셨습니다.

요즘도 ‘1천번제’ 드리는 것이 쉽지 않은데,

‘1천 번의 번제’든지, ‘1천 마리의 번제물을 드린 것’이든지

양을 잡아서 각을 떠서 드리는 당시의 번제는.. 무척 괴롭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주위에서 제사장이 도와주더라도, 결국 자신의 몸이 거기에 참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단은 한 개 뿐이잖아요. 1천 번씩이나 번제물을 올렸다, 내렸다 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선지자가 등 떠밀어서 한 것이 아니라,

솔로몬 스스로 은혜에 감사해서.. 일천 번제를 드린 겁니다.    

자기는 왕이 될 자격도 없고, 이런 왕의 지위를 누릴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 주셨다는 겁니다.


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타이밍이

그가 기브온 산당에서, 1천 번제를 드리고 나서 지쳐서 밤에 잘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주셔서 대화하신 겁니다.

그 ‘1천 번제’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켰다는 개연성을 알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 있는 방법이 또 하나 있는데,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솔로몬이 기도할 때, 지혜를 구합니다.

그런데 그건 누구를 위해서 구한 거지요?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왕상3:9


“백성을 잘 섬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오!”

바로 이 기도가 하나님을 감동시켰습니다.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고,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왕상3:10~11


지금 하나님의 말투는 몹시 흥분되어 있습니다.

‘그래?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을 위해서 지혜를 달라 이거지? 

그래 내가 다 줄께, 구하지 않은 부귀, 명예, 재산까지도 다 줄게,

전에도 후에도 너 같은 사람이 없도록 지혜 뿐 아니라 모든 것 다 줄께!’ 그러시는 겁니다.


    여러분, 이 대목에서 야고보서 말씀을 같이 생각해 봅시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약4:2~3 


솔로몬이 받은 것은.. 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욕으로 구하지 않고, 백성들을 위해서 올바로 구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할 때,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구하면, 하나님은 더 부어 주십니다.

5만 번이나 기도응답을 받았다는 죠지 뮬러도

자기를 위해서 구한 게 아니지요?

다 불쌍한 고아들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구한 겁니다.

그런 사례는 뭐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사실은 우리가 하는 기도 중에,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구하는 기도는..

응답되는 비율이 높고, 응답도 빨리 되고, 더군다나 풍성이 부어주신다는 것,

그것은 모두가 체험을 통해서 인정하는 진리입니다.


▲최종 수혜자는 결국 나

그리고 그렇게 구하는 기도의 수혜자는 결국 누구지요?

물론 일차적으로는 그 사람들이겠지만, 결국 최종 수혜자는 우리입니다.

돌아 돌아서 나한테까지 온다는 거예요.


시간은 좀 더 걸리지만, 결국 남을 섬기기 위해서 구하는 것은

곧 자기까지 풍성하게 되는 일이라는 거예요. 

이 진리를 모르니까, 자기만을 위해서 구하고,

결국은 응답도 잘 안 되는 겁니다.  


김하중 전 통일부 장관이 쓴「하나님의 대사」라는 책에서

그 분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자기가 돈 많다는 사람, 직위가 높다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봤는데,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특징이 있더라는 거예요.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또는 그 돈을 갖거나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모른다는 거예요.

겉만 번지르르하지.. 늘 근심과 걱정이 가득하더라는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강퍅하고 교만해서

함부로 아랫사람들을 대하고, 욕하고, 비판한다는 겁니다.


그분의 말이 사실이라면

왜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또는 돈이 많은데도 불안해할까요?

이유는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 모든 게 자기 힘으로 이룬 거라고 생각하고, 또 사실 그렇기 때문에

늘 자기 자리, 자기 돈이 어떻게 잘 못 될까봐 긴장하는 겁니다.


내 가진 것이..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것이라면..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그런데 자기 힘으로 이루었다 생각하니까.. 언제 무너질지 몰라서 불안해하는 것이지요.


어떤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 분은 책도 많이 쓰시고, 외부 집회도 많아서

교회에서 받는 사례비 외에도 적지 않은 수입이 있답니다.


그런데 자기는 그렇게 들어온 물질이, 자기 거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수입이 생기면.. 거의 다 힘든 목회자들, 또는 선교사님들한테 쓴대요.

그런데 가끔 기억도 못하는 사람들한테, 감사인사를 받을 때가 있다는 거예요.


사연을 들어보니까.. 자기가 직접 도운 게 아니라

어떤 선교사님께 선교헌금을 드린 건데,

그 선교사님이 다른 이들에게 베풀면서

‘자기가 드리는 게 아니라, 한국의 어떤 분이 부탁을 해서 (내가 대신) 드리는 거다’

그렇게 말씀을 했다는 거예요.


드린 건 조금 드렸는데

어떻게 그렇게 골고루 잘 나눴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더라는 겁니다.

그런 일이 몇 년 쌓이다 보니까.. 사람들마다 피드백(되돌아 온다는 뜻)이 되더래요.


그래서 어떤 분한테는, 큰 돈이 생기면

“그 분은 믿고 맡길 수 있지!” 하면서

더 크게 헌금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는 겁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을 유통하고 있습니까?

하나님 마음도 똑같으실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딱 쓸 것만 주신 것은 아닙니다.


고후9: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심을 것을 주시고, 또 추수도 풍성하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어렵다 하더라도.. 우리 것 중에는 다른 사람의 몫이 들어있습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눌 때.. 하나님은 더 풍성케 해 주신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들을 신뢰하시고..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공급하십니다.


유엔이나 NGO, 또는 다른 국제기구의 고민도 그거랍니다.

가난한 나라나 계발도상국가를 돕고 싶은데, 전달에 대한 확신이 없답니다.

원조를 해 주면, 그게 불쌍한 국민들까지 골고루 분배가 되어야 하는데,

거의 윗선에서 처리가 되지.. 일반 국민들한테는 제대로 분배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직접 현지까지 그 조직이 다 가야만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드는 비용, 인력, 시간 이런 것들의 손실이, 생각보다 크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나눌 수 있는 인프라가 없는 것에 대해서.. 늘 아쉬워한다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이 시간 우리들 각자도 한번 자기 자신을 돌아봐야 할 줄 압니다.

주님께서 내게 뭔가를 주신다면, 나는 과연 잘 나눌 수 있는 사람인가요?

나는 정말 하나님이 믿고 맡길 만한 신실한 사람인가요?    


기억하십시다!

우리에게 주신 재물과 은사는.. 다른 사람을 위해 사용되어야 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은혜/물질을.. 두루 유통시켜야 합니다.


이기적으로 살면, 자기한테 좋은 것으로 돌아와야 되는데

오히려 돌아오는 것은.. 아주 나쁜 것으로, 쓰레기 같은 것으로 돌아온다는 겁니다.


이건 가정, 직장, 학교, 교회에서나

똑같이 적용되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모든 일을 행하는 동기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복을 유통시킬 때,

그게 나에게 진정한 복으로 피드백(되돌아옴) 되는 것이지


이것마저도, (일부러 제비다리 부러뜨린) 놀부처럼

어떤 복 받기 위한 동기로 유통시킨다면.. 그건 아무 소용없습니다.


그리고 피드백 되는 복도

꼭 ‘이 세상에서 받는 복’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떤 부목사님 부부가, 그 어려운 박봉에 적금을 부어서

    1천만원 모았다가, 그 통장을 꺼내보고, 늘 흐뭇해했는데,

    여름 수해가 발생한 시골교회에 필요가 생기자.. 사모님이 몽땅 헌금했답니다.


    그러고 나서

    최소한 1억은 되돌아올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별로 돌아오는 게 없더랍니다.

    우스개 소리로 말하면, 완전히 돈을 떼인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현실이 꽤 많이 일어납니다.

    헌금해도.. 기대만큼 복 못 받는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현세에서 못 받아도, 주님은 내세에 주실 것으로 작정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가면서..

솔로몬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시킬 수만 있다면,

그 후의 우리 인생은 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보이셨던 흥분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가장 많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이 보여 주었던 그 정성과 순수함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의 복을 너무 ‘물질적’으로만 국한 시키지 마십시오.

그것 외에도 정말 풍성한 복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무리 나를 보시고, 마음에 뜨겁게 감동되셔도

솔로몬은.. 물질의 사명이 있으니까 물질을 받은 것이지,

내게 물질의 사명이 없다면.. 하나님은 (필요를 채워주시지) 턱없이 많이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괜히 내 사명 감당하는데, 그것이 걸리적거릴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 삶의 통찰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