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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우리를 믿어주신다 2419

LNCK 2010. 4. 25. 15:32

◈주님은 우리를 믿어주신다                요17:8                   09.09.20. 설교일부 녹취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①저희는 이것을 받고

②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③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습니다.   요17:8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위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상한 점을 느낀다.


여러분, 제자들이 정말 그 말씀을 잘 받아들였을까? ①

그들이 정말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온 줄 참으로 알았을까?  ②

그들이 정말 아버지께서 당신(예수님)을 보내신 줄도 믿었을까?  ③


제자들이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보였던 반응은 어땠는가?

또한 십자가를 지시던 예수님 앞에서, 제자들이 보인 행동은 어땠는가?

-그들은 모조리 주님을 배신했다. 한 마디로, 별로 미덥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위 말씀 ①,②,③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한 신뢰도는.. 상당히 높다.


본문(요17장, 십자가 사건 직전)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베드로는, 십자가를 지시겠다는 주님을 나무라며 말리는가 하면,

야고보와 요한은.. 그 와중에.. 자기들이 얻을 ‘자리’ 타령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만간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부인할.. 그런 시점이었다.


그러한 사실을 아시면서도,

예수님은, 어떻게 이렇게 제자들을

믿으시고, 높이 평가하실 수 있으실까?   요17:8에서..

 

마치 교사가, 학생들에게 뭘 가르치고 나서,

학생들은 다 못 알아들어서 고개를 갸우뚱 하고 있는데,

교사는, 학생들이 강의를 다 알아들었다고 여기고 ..

안심하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그렇다면 교사(예수님)가, 학생들을, 대책 없이 너무 믿어주는 것이 아닌가?


저는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주님이 12제자들을 무척 믿고 계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12제자들에게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데... 말이다.)


세상은 믿음에 의해 유지되고 돌아간다.

농부에게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자기가 뿌린 씨앗이, 때가 되면 싹이 나고, 열매가 맺어질 것이라는.. 믿음이다.

만약 농부에게 그런 믿음이 없다면.. 그는 농사를 짓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께도 그런 믿음이 있었다는 것이다.

주님이 가르치시고, 훈련시키신 그 제자들이

언젠가 결실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주님은 (별 가능성 없어 보이는) 제자들을 끝까지 데리고 다니셨고,

결국은 그 믿음대로 되었다. 사도행전에서!


여러분 ‘믿음’있는 교사, ‘믿음’있는 부모가 승리한다.

아이들이 늘 장난만 치고, 교사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들을 사랑해주고, 축복해주고,

바른 길을 계속해서 제시해 주면,


언젠가는 그들 안에 뿌려진 그 가르침과 그 사랑이

열매를 맺는 날이 오게 될 것을.. 교사와 부모들은 믿고 있다.


저도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

만약에 제 아이가 뭘 잘못할 때마다

‘너는 뭘 잘못했다. 너는 커서 뭐가 되겠느냐? 너는 문제만 일으키는 아이다.’

자꾸 이렇게 구박만 주면,

그러면 아이가 정말 모든 일을.. 계속 잘못 행동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을 교육학 용어로 ‘부정적 강화 negative reenforcement’라고 한다.

아이/학생들에게

그들이 가야할 긍정적 미래를 얘기해주기 보다는,

아이가 잘못하는 지금의 현실만 자꾸 언급하면서 지적하다가는

또한 과거에 잘못되게 행동한 것을 계속 끄집어내어서 훈계하다가는,

그 아이는 정말 부정적 방향으로 강화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학생이 참 부족한 것이 사실이더라도

그래도 그 중에 잘한 것이 있으면,

열 번, 스무 번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면서

‘넌 잘 할 수 있어. 넌 미래에 참 훌륭한 인재가 될 거야’

이런 식으로 북돋워주면,

아이가 ‘긍정적 방향으로 강화’된다는 것이다.


저는 요17:8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마음에

‘제자들을 향한 믿음과 긍정적인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늘도 살아계신 주님은, 나를 향해서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사실 나는, 내가 보기에도 믿음이 없고, 신뢰가 바닥날 때도 있지만,

그래서 ‘주여, 제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라고 우리가 늘 기도할 정도이지만,

주님이 ‘나를 바라보시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주님을 향한 믿음>은.. 완전하지 않고, 종종 흔들리지만

<주님이 나를 향하신 믿음>은.. 언제나 흔들리지 않으신다. 굳건하시다.


주님이 너무나 많이 나를 믿어주시고,

나를 격려해 주시고,

나를 기다려 주신다.


우리가 연약해서 기도할 때마다, 성령께서 그런 깨달음으로 우리를 깨우쳐 주신다.

‘나(주님)는 여전히 너를 믿고/신뢰하고 있다고’


여러분, 부모가 갓난아이를 키울 때,

낳자마자 처음부터 벌떡 일어나서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아이는 없다.

기다가.. 일어서다가.. 넘어지고.. 벽을 짚고서 간신히 걷고.. 한다.


그러나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는

우리 아이가 빨리 걷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우리 아이가 언젠가는 걷게 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나를 바라보시는 주님도 마찬가지다.

내가 일어나 걷지 못하고, 늘 주저앉고 헤맬 때에도

나를 바라보시는 주님께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내가 언젠가는.. 확실히 걷게 될 것, 아니 달리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여러분, 신앙의 본질은

    내가 하나님을 믿기 이전에,

    하나님이 나를 믿어주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된 것도,

    하나님이 나를 먼저 믿어주셨기 때문이다.(나를 예정, 선택, 부르셨다.)


    우리가 (나를 믿어주시는) 그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의 미래는.. 주님이 믿어주시는 그대로 될 것이다.


욥이 그랬다.

하나님은 욥을 처음부터 끝까지 믿어주셨다.

마귀가 와서 참소할 때에도.. 하나님은 욥을 믿어주셨다.

결국 욥은.. 하나님의 믿어주신대로 되었다.


욥의 고난은,

하나님이 욥을 미워해서도 아니고,

하나님이 욥을 포기해서도 아니고,

하나님이 욥을, 그의 믿음을 너무나 신뢰하셨기 때문에 시작된 고난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를 걸고

욥을, 하나님 나라의 대표주자로 내보내셨다. 그리고 욥을 믿으셨다.

결국 하나님이 승리했고, 믿음이 없었던 사탄은 패배했다.


하나님은 욥기 37장까지 침묵하셨다.

그 이유는, 부모가 아들의 시험을 대신 봐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시험을, 아들이 자기 힘으로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들이 반드시 승리할/시험을 통과할 것을.. 아버지는 신뢰하셨다.


욥기를 읽을 때, 내가 감격스러운 것은

하나님이 욥을 끝까지 믿고 신뢰해 주시듯이

‘하나님이 나도 그렇게 믿고 신뢰해 주시는구나!’ 이런 믿음이 생길 때이다.


내가 힘들고 괴로워서 몸부림 칠 때마다

‘너는 잘할 거야!’

‘너는 반드시 일어설 거야!’

‘너는 달릴 거야, 너는 비상할 거야!’

이렇게 격려해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우리는) 듣는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비록 실수투성이라도

너무 절망하지 마시라.


그분의 선택과 부르심에는 결코 후회함이 없으시다.

롬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이런 연약하고 부족한 나를 통해서

오늘도 마귀의 나라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원하시는 주님을

꼭 믿게 되시기 바란다.


결국은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루어지게 될 줄을 믿는다.

그런 하나님께 이 시간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리자.. (일동 박수)                                 ▣ 복음 관련 

 

 

낙관론자가 세상을 변화시킨다

비관론자는 대체로 옳고,

낙관론자는 대체로 그르다.

그러나 대부분의 위대한 변화는 낙관론자가 이룬다.

- 토마스 프리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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