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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9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2432

LNCK 2010. 5. 3. 16:42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그들을 고쳐주셨다      마15:29~31      - 09.10.26.설교스크랩, 출처-  

 


예수님은 두로 지방을 떠나 시돈을 거쳐(여기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 고치심. 마15:21~28)

갈릴리 호숫가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러나 지도를 펼쳐보면,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계셨던 곳은 데카폴리로서 주1)

갈릴리호수와는 조금 떨어진 아직도 이방인지역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본문 29절을 보십시다.


▲1. 병을 고치시려고 “앉으신” 주님  (29절)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마15:29


예수님께서는 그곳에 이르셔서, 산에 올라가셔서 거기에 앉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왜 산에 올라가셔서, 거기에 앉으셨겠습니까?


교사는 가르치기 위해서 교단, 자리에 앉습니다.

세리는 세금을 거두기 위해 세관자리에 앉고,

사람들은 각자가 자신의 직업 때문에 그 자리에 앉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산에 올라가서 거기 앉으신” 실제적인 이유는

병든 자들을 치유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제까지

예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자리에 앉으신' 것을 많이 듣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니까,

예수님은 <병자들을 치료하시기 위해서>

“자리 잡고 앉으셨습니다.”


그저 스치듯 지나가는 병자를, 돌발적으로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신유사역’을 아예 작심하고 행하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기도한다고, 모든 질병이 다 낫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질병(섭리적으로 허락하신 질병)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병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불쌍하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교회는, 정기적으로, 병자를 위해 신유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용하다’는 소문이 나서,

     결국 교만으로/교회성장의 방편으로 변질되는 것을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이럴 경우, 안 하는 것이 차라리 낫습니다.)



▲2. 미친듯이 달려든 병자들 (30절)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   마15:30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만 하는 구절은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입니다.


한번 당시의 장면을 마음속으로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군중이 몰려왔습니다. 거기에는 각종 장애인들이 다 있었습니다.

다리 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앞 못 보는 시각장애인도 있었습니다.

그 밖에 많은 병자들도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남의 힘을 빌려서 업혀오거나, 들것에 실려 오는 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장애인들이 어디 한두 사람이었겠습니까?


‘예수님의 발 앞에 앉혔다’는 이 말씀을 두고 볼 때,

서로 앞 다투어서 예수님의 발 앞에 앉거나/앉히려고

아마 (크거나 작은) 혼란을 이루었을 것입니다.


‘앉히다’의 헬라어(rhipto)를 보면 

‘땅에 팽개치듯 내던지다 cast down’라는 낱말을 쓰고 있습니다.


자신 스스로였든지, 아니면 남의 도움을 받았든지 간에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셔서 자리에 좌정하시자마자

어느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몸을 내던져서

예수님의 발 가까이 가려고, 예수님의 턱 밑에 앉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본문 30절의 주어가 ‘큰 무리/많은 군중’입니다.

‘큰 무리가 병자들을 예수님 앞으로 내던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친듯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려고, 혼란스러울 정도의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천재는.. 열정 있는 자를 당치 못하고,

열정 있는 자는.. 즐기는 자를 당치 못하고,

즐기는 자는.. 미친 자를 당치 못한다.”


인생을 보면 사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열심을 가진 사람을 당하지를 못하고,

열심을 가진 자는.. (열심을 넘어서) 즐기는 사람을 당하지를 못하고,

또한 즐기는 사람은.. (즐김을 넘어서) 미친 사람을 당하지를 못합니다.


여러분! 상상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당시에 이러한 장애인들이 자신의 병을 고침 받기 위해서

예수님께 미친 듯이 몰려들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남보다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서

서로 예수님의 발 앞에 앉기 위해서

미친 듯이 머리가 터져라 몰려들질 않았겠습니까?     주2)

 

▲예수님께 미치는 사람이 됩시다.

여러분! 예수님께 미치면, 예수님께 미칠reach 줄,

예수님께 가장 가까이 나아가는 행운의 믿음의 사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글은 펀 글, 삽입글입니다.)

영성의 충만함.. 이것은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위한 중요한 기초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삷이 어떠해야 한다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역자들도 ‘어떻게 해야한다’는 많은 관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영이 충만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강한 영성.. 충만한 영성.. 사람들은 대체로 이에 대하여 추상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실제적인 것입니다.


자.. 어떤 이가 하나의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즉각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합니다.


그것은 어떠한 상태일까요? 그것은 충만하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충만하다면.? 그는 자신의 열정을 다스리는 것이 어려울 것입니다.


어떤 어린 아이가 내일 소풍을 갑니다. 그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저 빨리 내일이 와서 소풍을 가기를 원합니다.

몸은 벌써 막 움직이려고 하는데, 이것을 억제하려니 참 고문이지요..

이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충만입니다. 소풍에 대한 열정의 충만입니다.

 

우리 아들은 아주 잠꾸러기지요..

그런데 이 녀석이 소풍을 가는 날이면, 새벽부터 몇 번이나 깨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나는 그 열정의 충만함에 대하여 탄복을 하곤 했습니다.


소풍에 대한 충만한 사랑.. 그것이 잠에 대한, 게으름에 대한 사랑을 이겼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 대한, 복음에 대한 어떤 열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헌신 하려고 합니다. 헌신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충만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정이 없습니다.


아직 그들의 충만함은 그들의 몸을 사로잡고 온 영혼,

생명을 들끓게 할 정도의 충만함은 아닙니다.

그 상태가 되면 가만히 있는 것이 고통스럽지요..


언젠가 어떤 자매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나는 기도할거야.. 철야기도도 갈거야..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나중에.. 언젠가는..’

바로 그것이 충만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어느 쪽으로 가려고는 하는데 지금은 싫습니다.

그것이 충만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3. 병자들은.. 미친 듯이 예수님 앞으로 달려 나와야 합니다.  (30절)  

병에 걸린 것보다는.. 건강한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그 질병으로 인하여,

내가 주님 앞으로 달려 나올 수 있다면,

그것이 (건강보다) 더 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떠한 병자들이 예수님께 미친 듯이 달려왔습니까?


①‘다리 저는 사람’이였습니다.

걸음에 있어서, 행함에 있어서 ‘뒤뚱거리는’

즉 불규칙적이고 모순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생각은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의의 길을 좇아서 걷지 못하는’ 그러한 사람 말입니다.


②‘맹인,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육신은 멀쩡하면서도 보는 것에 장애를 가진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편견의 사람입니다.

바르게 보질 못하고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오늘, 영적으로 맹인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③‘말 못하는 사람 및 청각 장애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영적으로 본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에 장애가 있어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을 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내가 그럴 수 있습니다.


④그리고 여러 지체장애인들을 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몸의 한 지체, 한 부분을 상실한 사람들입니다.

마비가 되었거나, 질병이나 사고로 불구가 되었거나,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느 한 부분을 상실해서

온전히 제 구실을 못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치유자이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몸을 던지며’ 나아가야 합니다.


▲4. 고침을 받고 영광을 돌리다    (31절)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고, 장애인이 온전하게 되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걸으며, 맹인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놀랍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31


어느 누구에게도 뒤질 수 없다는 열정을 가슴에 품고

그의 발걸음이 미친 듯이 예수님께 달려가서

예수님의 발 앞에 몸을 던졌던 모든 인생들을

우리 주님께서는 다 고쳐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능력의 치료의 손길로, 그들 영과 혼과 몸을 치유시켜주셨습니다.

 

질병은 안 좋은 것이지만,

질병이 고쳐질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오늘 나의 질병이 고침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됩시다.

 

▲그런데 두 가지의 다른 놀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놀라셨다'는 이야기 나옵니다.

 

①주님께서는 오늘 본문 이방의 데가볼리에서와

또한 본문 직전 가나안 여자에게서 보듯이, 이방인들의 큰 믿음을 보시고 놀라셨습니다.


②그리고 또 예수님께서 놀라셨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막6장에, 예수님은 고향에 가셔서 복음을 전파하시며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거기 마가복음 6:5~6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거기에서, 다만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고쳐 주신 것 밖에는,

아무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막6:5~6)


예수님은 가까이에서 고향사람들의 믿음 없음을 보시고,

그리고 동족인 유대인들의 불신앙을 보시고 역시 놀라셨습니다.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도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내 가슴에 손을 얹고, 내 자신의 믿음을 두고

자문자답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주님은 우리의 무엇을 보시고 놀라시겠습니까?

우리의 믿음, 큰 믿음을 보시고 놀라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 없음을 보시고 놀라시겠습니까?


고향사람들이나 유대동족처럼

예수님을 수십 년,

아니 평생을 가까이에서 대하고 있는 데도 말입니다.


생각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주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놀라시겠습니까?”

“아니라면 우리의 불신을 보시고  놀라시겠습니까?”


끝으로 어느 수도사의 기도를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주님

   저는 제가 남보다

   부유하다고

   생각될 때 두렵습니다.


   주님은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는 제가 남보다

   높다고

   생각할 때 두렵습니다.


   주님은

   낮은 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는 제가 남보다

   선하다고

   생각될 때 두렵습니다.


   주님은

   죄인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

   저는 남보다

   주님을 안다고

   생각될 때 두렵습니다.


   주님은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더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기도드립니다.)

“가난한 자를,

낮은 자를,

죄인을, 

길 잃은 양을

사랑하시고 찾으시는 주님!

                                                      

영적으로 도덕적으로 불구인

저희 인생들이

우리주님 발아래 엎드렸습니다.

                                                      

이 시간 우리주님의 전능하신 하신 손길에

병 고침 받기를 원합니다.

                                                      

주의 말씀을 따라 행하지 못하는

저는 발을 고쳐주시고,


주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앞 못 보는 눈을 고쳐주시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수도 없고 증거 치도 못하는

우리의 귀머거리, 벙어리 된 입을 고쳐주옵소서


오, 주님! 영적으로 그리고 윤리적으로

우리의 불구된 영과 혼과 몸을 치유시켜 주옵소서.

                                                      

오늘 이 시간 이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재생, 갱생의 길을 걸어가며 제2의 새로운 인생을 살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의 온전한 마음과 몸을 하나님께 드리므로

새로운 삶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주1)

이 데카폴리는 열 개의 도성을 가진 로마제국이 관할하고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로마화폐를 찍어내는 우리나라로 말하면 조폐공사가 있고,

재판을 관장하는 재판정이 있고, 로마군이 주둔을 하고 있었습니다.

데카(10)폴리스(도시)는 전형적인 이방인지역이었습니다.


주2)

지금도 선교지 중에 오지에 가면, 신유사역이 잘 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병원이 없거든요.

그리고 혹시 병원이 있어도, 그것을 이용할 돈이 없거든요.

약을 살 돈도 없거든요.


그러니까 자기들이 치료할 수 있는 길은 오직 ‘기도’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절박하게 기도하면.. 신유의 기적도 신기하게 잘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을 5병2어로 먹이신 것처럼,

다른 치료수단이 없는 곳에서는

주님의 특별한 은총이 있습니다...


본문의 당시 상황이, 꼭 그랬다는 것입니다.                                                            ▣ 신유,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