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행복한 사람 신33:27~29 06.04.09.탄자니아 선교사 간증설교 스크랩/정리
◑되돌아본 내 인생
“Bwana Asifiwe!”
이 말은 탄자니아 크리스천들이 만날 때 하는 인사 방법입니다.
그 뜻은 "주님을 찬양합시다!" 라는 뜻입니다.
동시에 이 인사 속에는, 이슬람 세계에서 자신들의 영적 정체성 identity을 고백하는,
즉 '저는 크리스천입니다' 라는 신앙고백이 들어 있기도 합니다.
▶평균 수명이 45세인 탄자니아 사람들
탄자니아의 인간 평균수명은 약 45세 라고 합니다. (아프간과 비슷하군요)
많은 사람들이, 어린 나이 아니면 젊은 청년의 때 갖가지 병에 들어서,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되다 보니 평균 수명이 낮아진 것입니다.
우리들의 평균수명과 비교해 보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희들이 사역하고 있는 인도양 해변 '탕가' 지역은, 습도가 높고 아주 무더운 곳입니다.
그로 인하여 오후 1-2시만 되면 온 몸이 노곤하여,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게으름쟁이로 변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역을 끝내고 조용히 하루의 일들을 묵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평균 수명이 45세 인데, 내 나이는 지금 몇 살인가?’
그들보다 벌써 4년을 더 살았음에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저의 길지 않은 인생을 회고해 보니, 3부분으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저의 지나온 삶을 점검해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①첫 부분은, 26년간의 한국생활이었습니다.
태어나서부터 군대를 다녀왔고, 신학교를 졸업한 기간이었습니다.
②둘째 부분은, 13년의 미국 생활이었습니다.
계속된 신학교육과 동시에 교회를 개척하면서 살았던 기간 이었습니다.
③세 번째 부분은, 아프리카에서의 만 10년 생활이었습니다.
▶가장 힘들었지만, 가장 행복했던.. 선교사 10년 생활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놓고, 저는 제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습니다.
‘이 세 부분 속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어느 때이었니?’
생각해 보니 아프리카에서의 10년이었습니다.
아프리카였기 때문에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문화, 언어, 날씨, 음식 등등 여러 가지 변화에 대한 적응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것들 보다, 우리 가족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선교대상자인 그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하기 위한, 자기절제의 훈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세 부분 속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그 역시 아프리카에서의 10년 기간 이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시간 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행복이 있었습니다.
그 행복이 지난 10년의 힘들었던 순간들을 다 잊게 해 주었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있습니다.
◑탄자니아에서 10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이유
왜 가장 고생스런 기간이, 동시에 가장 행복했을까요?
그 이유는, 탄자니아 사람들의 변화를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반 사물과는 다르게, 사람들의 변화는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삶을 통해.. 그 변화의 형체는 반드시 드러나게 됩니다.
지난 10년 동안, 그곳 사람들이 변화되는 많은 간증들이 있었지만
두 가지만 제가 느꼈던 행복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1. 아스마니 형제 회심기
저희들이 사역하는 곳은 이슬람이 약 85% 이상 되는 곳입니다. *관련글: 아프리카 기독교 개관
중동이나 그 밖의 다른 강경파 이슬람 국가들만큼은 위험하지 않지만
현지인으로서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데 아스마니Asmani 형제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형제는 본래 회교도로서 하루 5번씩 기도하던 형제였습니다.
저희 신학교를 건축 할 때에도, 건축노동을 하는 중간 중간에
회교 기도시간이 되면, 꼭 기도하던 청년이었습니다.
건축공사가 일부 끝난 후, 그가 회교도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 형제를 건물 경비원으로 채용 했습니다.
그 때 주위에서 저희 부부를 헐뜯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기독교인 중에도 일이 없어서 굶는 사람들이 많은데,
선교사가 이교도인 회교도 사람을 채용하다니...’ 많은 비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비록 현지인 크리스천들은 그 땅에서 굶주리고 가난하지만
일찍 죽든지/오래 살든지.. 죽으면 천국에 간다. 하지만 불신자들은 다르다.
그 땅에서 못 먹고 굶주리는 것도 억울한데..
죽어서 지옥에 가면 얼마나 더 억울하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스마니 형제를, 새로 지은 신학교의 경비원으로 채용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 형제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섣불리 예수님 이야기를 꺼냈다가,
일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떠나기 때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회교도들은 예수 이야기만 나오면
마치 우리가 뱀을 보고 치를 떠는 것과 같은 혐오스런 반응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약 2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런 후 저는, 과감하게 교회 방문을 권했습니다.
다행히 그는, 저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가끔씩 교회를 찾기 시작하더니
이내 매 주일 교회를 출석했습니다.
그때부터 용기를 내어 예수님 이야기도 하고
특별히 구원에 대한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어느 주일 날 설교를 끝내고, 초청의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고,
그분께 나의 모든 삶을 맡기고 싶은 사람은.. 앞으로 나오십시오!"
아~ 그런데 아스마니 청년이 아주 용감하게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스도의 초청에 응한 것입니다.
그때 그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고백한 내용을, 그 나라 말로 표현 해보겠습니다.
"Ninafuraha sana, kwa sababu Mungu ameniokoa"
(나는 너무너무 기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때 그 청년의 신앙고백을 들으면서
지난 2년이 넘도록 그 형제를 전도하기 위해서 겪었던
조마조마했던 마음고생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행복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비판을 들었을 때 느꼈던 마음고생도
순식간에 다 사라지고, 오직 기쁘기만 했습니다.
사람의 영혼이 영원한 죽음의 길에서, 영원한 생명의 길로 옮겨지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있을까요?
그는 계속하여 영적성장의 시간을 지난 후,
저희 신학교 교회 남선교회 '서기'가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예수 믿기 전에는 회교도 사원의 '서기'였다는 점입니다.
▶2. 현지 신학생(목회자)들의 고백
어느 날 저희 신학교 학생들과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16년 된 좁은 자동차 안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한 신학생이,
저희 신학교와 후방의 후원자들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는
그들 신학생들의 감사의 마음을 대표로 전달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것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지난 날 우리가 신학교에 오기 전에 했던 많은 설교들이
잘못된 설교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저희 탄자니아는 교육열이 아주 열악합니다.
전체 국민들 중에, 정규 고등학교 졸업자가 약 1% 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목회자들에게도 다르지 않습니다.
현재 목회하고 있는 목회자들 중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하는 목회자들은, 약 10%가 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예수 믿은 열정으로, 배움 없이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깊은 부분에 들어가면
정확한 확신 없이 그냥 설교를 하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무언가를 알고 나면 비로소 '아, 잘못했구나!'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신학생들의 고백이 바로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자기들이 고의적으로 거짓 설교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신학교에서 정식으로 배우면서
때로는 과거 자신들의 설교가 잘못 되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간증 역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신학교를 건축하고, 운영하면서
크고 작은 어려웠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어려웠던 순간들이
순식간에,, 그 변화를 바라보는 기쁨(행복)에 먹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되면 반드시 보이게 되며,
그 변화는 지난날의 모든 고통을 삼켜버리게 합니다.
이 외에도 이런 일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지난 10년의 아프리카에서의 삶이,
제 인생에서 가장 기뻤고 행복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행복자
그런데 본문에,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33:29
저는 ‘제가 지나온 아프리카 10년이 참 행복했다’ 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성경에서 ‘이스라엘아, 너희는 행복자로다’라는 말씀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왜 이스라엘이 행복자인지.. 그 이유를 한 번 묵상해 보았습니다.
▶출애굽 2세대들에 대한 격려
본문 신명기33:27~29절은, 모세가
가나안 땅 진입을 눈앞에 두고 초조해하고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며 용기를 주는 말씀입니다.
10명의 정탐꾼들(민13:14~)의 잘못된 보고를 믿고서,
하나님께 불평, 원망하다가, 출애굽 1세대 어른들은, 광야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이제는 염려하는 2세대(2nd Generation)들만 남았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땅에 들어가면,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그때 모세는, 2세대들에게, 용기를 주며 위로하는 말이 본문인데요.
한 마디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신33:29
(여기서, 불확실한 미래를 앞두고 불안해하는, 우리 각자를 연상하셔도 됩니다.)
모세는 왜 그들을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했을까요?
오늘 이 말씀은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1. 그들은 여호와로부터 구원을 얻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29a
세상에는 많은 행복의 조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가져다주는 행복은 한계가 있습니다.
오늘 기쁘다가도 내일 어려움이 오면, 그 행복은 순식간에 다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행복에는 한계 limit가 없습니다. 지속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환란과 고통을 당해도.. 행복합니다.
①안 믿는 세상 사람들은,
환란과 고통을 당할 때, 크게 2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남의 탓으로 돌리거나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 즉 인과응보적 관점에서 생각합니다.
뭔가 자기가 잘못 해서, 그런 환란과 고통을 당했다는 것이지요.
정리하면, 2가지 반응이 모두 다 우울합니다. 소망이 안 보입니다.
불행을 고스란히, 자기가 감당해 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②그러나 믿는 크리스천들은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게 환란과 고통을 당하지만,
이것을 해석하는 관점, 또한 그 결과가.. 판이하게 다릅니다.
비록 환란을 당하더라도 매우 희망적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행복자라는 것입니다.
믿는 크리스천들에게, 환란이 왜 희망적일까요?
물론 크리스천들도, 인과응보적 영향 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인과응보를 초월하는, 더 상위 법칙 아래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의 법칙, 은혜의 법칙,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법칙’입니다.
안 믿는 분들은, 환란을 당할 때, 비관적입니다.
‘내가 잘 못해서 그렇구나!’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환란을 당할 때, 희망적입니다.
‘하나님이 뭔가 나를 고쳐서, 새롭게 만드시려는 구나!’
‘주님이 나를 정금처럼 변화시키시는구나!’ .. 실제로 그렇습니다.
구약성경에도, 이스라엘과 주변 이방국들이
바벨론에 의해, 똑같이 멸망당했습니다.
그러나 주변 이방국들은.. 심판으로 끝났지만,
이스라엘은, 정결하게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잘 되는 복’은 말할 필요도 없고,
혹시 ‘환란과 고난’을 당할지라도,
크리스천/이스라엘은 항상 행복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환란도 '구원의 과정'에 포함됩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징계할 때.. 그 결과가 항상 ‘회복’이지 않습니까! 멸망이 아니라..
▶2.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사는 미래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신33:29b
우리가 사탄의 공격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막아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후략) ▣ 해외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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