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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쉼 2492

LNCK 2010. 6. 9. 22:21

◈십자가의 쉼                         마11:25~30                   07.11.11.설교녹취

 

 

◑위대한 발견은, 쉬는 데서 나온다

 

▲페스트가 가져다 준 뜻밖의 발견

14세기 중엽에, 페스트가 온 유럽을 뒤덮었다.

그 당시 유럽 인구의 1/3이나 희생될 정도로, 역사에 유래 없는 큰 참사였다. 

그런데 그 페스트가 17세기 1665년에, 다시 한 번 유럽을 휩쓸었는데,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도, 그 전염병으로 인해 18개월 동안이나 휴교를 하게 된다.


이때 케임브리지 대학 교수들이, 모두 고향에 돌아가서 긴 방학(휴교)을 보내고 있을 때,

집에 돌아가서 쉬던 아이작 뉴턴은, 놀라운 업적을 이루게 되는데...


1665년 이때로부터, 약 230년간 온 세계의 세계관을 지배하는 <기계적 세계관>과

고전 물리학의 기초가 되는 <만유인력의 법칙>, <빛의 스펙트럼 현상>,

수학의 <미분, 적분>이 최초로 발견되게 된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인 아이작 뉴턴이

전염병 때문에 어쩔 수없이 고향에 가서 쉬는 동안에,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이 발견되기 전까지) 230년 이상동안 세계를 지배해 왔던

매우 중요한 법칙들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열심히 연구하고, 열심히 교수활동을 하던 시절이 아니라,

집에 가서 한가하게 쉬는 동안에

인류역사에 대전환점이 되었던 전기turning point가 마련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쉼의 신비한 힘’이다.

   일상에 매이지 않고, 해방된 마음이 될 때,

   인생과, 사물과, 세계를..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다.

   거기서 전혀 새로운 발견과 大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십자가를 질 때.. 쉼이 있다.

쉰다는 말은 한자로 휴休인데        *휴식할 때의 휴

사람인亻변에, 나무목木

즉, 사람이 나무그늘에서 기대어 쉬는 모습을 나타낸다.


기독교신앙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 ‘쉴 휴休’자에 담겨있다.

성도는 십자가 나무에 매달려서, 기대어서.. 쉬는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11:28

라고 말씀하셨는데, 뒤이어

나의 멍에(십자가)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29


   즉, 십자가를 메고 따라가는 데.. 역설적으로 쉼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십자가를 지는 일이.. 어떻게 ‘쉼’이 되는가?  ‘고통‘이라면 몰라도..


▲‘십자가의 쉼’이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완벽하게 포기하고,

(내가 추진하고 손대는 일마다, 내 죄성으로 인해, 오히려 더 그르친다.)


‘내가 죽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 나무에 달려서 가만히 있게 된다. 즉 쉬게 된다.


그 동안, ‘나는 못 하지만, 주님은 다 하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주님이 전적으로 주도하시는 일에

내가 도구로 쓰임 받게 되는 것이다.


   내가 죽어서, 십자가에서 쉴 때

   (아무 일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or 나는 죄인이라서 할 수도 없다)

   비로소 주님이 역사하시는 손이 보인다. 주님의 섭리가 내 눈에 보이게 된다.

  

   일의 큰 틀, 큰 그림은 주님이 다 행하시고..

   나는 그저 ‘불씨’ 일으키는 정도의 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뉴턴처럼, ‘나는 바닷가에서 조개껍질이나 주웠다’고 고백하게 되는데...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 85세에 죽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 어떤 사람으로 비칠지 모른다.

그러나 나 자신의 눈에 비친 나는,

밝혀지지 않은 진리(지식)의 큰 바닷가에서,

장난을 치며, 조약돌이나 조개를 줍고 좋아하는 어린아이처럼 살다가 간 사람..

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의 뜻은, 뉴턴이 정말 몇 세기에 한 사람 나올까 말까한 사람으로서

인류역사에 대단한 과학적 업적을 남겼지만,

자기 스스로 자기를 생각하기를

‘나는 바닷가에서 어린아이처럼 놀았다’는 것이다.


자기가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 등도,

‘마치 바닷가에서 조개를 줍는 것’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바다와 같은 하나님의 존재는 너무나 크고 위대하시며,

또한 이 세상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과학적 명제는.. 바다처럼 넓다는 뜻이며,

자신이 이룬 업적은, 그에 비하면 조개껍질처럼 아주 미약한 것인데..


이 말을, 좀 더 깊이 유추해 보면,

뉴턴은.. 자기가 애쓰고, 힘쓰고, 노력하고, 분투했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힘쓰고 노력했을 것임, 그러나 ‘쉼’이란 큰 틀 속에서 그렇게 했다는 뜻)

자기는 바닷가에서 그저 쉬다가 간다는 것이다.


   여러분, 나와 주변사람을 한 번 살펴보자.

   그렇게 피 튀길 정도로 애쓰고 힘써서 이룬 업적이 과연 무엇인가?

   가문을 바꾸었나, 사회를 바꾸었나? (거듭 말씀드리지만, 노력하지 말라는 뜻은 아님.) 


   사람이 애쓰고, 힘쓰면.. 작은 틀을 바꿀 수는 있지만,

   큰 틀은 절대 못 바꾼다. 큰 틀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쉼을 가지는 사람은,

   큰 틀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동역자, 도구가 된다.

   그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자기 눈이 열리기 때문이다.


 

◑적용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1990년에 데미 무어가 주연한 영화 <사랑과 영혼 Ghost>에 보면,

남자(패트릭 스웨이지)가 강도를 만나 죽는데,

그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와서, 자기 연인 몰리(데미 무어) 곁을 지킨다.

(이 부분이 신학적으로 논란이 있음. 영혼이 구만리장천을 떠도는 것은 아님)


어쨌든 남자가 몰리에게, 말을 해도 못 알아듣고, 건드려도 그 손길을 못 느낀다.

그런데 괴한이 침입해서, 집에 있던 몰리가 위험에 빠졌는데,

영혼이 된 남자는, 아무리 소리를 쳐도 몰리가 못 알아듣는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 죽는다는 것은

   진짜로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 것이구나.

   내 가족이 위기에 처한 상황이 되었어도,

   내가 전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가 죽었으니까!’


십자가에 죽는다는 것은,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얘기가 아니다.

내가 죽으면, 위 영화에서처럼, 

내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영향력을 조금도 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이것은 나를 ‘비우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나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과도 약간 다르다.)


지금 십자가에 죽는 것=쉬는 것休으로 설교를 풀어가고 있는데,

내 노력, 내 열심을 포기한다는 점에서.. 둘은 공통적이다.


▲내가 죽을 때... 부활의 주님이 역사하신다.

크리스천의 능력은, 십자가에서 죽을 때..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


   왜 자식에게 짜증을 내고,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하는가?

   부모 생각에는, 자기가 잔소리를 하고, 영향력을 가하면,

   자녀가 변화될 것이라고.. 아직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자기가 죽은 사람,

   즉 내가 아무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자녀에게 짜증을 내지도 않는다.


목회자들도 마찬가지다.

자꾸 교인들에게 짜증을 내고, 압력을 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기가 아직 죽지 않아서, 자기 힘으로 뭘 이뤄보겠다고 할 때.. 그렇다.

부작용만 생길 뿐이고, 그렇게 해서 이뤄진 일은, 결국엔 더 큰 문제가 된다.


그러나 자기가 죽은 목회자는, 자기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까,

쉬게 된다.

그렇게 쉴 때.. 비로소 하나님의 손이 목회자의 눈에 보이게 된다.

하나님의 섭리가.. 자기 눈에 비로소 들어온다.

그 전에는, 자기 일에 바빠서, 그게 보이지 않았다.


▲쉴 때.. 하나님이 '나를 잡아 이끄시는 손'을 발견한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빗대어

김우중 씨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도 일리가 있지만)

저는 반대로, 십자가에서 자기가 죽은 사람에게는

‘세계는 좁고, 할 일은 적다’라고 생각한다.

내 손이 못 미치는 대부분 큰 테두리를.. 주님이 다 알아서 결정해 주시기 때문이다.


뉴턴은 고향에 내려가, 한가한 시간에, 사과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다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것처럼,

내가 십자가에 죽어서 쉬는 동안에,

‘하나님이 나를 잡아 이끄시는 손’이 비로소 보이게 된다.

내게는, 만유인력의 법칙에 못 지 않은 대단한 발견이 된다.


여러분, 우리가 십자가 복음을 성실히 전하면,

지금은 인터넷 시대라서

지구 반대편에서도, 이 메시지를 듣고, 자기들끼리 모임을 갖고 있다.


   이런 일은, 자생적으로 생기게 되어 있다.

   또 누가 강요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복음이 성실히 전파되기만 하면,

   (마치 루터의 설교가 인쇄술의 발달로 온 유럽에 전파되었듯이)

   오늘날 인터넷의 발달로, 그 복음이 온 세상으로 순식간에 확산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넓은 태평양도,

   마치 개천 하나 지나듯이.. 좁아져 버렸다.

   실시간으로.. 복음이 온 세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가 성실하게 ‘십자가 복음’만 전파하기만 하면!


여러분, 사실 내 인생에서 아주 큰 테두리는,

내 노력이 아니라, 주님이 다 정해 주신다.

생명, 구원, 공기, 햇볕, 인종, 국적, 부모, 내 사명.. 모두 주님이 정해 주신다.

이에 비해, 내 노력은 작은 테두리 안에서 영향력을 미친다.


그런데 우리는 열심히, 내 노력으로 작은 테두리 안에서 전력 질주하다가,

문제는, 너무 바쁜 나머지.. 큰 테두리를 못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력질주 하는데.. 종종 그 방향이 엉뚱하더라는 것이다.


어차피, 내 삶의 주도권initiative은 주님이 갖고 계신다.

내가 작은 테두리의 내 몫의 일도 감당해야 하지만,

십자가에서 자기가 죽은 상태에서

내 삶과, 역사와, 공동체를 이끌어 가시는,

주님의 주도권initiative을 보는 눈을 갖고서,

그 흐름에 나를 던져야 하겠다.                                                                            ▣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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