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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자녀 됨의 권세, 관심, 특권 2455

LNCK 2010. 5. 17. 21:59

◈하나님 자녀 됨의 권세, 관심, 특권         롬8:14~17            07.11.04.설교녹취, 편집

 


▲미도파 백화점에서,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사장까지 승진하신 분이 있다.

한때 미도파 백화점은, 한국에서 제일 크고 잘 나가던 백화점이었다.

그 분이 장로님이었는데,

60세 즈음에 퇴직하고 나셔서 하는 말이

‘내가 60년 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하신 것이다.


그 분은 60년 동안, 숨 가쁘게 자기 인생을 달려왔다.

정말 학교, 직장 외에는.. 다른 곳을 일절 쳐다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인생을 되돌아본 순간,

‘자기가 이제까지 너무 허무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우리가 허무하게 살지 않으려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분명한 믿음과 자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1. 하나님 자녀 됨과 그 권세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인생의 출발

*많은 사람들이 ‘40세가 인생의 출발점이다.’ 라고 말한다.

그 동안, 즉 30대 후반까지는,

40대 이후의 승승장구하는 인생을 시작하기 위한

경험 및 준비과정이라는 것이다.


남자가 군대와 대학을 마치면 20대 후반인데,

40세가 되기까지 직장에서, 말단 직원부터 시작해서 경험을 차곡차곡 쌓다가

40세 즈음에 이르러 ‘중간관리자’로서, 자기 인생을/자기 경력을

한 번 제대로 펼쳐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인생은 50세가 진짜 인생의 출발이다>라고 말한다.

50세가 되면서, 사람들의 직업적/사회적 위치와 신분이.. 대부분 고착되어진다.

그러면서 성공하지 못한 대다수 사람들이, 50세부터.. 스스로 위축되고, 자신감이 없어진다.


그래서 <인생은 50세가 진짜 인생의 출발이다>라는 책이 나오고, 그런 말이 회자되는 것은,

50세가 되어 의기소침해진 사람들에게, 깨우침과 새 용기를 주려는 의도가 다분히 실려 있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인생은 50세 때부터 내리막길임을 많이들 인정한다.’는 말도 되겠다.


*물론 ‘인생의 출발점’에 대한 견해는 각자 입장에 따라서 다 다르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입사한 직원은, 그 때가 ‘사회생활의 첫출발’이라고 생각하거나,

-결혼을 하고, 신혼을 시작하는 사람은 ‘이제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면서..’ 라고 말하는데...


-또 부모가 ‘출발’을 도와주는 경우도 있다.

신랑신부가 결혼할 때, 부모가 아파트를 사 주면서

‘조금 쉽게 출발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도의 ‘인생의 출발점’은 ... 하나님의 자녀 됨이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롬8:14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16


여러분이 매일 아침을 시작하실 때, 어떤 ‘자의식’이 있을 것이다.

‘나는 OO대학생이다. 또는 나는 OO회사에 다니는 과장이다’

‘나는 애 둘을 키우는 가정주부이다’


그런데 이런 자의식의 대부분은, (착각이 아닌 이상)

대부분 매우 비관적,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기가 죽어서, 의기소침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내가 누구다’ 라는 내 명함이.. 대부분 그리 번듯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기 인생의 출발점으로 삼는 사람은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로 자기 인생을 시작한다.

   어떤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매일 하루를 힘차게 출발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감이 떨어지게 되어있다.

외모에 민감한 여성들은, 나이가 들수록

남성보다 자신감이 더 많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


서두에서, 남성도 대부분, 50대가 시작되는 즈음에서

자기 자신감이 떨어지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 라는 자의식 위에서 인생을 출발하는 사람은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4:16

하는 의식으로 살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우리 각자의 중심, 내면을 보시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 스스로도, 자신을 바라보거나, 타인을 쳐다 볼 때

그의 외모를 보지 않고, 그의 중심 내면을 바라보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러므로 내 인생은 40대에 비로소 출발하는 것도 아니요,

   50대부터 진정한 인생을 출발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로부터!’ 진짜 내 인생이 출발하는 것이다.

  

   이렇게 출발한 사람은

   위에 언급한 미도파 백화점 사장님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인생을 이제껏 헛살았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날마다 하나님의 자녀로,

   매일/매주일/매월/매년을 의미 있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자녀에겐 엄청난 권세가 있다.

제/설교자가 잘 아는 어떤 큰 회사가 있는데,

아버지가 회장이고,

아들이 상무였다.


서열상으로 말하면,

아버지 회장과 아들 상무 사이에는

다른 중역들이 많이 있었다.


사장도 여럿 있었고,

전무들도 많았다.


그런데 그 집 아들은, 그들보다 직급이 낮은 ‘상무’인데,

자기보다 높은 사장들, 전무들이... 그 아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이다.

깎듯이 회장님의 아들 대우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아들’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그만큼 권세가 있다는 것이다.

절대 호락호락한 자리가 아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이,

    비록 겉으로는 크게 돋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아들이 가진 권세는...

    절대 세상이, 마귀가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크고 놀라운 하늘 나라의 권세가.. 우리 각자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비록 큰 집에 살고 있지 못하더라도

    비록 큰 차를 타고 다니지 못하더라도

    비록 얼굴에 주름이 많이 잡히고, 몸이 노쇠해져 있더라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모세는 80세에,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로서 새출발>하게 되었다.

그 전에도 하나님을 알고 있었고, 자기 마음속으로 믿고 있었지만,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자의식은..

성령의 감동으로.. 8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갖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지팡이 하나만 달랑 들고서도,

바로 왕 앞에서 호령하는 일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해낼 수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강한 자의식이 없이는.. 절대 해낼 수 없었던 일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지팡이 하나(하나님의 아들)의 권세에

애굽 전체가 10재앙으로 초토화되었다가, 결국 굴복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 자녀’의 권세라는 것이 

   돈이 많이 주어지고, 자기 지위가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원래 본질이 아니다.


   (그런 것을 꼭 부인할 필요는 없지만)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의 본질은,

   예수님이, 베드로가, 사도바울이 가졌던 권세

   즉 성령의 권세, 기도의 권세, 영권의 권세, 섬김의 권세이다.

   이방사람들처럼, 섬김을 받는 권세, 물질과 힘을 많이 가지는 권세는... 본질상 아니다.


▲오늘 여러분 가운데, 아무리 못 가져도, 아마 광야의 모세보다는 많이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광야의 모세보다 우리가 당연히 못 가진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의식이.. 모세보다 모자랄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접촉, 만남, 교제’에 있어서.. 모세보다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요즘은 쉽게 말해서 '하나님과의 거리'라는 말을 잘 쓴다. 모세는 그 '거리'가 가까웠다.)

 

그러므로 오늘 내가 자원이 부족하다고 기 죽는 사람들,

즉 물질이 작고, 따르는 사람이 작고, 학벌이나 집안 배경이 작다는 사람들,

그래서 내가 뒤떨어진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믿음’이 식은 것이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이런 것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거나, '거리'가 멀어진 것이다.


그 결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의식이 희미해지면서,

자꾸 세상 자원(물질, 사람, 권세)들로 자기를 치장하려고 하는데,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다가는..

‘하나님’으로부터 또는 ‘하나님 자녀’의 권세로부터.. 점점 더 멀어진다.


그런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다가는..

그냥 ‘광야에서 남의 양을 치는 늙은이 모세’로, 즉 최악의 모습으로 자기 인생을 마감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지닌,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절대 되지 못할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로 사는 것은.., 모험적이고, 두려움이 있다.

그런 두려움을 느끼는 자기 자신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 자기 죽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삶은, 내주하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으로 사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자녀라고.. 모든 일이 다 술술 풀리는 것은 아니다.

벽에 부딪히기도 하고, 자기 힘으로 극복하기 힘든 난관을 만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는 ‘주여, 주여’를 되뇌며, (빙판길에서 운전할 때 내는 소리와 비슷)

그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

자기는 죽고, 그리스도께서 자기 속에 살아 계시니,

자기 능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힘과 능력으로.. 그 난관을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난관을 능히 극복하는 신자가 있고,

   난관 앞에서 좌절하고, 주저 앉아버리는 신자가 있다.

   그 차이는.. 그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능력의 차이이다.

   그리스도는 동일하시나, 자기 믿음에 따라서, 그 능력이 각자에게 다르게 나타난다.



◑2. 하나님 자녀의 관심


하나님 자녀관심은 다른 데 있다.

‘파티석상의 FBI 요원’의 예를 들어서 설명해 본다.

우리가 미국 영화를 자주 보게 되는데..


유명인사가 그 파티에 참석하는데

그 유명인사를 암살하려는 테러범들의 계획을 사전에 포착하고

FBI 요원들이.. 그 암살범을 막고 VIP를 구하려는

그런 작전을 세울 때가 있다.


그래서 FBI 요원들도, 마치 파티에 초대받은 손님인 것처럼 가장하고,

파티에 참석한다.

그런 작전을 수행하노라면 '파티석상에서 FBI 요원들'의 모습은

파티에 초대된 하객들의 모습들과는 아주 현격하게 차이가 나게 된다.


그들과 똑같이 턱시도를 입고 있고,

파티석상에 참여한 많은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고,

멋진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 틈에 끼어서 같이 샴페인 잔을 기울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귀에는, 항상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무전기가 달려 있다.

그래서 항상 위쪽(하나님을 연상)과 교신을 주고받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요원들은 갑자기 뛰기 시작하고, 바쁘게 사람들 인파를 헤쳐가면서

자기 사명을 감당한다.

그저 파티를 즐기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 아닌 것이다.


자, 이러한 파티석상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FBI 요원들과

파티석상에 참여한 사람들과의 차이.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 자녀들과의 차이가 된다.


FBI 요원들(하나님의 자녀들)은,

파티석상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소리를 듣지만, 거기에 귀 기울일 수 없다.

그 음악을 듣지만, 자기가 귀를 기울이는 쪽은.. 이어폰이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세상사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예를 들어 ‘증권이 폭락/폭등했다. 금값이 술렁인다’

그런 세상 돌아가는 얘기들을 듣지만, 거기에 귀를 기울이진 않는다.


   그렇다. 세상을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관심은

   파티에 있지 않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적인 관심사와는 현저하게 다르다.

  

   그들은 항상 이어폰에 귀를 기울이면서, 하늘의 음성을 듣는다.

   그리고 그 음성에 의해, 자기에게 임무가 떨어졌을 때,

   온 몸을 바쳐 자기 사명을 감당하는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즉 ‘하늘이 주신 사명’에 관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골3:1~2



◑3. 하나님 자녀의 역설적 특권


고생과 수고를.. 오히려 특권으로 여기는 이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기 때문!


파키스탄에 정ㅈㅎ 선교사님이 계신다.

저는 이 분을 10년 전에 만났다.

당시는 중국 청해 성에서 사역하였는데,

선교보고를 하는데, 그 분의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중국 청해 성에서, 몇 년 동안, 한 사람도 전도가 안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몇 년째 새벽에 혼자 새벽 기도회를 하는데,

‘복음을 위하여 자기가 순교하게 해 달라’는 기도가 나온다고 했다.


자기가 순교해서, 그렇게 해서라도, 영혼들이 구원받는다면,

순교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가족 모두의 순교 말이다.


저는 그 간증을 들으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 마음이 진심임은 알겠는데, 어떻게 저런 마음을 품을 수 있을까?

저 분이 바라보는 것은 무엇이며, 내가 바라보는 것은 무엇인가?’ 고민했다.


스코틀랜드 출신 데이비드 리빙스턴 선교사는

말년에 잠비아의 깊은 밀림 속에서 연락이 끊어지고 말았다.

1871년 탐험가 헨리 스탠리가, 리빙스턴을 찾기 위해 아프리카로 들어갔다.


1년 만에.. 겨우 밀림 속에서 병들어 앓고 있는 리빙스턴을 만났다.

식료품과 의약품이 거의 다 떨어진 채 심한 열병을 앓고 있었다.

스탠리는 그에게 간절히 권면했다.


“선교사님, 아프리카의 복음 사역을 위해서 30년 간 헌신해 오셨으니까,

이제 그만 하시고, 저와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말을 듣던 리빙스턴은 아주 유명한 대답을 했다.

“아닙니다. 제게 있어서 아프리카의 선교 사역은 헌신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큰 특권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이 영광스러운 일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1873년 5월 1일,

리빙스턴은 침대 곁에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깍지 낀 채 기도하는 모습으로.. 고요히 숨을 거두었다.


무엇이 선교사들을 이렇게 살게 한 것일까?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도바울처럼, 

복음을 전하는데 동반되는 고생이나, 수고를

괴로움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자기 특권으로 여겼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여러분, 자녀가 아버지의 회사에 나가서 근무하면서,

그것을 '괴로운 고생'이나 '돈벌이'로 여기지 않는다.

그는 아버지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그 고생을 오히려 '특권'으로 여긴다.

 

▲당신이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있으면.. 반드시 삶이 달라진다.

하나님의 나라를 본 사람들은 삶이 다르다.

하나님의 나라를 본 사람들은 생각도, 판단도, 소원도 다 달라진다.


사람들은..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여기며 살아간다.

눈에 보이는 것이 세상뿐이니까.

이 세상에서 먹고, 소유하고, 누리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있다. 실재한다.

이 세상의 나라가 절대 전부가 아니다. 진짜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 세상의 나라는.. 길어도 내가 100년을 못 산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나는, 영원히 살아간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가 있음을 발견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하는 삶을.. 오히려 특권으로 여기게 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아까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게 된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롬8:17              ▣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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