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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자씨 비유 2441

LNCK 2010. 5. 8. 17:07

◈겨자씨 비유 - 하나님 나라의 단절과 경악              마13:31~32                    07.02.21.설교녹취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로 바뀌었다는 비유의 내용에서

이 비유가 의미하는 내용이, 점진적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소수의 것에서 많은 것으로.. 천국은 점점 더 성장해 나가는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겨자씨 비유’는 바로 그 점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이제까지 설교를 들어왔다.


그래서 아무 의심도 없이

‘겨자씨 비유는, 작은 겨자씨가 점점 큰 나무로 자라듯이

하나님 나라는 점진적으로 점점 더 성장을 거듭해나가서

마침내 큰 나무가 된다.’ ... 이런 식으로 이해해 왔다.


그런데 저/설교자는, ‘겨자씨 비유’의 의미를 좀 다르게 생각해 보는데...


▲‘겨자씨 비유’가 의미하는 바는.. 점진적 성장 보다는 

‘깜짝 놀라는 경악’에.. 그 비유가 설명하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본다.


그러니까 겨자씨는, 씨 중에 가장 작다고 할 만큼,

좁쌀보다 작아서 형체도 정말 미미한데,

나중에 다 커면, 10미터가 되는 높이의 나무로 자란 것을 보고,


그 작은 원래 겨자씨의 이미지와 대조해서 볼 때

깜짝 놀라서 뒤로 나자빠질 정도로 경악한다는 것이다.


마13:31,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단 두 절로 된 본문을 몇 번 읽어보았는데,

본문이 의미하는 바는 ‘아주 작은 것’이 → ‘아주 큰 것(나무)’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깜짝 놀랐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 물론 ‘점진적 성장’이 있었겠지만,

그 ‘점진적 성장’이 원래 의도하는 메시지라기보다는


차라리 ‘너무 작은 것’이 → ‘너무 큰 것’으로 변해 있으니까 깜짝 놀랐다

는 것이.. 더 원래적으로 의도하는 메시지라고 .. 저/설교자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해하기 쉽게 예를 몇 가지 들면 이렇다.

 

▲예1.

제가 유학을 떠날 때, 우리 아이가 생후 5개월이었다.

그 때 인천공항에 환송 나오신 성도님들은, 그 갓난아기를 보셨다.

그래서 ‘우리 아이’ 하면.. 항상 갓난아기 이미지를 떠올리셨다.


그런데 제가 수 년 후에 한국에 돌아와

이제 초등학생이 된 우리 아들을.. 성도님들이 보시고는 깜짝 놀란다.

‘얘가 그 때 공항에서 본 그 아이예요? 어휴 많이도 컸네!’

(이 대목에서 겨자씨같이 작은 씨앗이, 훌쩍 자라서 나무가 된 장면을 상상하셔야 된다.)


우리 아들을 보시는 성도님들 중에

‘나는 얘가 이렇게 클 줄 다 알고 있었어요. 당연한 거죠 뭐’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한 분도 없었다.


모두들 깜짝 놀라시며, 경이로워하신다.

우리 아이를 쳐다보시며, 그 동안의 아이의 점진적 성장에 대해

관심 가지시는 분은 아무도 없었다. 일단 아이가 훌쩍 커 버린 것을 보시며 놀라셨다.

(‘겨자씨 비유’의 메시지는, 점진적 성장이 아니라, 경이로운 놀람이다)

  

우리 아이 얘를 들었지만, 여러분들도 다 마찬가지 경험을 하셨을 것이다.

그 겨자씨를 통한 천국비유 메시지는.. ‘경이로움, 놀람’이다.

세상 사람들이나, 천국 백성들이나

천국=하나님 나라를 바라볼 때.. 어느 날 깜짝 놀라는 것이다.

‘아니, 벌써 저렇게 자랐나?’

‘어쩌면 저런 일이 다 생기는 것이지, 정말 경이롭네?’


여러분, 적용하자면 이런 것이다.

우리는 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다.

우리 각자에게는 하나님 나라(통치)가 늘 임하여 있다.


그런 우리 각자를, 세상 사람들이 바라볼 때, 또한 우리가 서로를 바라볼 때

깜짝 놀라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그 형제가 저렇게 성장하다니... 정말 놀라우리만큼 성숙했네?’     


바꾸어 말씀드리면,

이런 경이롭고도, 놀라운 성장(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는)이 없는 사람이나 공동체는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임하지 못했다. 조금만 임한 것이다’ 라는 말도 된다.


▲예2.

여러분이 잘 아시는 연예인 조형기 씨가, 제 중학교 동창생이다.

그가 밴쿠버에 왔다가, 성탄절에, 제가 목회하는 교회에 찾아와서 예배를 드렸다.

제가 그날 설교하는 모습을 보고나서, 이 친구가 기절할 정도로 놀라는 것이었다.

조형기 씨의 눈이 큰데, 그 큰 눈이 더 휘둥그레 커져 있었다.


왜냐하면, 그 친구의 기억 속에, 중학교 시절 제 모습은,


저는 셋째아들이어서, 항상 형님의 교복을 물려서 입었다.

그래서 당연히 교복이 제 몸에 컸다.


그래서 교복바지허리를 겹쳐서 졸라매서 입고 다녔는데,

조형기 씨가 기억하는 중학생 때 제 모습은

바지가 종종 허리춤에서 흘러내려서, ‘늘 바지를 치켜올려 입는 애’로 기억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어벙한 아이’의 이미지이었다.


그런데 제가 강단에서, 많은 회중들 앞에서 고함치듯 설교하는 모습을 보고나서는,

중학교 때 제 모습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며,

눈이 휘둥그레지고, 놀라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던 것이다.

저만 그렇지 않고, 여러분들도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학교 때 여러분의 모습과, 지금 여러분의 모습은.. 하늘과 땅 차이처럼 다르다.

저도 중학교 졸업 후에, 대학교를 졸업하고, 신학석사를 마치고,

독일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visiting scholar로서 연구하는 등

중학생 때 어벙한 아이와는, 지금 상상할 수도 없는 이미지로 변했다.

 

하나님 나라가 그와 같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든지 하나님의 나라가 제대로 임하면, 그 통치와 다스림이 임하면,

그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놀라운 사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형상을 본받은 사람으로.. 변화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새들이 깃들 정도로,

인격적/신앙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그래서 누구든지 나를 바라보고는 ‘깜짝 놀란다’는 것이다.

‘아니 그 사람이 그렇게 변했나?,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닌 걸?’

‘저 거짓말쟁이, 半사기꾼, 좀비가.. 이제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네!’

이러면서 ‘으악!’하며 깜짝 놀란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주변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이렇게 깜짝 놀라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는, 나에게/우리 공동체에, 온전히 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앞으로는 예수를 제대로/확실히 믿어야 한다는 뜻이다.


▲여러분, 동창회에 자주 다니시는가?

동창회에 나가서, 옛날 동창을 만났는데,

그가 나를 바라보면서 ‘자네는 정말 옛날 모습 그대로야, 하나도 변한 게 없어!’

만약 이렇게 말한다면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회개해야 한다.


물론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인격’을 말하는 것이다.


안 믿는 동창들이 보기에,

믿는 우리가

자기들과 똑같이 말하고, 자기들처럼 생각하고, 자기들처럼 처신하더라는 것이다.

자기들의 관심사와 다를 게 하나도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 이렇다.

‘자네는 정말 옛날 모습 그대로야, 하나도 변한 게 없어!’


그런데 10년 전에 미국에 만났던 그 형제님을

우연히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서로가 깜짝 놀란다.

왜냐하면 그 때는 겨자씨와 같이 미미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의 신앙인격이, 큰 나무로 훌쩍 성장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겨자씨 비유’로 말씀하신 목적은,

누구든지 정상적으로 예수를 믿으면,

자연적으로 그렇게 되어진다는 것이다.

말씀의 씨가 제대로 그 밭에 떨어지기만 하면..

누구나 그렇게 크게, 놀랍게, 몰라보게 변화/성장한다는 것이다.


▲예3. 요셉 과 베드로의 경이로운 변화

여러분, 요셉이 팔릴 때, 17세 때

형들보고 ‘살려주세요’ 하며 애걸복걸하는 찌질한 모습과


30세 때, 애굽의 총리가 되어, 예수님의 인격과 형상으로

형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허물을 묻지 않는 모습은,

정말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어서,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드는’

딱 그 모습이다.


여러분, 외모와 지위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인격과 성품이 그리스도처럼 변화되었다는 말이다.

즉, 누구든지, 이렇게 요셉처럼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총리'라는 지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애굽의 총리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사람만 그렇게 될 것이다.)


베드로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그를 완전 무식쟁이로 알고 있었는데,

그가 설교하는 것을 들어보고는(행4:8~12) 다들 깜짝 놀란 것이다.


거기에다가 병자를 고치는 능력까지 겸비한 것을 보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는 것이다. ↓


행4:13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본래 학문 없는 범인(보통 사람)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


여러분, 요셉과 베드로만 그렇는가?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

자기에게 <겨자씨와 같은 천국>이 임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사람들이 오랫만에 성도를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는 것이다.

달라지고 변했는데.. 너무 놀랍게 변화되어서..

그가 과거에 '겨자씨'였다고.. 전혀 상상할 수 없다.

지금 너무 큰 나무의 모습으로.. 그 인격이 변화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겨자씨 비유의 부제를 '단절과 경악'으로 정했는데, 무슨 뜻인가 하면,

①단절 ... 더 이상 이전에 내가 알던 그가 아니다. 과거와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뜻이다.

②경악 ... 어떻게 사람이 변해도, 저렇게 놀랍게 변하는지... 경악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둘은 본질적으로 하나이므로,

위에서 그냥 하나(경악)로만 설명했다.

 

여러분, 기독교 신앙은

내가 마음속에 가진 소원을, 여호와의 도움으로 성취하는 것... 이것은 참 신앙이 아니다.


참된 기독교 신앙은,

나를 통해서, 내게 임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밖으로, 세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이다.

경이롭게, 깜짝 놀라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를 통해 드러난다.


제가 여러분을 보면서, (이 비유처럼) 깜짝 놀라는 것이 한 가지 있는데,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복음을 소개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억지로 시키는 것도 아닌데..

그것 역시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는 깜짝 놀라운 변화’라고 본다.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는 사람은, 천국에서 나도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나도 그를 시인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마10:32~33

그러니까 전도하는 여러분은, 모두 천국에 안심하고 들어갈 것이다...                              ▣ 복음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