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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기독교 신앙을 갖기 위한 4가지 근거

LNCK 2010. 6. 16. 09:47

https://www.youtube.com/watch?v=EzpWUvI8YT0 

 

◈올바른 기독교 신앙을 갖기 위한 4가지 근거             딤후3:16          10.02.14.설교일부녹취

 

(중요한 내용입니다!)

 

올바른 기독교 신앙을 갖기 위한 근거는

성경, 전통, 이성, 경험이다.

이 4가지 근거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에 관해서, 또는 올바른 기독교 신앙과 신학을 정립할 수 있는데...

 

 

▲여기서 우선순위가 매우 중요하다.

그 중요도가 성경→ 전통→ 이성→경험의 순서로 나가야 한다.

‘성경’이 가장 중요한 권위를 가진 근거라는 뜻이고,

‘이성’이나 ‘경험’도 필요하지만, '성경'만큼은 중요한 권위가 아니다.

 

   ※참고로, 가톨릭은 (아마 제가 들은바로는)

   ‘전통→ 성경’ 이런 순서로 나간다.

   왜냐하면 그들의 ‘성경관’ 때문이다.  (아래에 자세히 설명)

 

▲1. 성경

개신교가 ‘성경’을, 가장 높은 권위로 인정하는 이유는,

성경이 보통 책이 아니라, '성령으로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 더 말할 필요가 없다.

 

▲2. 전통

하나님에 관해서 올바로 아는데 있어서,

바꾸어 말해서 올바른 신앙과 신학을 가지기 위해서

‘성경’ 다음으로는 ‘전통’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삼위일체론’은 전통에서 나온 것이다.

성경의 여러 구절에 보면,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심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삼위일체’라는 말은 안 나온다.

 

‘삼위일체론’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여러 번의 종교회의를 거쳐서, 수립한 신학이론이다.

약 15세기 전에 정립한 이 이론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계속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전통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요하고, 대부분 좋은 것이라는 뜻이다.

 

-주일Sunday에 예배를 드리는 것도,

초대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교회의 전통이다.

학자들은, 이것이 공식적으로 정착된 시기를 약2~4세기 무렵으로 본다.

 

-그 외에도 기독교에는 수많은 전통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구원의 교리, 성령에 관한 교리 등을,

앞서간 신학자들과 교회지도자들은

성경에 토대해서 신학을 정립하였으며,

그것은 전통으로 후대에,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이 전통적 신앙/신학들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올바르게 아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지난 2천년 동안에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전통에 없는

새로운 신앙과 신학을 깨달았다고 주장하고 나온다면,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

 

-주일날 찬송가만 부르는 것, 양복과 정장만 입던 것도, 교회의 전통이었다. (성경적 진리는 아니다)

전통은 그 시대, 그 당시에 꼭 필요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뀜에 따라, 전통도 조금씩 따라서 바뀌고 있다. 바뀌어야 한다.

 

▲전통을 존중해야 하지만, 성경의 권위보다 높지는 않다.

종교개혁자들이 주장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교회가 옳다고 주장하는 내용들 중에,

일부는 성경적으로 맞지 않는 내용들이 더러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의 전통을 잇고 있는 개신교에서는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전통은 그 다음의 권위로 인정한다.

 

전통을 믿고 따르지만,

그것이 성경에 위배될 때는.. 언제나 전통을 버리고, 성경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개신교회의 전통은 ‘은사중지설’(성령은사가 정경 완성 이후 소멸됨)을 지지해 왔으나,

   오늘날에는 그 전통을 거의 따르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위에 너무 많은 성령의 은사를, 우리가 실제로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은사중지설’이란 전통적 신학이, 거의 소멸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3. 이성 또는 합리적 사고

이성reason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여러분, 기독교는 세상의 그 어느 종교보다 가장 합리적이다.

기독교가 성령의 은사에 의한 신비를 인정하지만,

그 이외에 어떤 신비주의, 기적, 비합리적 신앙과 신학을 배격한다.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성 또는 합리적 사고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수행해 나간다.

 

종종 이단의 특징은,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 대신에 이단은 교주의 독단에서 나온, 성경이나 전통에 위배된, 어떤 별난 신앙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성 또는 합리적 사고가

성경이나 전통의 권위보다 더 우위에 있지는 않다.

 

우리는 이성 또는 합리적 사고에 의해서 신앙생활을 하지만,

성경이 ‘물로 포도주를 만들었다’고 하면.. 내 이성보다는, 성경을 믿는다.

 

 

▲4. 경험 또는 체험

신앙에서 ‘경험’도 중요하다.

우리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실제이기 때문에,

아무리 이론(신학, 이성)이 좋아도, 내게 경험되지 않으면,

그것이 내게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제가 어떤 책에 보니까,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이렇게 말했다고 그 책에 나와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에 나타난 성령의 역사에 관해서는

   너무나도 말을 많이 하면서도 (그것이 진짜 라는 것)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난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는

   조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데, (그 신빙성이 의심스럽다는 뜻)

   참 이상한 현상이다.”

 

이 스펄전 목사님의 언급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나타난 성령의 은사의 신빙성은, 자기 스스로 믿기 쉽지만,

타인에게 나타난 성령의 은사의 신빙성은..

자기가 자기의 것을 믿는 만큼은, 타인의 것을 못 믿기 때문이다.

 

   ‘경험’도.. 올바른 신앙을 갖는데 있어서 중요한 근거가 되고, 또 꼭 필요하지만,

   이것은 개인적으로 너무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이것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이성이나 합리적 사고’보다는 뒤쳐지는 근거로 본다. 앞세우지 않는다.

 

내게 나타난 경험은, 대개의 경우 내게만 나타나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절대 강요할 수 없고, 일반적으로 모두에게 나타나는 현상도 아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종종 이 ‘경험/체험적 신앙’이 문제가 될 때가 많다.

경험이나 체험적 신앙은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지만,

이것을 너무 앞세우면 안 된다. 남에게 강요해서도 안 된다.

다만 자기의 혼자만의 ‘비밀’로 알고,

신앙생활은 이성이나 합리적 사고 위주로 하는 것이 더 낫다.

 

경험이나 체험이 많은 사람이 종종 사이비로 빠지는 것은,

자기의 체험과 경험을, 너무 우상화시키기 때문이다.

예언, 신유, 예지, 기적.. 이런 체험이 개인적으로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자신의 신앙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자꾸 간증/자랑하다보면, 더 나아가 남에게 보여주려고 하다 보면, 

즉 그것 위주로 신앙생활 해 나가다보면, 결국에는 사이비로 빠진다.

 

특별히 체험이 많은 사람은, 자기를 우월한 신자로 보는 교만에 쉽게 빠진다.

그래서 그 체험으로 인한 교만때문에, 평균보다 못한 신자가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신앙생활은 언제나 성경→ 전통→ 이성 →경험 순서로 하는 것이 옳다.

   (이것도 하나의 전통인가?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이 순서에 동의한다.)

 

 

▲종종 문제는, 성경과 전통 간의 갈등이다.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전통tradition을

하나님의 뜻(성경)보다 더 높이는 데 있었다.

예수님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보다, 전통을 더 중요시했다.

 

전통도, 이성도, 경험도 다 중요하지만,

이것들이 다 성경(하나님)의 권위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이것들이 성경의 권위보다 더 강조될 때이다.

 

오늘날 종종 발생하는 문제는,

아무리 올바른 신학과 신앙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고,

바울-어거스틴-칼빈을 잇는 전통신학적 교회라고 자부하지만,

이 전통이

어쩌면 성경이나 성경적인 성령의 역사에

기득권을 주장함으로써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정성욱 교수(덴버 신학교)는

칼빈을 연구한 전문가인데, 그가 기독교신문에 인터뷰한 기사에 보면,

“오늘날 신학자의 주장이

성경보다 우위에 있으면,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

신학을 한낱 인간의 학문으로 만들어 변질시켜 버린다.”

 

모든 신학, 전통의 최고권위, 최종권위는 오직 ‘성경’이라는 것이다.

모든 신학과 전통은.. 성경에 의해 검증 받아야 하며,

만약 틀린 것이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신학자의 주장이 아무리 중요하지만,

성경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그것이 칼빈의 신학이라 하더라도.. 성경보다는 중요하지는 않다.

 

칼빈주의자도, 칼빈주의를 따르기보다는, 성경을 더 따라야 하며,

아무리 칼빈 같은 대신학자의 이론이라 하더라도,

항상 성경으로 계속 검증받아야 한다.

 

마리아 숭배를 예로 들자면,

개신교에서는 ‘마리아 숭배’를 하지 않는다.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를 하나님처럼 숭배한 곳이 없다.

그런데 가톨릭에서 ‘마리아 숭배’를 하는 것은,

그들의 전통 때문이다.

그들은 전통의 권위를 성경의 권위보다 앞세운다.

 

 

▶가톨릭이 전통을, 성경의 권위보다 앞세우는 이유

(이 단락, 가톨릭 글에서 인용)

 

“어떤 이들은 교회보다, 성경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가 성경을 따르고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교회가 성경보다 더 먼저 있었고, 성경을 정한 것도 교회입니다.

또 성경을 다 태워 없애도 교회는 존재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힘도 베드로 위에 세워진 교회는 누르지 못하리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구원을 위해 남기셨던 것은

사도들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이지, 성경책을 쓰셨던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한참 뒤에 쓰인 것이고

그 많이 떠도는 글들 가운데, 몇 개만 정경으로 정한 것도 교회입니다.

 

개신교는 성경은 믿는다고 하면서

성경을 정한 교회는 믿지 않으니.. 스스로의 모순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이에 반해, 개신교는 성경의 유기적 영감설을 주장하며, 특별히 영감 받은 책으로 믿습니다. 딤후3;16

 교회나 교회지도자도 인간인지라 오류가 있다고 보며, 오직 성경만 오류가 없는 진리의 책으로 믿습니다.)

 

▲개신교 보수주의 전통도, 성경의 권위보다 우위에 있으면 안 된다.

신앙과 신학에 있어서 보수주의 가치는

매우 중요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이 ‘성경’보다 우위에 놓일 수 있으므로,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일례로, 교단법(전통)이 성경보다 더 우위에 놓일 수도 간혹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교회의 당회나 제직회 때 결의되는 과정을 보면,

하나님의 뜻이나 성경의 권위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일반 대기업이나 로터리 클럽에서 결정하는 식과 똑같이,

다수결에 의해서 결정하거나,

아니면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의 뜻에 따라서,, 교회에서도 결정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 사람이 결국 돈을 많이 낼 것이니까,

그 사람의 뜻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편할지는 몰라도,

이것은 오늘날, 전통이 성경의 권위보다 더 우위에 두어지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말은, 그리고 교리적으로는,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만,

깜빡 잘못하면, 실제 현실에 있어서는,

전통이 성경보다 더 우위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인본주의가, 성경적 가치보다 더 영향력을 발휘하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