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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이유

LNCK 2010. 6. 28. 20:42

 

 

◈사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이유         삼상13:1~15         10.05.16.설교일부녹취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음이요,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게 된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아니다.

당연한 얘기처럼 들리지만,

오늘날 교회 현실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장 많이 방해하는 요인이

바로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 되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려면,

반드시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을 믿음으로 물리쳐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에게 욕먹고, 미움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단단히!

 

▲1. 사람을 두려워한 대표적 인물이 사울 왕이다.

성경은,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은 결정적 원인을

<사람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것>으로 들고 있는데.. 살펴보면..

 

삼상13장에 보면,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로 쳐들어왔다.

그런데 빨리 와서 제사를 집전해야 할 사무엘은,

결국 1주일이나 늦게 전장에 도착한다.

 

사울 왕 입장에서 보면, 순간 순간이 피가 마를 입장이었다.

왜냐하면 적군 블레셋은, 그 군대의 숫자가 바다의 모레처럼 많은데 비해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삼상13:5

 

이스라엘은 아직 건국 초기인지라, 정규군이 잘 조직되어 있지 않은 터였다.

성경에 나오는 당시 이스라엘의 정규군은 수비대 3천명뿐이었고, 나머지는 비정규군이었다.

그들은 평소에는 농사를 짓다가, 전쟁이 소집되면, 농기구를 들고서 모였다.

 

그런 이스라엘 군대는, 당연히 오합지졸처럼 바위 틈, 동굴 속에 다들 숨어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삼상13:6

 

지금 사울 왕의 입장에서 보면,

전쟁에 앞서 빨리 제사를 드리고, 전열을 갖추어야 하는데,

사무엘 선지자가 약속한 날짜보다 1주일이 지나도 아직 안 도착하니까 13:8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갔을 것이다. 1주일이나 버티며 기다린 것도 대단했다.

 

그 시점에 이르러 “백성들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더라”고 했다. 삼상13:8

지금 이스라엘 진영은 자체적으로 와해 일보직전 이었다.

 

이 때, 사울 왕이.. 기다림에 지쳐서.. 자기가 직접 서둘러 제사를 드려버린다.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삼상13:9

우리 인간적 시각으로는, 이런 사울 왕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상황이 상황이니까!

 

   그러나 제사를 드린 직후에 도착한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 왕을 엄청 나무란다.

   그 요지는 <왕이 백성들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삼상13:11절에 나타난 사울의 말을 보면,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사울이 두려워한 것은,

백성들이 자기에게서 흩어지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사람(백성)들을 두려워한 것이다.

 

   이에 대해 사무엘 선지자의 예언은 가혹할 정도이다.

   하나님이 사울 왕을 폐하시고, 마음에 드는 새 왕을 세우실 것이라고 말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령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하고.. 삼상13:13~14

 

사울 왕의 문제는,

(하나님의 판결이 가혹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속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은 무척, 극도로 싫어하신다는 것이다.

   오늘도 (사울처럼) 하나님께 기름부음 받은 종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한다면

   사울 왕처럼.. 폐하여질 것이다. 하나님이 극도로 싫어하시고, 미워하신다.

 

▲2.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은 다윗

다윗은 자기가 왕이 되고자 스스로 노력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사무엘이 찾아와서 자기에게 기름 붓고, 예언하고.. 가 버렸다.

그 이후로 다윗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세월을 지내게 되는데..

 

하루는 다윗이 블레셋 지방에 가서, 자기 몸을 피하고 있다가,

그 블레셋 왕 아기스가 출정할 때에, 어쩔 수 없이 따라 전장에 나갔다가,

여차여차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 보니,

자기들이 거주하던 시글락 성읍이.. 아말렉 족속의 습격을 받아서

모두 파괴되고, 여인들/아이들/짐승들은 다 끌려간 상태였다. 삼상30장

 

이때 다윗을 따르던 6백 명의 군대는 돌을 들어서

지도자 다윗을 치려고 했다.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삼상30:6

 

그때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로 묻는다.

‘하나님, 적들을 따라 잡으러 갈까요, 말까요?’ 30:8

 

이 말은, 하나님이 가지 말라고 하시면, 안 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자기가 백성들의 돌에 맞아 죽든지/말든지

자기는 백성들의 뜻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따르겠다는 자세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자기가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지금 기도하는 자기 주위에, 용사들이 돌을 들고 배회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랑곳없이,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있다.

   백성들의 중지를 따르기 이전에..

  

   이 삼상30장 다윗의 장면을, 삼상13장의 사울의 장면과 비교해 볼 때,

   둘 다 매우 <다급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다윗은,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런 점을 두고서, 하나님은, 다윗을 마음에 두고 사랑하셨다.

 

▲3.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평가를 무시한 바리새인들

요5:44절에 보면,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이 말은, 바리새인들이 서로에게서 칭찬을 구하고,

상대방의 인간적인 칭찬과 평가를 중요시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이 말은,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평가를 정말 소중히 여기지 않았을까?

아니다. 자기들 스스로는

자기들이 당연히 ‘하나님의 평가’를 소중히 여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즉 자기들은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들이 의식과, 절기 등을 외적으로 철저히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철저히 경외하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요5:44절(↑)에 나타난 예수님의 말씀은,

‘너희들이 사람을 두려워해서, 사람의 평가는 겁을 내면서도,

진짜 내면적이고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평가는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라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그들은 스스로 속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의 나에 대한 평가’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책잡히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그러는 가운데, 나의 내적, 본질적 신앙은,

외모만 엄청 신경 쓰는 가운데, 내면적으로 신경 쓸 겨를이 없어진다.

외모에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까.. 자연히 그렇게 된다.

(바깥에서 잘 하는 남편/아내가.. 집에 오면 반대로 불친절하듯이)

 

그러면서 하나님을 점점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그러면 나도 사울 왕처럼,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는 것이다.

 

▲4.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았던 사도 바울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1:10

 

여러분, 우리는 지금 누구의 평가를 두려워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평가인가, 사람의 평가인가?

내가 두려워하는 쪽으로, 내가 종이 된다.

내가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한다면.. 나는 사람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사람의 평가에 대해서는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에게 ‘기름 부으심’이 떠나간다. 하나님이 대노하신다. 사울 왕처럼.

 

 

▲적용 : 사실 이 점이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 가운데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사람을 두려워함’이 너무너무 팽배해져 가고 있다.

심지어 예배시간에 전파되는 메시지만 놓고 볼 때도,

듣는 사람에게 신경 쓰느라, 제대로 용기를 못 내고 있다.

 

물론 사람들 눈치 안보고 한다고, 막말을 해도 된다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꼭 해야 할 말씀(진리)이라도, 사람의 눈치를 보니까,

조심하게 되고, 피하게 되고, 우회하게 된다.

 

이렇게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사람을 두려워하는 점들에 대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다’고 하시며.. 크게 노여워하신다는 것이다.

 

   제가 한 번은, 지방에 집회를 가서,

   많은 목회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했다.

 

   예배를 마치고, 제가 이런 말을 들었다.

  ‘강사 목사님이 설교하신 내용이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그렇게 설교해서, 누가 교회에 오겠는가?’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조심해야 하는 점이,

   ‘사람들을 교회에 나오게 하기 위해서, 말씀을 정직하게 전하지 않는 점’이다. 

 

   문제는, 그렇게 계속 ‘타협’하다가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이 떠나가고, 사울 왕처럼 결국은 버림 받는다는데 있다.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마치는 말

일부이긴 하지만,

오늘날 성경을 제대로 올바르게 전하려고 하다 보면,

어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바보 취급하거나, 환자 취급을 하기도 한다.

 

2007년도에, 평양대부흥 1백주년을 맞이하면서

여러 가지 행사도 많이 가지고, 연합 집회도 많이 열렸다.

그런데 표면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뭔가 일어났다’고 평가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뭐가 잘못되었는지.. 차츰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게 평양대부흥 1백주년을 지내면서, 우리가 얻은 수확이라면 수확이라고 본다.

 

그 전에는, 우리가 뭐가 잘못되어 있었는지,

사실은 그 원인조차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다들 잘 하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같이 모여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가운데,

당장 고쳐진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우리가 뭐가 잘못 되었는지..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그런 올바른 진단과 평가가.. 2007년을 지나면서..

서서히 여기저기서 올바른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진단과 평가 중 한 가지가, 바로 오늘 설교 내용이다.

   ‘우리 대부분이 사람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울 왕처럼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이 떠나가고 있더라’는 점이다.

 

여러분,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해서, 돈키호테가 되라는 뜻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어떤 순간을 맞이했을 때,

자기가 십자가를 지고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살려고 하다 보니까,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고, 대중과 시류에 영합해 버린다.

사울 왕이 그랬던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 크리스천 리빙 

그 결과는.. 오늘날 우리가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설교 전반부만 녹취, 일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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