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외함’이란? 시33;8 10.05.16.설교중반부 녹취
◑1.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되어
하나님 앞에서 감탄하고 감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에 압도되어 감탄할 때
시33:8,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두려움’이나 ‘경외’가 내용적으로 똑같은 말이 반복해서 병행적으로 쓰였다.
여기서 ‘경외’는 KJV영어성경에서 stand in awe of him으로 번역하고 있다.
‘경외함으로 감탄하여 그 앞에 서 있다’는 뜻이다.
awe가 두려워한다는 뜻이지만, 거기에 감탄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즉 ‘경외한다’는 말에는 ‘감탄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금강산 등 아름다운 대자연에 압도당할 때, 저절로 아~ 하고 감탄한다.
그랜드캐니언에 가면, 모두 그 웅장함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와~ 감탄한다.
이렇게 아름다움을 보면, 사람은 저절로 아~, 와~하며 감탄하게 되어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름다우심’(크심, 광대하심, 거룩하심을 모두 합한 포괄적인 말)을
우리가 대할 때.. 두려워함을 기본 전제로 하지만, 그 두려움과 더불어
그 앞에서 저절로 감탄하여 얼어붙는 것.. 이것이 ‘경외함’이다.
그 분의 사랑, 그 분의 성품, 그분의 거룩하심, 그 분의 위대하심 등
그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는 말로서, 포괄적 의미로 ‘영광’이란 말을 쓴다.
그 ‘영광’을 보고서, 그 앞에서 감탄하고, 감격하여 서 있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한 가지 뜻이다.
▲모세가 체험한 하나님의 영광
출33장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나아간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원합니다.’ 하며 구한다. 출33:18
그 응답으로써, 하나님은 모세에게, 영광 중에 임하신다.
임하시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반포하신다.
즉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과 성품을 모세에게 계시해 주셨다.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출34:5~7
그랬더니 모세가 그 위엄과 거룩함에 압도되어(경외함으로).. 그 앞에 납작 엎드린다.
모세가 급히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34:8
모세는 그저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않았다.
모세는 직접 하나님을 만나고, 그 임재속에서, 그 아름다우심에 압도당하여
하나님을 경외했다.
(이 설교 주제는, 우리도 마찬가지로, 지식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알자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로 나아갑시다.
저는 줄기차게 계속해서, 여러분께 오직 한 가지만 계속 설교하고 있다.
하나님과 동행, 하나님과 교제, 하나님을 경외함, 하나님 임재의 회복..
여러분들은 귀 따갑게 반복적으로 계속해서 이 시리즈 설교를 들어오셨다.
이렇게 많은 메시지를 들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정말 평소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과 교제/동행/경외/임재를 체험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면,
즉, 이 설교를 그냥 한 번 듣는 것으로 끝내시면,
여러분이 손해를 보실까봐 염려스럽다.
그래도 다른 교회 나가서, 설교를 들어보면,
무슨 ‘새로운 정보’라도 얻을 수 있는데,
저는 그런 ‘새로운 정보’를 드리는 것도 아니니..
이런 주제의 설교를 몇 달~몇 년째 계속 들으면서도
전혀 자기 삶에 변화가 없다면, (물론 변화는 천천히,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자기에게 손해라는 것이다. 차라리 정보를 많이 습득하는 설교가 낫다는 것이다.
다른 뜻이 아니라, 다른 설교를 비난함이 아니라
여러분이 이 설교를 듣고 나서, 삶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한 번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인 삶을 살아보자.
내가 한 번 하나님을 제대로 믿어보자. 임재/동행/교제/경외의 삶을 살아보자.
오 성령이여, 저를 도우소서!’하고 부딪혀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평소 6일간의 신앙적 삶이 전혀 결여되어 있고,
그저 주일날 성경책 들고, 좋은 옷 입고, 예배에 참석한다고
그게 진정한 신앙인이 아닌 것이다.
그저 잘 믿는 척하고 흉내만 내고 있을 뿐이다.
▲설교자의 체험
과거에 제가 직장 다니며 야간 신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휴가 때, 특별한 기도제목이 있은 것은 아니나, 기도원에 올라갔다.
그래서 뒤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데,
강사는, 자기가 기도해서 병을 낫게 한 사실을 쭉 열거했다.
그때 제 마음에 드는 생각은
‘하나님이 저 분은 크게 사랑하시나보다.. 그런데 어째서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지?’
저 분께는 큰 능력이 나타나는데, 내게는 아무 능력이 나타나지 않아서.. 의기소침했다.
그래서 별로 기도할 의욕도 없었지만, ‘기도굴’(기도용 작은 독방)에 가서 앉아있었다.
하나님이 나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섭섭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뱃속에서부터 용암이 올라오는 것처럼, 뜨거운 기도가 올라왔다.
그전에도 제가 방언을 했지만, 그 날은 뜨거운 방언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적인 음성이 또렷하게 들렸는데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 내가 너를 위해 십자가에 죽었느니라.’ 그러셨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본체시고,
그분이 이 땅에 오셔서 날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 과거에도 지식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제가 19살 때부터 ‘집사’직분을 받아서 섬겼으니.. 그 사실을 이론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체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천지를 창조하신 그 크신 하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낮고 낮은 날 위해, 그 무서운 십자가를 지셨다니...
그토록 나를 사랑하신다니...’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데,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마음이 되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매우 가난해서, 제일 싸다는 라면을 먹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래서 끼니를 거를 때도 있었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 감격했을 때,
세상 재벌이 부럽지 않았다. 고관대작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다.
그 주님의 사랑만 생각하면.. 내가 사는 환경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이 체험한 ‘경외심’
저는 지금 마틴 로이드존스의「부흥」이란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에는,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의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1737년 내 건강을 위해서, 숲속으로 말을 타고 달려가다가
말에서 내려, 내가 늘 하던 대로,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기도하며 걸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정말 특이하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보았다.
그리고 그의 놀랍고, 위대하고, 충만하고, 순결하고, 달콤한.. 은혜와 사랑,
온유하고, 겸손한 낮아지심의.. 영광을 보게 되었다.
그처럼 고요하고 달콤하게 나타났던 이 은혜는
하늘보다 크게 보이고...
에드워즈 목사님이, 그날, 예수님이 그런 분인 줄 처음 알았던 것은 아니었다.
이전에는 지식적으로 귀로 들어서 알고 있던 그 분을,
그 날 숲 속에서, 모세처럼, 욥처럼, 이제는 자기 눈으로 그 영광을 직접 뵌 것이다.
그 주님의 ‘영광’을 보면서.. 에드워즈 목사님은 경외함에 이른 것이다.
계속해서 그의 고백을 들어보면..
이 은혜는 하늘보다 크게 보였다.
그리스도의 인격이, 말로 할 수 없이 탁월하여서,
모든 생각과 관념을 다 삼킬 수 있을 정도로 탁월한 은혜가, 내게 흘러넘쳤다.
내가 판단하기로는 거의 한 시간가량 그런 일이 계속되었다.
그래서 그 시간 내내.. 나는 눈물의 홍수에 빠져 있었고, 흐느껴 울었다.
내 영혼이 텅 비어, 기절하여, 먼지 속에 누워
그리스도로만 충만해지고,
거룩하고 순전한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싶은 격렬한 느낌을 가졌다.
나는 그것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그를 섬기고, 따르고, 그저 완전하고, 거룩하게 되고,
신적이고divine, 천상적인 순결함으로 깨끗하게 되고 싶은
영혼의 강렬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다른 때도 여러 번, 그러한 성질의 것을 체험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똑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것이 에드워즈 목사님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서 체험한 ‘경외함’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의 목표와 방향을, 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을 더 알기, 하나님과 동행, 교제, 임재를 체험하기 등이다.
(가내안전, 사업번창, 축복, 성공이 목표가 아니다.)
물론 체험은 각자에게 제 각각 다르게 나타나므로,
에드워즈 목사님이 체험한 것과 똑같이.. 내가 체험할 목표를 세울 필요는 없다.
다만, 에드워즈 목사님이나, 모세나, 우리나 동일하게
‘하나님의 그 영광을 경외함’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실 때(나타내실 때)
그 ‘영광’에 감격하여
감탄하여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 이것이 바로 ‘경외함’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하나님을 나타내신다.
(물론 은혜로, 갑자기, 소원하지도 않는데,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실 때도 있지만)
그 보다는, 대개의 경우,
하나님은, 자신을 간절히 찾고 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신다.
즉, 우리가 경외함에 들어가려면,
늘 목마른 사슴처럼 하나님을 찾고, 갈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시편이나 다른 성경에 보면,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갈망했다.
스펄전 목사님도, 하나님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강렬하게 사모하는 심정으로 그리스도를 사모하지 않는 사람치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될 사람은 없다.
만일 여러분이, 주님을 만나고자 하고, 그분의 영광을 보기 원하고,
그분의 성품을 알기 원한다면.. 그런 강렬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열망에.. 반드시 자신을 나타내 보여 주실 것이다.”
▲갈망함은 누구나 가질 수 있으며, 또한 가져야 한다.
에드워즈 목사님은, 위에서, 그런 하나님의 경외함의 체험을
여러 번 했다고 설명했지만, 그래도 매일같이 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에드워즈 목사님처럼은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 보면, 가끔 하나님의 강렬한 임재/경외함 속에 들어간 분들도 있다.
그 분들의 간증을 들어봐도, 그것은 일상적인 체험은 아니다.
일생에 단 몇 번, 십년에 한 번.., 그 정도이다.
(그러나 이 한 번/몇 번의 체험이, 사람을 새로운 차원으로 바꾸어놓는다.)
어쨌든, 강력한 하나님의 경외함/임재의 체험은, 일상적이지는 않다.
우리들이 이런 것을 목표로 하되, (하나님을 갈망하자는 뜻. 신비주의는 아님)
그러나 ‘질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여러분 어깨에 올리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평소에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 할 때,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은, 그 강력한 임재를.. 나타내 보여주실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핑계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평소에 갈망하는 마음/갈급함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과는 하나님께 달려 있지만, 내 자세는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갈망하며 목마르게 간절히 주님을 찾는다면,
그것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이 그 갈망의 마음을 주셨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리는 하나님의 경외함의 체험에 이르게 될 것이다.
갈망함, 사모함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가 이미 내게 부어지기 시작했다는 싸인이 된다.
정리하면, 경외함에 이르는 것, 임재 속에 이르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몫이요,
다만 우리 몫이 있는데, 늘 갈망하며, 갈급함 가운데 신앙생활 하는 것이다.
그것 자체가 벌써 은혜받음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내가 에드워즈의 체험에는 못 이르더라도, 갈망만큼은 그와 똑같이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 중에 일부 사람들이,
자기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거의 떠나간 상태에 있으면서도,
교회는 꼬박꼬박 다니면서
하나님의 임재와 경외함을 갈망하는 마음이 거의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처럼, 신앙생활 잘(?) 하면서도, 예수님의 질타를 받는다는 것이다.
경외함이 자기에게 안 나타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몫이고)
그런 것을 사모하는 마음 자체가 없는 것이,
그런 점에 관한 관심 자체가 아예 없는 것이.. 오늘날 신앙적 본질을 잃어버린 우리의 문제다.
◑2.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하나님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것들을.. 나도 버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들을.. 내가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적 두려움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즉, 뭘 안 하면 하나님께 벌 받을까봐 두려워서.. 조심조심 사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하나님과 나와 인격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서로가 싫어하는 것을 피하고,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게 된다.
그렇게 형성된 인격적 관계를 살펴보면,
하나님이 뭘 행하시고, 결정하시기 전에,
아브라함과 상의하시고,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
모세와 의논하시고,
다윗의 의견을 들으시고,
엘리사에게 하나님의 깊은 속내를 다 보여주신다.
여러분, 부부도 서로 사랑하는 친밀한 인격적 관계가 형성되면,
남편은.. 아내 심기를 건드리려 하지 않고,
아내도.. 남편이 좋아하는 반찬을 하게 되어 있다. 서로 따로 행하지 않는다.
◑3. 경외함의 유익, 축복
1. 무엇보다 하나님의 생명이 넘친다.
요즘 '생명'을 찾기 어려운 것이.. 우리가 가장 현실적으로 풀어야 할 당면 과제이다.
교회도 많고, 설교도 넘쳐나지만.. 어쩐지 다들 시들시들하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과 공동체에는.. 싱싱한 생명력이 있다.
2. 죄를 이긴다
하나님을 두려워/경외하는 사람만이 죄를 이긴다. 후략.
여주봉 목사
'분류 없음 > 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언약 안에 살고 계십니까? 2529 (0) | 2010.07.01 |
---|---|
평화 (0) | 2010.06.30 |
사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는 이유 (0) | 2010.06.28 |
새 계명인 사랑 (0) | 2010.06.27 |
그냥 야곱으로 남아있게나! 2520 (0) | 2010.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