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언약 아래서 살고 있습니까? 렘44:1~30 출처
본문 렘44장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끝내 애굽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하늘의 여왕을 섬기는 유대인들에게 주는 경고와 심판의 메시지입니다.
너무나 무서운 장면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요, 하나님이 사랑하는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을 때,
하나님은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심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망하게 하는 심판이 아니라, 다시 살리기 위한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환난을 보내어
온 유다를 끊어버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보내어
저주와 놀림과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되게 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오늘날도 동일하게 심판하십니까?
우리도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고 우상숭배를 하게 되면
똑같이 칼과 기근과 전염병을 보내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입니까?
여기서 우리가 헷갈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을 볼 때마다 항상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구약을 볼 때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안경을 쓰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경을 쓰지 않고 그냥 보면..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진노하시는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두려워 떨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나 별반 다를 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죄를 범하면
가차 없이 심판받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여.. 내심 두려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잘못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약을 볼 때는 항상 ‘예수 그리스도라는 안경’을 쓰고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안경’을 쓰고 보면 옛 언약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새 언약이 보입니다. 옛 언약은 사람을 심판합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사람을 살립니다.
저와 여러분은 옛 언약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새 언약 아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신약성도인 당신은 새언약 아래서 살고 있습니까?
새 언약이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주인으로 영접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새 마음을 주시고 새 영, 다시 말해 성령을 보내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순종할 수 있도록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새 언약입니다.(렘31:31-34, 겔36:26-27)
그러니까 새 언약 아래 있는 저와 여러분은
결코 옛 언약 아래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종말을 맞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그것을 허락하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끝내는 순종의 자리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렘44장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계속 불순종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확신 가운데 다음과 같이 외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과 같은 심판의 메시지를 읽으면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 받은 우리는 결코 궁극적인, 갈 데까지 가는 불순종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오늘 이 시간 예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분명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삶의 주인으로 영접하였습니까?
여러분은 매일 매일, 아니 매 순간마다 예수님을 의지하고 살아갑니까?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주장하고 계심을 느낍니까?
매 순간마다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습니까?
이것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확실하게 아멘 할 수 있는 분들은 새 언약 아래 있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들로서
결코 심판의 자리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새 언약(성령의 인도)을 받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유대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그 당시 앗수르와 바벨론과 가나안 사람들이 섬겼던 하늘의 여왕을 따라가서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런 어리석음을 범했습니까?
마치 죽을지도 모르는 채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말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령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 사람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의 지혜가 없기 때문에 쉽게 보이는 것에 미혹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것을 고집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또 애굽 땅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고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을 처단하리니”
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은 왜 애굽 땅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했습니까?
왜 예레미야로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메시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영안이 열리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는 현상만 보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또 17-18절을 보십시오. 유대인들이 얼마나 그 생각이 어리석인지 보십시오.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여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의 여황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여러분 성령 받지 않으면, 영안이 열리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별해내지 못합니다.
다만 눈에 보이는 풍요로움만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 물질만능주의시대에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풍요와 안락을 쫓아 세상적인 가치관을 쫓아갑니다.
그것이 진리인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인 줄 알고 쫓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 가운데 교회 다니지만
진정으로 예수님을 마음 속에 영접하지 않고, 성령 받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예수를 영접했는데,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재점검이 필요합니다.
아예 진실로 영접하지 않았든지,
아니면 영접했어도 죄로 인해 영적 생명이 마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역시 영안이 열리지 않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처럼 풍요의 여신인 하늘의 여왕을 숭배하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인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인가를 점검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고후13:5
※물론 새언약 아래 사는 신약성도들도,
작은 잘못을 범해서, 작은 채찍을 맞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대한 잘못을, 그것도 계속적으로 범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 속에 성령께서 계속 역사하시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 복음
◑2. 바룩에게 주신 메시지 렘45:1~5 출처
▶바룩은 예레미야 예언자의 비서요 친구이며, 동시에 유다 왕궁의 서기관이었습니다.
‘바룩’은 히브리말로 “축복받은 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오늘 본문에 보면, 슬픔과 탄식 가운데 힘들어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마도 그것은 예레미야의 모든 예언을 비서로 대필 기록하는 중에
마음이 많이 상심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예레미야의 모든 예언 내용이
유다 민족에게 재앙이 임할 것을 거듭거듭 말하기 때문입니다.
▶본문5절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바룩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개역개정)
“네가 너를 위하여 대사를 경영하느냐? 그것을 경영하지 말라”(개역)
“네가 이제 큰일을 도모한다마는, 그만두어라”(공동번역)
바룩이 어떤 큰 일을 도모했는지는 성경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예레미야서 전체를 통해 유추해 볼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유대 민족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는데, (그냥 성경이야기, 확대 해석 X)
바룩은 아직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대 민족을 구원하시고 새롭게 회복시켜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큰 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를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예언은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으니,
그의 마음이 계속 상한 것입니다.
▶그런 바룩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대사를 경영하고, 큰 일을 도모하여도
결국은 하나님의 뜻대로 역사는 흘러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룩에게 그것을 인정하라고 말씀합니다. 4절을 보십시오.
“너(예레미야)는 그(바룩)에게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보라 나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이 그리하겠거늘.. 너는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러한 점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응하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은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시기도 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우시도 하시고.. 헐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부유케도 하시고.. 가난케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나는 성공하고 싶은데, 내 속에는 큰 꿈을 가지고 있는데,
오히려 나를 낮추시고/ 나를 비천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을
내가 인정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나는 누구보다 더 주의 일을 잘하고 싶은데, 앞장서서 멋지게 하고 싶은데,
오히려 다른 사람을 더 높이시고, 다른 사람에게 더 많은 능력과 권세를 주실 때,
내가 그것을 인정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주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계속 침묵하시고 계속 기다리라고 하실 때..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겸손히 순응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룩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바로 그러한 삶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묵묵히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있는 쥐꼬리만한 능력으로.. 자신의 운명을 바꾸려고 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편이 더 속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답답하지 않고 사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뭔가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들어서 쓰신 적이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으로 만드신 후에.. 사용하십니다.
▶여러분 요셉이 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는지 아십니까?
그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노예로 팔려갔을 때도 그는 있는 자리에서 성실했고,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곳에서 성실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애굽 총리가 되어 형제들을 만났을 때도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님들은 안심하십시오.”
우리 모두가 요셉 정도의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철저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매사에 성실하시기를 바랍니다. 불평, 원망하지 맙시다.
그리고 나의 삶의 모든 순간 속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으며
항상 기뻐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고,
일단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그 누가 반대해도 움직이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좁은 길입니다. 주님을 철저하게 신뢰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가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 한가지로 만족하시기를 바랍니다.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5절b)
‘노략물’이란 적을 정복하고 얻게 되는 물건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아주 위태하여 아슬아슬한 가운데서라도
우리의 영혼의 생명을 구원하여 주신다는 뜻입니다.
마치 영적전쟁의 한 복판에 있을지라도,
바룩은 노략물(자기 생명)을 얻지,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적전쟁에서 승리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험한 일을 당할지라도,
아무리 고난 가운데 처할지라도 주님은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시며
마침내는 구원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공동번역은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번역했습니다.)
네가 이제 큰일을 도모한다마는, 그만두어라. 내가 곧 모든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겠지만,
너만은 어디 가든지 목숨을 건지도록 보살펴 주리라. 이는 내 말이라, 어김이 없다." 렘45:5
▶여러분, 이 한 가지 약속으로 족하지 않습니까?
이 한 가지만 확실하다면.. 나머지 모든 것은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저는 다윗의 시편 131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다 다윗의 고백을 동일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더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 크리스천 리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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