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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의 300명 용사처럼 2542

LNCK 2010. 7. 9. 00:02

◈기드온의 300명 용사처럼            삿7:1~8             -인터넷설교 스크랩, 출처-


 

▶‘숫자의 신’이 지배하는 시대가 온다고 말하지만...

고대 수리 철학자로 불리워지던 피타고라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앞으로 오는 시대의 지배적인 신은 <숫자의 신>이 될 것이다.” 


‘더 많은 숫자의 군대, 더 많은 숫자의 무기, 더 많은 숫자의 황금을 준비한 나라가

세계의 패자가 될 것이다’ 라고 예언 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 현실에서 볼 때, 이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또 보편적인 예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식적인 관점에서 오늘의 성경본문을 들여다본다면

본문 속에 나타난 성경의 하나님은

지극히 비상식적인 신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숫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사사 기드온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이런 위기의 상황 속에서 기드온은 일종의 의병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래서 군사를 모집했는데 3만2천 명이 자원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 2만 2천명을 돌려보냈습니다. 1만 명이 남았습니다.

어떤 테스트 과정을 거쳐서 최후 까지 남게 된 사람이 바로 3백명입니다.


  저희교회의 제직(장로, 권사, 집사 등 직분자)은

  타교회(1/4)에 비하면 비율적으로 매우 적습니다.(성도의 1/7정도)

  그러나 저는 중요한 이슈는 ‘재직의 숫자가 많으냐? 적으냐?’

  그것이 ‘이슈’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초점


  숫자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누구냐?’ 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또 ‘어떤 사람이 되어가느냐?’ 하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이 300명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1. 그들은 ‘자긍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삿7: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자긍이라는 단어입니다.

왜 하나님은 많은 이스라엘 지원병들을 그대로 돌려보내셨나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자랑)할까봐’ 염려하신 것입니다.


즉, 자기 자랑을 하지 않게 하시려고,

교만치 않게 하시려고..,

다시 말해서, 뽑혀도 교만하지 않을 사람만 뽑았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보시면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

   하나님이 절대로 보지 못해 하시는 것 한 가지는.. 바로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반대로 교만한 사람을 어떻게 하신다고요?

   그냥 놓아둔다는 정도가 아니라,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대적하신다고 그랬습니다. 벧전5:5


▶나를 교만치 않게 하시려고

우리 삶의 현장을 가만히 관찰해보면, 때로 우리 연약함이 그대로 존재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사람들이고, 하나님의 도움을 의지하고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연약함이 그대로 남겨지는 경우들이 있어요. 왜 그럴까요?


오늘 우리의 부족함의 여지를, 채워주시지 않고, 그대로 남겨두시는 이유는,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자녀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일생을 통해서 일련의 시련과 역경을 통과하게 하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를 교만치 않게 하시고.. 바로 그 까닭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를 사도바울에게서 찾아볼 수 있어요.

이 단신의 거인,. 교통도 불편했던 그 당시에, 지중해 세계를 적어도 네 바퀴씩 돌면서

전 세계를 복음으로 완전히 뒤바꾸었거든요.


이 놀라운 영적인 거인, 바울을 생각해 보세요.

그가 기도하면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그가 들어가는 도시마다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해결하지 못한 것이 있었잖아요? 자기 육체의 질병이에요.

바울은 그것을 ‘육체의 가시’라고 불렀습니다.

나를 계속 찌르고 있는 가시,

나를 괴롭히고 나를 아프고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는 가시..,

(다 잘 아시는 내용이라서 중략)


▶제가 교만할 때, 반드시 하나님이 나를 낮추셨습니다.

저는 뭐 인생을 살면서 그렇게 커다란 시련을 겪어본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늘 지나치게 어려운 가운데서 사시는 분들을 보면

참 마음속에 죄송한 생각이 있어요.


그러나 누구나 그런 것처럼, 저도 인생을 통해서 작은 시련은 좀 겪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시련을 겪을 때 마다

좀 지나고 나서 제 삶을 돌이켜 보면 어떤 때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제가 약간 다소간 교만해지려고 할 때

하나님이 이런 저런 시련을 주시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교만한 꼴은 도대체 두고 못 보시는구나.’

뭐 이런 발견을 늘 하게 됩니다.


▶제가 교만해질 때마다 늘 생각나는 사건이 있어요.

제가 전도사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부산 구덕체육관에서 큰 집회가 열렸는데, 제게 통역 부탁이 왔습니다.


선명회 총재였던 스텐무니엔 박사께서 오셔서 말씀을 전하시는데

본래 통역하기로 되어있단 분이, 사정상 못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스페어타이어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저로서는 전도사로서 가장 많은 청중 앞에 서는 순간이었어요.

수 천 명 이상 모인 꽉 찬 청중 앞에 섰더니, 뭐 정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기도 많이 하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 제발 좀 도와주세요!’

사실 통역이 설교보다 더 떨립니다. 통역은 까딱 잘못하면 틀리거든요. 誤譯


그때 한경직 목사님도 오셨어요. 선명회 한국 총재이셨기 때문에 와 계셨는데

제가 이제 통역을 시작하는데, 이상하게 통역이 잘 되어요.

제가 생각해도 너무너무 잘했어요.

뭐 거의 통역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마치 내 설교를 하는 것처럼 자유스럽게 말씀을 증거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은혜를 받더라고요. 은혜 받는 것이 보여요.

그러니까 끝나고 나서 한경직 목사님이 제 손을 잡아주시면서

‘한국 교회에 인재가 났다.’ 그러셔요. 저도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하하~


집회를 끝내고 숙소인 해운대 호텔에 갔는데

부산에 목사님들 장로님들 많이 오셨는데

거기서도 제가 칭찬을 듬뿍 받았습니다.


그날 밤 해운대 호텔에서 자는데 잠이 안와요. 너무 너무 좋으니까 잠이 안와요.

‘드디어 나도 한국 교회의 스타가 되었구나. 스타 탄생의 밤!’ 어떻게 잠이 오겠습니까?


그래서 그 이튿날 제가 더 ‘명 통역’을 하기 위해서

그분 옆에 서서 통역을 딱 시작하는데, 한 5분쯤 지나가니까 목소리가 그냥 가버려요.

아무 목소리가 안 나오는 거예요. 컥컥 소리밖에는,

그래서 너무 너무 황당되더라고요. 목소리가 나와야 무얼 하죠.


그때 거기에 윤목사님 이라고, 설교 통역하시는 분이 한분 있었어요.

그래서 그분에게 할 수 없이 맡기고, 저는 중간에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너무 마음이 비참해서,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는 심정이었어요.

택시 잡아타고 호텔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속상하더라고요. 그 좌절, 부끄러움, 수치감,

아~ 너무 너무 속상하니까, 그날 밤은 속상해서 또 잠이 오지 않아요.

그렇게 밤을 보내는데, 거의 새벽이 밝아오는 그런 시각이었는데

갑자기 제 마음속에 작은 음성 하나가 들려오는 거예요.


‘야! 너 그 목소리 네 꺼야? 네가 통역할 수 있는 그 능력이 네 꺼야?

내 것 가지고, 왜 내 자랑하지 않고, 네 자랑을 해?’ 그런 음성이었어요.

그런데 너무나 똑똑한 음성이 들려오는 거예요. 저는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저는 호텔 그 조그만 방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침대를 붙들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제 추한 모습, 제 에고Ego, 내 안에 있었든 그런 모든 자존심,

이런 것들이 막 보이기 시작하고 통회가 막 되어요.


눈물 바닥이 되면서, 그냥 계속 회개기도를 그날 새벽녘에 했습니다.

얼마를 지났는지 모르겠어요. 어떤 큰 손이 저를 만져주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만져주면서 괜찮다고, 이제는 네 자랑이 아니라, 내 자랑하고 살라고..,

 

기도를 거의 마치고, 제가 성경을 딱 펼쳤어요.

그런데 한 구절이, 제 눈에 딱 띄는 거예요.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여호와의 인자 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 앞에만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시115:1


   저는 제 마음이 좀 부풀어 오르려고 할 때마다,

   괜히 제 자신을 높이고 싶은 그런 유혹이 저를 찾아 올 때마다,

   저는 늘 그 해운대 호텔의 그 자리로 다시 늘 돌아가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교만이 내 사역의 끝이라는 것을.. 제가 알기 때문에,

   내가 만약 교만하다면, 끝장이라는 것을.. 제가 처절하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였습니다.

선거 전에, 앨 고어와 W. 부시의 TV토론이 있었습니다.

그 직전에 미국의 대부분의 언론들이 이렇게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두 사람의 TV토론이 시작되면, 전세는 압도적으로 고어 쪽으로 기울 것이다.’


왜냐하면 고어는 똑똑하고, 아주 유능하고, 이런 토론을 잘하는 분이었습니다.

예상한대로 첫 번째 토론이 끝난 후에

그 토론은 고어가 일방적인 게임으로 승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미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당신들이 투표할 때 고어를 투표 하겠는가?’

그 질문에 대해서는, 여론조사 결과, 반반 비슷하게 나왔어요.


토론은 압도적으로 고어가 이겼다고 그러는데

표를 찍을 때는 사람들이 비슷하게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왜 그런지 조사를 해 보니까

‘고어가 너무나 말을 잘하니까 얄밉다’는 거예요.


이에 비해 W. 부시는 좀 부스스하고, 좀 뭐가 모자라는 것 같고,

그런데 사람들이, 마음에 호감이 간다는 겁니다.

여러분, 똑똑함만 가지고서 인생을 살아 갈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뭐 사람들도 이런 관점을 가지고 인간을 접하는데, 하나님의 관점에서 어떻겠어요?


모든 것을 소유하신 하나님, 모든 것에 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얼마를 가져야 감히 그 앞에서 자랑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은 절대로 교만을 싫어하십니다.


주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자기의 부족을 알고 엎드리는 겸비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서 겸허한.. 자긍하지 않는..

그래야 주께서 우리를 쓰실 것입니다.



◑2. 그들은 '주를 신뢰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긍(교만)하지 않지만, 그래서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부족해요, 저는 못해요.’ ... 늘 이런 사람은 그게 겸손이 아닙니다.

패배주의에 빠진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자기의 연약을 알기에, 자기의 부족을 알기에,

강하신 주님 앞에 나아와서, 그분 앞에 무릎 꿇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연약함을 알기에, 강하신 그분을 전심으로 의뢰하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유명한 세계적인 전도자인 D. L. 무디는 성경을 읽다가

모세의 일생을 세 국면stages으로 나누었어요. 아주 흥미 있게 나누었습니다.

무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①처음 40년간 모세는 ‘I am somebody’로 살았습니다.

그때 모세는 자기가 굉장한 사람인줄 착각 하면서 살던 시대였습니다.


②두 번째 40년은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가 배운 렛슨은 하나입니다.

그걸 무디는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I am nobody,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 간단한 교훈을 배우는데, 무려 40년이나 걸렸습니다.


그런데 40년이 끝난 후에 하나님이 모세보고

‘너 이제 됐어. 이제 겸손해졌구나. 내가 너를 붙들어서 쓰겠다.’

그러니까 모세가 너무 겸손해진 나머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나 이제 못해요. 아무것도 못해요 정말 못해요.’

이것 겸손이 아니라, 의기소침이요, 패배주의죠.


③무디는, 모세의 마지막 40년을 가리켜서, 그때 정말 자기의 부족을 알기에

이제는 자기를 의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뢰할 수 있었든 모세,

그걸 무디는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I am God's body,’

이제 somebody가 아니에요, nobody도 아니에요.

‘I am Gods body,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손에 붙들림을 받아, 하나님만 의뢰하고 사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을 때

하나님이 바로 이런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놀라운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를 펼쳐 가셨습니다.


▶약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할 때, 무시무시해 진다.

이제 300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사7:9


그런데 기드온은 정말 바보같이 그 말씀을 믿었어요.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네 적진을 너희 손에 붙였다. 너희들이 300명이지만 내가 너희들에게 이 적군을 맡겼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순간, 그리고 그 말씀을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순간,

갑자기 300명은 강력한 군사가 됩니다. 강력한 군사가 되었어요.


   여러분 자기의 연약을 깨닫고 엎드려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그 순간이 가장 강해지는 순간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역설 Paradox 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연약함 때문에 연약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연약함을 모르기 때문에 연약해 지는 것입니다.

   도대체 연약함으로 어찌할 줄 모르기 때문에 연약해지는 것입니다.


   자기의 연약을 알고 인정하는 자,

   그리고 자기의 연약을 사용할 수 있는 강하신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들은

   더 이상 약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 놀라운 역설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육체의 가시의 고통스러움을 고백하다가

갑자기 바울이 외쳤든 놀라운 고백이 뭐에요?

'내가 약할 때 주를 간절히 의지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나는 강하다!'


이제 300명은 강한 집단이 되었습니다.

바로 여호와를 의뢰하는 믿음을 통해서 그들은 강한 자가 될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나머지 인생을 걸고 주님을 섬길 때

   자기의 연약함을 알기에 주 앞에 엎드리는 사람들,

   그리고 참으로 주를 신뢰할 줄 아는 사람들,

   그분을 의뢰하는 자로 설수가 있다면..


   저와 여러분은 약한 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주를 신뢰하는 사람들이 되십시다.



◑3. 기드온의 3백 용사들은 ‘준비에 힘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믿는 사람일수록.. 최선을 다한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할 때

그리스도인들에게 존재할 수 있는 가장 빈번한 오해는

‘내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안 해도 좋다’는 생각입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믿음은.. 믿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믿음은.. 믿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뢰/신뢰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믿고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를 믿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에요


▶3백 명은.. 전투태세를 갖춘 사람들

그런 상황을 오늘 본문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주께서 어떻게 최종적으로 300명을 어떻게 선별하셨습니까?

물을 마시는 자세에 따라서.. 3백 용사와, 그 나머지를 구분했습니다.


기억하실 것은 이미 전쟁은 시작된 전시 상황입니다.

그런데 선택된 이 300명 그들은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다. 손으로 물을 움켰어요.

그러니까 물을 얼마나 뭐 그렇게 담을 수가 없었겠죠, 그냥 적셨겠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300명을 선택했어요.


다시 말하면 그들은 긴장을 풀지 않고, 경계 태세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지금 전시 상황이니까요.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대할 때, 그리고 이웃들을 대할 때는

항상 편안한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전시 상황에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깨어라! 너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느니라,

우리가 이 사탄의 대적과 사탄의 간교함을 아는 한

그리스도인들은 한 순간도 긴장을 풀지 말아야 합니다.

적어도 사탄을 대적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늘 싸울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마치 한반도 상황처럼, 영적전쟁은 종전終戰된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준 전시戰時, 또는 잠깐 정전停戰상태에 있습니다.

지금은 혹시 공격이 없어도, 마귀가 언제 또 공격해 올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부분의 이스라엘의 병사들은

그 긴장의 띠를 쉽게 풀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은 그들을 쓰시지 않았어요. 준비하고 있었던 3백 명만 쓰셨어요.


▶아주 쉬울 것 같은 일상의 시험.. 그러나 어렵다.

여러분! 그들이 시험 받았던 시험은 아주 미미한 것이에요. 물을 마시는 일이에요.

뭐 아무것도 아니죠. 물을 마시는 일, 그러나 그것이 테스트 였어요.


또 흥미로운 사실은 그들은 테스트를 받으면서도

테스트를 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미미한 테스트였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저와 여러분을 테스트 할지 몰라요.

그 테스트는 일상적인 삶의 환경에서 치루어집니다. 미미하고 작은 것들입니다.

사람들이 큰 돌에 넘어지지 않아요, 작은 돌부리에 채여서 넘어집니다.


날마다의 삶의 환경에서, 아주 가장 작은 일에서부터

그러나 작은 오늘의 일 앞에 성실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서

내일의 드라마를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저와 여러분이 깊이 묵상하십시다.


물을 마시는 자세, 아무것도 아닌 일이에요.

그러나 거기서부터 최선을 다하고 준비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사람들,

하나님이 그들을 쓰시는 거에요.


▶기드온처럼 깨어있었던 존 칼빈

우리가 이런 삶의 태도를 가리켜서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사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저 유명한 개혁자 칼빈의 한평생을 지배했던 자기 삶의 모토는

‘하나님 앞에서, 소위 코람데오’ 였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산다. 누가 보든지/안보든지 상관없이 나는 하나님 앞에서 산다.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한다.’ 이것이 코람데오의 삶입니다.    *Coram Deo: 라틴어


기드온과 3백용사, 존 칼빈 등

깨어있는 그들에게서

하나님은 그들을 붙들어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작고 미천한 일에 깨어있었던 또 한 사람, 목동 다윗

저는 늘 성경의 한 사람을 볼 때 마다,

그의 삶의 드라마가 저에게 얼마나 커다란 교훈이 되는지 몰라요.

시편 78:70~72절을 찾아보세요.


78:70, '또 그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하나님이 왜 다윗을 선택하셨는가요?

이스라엘 역사의 히어로(hero)이며, 그 역사를 바꾸었던 영웅,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존경했던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

하나님이 다윗을 택하신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양의 우리에서 취하여 내셨다’고 했습니다. 참 사소한 일을 눈여겨 보셨습니다.


:71, '젖양을 지키는 종에서 저를 이끄사, 그 백성인 야곱, 그 기업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자, 다윗이 본래 뭐하든 사람이라고요?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다윗이 양무리를 치는 것을 보니까

양 한 마리하고 놀고 그들을 돌보는 일, 너무 성실하게 잘 하는 거에요.


하나님은 어느 날, 다윗을 내려다보시며, 스스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아! 참 양을 참 잘 돌보는구나! 내가 저 성실한 다윗에게 내 민족을 맡겨도 무방하겠다!

그래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이스라엘의 목자로 다윗을 세우셨습니다.


:72, '이에 저가 그 마음의 성실함으로 기르고 그 손의 공교함으로 지도 하였도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다윗이 양을 칠 때의 성실성에서

민족을 리드하는 리더쉽의 자질Quality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 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눅16:10

 

오늘 내 삶의 장에서, 오늘 내 사역의 장에서 주어진 일,

그것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상관이 없어요.

그 작은 일을 주의 일로 알고, 주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로 알고,

신실하게 긴장의 띠를 풀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드라마가 펼쳐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 리더쉽, 목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