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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의 소명 2547

LNCK 2010. 7. 12. 14:56

◈예레미야의 소명                             렘1:5-10                           -스크랩, 정리, 출처- 



말씀에 들어가며(서론)  주1)



◑1. 부르심은.. 위에서 강권적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1:5


▶일반적 부르심과 특별한 부르심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2가지 차원을 발견하게 됩니다.


①첫 번째는 자기 스스로가 ‘선택되었다’라고 생각하는 경우입니다.(일반적 부르심)

사실, ‘선택받았다’라는 것은 구약과 신약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들이 ‘하나님이 알았고,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호 13:5; 암 3:2).

 

이런 구절들에 의거해 바리새인, 또는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거짓예언자들은

자기들이 선택받았음을 강하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특별한 부르심'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②두 번째는 ‘신적인, 특별한 부르심’을 경험한 경우입니다.

이들이 바로 바울이며, 예레미야, 모세, 이사야 등입니다.

 

거짓예언자들은 대충 자기들이 생각으로 만들어낸 말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예레미야는 자신들이 하나님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 '받은' 말씀을 외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택, 즉 ‘신적 부르심’의 세계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것이 있습니다.

내가 경험해 보지 않았다고, '없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런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예레미야가 받았던 ‘특별한 부르심, 신적 부르심’은 과연 무엇일까요?

①5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대해서 정말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렘1;5


이 말씀은, 우리의 인생이 나 자신의 노력으로만 되어지지 않음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그 하나님께 내 인생의 핸들을 기꺼이 맡겨야 할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내 인생의 핸들을 필요로 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우주를 좌우하는 분이, 보잘것없는 내 인생의 핸들을 무엇 때문에 원하시겠습니까?

 

그러나 본문은, 시공간을 모두 주관하시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열방을 위한 예언자가 반드시 필요했음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인간편의 파트너도 필요합니다.

 

②무엇보다도 이 둘의 차이점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는 것’의 유무입니다.

예레미야는 진짜 소명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말씀이 진짜 그에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우리에게 한 가지 도전을 줍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다” 1:9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다!” 렘33:3

 

오늘날 신약적 표현으로 하면,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예언의 말씀입니다.

1년 365일 습관적으로 이런 말씀이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정, 교회 등 공동체에 어떤 위기가 오면,

또는 공동체가 나아갈 진로를 놓고 고민할 때

매우 시의적절한 <말씀의 응답>을 내 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예언적 말씀은, 오늘날에도, 간헐적으로(꼭 필요할 때) 위에서 임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예레미야와 똑같은 부르심special calling을 받을 필요는 없지만,

   자기는 자기 분야에 대한 확실한 부르심을 받으면 됩니다.

   내가 원해서, 내 소원대로 설정한 비전이 아니라, 어떤 계기로든지,

   ‘하나님이 나를 이 일에 부르셨다. 나는 죽어도 내게 맡겨진 이 일을 할 거야!’

   이런 부르심special calling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not general calling

  

   ※참고로,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다윗 등은

   모두 젊었을 때, 20세 전후에, 그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젊은 시절은, 정말 중요한 시기입니다.

   일찍 부름을 받아야, 일찍 자신을 준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약 30세 경에, 12제자들은 모두 30세 이전에(예수님 보다 젊게) 부름 받은 것으로 봅니다.



◑2. 부름 받을 때.. 자신의 나약함을 바라보지 말고,

나를 통해 역사하실  능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1:6,7,9


▶거부하는 예레미야 

하나님의 소명에 대해, 예레미야의 응답의 첫마디는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1:6


예레미야의 반응은, 두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며

무엇인가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이’는 나이가 어리다는 뜻도 되지만, ‘경험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모세도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라고 했으며(출 4:10),

솔로몬도 왕의 재능이 부족하다고 했으며(왕상 3:7),

바울 사도도 ‘말에는 졸하다’(고후 11:6)고 인정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이 선택하셨던 많은 사람들은

모든 조건들을 완벽하게 갖추지는 못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말을 잘 못한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예언자에게 있어서 치명적인 결함일 수도 있습니다.

정말이지 예레미야의 한탄이 절로 수긍될 것입니다.

“정말 슬프네요. 주님 눈이 있으면 좀 보세요. 저는 말할 줄도 모른다고요.

그런 제가 어떻게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라는 것입니까?”


▶주체는 하나님

하나님이 부르실 때는, 반드시 하나님이 필요한 능력을 구비해 주십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런 뜻입니다.

‘너는 네 일이라 생각하지 말거라.

나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거니까,

네 능력의 유무는 하등 상관이 없단다.

오히려 네 능력이 무능할수록, 너는 유리한 점이 많단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렘1:7


네가 가서 네가 말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보내셔서, 하나님의 말을 전할거니까,

네 능력의 유무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역의 주체가 너가 아니고, 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너 자신을 보지 말고, 나를 보라!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그동안 고집스럽게 보아왔던 대상을 바꿔주십니다.

다시 말해, 예레미야는 6절에서 이렇게 말해왔습니다:

“여호와여 나를 보소서! 지금의 제 모습과 처지가 어떤지 한 번 보소서!”

 

이에 대해서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바라보아야할 대상을 바꿔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9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예레미야야! 네가 네 자신만을 본다면,

경험이 있건 없건 간에, 너는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다!

이제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입을 이제부터 책임지겠다!”


   사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주저하며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은, 생각의 전환을 요구하심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부르심은,

   자기를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자기와 함께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해 줍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사모하면서,

   나 자신이나 내 환경이 아닌,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도록, 믿음의 눈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어떤 청년이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기 전에, 약 2년 정도 갈등했답니다.

‘하나님이 정말 나를 주의 종으로 부르셨나?, 나는 정말 평생 이 길을 가야하나?’


그런데 어느 날, 자기 마음에 이런 생각이 들더랍니다.

‘너는 네 스스로 목사를 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네 속에 있는 내가 할 터이니, 너는 순종하기만 해라!’


그래서 그는 순종하기로 하고, 날마다 그 결심을 되새긴다고 합니다.

‘그래, 내가 하는 게 아니지, 내 속에 계신 주님이 나를 통해 하시는 것이지..’



◑3. 부르신 사명자에게 주어지는 증표 - 하나님이 강하게 함께/임재 하심   1:8, 10


▶하나님이 특별히/차별적으로 그를 부르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특별히/차별적으로 그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예레미야의 일생을 통해서, 잘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그에게 말씀하셨고,

-하나님이 특별히 그를 지켜주셨고, (strong persecution이 있었지만 strong protection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그와 함께 해 주셨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라는 말씀이 가능한 것입니다. 1:8


사실, ‘임마누엘’이야말로, 최고의 증표인 셈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쇠기둥, 놋성벽처럼 강하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

 

보라 내가 오늘 너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였은즉

그들이 너를 치나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임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1:18~19

 

*관련글 : 울프 액크만,  선지자 사역


▶이 놀라운 약속이 있기에

예레미야는 감히 한사람이 품을 수 없는 세계적인 비전을 갖게 됩니다.↓


보라! 내가 오늘날 너를 열방 만국 위에 세우고,

너로 (열방을)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며.. 건설하며 심게 하였느니라.  1:10


우리는 예레미야에게 임한 구체적인 부르심의 증표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의 증표는 ‘임마누엘’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 선택의 증표인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람에게 주시는 <무기, 특권>같은 것입니다. 암행어사의 마패 같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인해서,

그는 ‘열방의 예언자’라는 세계적인 비전을 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 - 그것이야말로 나의 큰 무기요, 힘입니다.

우리는 물질의 힘, 권력, 인맥, 젊음의 힘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힘'을 자랑합니다.

 

..........................................


마지막으로, 저는 오늘의 본문이

하나님의 소명에 대해서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다고 여러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레미야의 경우는 모든 소명의 모델로 주어진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예언자의 모델은 될 수 있을 것임)

각각의 개인차가 있으며, 서로 다른 경험들이 분명히 있음을 기억하시고,

예레미야와 다르다고, 다른 모든 소명들에 대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갖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주1)  ◑서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아주 기쁜 일입니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나중에 누군가와 함께 꼭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맛있는 음식집을 연구해보면,

그 맛이라는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쉽게 알게 됩니다.


“몇십년 동안 전해 내려온 깊은 정성이 오묘한 맛을 만들어낸다”라는,

단순한 비결 앞에서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손쉽게 만들어진 화학조미료는

자연과 시간이 만들어낸 깊은 맛을 따라올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서는, 세상의 그 어떤 맛이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하늘의 맛’을 보여준다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성서야말로 손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셀 수 없는 오랜 시간과, 가늠할 수 없는 광활한 세계를 경험하면서 만들어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중심으로’ 읽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출애굽’의 사건이 지도자 인간 모세의 혁명적인 탈출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 안으로 개입하셨다는 관점으로 읽어야 합니다.


‘가나안 땅의 점령’이 지도자 여호수아의 탁월한 리더십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 안으로 개입하셨다는 ‘증언’이 바로 성서의 가르침입니다.


‘바벨론으로의 포로됨’이 강대국의 무자비한 점령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역사 안에서 포로로 이끄셨다고 읽어야 합니다.


   본문의 예레미야서도, 예레미야의 인간성, 인격, 자질을 바라보기 보다는,

   예레미야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뜻, 마음, 역사를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을 담는 그릇이요, 하나님의 도구인 예레미야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궁극적 해석의 시각은, 항상 ‘사람’보다는 ‘하나님’께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신앙 전통’은 크게 3가지로 나뉘어 집니다.

왕, 예언자, 제사장입니다.


이러한 흐름으로

- 이사야서 [왕],              *이사야서는 왕이신 메시아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 예레미야서 [예언자],

- 에스겔서 [제사장]를 읽으면

구약의 신앙 전통 이해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이, 구약성서의 주축을 이루는 ‘증언’을 남겼습니다.


본문 ‘예레미야서’는 예언자 전통에 속하게 됩니다.

 

왕과 제사장에 비해서 예언자는 유달리 독특한 면이 있습니다.

‘예언자들은 세습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왕들과 제사장들은 철저하게 세습적입니다.

아버지가 왕이면 아들은 자연스럽게 왕이 됩니다.

아버지가 제사장이면 아들은 자연스럽게 제사장이 됩니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여호와 하나님의 부르심에 결정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유독 예언서에서만 우리는 ‘예언자들의 소명’에 대해서 접할 수 있게 됩니다.          ▣ 꿈, 비전,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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