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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를 향한 바울의 기도 2575

LNCK 2010. 7. 30. 19:02

◈성도를 향한 바울의 기도                골1:9~12                      -설교스크랩, 정리-



▲도입  주1) 

 

자, 골로새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나타난, 바울의 기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1:9,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을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9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이 중요한 구절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지식이 필요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결코 지식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알아야 할 것은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지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바른 지식이 없이는 삶의 목표를 지향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주2)


▶1.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과 총명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이 무엇을 알기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지식은 지식인데,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을 다른 말로 바꾸면 ‘하나님의 기대’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대를 안다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그래야 하나님의 기대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통해 하나님의 기대를 알 수 있습니까? 성경 말씀입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여, 말씀을 읽고, 듣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기대를 알고

그대로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골1:7절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1:7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에바브라에게서 배웠습니다. 에바브라는 바울의 제자였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 배운 말씀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더 깊이 그리고 온전하게 알게 되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영적 성숙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적 성숙의 척도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신령한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이것을 강조하기 전에

무엇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9


먼저, ‘신령한 지혜’ 그러면

무슨 비밀스러운 어떤 지혜를 여러분이 생각하실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바울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신령한 지혜는

신비스런 지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아주 실제적인 지혜입니다.


바울이 골로새서를 쓰게 된 중요한 이유는

당시 골로새 교회를 위협하고 있었던 영지주의 이단 사상을 배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말 그대로 '영적 지식(신령한 지혜)'을 강조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골로새서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신령한 지혜’는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영적 지식’과는 그 뜻이 다릅니다.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영적 지식은 '비밀스러운 지식. 신비한 지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가 말하는 신령한 지혜는, 아주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인 지혜입니다.

즉 우리 삶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지혜를 가리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지혜나 지식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신비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에요.


‘신령하다’는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그러나 영적이라는 말은 사실은 매우 실제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라는 단어를 다르게 정의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지식을 실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3. 지혜와 함께 강조된 또 하나의 단어는 총명입니다.

총명은.. ‘지식을 분별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지혜와 총명.. 둘 다 실제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되기를 기도한다.’

-그것이 바울의 기대요, 바울의 기도였습니다.


성경에 보면, 지혜를 달라고 열심히 기도해서 응답 받는,

지혜를 공급받았던 유명한 사람 솔로몬이 나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하나님께 기도해서 받았던 지혜는 어떤 지혜입니까?

추상적인 지혜였을까요? 아니면 실제적인 지혜였을까요?


아주 실제적인 구체적인 지혜였습니다. 백성을 잘 다스리고 재판할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지혜를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지금 골로새 교인들이 그런 실제적인 지혜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에,

   '기복적 기도'를 열심히 드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보다는, '자기 뜻'을 앞세워 기도하는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 무익한 중언부언이 되고 말 것입니다.



◑1:10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도록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0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9절)

   한 걸음 더 나아가 10절에 보시면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랄 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가야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다른 책과 비교할 수 없는 특성 가운데 하나는,

성경은 내용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생물학 같은 것을 공부하게 되면, 사람은 생물학 서적을 파고 들어가서

그 안에 있는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 그만입니다. ‘그 교재의 저자가 누구냐?’

하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다릅니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그 내용을 기록한, 저자이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고..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 .. 이것은 시간을 두고 계속 알아가는 것(자라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알아갈 때, 한 순간에 다 알 수 없습니다.


결혼을 하기 전에, 남녀가 교제할 때도, 4계절을 다 지내보라고 하지 않나요?

어떤 인격체를 알아갈 때는,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경험적으로 깊이 알아간다는 것입니다.

한 순간에 다 알 수 없습니다.


   어떤 한국 목회자가, 이스라엘에 가서 이웃집에 식사초대를 받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함께 대화하다가, 한국 목회자는 우연히 '나는 부시 대통령을 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이웃 사람들이 약간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대단한 친분이 있는 줄로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영어가 서툰 관계에서, 발행한 해프닝입니다.


여러분, 부부가 서로 '어느 정도 남편/아내를 파악했다'라고 말할 때,

보통 10년 이상 걸릴 것입니다.

그의 성격, 좋아하는 취미나 음식, 그의 아킬레스 건..

이런 것을 아는데도.. 10년 이상 같이 살아야 하잖아요?


하나님도 마찬가집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신앙생활하며 교제하는 가운데서, 점점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 분의 거룩하심,

그 분의 진노하심,

그 분의 좋아하시는 일,

그 분의 최우선 관심..

이런 것을 점점점 알아가면서, 우리의 영적 성숙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점점 알아갈 때, 선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0 


하나님을 점점 알아가는 사람만이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할 줄' 알게 됩니다.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됩니다.


   어떤 남편이 아내 생일에, 아주 값비싼 유명 화가의 그림을 사 주었습니다.

   아내는 값비싼 선물을 받고나서, 화가 머리끝까지 폭발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내는 그림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작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남편 자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도 '하나님을 알아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사에 나타난 성자들이, 성자의 삶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신자보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내가 신앙이 깊은 성자의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깊이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것'에 점점 자라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요,

   그래서 사도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들아, 나의 하나님을 너도 알라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 같은 메세지를 남기는 장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라” 대상28:9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라’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을 취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윗 자신이 평생에 걸쳐 경험했던 하나님,


‘네 아들아! 내가 하나님을 평생을 통해서 경험해 보니까,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가 하나님을 경험해 보니까,

정말 그분은 사랑이시고, 그분을 나를 참아 주시고 나를 용납해 주시고,

나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나를 용서하신 인자하신 하나님, 

내 아들아! 너도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원한다.’


이것은 굉장히 깊이 있는 신앙의 도전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사도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며, 도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결코 지식을 위한 지식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행함을 전제로 한, 실제적 행함을 전제로 한 지식입니다.


반면에 그 당시에, 골로새 교회를 영적으로 혼미케 하고 있었던

이 영지주의자들이 강조하고 있었던 것은 '행함이 없는 지식'만을 강조했어요.

그래서 바울은 기독교의 지식은 지식을 위한 지식이 아니라,

그것은 행함을 위한 지식,

우리의 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 지식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운전을 배울 때,

'행함이 있는 지식'과 '그저 이론적 지식'의 차이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래서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일에 선한 열매가 가득하게'..


이런 실제적인 삶의 열매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9절), 하나님을 점점 알아갈 때에(10절b)

자연히 따라오는 열매들인 것이죠.



◑11절, 모든 견딤과 오래참음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11


여러분, 승리를 보장하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인내입니다.


금세기 최고의 설교자였던 스펄젼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내를 통해서 달팽이는 노아의 방주에 올랐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에서 이 ‘인내’라는 단어를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1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


이 두 단어가 비슷하지만, 강조하는 것이 서로 다릅니다.

①여기서 ‘견딘다’는 것은 환경에 대한 견딤이에요.

견디기 어려운 환경속에 견디어 내는 것, 인내하는 것을 뜻하는 반면,


②‘참는다’는 것은 대인 관계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을 참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강조합니다.

견딜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견디고,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참아야 합니다.


③그런데 그 앞에 무슨 단어가 강조되었어요?

‘기쁨으로’입니다.


그냥 이를 악물고,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참고 견딜 것을 위해.. 바울은 기도하고 있습니다.


히12:2절에 “저는(예수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라는 말씀처럼,

우리도 앞에(미래에) 닥칠 즐거움을 내다보며, 기쁨으로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④“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그렇습니다. 견딜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인간관계 속에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사람들마다, 영광의 능력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주시는 능력으로 우리는 견딜 수 있고 참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쁨으로 견디고, 기쁨으로 참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12절, 감사를 삶의 목표로 삼도록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12


①성도에게는 하늘에 '기업'이 있습니다.

기업은 다른 말로 '상속, 유산'입니다.

그 기업은 영원한 기업입니다.


②'합당하게 하신'

그 기업을 얻으려면, 기업을 얻기에 '합당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을 알아가고,

견딤과 오래참음 가운데.. 점점 그 영혼이 성숙해(합당하게 되어) 가는 것입니다.


③그런 모든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경륜을 깨달을 때,

성도는 감사하게 되어집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스럽고, 오래 참고, 긍휼이 풍성하고,

자비로운 모습으로 빚어, 장차 주님 닮은 모습으로(합당하게 만들어) 하나님 앞에 서게 하십니다.

그래서 기업을 얻게 하십니다. 믿으십니까?

주께서는 이미 그런 계획을 다 세워 놓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는..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어려움 속에서

나의 모난 부분을 깎아 내심으로써, 나를 주님 닮은 존재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길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상황은 비록 어려워도

‘하나님, 나를 이렇게 빚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 의사로서 또 저술가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는

폴 브랜드의 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페니실린을 처음 발견했을 때,

사람들은 페니실린 주사 맞는 것을 끔찍히 싫어했다고 합니다.

전쟁터에서는 그렇게나 용감하게 싸우던 군인들도,

야전 병원에서 페니실린 주사만 놓으려고 하면 벌벌 떨었다고 합니다.


초창기에는, 해독도 안 되고 불순물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

지금보다 훨씬 더 아팠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페니실린 주사를 무서워한 데에는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었습니다.

아직, 페니실린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곰팡이에서 추출한 성분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페니실린 주사가 만병통치약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벌벌 떨던 사람들이 용감하게 주사를 맞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아주 기꺼운 마음으로 주사를 맞았다고 합니다.

이 주사가 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후부터는

마음가짐이 달라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변의 상황이나,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아무리 고통스럽다 해도,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세우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훈련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주 앞에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재 내가 겪는 고통이, 페니실린 주사와 같은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 감사합니다. 이렇게 아니하시고는 만들어 질 수 없는 나,

     예수 그리스도의 빛나고 아름다운 인격으로 빛으시고자,

     주님 닮은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서게 하시고자,

     오늘 이렇게 견디기 어려운 이 상황을 통과하게 하시고,

     참을 수 없는 인간관계의 고통과 눈물과 아픔을 경험하게 하고 계시니,

     이 모든 아픔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어려움을 통과한 다음에 주앞에 빛나게 서 있을

여러분의 모습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므로 오늘 이 견딜 수 없고 참을 수 없는 어려움의 상황 한복판에서도

주 앞에 감사하는 삶, 이것이 오늘 여러분의 삶의 목표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


 

주1)  ▲도입 예화, 부모는 자녀의 성장을 기뻐합니다.

저희 집 첫째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유모차를 타고 집과 교회를 오고가면서,

버스만 보면 소리를 칩니다. ‘아빠 아빠 또 또’ 버스가 지나간다고 소리칩니다.

그러면 저는 ‘응 저건 127번 버스야! 저건 19번 버스야!’ 하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한 20번을 해야 집을 도착할 수 있습니다. 


어떨 때는, 특별히 주일날 마치고 갈 때는 사실 좀 피곤하고 귀찮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계속해서 소리칩니다. ‘아빠 아빠 또 또’

그러면 제가 피곤하지만 또 대답해 줍니다. 그렇지만 기분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내 자식이 이만큼 성장했구나!' 하고 자식의 성장을 확인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으실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무엇보다 우리의 성장을 기뻐하십니다. 믿으십니까?


바울은 본문에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의 영적 성숙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특별히 두 가지를 강조합니다.

두 가지는 '그들이 알아야 할 것'과, '그들이 행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을 알고, 행해야 할 것을 행할 때,

그들의 영적 성숙이 이루어진다고 바울은 믿었기 때문입니다.


주2)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에서 화성 탐사선 패스파인더 호를 쏘아 올려서 Pathfinder

얼마 전에 화성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전해졌습니다.

드디어 우리 인류는 달나라 시대에서 화성 시대로 돌입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화성 탐사선을 화성에 보내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정확한 지식, 정확한 정보였을 것입니다.

화성 환경에 대한 바른 지식, 탐사선의 성능에 대한 정확한 지식,

그리고 우주 환경에 대한 방대한 지식이 없었다면,

화성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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