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같으신 하나님 호14:5~9 설교 스크랩, 정리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이슬을 먹은)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 호14:5
◑이슬 같은 은혜
▶서론/ 예배는, 은혜를 받기 전에, 헌신을 드리는 것
성도들은 예나 지금이나 은혜를 사모하고 갈망합니다.
우리나라 교인들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은
아마 세계 어느 나라 교인들도 따라올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은혜를 사모는 하는 만큼, 실제 현실은 은혜를 많이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은혜 받는 우리에게 잘못이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바로 알고, 은혜 받는 바른 길을 알아야 합니다.
가끔 우리가, 교회를 방문한 외국인 성도에게
‘Do you receive grace?’ (은혜 받으셨습니까?) 라고 물어보면,
외국인들은, 어리둥절해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예배는 ‘service’라고 하는데, 봉사, 헌신 이런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예배 개념은..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는, 주는 개념이고,
우리의 예배 개념은.. 받는 개념입니다. 샤머니즘의 영향인가요?
그들은 '‘Do you receive grace?’ 이런 말은 아예 안 쓰는 것 같습니다.
물론 비슷하게 '설교가 나를 터치했다' 이런 표현을 쓰기는 합니다. 그들식으로 은혜 받았다는 표현입니다.
▶물론 받는 은혜도 있습니다.
본문에,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새 은혜를 약속합니다.
본문에, ‘은혜’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나오지 않지만,
‘이슬’이라는 표현에 유추해서 ‘이슬 같은 은혜’를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슬과 같다’고 했는데, 호14:5
이슬의 의미는, 우리가 알듯이, 촉촉이 적시는 은혜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슬과 같은 은혜가 되셔서
저들로 백합화같이 피게 하고 백향목같이 자라게 하겠다는 축복입니다. :5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슬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은혜의 이슬은
오늘 우리가 은혜를 어떻게 사모하고 어떻게 받아야 할 것인지를 잘 가르쳐줍니다.
▶본문은, 신약에 회복되어질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예언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지금 북왕국이 앗수르에게 망하게 될 것을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면서도 이 모든 것을 넘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새로운 구원역사를 이루게 될 것이고
그 때 하나님의 백성은 아름답게 번성하게 될 것을 바라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호세아서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이스라엘 나라의 멸망 이후에, 다시 저들의 회복을 통해 이어지게 될
신약시대의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대한 예언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이스라엘은,
엄밀한 의미에서 신약시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민족적인 이스라엘은 망하지만,
이제는 복음을 통해 영적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일어서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슬같은 은혜'를 베푸실 것이고,
그들은 하나님의 이슬같은 은혜를 받아 아름답게 번성할 것입니다.
▶팔레스틴 지역의 초목은, 건기에 이슬을 먹고 자랍니다.
건기에는 비가 전혀 안 오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틴 지방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건조한 곳입니다.
비는 일 년에 두 번밖에 오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대로 '이른 비와 늦은 비'입니다.
이른 비는 10월경에 오는 가을비를 말하고,
늦은 비는 4월초에 오는 봄비를 말합니다.
그 곳 농사는 가을에 씨를 뿌려, 초여름에 추수하기 때문에
가을에 오는 비를 이른 비라 했고, 봄에 오는 비를 늦은 비라 했습니다.
이와 같은 연중 ‘2대 우기’ 외에는 거의 비가 오지 않습니다. 주1)
건기에 자연히 땅은 메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메마른 땅이지만, 곡식이나 초목이 윤택하게 자랄 수 있는 것은
밤마다 이슬이 많이 내리기 때문입니다.
▶소낙비와 같은 은혜 ↔ 이슬 같은 은혜
오늘 우리도 영적으로 성숙하고 풍성한 신앙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이슬과 같은 은혜입니다.
물론 초목이 자라는 데는 소낙비도 필요합니다. 팔레스틴에 2대 우기가 있듯이,
우리의 생애에도 때로는 비와 같은 특별한 은혜의 소낙비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소낙비가 계속 와서도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물이 좋아도, 물난리가 나면 어떻 합니까?
농작물이 오히려 다 썩어버리는 것을, 뉴스에서 보지 않습니까.
소낙비는 특별한 경우에 내리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그 다음에는 날마다 이슬만 제대로 내리면 곡식과 식물은 잘 자라게 됩니다.
팔레스틴에서는 그렇습니다.
그런데 꼭 소낙비가 와야 된다고 생각하고
소낙비를 기다리고 소낙비만 사모하는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수많은 성도들이 계속 ‘소낙비(↔이슬)와 같은 은혜’가 내려지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성도님들이 기도원에 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외부 집회에 다니는 것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때때로 좀 큰 은혜(소박비)가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울며, 몸부림을 치며 기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집회를 통해 특별한 은혜를 받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특별한 경우(이른비, 늦은비)에 한해야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만 은혜라고 생각하고, 항상 그런 은혜를 받으려고만 한다면..
극단적 신앙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슬 같은 은혜’가 있는데,
그건 무시하고 ‘소낙비 같은 은혜’만 사모하는 것은.. 극단이기 쉽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여 집사님은, 모 부흥사가 집회를 하면 전국을 따라갑니다.
가까운 인근은 말할 것도 없고, 멀리 경상도, 전라도까지 따라갑니다.
그 나무가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자신은 모르지만 이미 썩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슬은 많은 수분은 아닙니다. 그러나 매일 변함없이 내립니다.
적은 은혜이지만 규칙적으로 계속 받아야 한다는 진리입니다.
소낙비와 같은 은혜, 큰 은혜만 사모하고,
이슬과 같은 작은 은혜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이슬과 같은 은혜를 주시고 있는데, 이것은 은혜로 여기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그 귀한 은혜를 다 버리고, 결국 은혜를 받지 못해 영혼이 메마릅니다.
그러다 보니 은혜를 받겠다고 이상한 방법을 찾습니다.
자꾸 신비한 집회만 쫓아다니는 것입니다.
◑은혜는 매일 받아야 합니다.
▶이슬이 매일 내리듯이, 만나도 매일 거두었습니다.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로 광야에서 만나를, 날마다 거두게 하셨습니다.
만나는 이슬과 함께 내렸습니다. 민11:9
어떤 사람들, 많이 거두어 놓으면 며칠 먹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렇게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이 거두어도 하루밖에 먹을 수 없었습니다. 나머지는 다 썩어버렸습니다.
만나는 날마다 내리고, 매일 아침 동트기 전에, 날마다 거두어야 했습니다.
얼마나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인지 모릅니다.
아무리 큰 은혜를 받아도 은혜는 날마다 새롭게 다시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경우 큰 은혜 받으면, 거기에 도취해서 삽니다.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그 감격을 되씹으면서 즐깁니다.
그러면서 날마다의 은혜는 소홀히 합니다.
그러고 있는 동안, 큰 은혜는 다 사라져 버립니다. 스스로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듯 은혜는 계속 받아야 합니다.
말할 수 없는 감격과 신비스러운 체험을 가진다 해도
그 은혜의 능력은 곧 희미해집니다.
오늘 점심에 밥 세 그릇 먹었다고,
내일은 굶어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 간단한 진리를 망각하면 안 됩니다.
▶규칙적인 은혜 생활
어떤 사람이 꿈에 사다리를 타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더랍니다.
그런데 중간 중간에 사다리 한 칸이 빠져있어서, 무척 힘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나름대로 해석해 봅니다.
매일 은혜를 받는 것이, 마치 사다리를 한 칸 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하루가 빠지면, 사다리 한 칸이 빠져나갔습니다.
그 다음날 한 칸 빠진 사다리를 건너 올라가야 하니, 그만큼 힘이 듭니다.
이틀을 빠지면 두 칸을 건너뛰어야 합니다.
그러니 매일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받고,
차곡차곡 한 칸씩 올라가는 것이, 쉽고 편하고 좋은 길입니다.
중간에 빠트리면, 그만큼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계속해서 규칙적으로 은혜 받지 않고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큰 은혜의 기억에 매여 살지 마십시오.
이슬과 같이 작은 것이지만, 그것이 오늘 내게 필요한 은혜입니다.
영혼의 건강과 성장에는, 이것 말고 다른 비결이 없습니다.
날마다 은혜 받고, 날마다 새 힘 얻어, 날마다 승리해야 합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이슬입니까?
본문에 '하나님 = 이슬'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곧 이슬(같은 촉촉한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어떤 방편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말씀과 성례 그리고 찬송, 기도, 예배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시기도 했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주시는 은혜를 받습니다. 말씀이 곧 은혜의 이슬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제대로 받지 않고는, 결코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말씀 받지 않고 신앙생활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는 천하장사는 없습니다.
▶설교자만 책임이 아닙니다.
어떤 성도는, 자기가 설교시간에 졸지 않고, 딴 짓 하지 않고
설교를 들어준 것만 해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설교를 들어주었으니, 이제 은혜를 받게 하는 것은.. 전부 설교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들을 테니, 당신은 은혜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러니 설교자는 설교할 때 엄청난 압력을 받습니다. 전혀 압력 안 받는 사람은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 설교자가 이 압력을 이기지 못해서
이상한 음성을 내고, 이상한 말과 이상한 행동까지 하게 됩니다.
그런데 듣는 성도도, 먼저 마음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주보에 다음 주 설교 제목과 본문이 미리 기재됩니다.
여러분, 그 본문을 한 번 미리 읽어보십니까? 그래서 묵상하고 오시기 바랍니다.
그런 분은, 은혜를 풍성히 받으실 것입니다.
또한 설교자를 위해, 토요일날 중보기도해 보십시오.
설교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주님, 내일 목사님을 통해서, 제게 꼭 필요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준비하고 기도하는 성도는, 반드시 주일설교에 은혜 받게 됩니다.
◑이슬을 먹은 성도는 잘 자랍니다.
▶이슬을 받은 백성은 잘 자랍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이슬같은 은혜를 통해
백합화같이 피고 백향목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고 했습니다.
호14:6절에는 감람나무같이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아름답게 퍼져 나간다고 했습니다.
7절에는 곡식같이 소생하며 포도나무같이 꽃이 피며
레바논의 포도주같이 향기를 발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슬을 통해 초목이 소생함을 얻고, 뿌리가 내리고, 아름답게 성장합니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향기를 발하는 이 모든 축복이
은혜의 이슬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뜨거운 햇빛에 시들었던 초목이
밤사이에 이슬로 말미암아 다시 생기를 얻습니다.
피곤하고 지친 심령들이 은혜의 이슬을 받으므로
새로운 용기와 새로운 믿음을 얻습니다.
은혜의 이슬을 통해, 신앙의 깊은 뿌리가 내리게 되고,
세상의 환란 풍파에 흔들리지 아니하는 튼튼한 나무가 됩니다.
▶이슬은, 눈에 안 보여도, 항상 있습니다.
이슬이란 원래 공기 중에, 대기 중에 있는 수분입니다.
지금 이 대기 중에는 수분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알맹이가 되어 떠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습도가 몇 % 재는 습도계도 있고,
또 ‘물 먹는 하마’(제습기)를 사용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이렇게 공기 중에 수분(이슬)이 늘 존재합니다.
다만, 지면에 가까이 떠 있던 수분이 땅에 떨어진 것을.. 이슬로 부르는 것입니다.
낮에는 태양과 그 열기 때문에 수분이 하늘에 떠다닙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서 온도가 내려가고, 또 땅은 식습니다.
그러면 공기 중에 있는 수분이 서로 덩어리가 되어서 땅에 떨어집니다.
흙에 떨어지면 흙 속으로 그냥 들어가 버리고,
풀잎이나 나뭇잎에 떨어지면 방울방울 이슬로 맺혀있게 됩니다.
팔레스틴 지방에 이슬이 많이 내리는 이유는
낮과 밤의 온도차이가 특히 심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이슬은 공기 중에 있는 수분입니다.
그러나 밤이 되어 온도가 내려갈 때, 그것이 이슬로 내립니다.
이슬은 항상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만, 이슬을 보게 됩니다.
(도시인은, 아침에 자동차 위에 내린 이슬을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슬이 있는지/없는지.. 잘 모릅니다.
해가 뜬 후에 밖에 나가기 때문에.. 이슬이 내리지만, 그것을 보지는 못합니다.
이슬이 내리는 것조차 모르는 것입니다.
새벽기도야말로 참으로 날마다 내리는 은혜의 이슬입니다.
새벽기도에 나오실 수 없는 분은, 날마다 스스로 은혜 받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스스로 성경 읽고 그 뜻을 상고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큐티를 하는 것입니다.
가정 예배도 정말 좋습니다.
날마다 은혜를 받는 사람이 건강하고 튼튼한 신앙인입니다.
▶이슬은.. 소리가 없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면
‘목사님, 제가 그렇게 해보았는데 별 은혜가 없더라고요’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성경은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겠고, 특별한 은혜도 없더라.’는 것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슬이 언제 어떻게 맺히는지 보신 적 있습니까?
이슬은 비같이 소리 나며 볼 수 있게 내리지 않습니다.
밤중에 은밀하게 소리 없이 내립니다.
은혜를 받는데 특별한 느낌 없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빗물 같이 많은 수분도 아닙니다. 적은 수분입니다.
많은 은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이슬이 초목이 자라기에 충분합니다.
우리가 승리하며 신앙생활 하기에 충분한 능력이 됩니다.
▶마치는 말
이제 분명히 깨달읍시다. 우리가 받아야 할 은혜는 이슬 같은 은혜입니다.
이슬 같은 은혜로 우리는 넉넉하게 승리의 신앙생활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듣는 말씀, 우리가 가지는 날마다의 경건시간,
이것이 곧 ‘이슬 같은 은혜’입니다.
너무 소낙비(이른비, 늦은비)만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런 비도 필요하지만, 그 비는 가끔씩 내리는 비입니다.
이슬 같은 은혜로, 시들은 우리의 심령이 소생합니다.
가지가 펴져 나가고 향기를 발할 것입니다.
백합화 같이 꽃이 피며 백향목 같이 발육할 것입니다.
진실로 은혜의 이슬을 통해 넉넉히 승리하는 여러분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
주1) ▶이스라엘의 기후
우기는 10월말부터 시작되는데,.
부드럽게 땅을 적시는 소낙비를 동반하여 시작합니다.
그 후 2-3일간씩 빈번히 많은 비가 내리며, 11월과 12월까지 계속되는데,
이런 많은 비를 성경에서는 ‘이른 비’(요레, former or early rain)라 칭합니다.
이때 농부는, 바위처럼 딱딱한 흙을 기경하고 씨를 뿌리기 위해
이른 비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됩니다. 파종할 때 내리는 비입니다.
많은 비(이른 비)가 내린 이후에
간간이 소낙비(적은 양의 비, 신32:2) 가 내리는데,
겨울 내내 끊이지 않고 옵니다.
그리고 추수기(5월)가 다가옴에 따라,
또 한 차례의 장맛비(늦은 비)가 내리게 되는데,
이 비는 낱알을 알곡이 되도록 성숙시키는 준비단계입니다.
그 후 늦은 비가 멈추게 되면
뜨거운 태양 볕 아래서, 곡식은 추수를 위해 익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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