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직과 그 승계 출28:1~43 10.07.16.설교스크랩, 축약
◑1.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출28:1, “너는 이스라엘 자손 중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
곧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그와 함께 네게로 나아오게 하여
나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되"
▶제사장들의 1차적인 사명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역의 사활이 나눠지는 것입니다.
문제는 목회자들이나 사역의 중심이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입니다.
메시지가 변질되는 것도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을 섬기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메시지가 변질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설교를 잘하는 것이 아니고
타협하지 않고 진리의 말씀을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기 위해서 외칠 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되는 겁니다.
교계 안에 메시지가 편만하게 변질되게 된 이유는
그들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목회를 (신자들에 대한) 위로(서비스)업 정도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회는 신성한 것입니다. 목회는 소명입니다. 거룩한 소명입니다.
근데 서비스업정도로 착각을 해서 성도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은혜를 끼치고 만족시킬 수 있는 설교, 프로그램, 심방, 상담
그러고 사람을 모으면.. 이것을 목회로 착각하는 목사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목회는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목회라는 것을 기억하게 될 때
절대로 메시지를 타협하지 않게 됩니다.
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목회라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사람 앞에서보다.. 하나님 앞에서 오래 머무르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하나님 앞에서 머무르게 됩니다.
이것은 제사장뿐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뭐라고 하셨냐면
“그들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의 삶에 우선순위입니다.
목회자들도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목회를 사업처럼 비즈니스로 착각하는 것이 아니고
가브리엘이 ‘나는 하나님 앞에 서있는 천사’라고 말한 것처럼
엘리야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자’라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도 착각하고 있습니다.
성도들도 직업이 자신의 본업이 아닙니다.
학자면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 정치인이면 정치하는 것,
사업가면 사업하는 것..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라고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하나님을 섬기라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기의 직업이나 일이 목적이 되면 안 됩니다.
그것이 목적이 되면 안 되고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수단.
▶신약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인을 '종’이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종이다.’
여러분이 재능이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여러분의 전문 분야가 모두 다르지만
그것을 사용해서 주님을 위해서 장사하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인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 중에 누구도 자기를 위해서 자는 자도 없고, 자기를 위해서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롬14:7~8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목회자들도 교회를 지나치게 ‘목회 성공’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도 그냥 이 땅에서 성공하는 것, 그것을 목표로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잘못된 기복 신앙에 빠져서, 회개는 외치지 않고 거룩은 외치지 않고,
복 받는 것만 외치는 잘못된 변질된 메시지들이, 성도들을 잘못 인도하고 성도들을 타락시켰습니다.
성공 지상주의. 교회도 주님이 얼마나 임하시고, 주님과 얼마나 친밀하고,
얼마나 성령이 역사하시고
그래서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영광이 나타나고
사람들이 변화되고 영혼들이 구원 받는가...
목회자가 그런 기준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수가 몇 명인가?
헌금이 얼마 나오나? 교회를 얼마나 잘 지었나?
이런 잘못된 잣대를 가지고 서로가 우월감을 느끼고 경쟁하면 안 되는 겁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라고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보석 같은 성도들
출28:8-11,
“에봇(제사장 의복 중 하나) 위에 매는 띠는 에봇 짜는 법으로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에봇에 정교하게 붙여 짤지며
호마노 보석 두 개를 가져다가 그 위에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되
그들의 나이대로 여섯 이름을 한 보석에, 나머지 여섯 이름은 다른 보석에 새기라
보석을 새기는 자가 도장에 새김 같이
너는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그 두 보석에 새겨 금테에 물리고”
출28:17-21, “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금테에 물릴지니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본문에 보석이 나오는데, 보석에다 이스라엘의 12지파의 이름을 새겼습니다.
신자는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보석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교회를, 어린양의 신부를 상징하는 것인데
계시록에 보면, 그것이 다 보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계21:19~21,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둘째는 자정이라.
그 열두 문은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신부bride들을 보면, 보석으로 치장을 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된 우리들이, 보석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보석과 같은 사람이 됩니까?
보석을 주렁주렁 단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보배로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베드로가 말한 대로, 믿음 때문에 보석이 되는 것입니다.
보배로운 믿음을 가져야 보석이 됩니다.
보배로운 믿음을 갖고, 이 믿음을 연단해야 합니다.
계시록 3:18에, '불로써 연단한 금을 사라'고 했습니다.
'불로써 연단한 금'은 무엇입니까?
금은 믿음입니다. 금은 믿음인데 불로서 연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 속에서 연단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찌끼들이 모두 제거가 되는 것입니다.
교만, 탐심, 정욕, 게으름, 이기심, 질투심, 분노들이
연단을 받아서 우리 속에서 찌기들이 다 제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하나 다 제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로 연단한 믿음입니다.
“불로 연단한 믿음을 사라.” 그것을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가를 지불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씀을 읽어야 되고, 말씀을 들어야 되고, 기도해야 되고
하나님께 매달려서 성령을 받아야 되고,
인내하면서 죄와 싸워야 하고 삶에서 올바른 선택을 해야 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쫓아가면서
주님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주님의 영광을 보고 주님과 교제하고,
이런 것을 통해서 불로서 연단한 금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8K, 24K 같은 성도도 있습니다.
아무리 금이라고 해도 보석이라고 해도, 그 안에 흙이나 지푸라기가 들어가 있으면
당장은 큰 가치가 없습니다. 연단이 되어서 불순물들이 제거되어야 합니다.
순도에 따라서 가치가 다릅니다.
계속에서 연단을 받아서 불순물을 제거한 사람(정금 pure gold)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18K, 24K)하고 같을 수가 없습니다.
순도에 따라서, 금의 가치가 다른 것처럼
여러분의 가치는 믿음의 연단을 받아서 불로 연단한 금처럼 되느냐/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계시록 3장에 나온 것처럼.. 불로 연단한 금처럼 되느냐.
그것에 여러분에 가치가 달려 있는 겁니다.
그것에서 여러분의 영원한 가치가 매겨집니다.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정)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얼마나 불로 연단한 금과 같이 되느냐?
쉽게 말해서 여러분의 믿음이, 불로 연단 받지 않으면,
24K, 18K, 14K가 되기 쉽습니다. 아직 불순물이 섞여 있다는 것이지요.
같은 금이라도, 순도에 따라서 가치가 전혀 다른 것처럼
천국에서 해의 영광도 있고, 달의 영광도 있고, 별의 영광도 있고 고전15:41
전부 가치가 다릅니다.
◑3. 여호와께 성결
출28:36~38,
“너는 또 정금으로 패를 만들어 인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관 전면에 있게 하라.
이 패가 아론의 이마에 있어서
그로 이스라엘 자손의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의 죄 건을 담당하게 하라.”
제사장이 패가 있는데, 그 패에다가 “여호와께 성결” 그렇게 썼어요.
이거 자체가 성결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쓸 글이 얼마나 많아요. 제사장 패에다가 쓸 글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수많은 덕목과 글들 중에 '여호와께 성결'.
요즘의 교회들이 성결에 대해 주목하지 않는 것은 큰 미혹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게 나타나있어요.
‘내가 거룩하니 너희가 거룩할지어다.’ 레11:44등, 마5:48
이게 구약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도가 거룩(구별된 생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큰 미혹입니다.
우리는 여호와께 성결해야 될 줄 믿습니다.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될 줄 믿습니다.
그러면 여호와께 성결하다는 게 뭐에요?
그거는 바리새인처럼 남들 보기에 “나는 간음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위 본문에 보면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쓴 패를,
특별히 아론의 ‘이마에 둘렀다’는 것은,
여호와께 성결은 생각에 대한 것입니다.
단순히 우리 행동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생각에 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미움을 품으면, 살인한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행동에 대한 것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갖고 있던 의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5:20
‘여호와께 성결’이란 것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나은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건 행동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생각과 마음에 대한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오래하고, 믿음이 성숙된 사람은 옷차림도 조심해야 해요.
아무튼 우리는 마음이 성결하고, 여호와께 성결한 자가 되어야 해요.
제사장들이 이마에다가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관에다 썼어요.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려면. 정말 하나님께 쓰임 받는 자가 되려면
필히 성결해져야 된다.. 그런 메시지 아니겠어요?
이런 개념이 있는 사람은,
자기 옷차림miniskirt으로, 혹시나 남의 호감을 끌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이 계신 곳은 자유함이 있습니다.
천국은 지옥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는 근엄한 게 아닙니다.
천국은 잔치하는 곳입니다. 웃음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유머가 있고.
여러분 진짜로 영적인 사람들은 유머가 많아요.
왜냐하면 천국은 여러분, 웃는 나라입니다. 거룩하면서도 행복한 나라입니다.
거룩하면서도 근엄한 나라가 아닙니다.
거룩하면서도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나라입니다.
◑4. 아론의 제사장직 승계
출29:29 “아론의 성의는 후에 아론의 아들들에게 돌릴지니
그들이 그것을 입고 기름 부음으로 위임을 받을 것이며”
아론의 성의를 누구에게 돌리라고 그랬어요? 그 아들들에게 돌려라.
▶“세습은 무조건 나쁘다” 이거는 비성경적인 개념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세운 성직이 제사장이었습니다. 그 제사장이 세습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세운 게 왕이었습니다. 그것도 세습이었습니다.
“세습은 무조건 나쁘다” 그거는 바른 게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유명한 목사님들이 거의 다 세습입니다.
빌리 그래함과 그 아들, 케네스 해긴과 그 아들, 오랄 오버츠와 그 아들,
거의 유명한 분들 뭐 많습니다.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만약에 자격 없는 아들을 들이려고 할 때 나쁜 것이지.
세습이냐/ 아니냐를 논할 거는 없습니다.
이 사람이 적격자냐/아니냐. 그것만 논하면 됩니다.
(혹시 이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갖고 계신 분이 있다면, 그 의견도 존중하겠습니다.)
▶신약시대에 와가지고 물론 사도들은 세습을 안 했습니다.
베드로가 자기 친아들에게 사도직을 물려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신약시대 때에는 사도의 직분들이 어떻게 승계되었습니까?
디모데가 성경에 보면 나중에 ‘사도’로 나옵니다.
실라가 나중에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를 가리켜서 바울이 뭐라고 그럽니까? ‘내 아들’이라고 그럽니다.
친아들이 아닙니다. 영적인 아들입니다.
디모데를 가리켜서 아들이라고 그럽니다. “내 참 아들이다.” 딤전1:2
디도를 가리켜서 “참 아들이다.” 딛1:4
이런 사람들이 사도가 되었습니다.
구약 시대 때에는 육적인 승계였습니다.
그러면 신약시대 때에는 영적인 승계로 흘렀습니다.
부적격자를 자기 친아들이라고 후계자로 세우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 뜻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친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역차별 하는 것도.. 똑같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진짜로 영적인 아들인가?
누가 진짜 영적인 아들이 되가지고 그 흐름이 흘러내려가고 있는가?
그것을 분별해야 되겠죠.
그래서 자기보다 훨씬 가능성을 갖고 있는 사람,
자기의 영적인 아들이면서 저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 그 사람이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다음 세대에 더욱 왕성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나는 때때로 어떤 부목사님들에게 개인적으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종에게는 유산을 물려주지 않는다.”
어떤 주인이 정신 나갔다고.. 종에게는 사례할 뿐입니다.
‘나는 절대로 종에게 유산을 물려주지 않는다. 나는 아들에게만 유산을 물려준다.’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여기 부목사님들이 많이 있지만
부목사님들을 보면.. 종이 있고, 아들이 있습니다.
종에게는 사례비만 줍니다. 그리고 일 시킵니다.
그러나 아들에게는 영적인 유산을 물려줍니다.
그래서 부교역자 중에 어떤 사람이 교만해지거나
부교역자 중에 어떤 사람이 반역의 영이 들어가거나
부교역자 중에 어떤 사람이 그 속에 판단하는 마음이 들어가거나 그러면
내가 개인적으로 불러놓고 자주는 아니지만 그런 얘기를 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나는 종에게는 유산을 물려주지 않는다. 나는 아들에게만 유산을 물려준다.
종이 되지 말아라. 아들이 되어라.
엘리야의 갑절의 영감을 물려받은 엘리사를 보아라.
엘리사가 갑절의 영감을 받기 전에 엘리사를 무엇이라고 불렀는가를 기억하라.”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라고 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 그러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선지자여!” 그러지 않았습니다.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그랬습니다. 왕하2:11
(※왕하13:14 엘리사가 죽을병이 들매 이스라엘 왕 요아스가 저에게로 내려가서
그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가로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여 하매’
-이것은 순수한 마음이 없이, 그저 입술로만 그렇게 했다고 봅니다.)
▶여러분, 영적인 은사의 상속도 ‘종’에게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들’에게만 이루어집니다.
여러분은 종입니까? 아들입니까? 이 교회에 다니면서
아주 충성할 수도 있고, 봉사할 수도 있고, 열심히 일할 수도 있고
그러면서도 교회에 대한 판단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쿵저러쿵 이런 사람은 ‘종’입니다. 원래 ‘종’은 불평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흠이 없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아버지를 사랑하기 때문에, 또 그 사랑을 알기 때문에
그냥 사랑하고 따르고 섬깁니다. 그게 아들입니다.
영적인 승계는 거기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굳이 노아의 아들들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개척 멤버들 잘라라. 그래야 배신을 당하지 않는다. 개척 멤버들 반드시 배신한다.”
노회에서 제일 나이 많은 목사님이 진지하게 나를 불러놓고 두 번을 얘기해줬습니다.
(아마 개척교회 시절에 목회자는 '어리고 겸손했는데',
나중에 교회가 커져도, 개척멤버들은 여전히 그 목회자를 '어리고 겸손하게' 대우하겠지요.
아마 거기서 갈등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스탈린도 집권한 후에, 자기 초등학교 친구들을 다 없애버렸다고 합니다.)
또 다른 목사님이 옆에서 얘기했습니다.
“목사님 잘 들어야 되요. 그렇게 해야 되요.”
그래서 내가 웃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만큼 가장 가까웠던 사람, 가장 신뢰했던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배신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건 표면을 봐서 그렇습니다. 그건 표면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기도하는 거만 봐서 그렇습니다. 헌금 드리는 거만 봐서 그렇습니다.
자기를 대접하고 섬기는 거만 봐서 그렇습니다.
저는 그런걸 보지 않습니다. 저는 그런 거 때문에 누구에게 마음을 주지 않습니다.
그런 거 때문에 누구를 믿지도 않습니다. 저는 그 사람이 겸손한가를 봅니다.
겸손한 자가 아니면 믿지를 않습니다. 겸손한 자가 아니면 권위를 위임하지 않습니다.
왜요? 겸손한 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 막 의심하게 되어있는 게 아닙니다.
막 서로 의심하고 견제하고.. 그렇게 살게 되어 있는 게 아닙니다.
겸손한 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겸손한 자들은 믿을 수 있습니다.
대적과 반역은 교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도록, ▣ 리더쉽, 목회자
평소에 제가 말씀으로 잘 지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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