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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0

자살 충동은 잠깐의 착각 2625

LNCK 2010. 9. 1. 08:22

◈자살 충동은 잠깐의 착각

 

 

여러 편의 설교문에 등장했던 <자살 관련 조각글>들을 한 자리에 모아서 정리해 둡니다.

이전에 소개했던 글들은 http://blog.daum.net/yhbg67/6906535 을 클릭해서 보세요.

 

 

◑1. 관계가 좋은 주부들은.. 자살율이 거의 없습니다.

  

       얼마전 버스를 탔는데, <여성시대>라는 프로에서

      한 슬픈 여인의 편지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IMF시대에 직장을 잃은 가장이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그리고는 죽음이 최선이라고 믿고, 죽을 방법을 찾다 마침내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아내가 탄식을 하며 울부짖었습니다.

아내는 말하기를,

당신이 무엇을 벌지 않아도, 그저 내 곁에 있기만 해도 되는데, 왜 먼저 떠났느냐고.


그런 아내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고, 남편은 자신이 돈을 벌지 못하니까,

더 이상 자신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이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연약한 남자들.. 높은 자살률이 그 증거

우리나라 자살률이 OECD 국가 중에 최고라는 합니다.

그런데 자살률도 연령대에 따라 차이를 보입니다.


우리 생각엔 젊은이들이 자살이 많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2005. 10월 1일자 모 일간지에 보니까 전체 자살의 약 30%(28.8%)가

60대 이상의 노인들이었습니다. 연령대별 최고였습니다.


그런데 주로 여자는 없고, 남성들이 자살을 많이 하는 걸로 나와 있습니다.

왜 노인 남성들의 자살률이 높을까요?


그것은 바로 정체성의 위기에서 오는 것입니다.

남성들은 밖에서 돈을 벌어야 존재의미를 느끼는데

퇴직을 하면 그게 다 없어지는 겁니다.

삶의 어떤 의미를 못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산다는 것은 힘겨울 수밖에 없겠지요. 


그때 그 괴로움을 이길 수 있는 힘은.. 소중한 관계입니다.   

왜 여성들은 자살이 적을까요? 왜 여성들을 나이가 들어도 괜찮은 것일까요?

여성들은 관계를 잘 맺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성들은 집에서 자녀와의 유대가 공고하니까, 관계가 깨지지 않고 유지가 됩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가면서 여선교회 회원들이나 소그룹 식구들

그리고 이웃들과도 관계를 잘 맺습니다. 


여성들은 퇴직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늘 집에서 자녀 뒷바라지 하고, 살림하니까요.

그렇게 관계가 공고하니까 별 외로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런데 남자는 어떻습니까?

관계란 게.. 평생 함께 하다시피한 직장 선후배, 동료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그 관계는 퇴직하면서 다 끊어지게 되지요.


그 동안 직장 생활한다고 자녀들에게 소홀했지요? 자녀들이 불편해 합니다.

아내에게도 큰 소리 칠 줄만 알았지, 다정하게 대해줄 줄 모릅니다.

교회도 잘 안 다니니까 끈끈한 관계라는 형성이 잘 안 됩니다.

그럴 때 위기가 찾아오면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함께 인생을 오래 살아갈 사람들에게 평소에 잘 해야 됩니다.

정말 서로들 있을 때 잘 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나와 함께 오래 살아갈 가족들, 교회 식구들, 이웃들이

삶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 힘이 되는 겁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전4:9~10)    

                                                              (이 단락 출처 http://blog.daum.net/rfcdrfcd/15972712)

 

 

◑2. 평소에 쉼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자살하는 이유 - 그 마음에 쉼이 없기 때문

최근(2007년 2월)에 탤런트 정ㄷ빈양이 젊은 나이에 또 목숨을 끊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자살하는 이유는

‘돼지가 지붕 아래서 한가롭게 쉴 수 있는, 그런 쉼이 그에게 없었기 때문’이라고!
(집 가家는 지붕 아래 돼지豕가 쉰다는 모양으로 되어 있음)            *豕 : 돼지 시


물론 그에게 좋은 집도 있었고, 편안한 침대도 있었겠지만,

‘마음의 쉼, 정신의 쉼, 영혼의 쉼’을 얻을만한 ‘정신적 여유,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3차원의 현실적 공간/집은 있었지만, 4차원의 영혼의 공간/집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여호와께서 세우시는 집이 세워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가정에는 ‘한가한 틈’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래야 쉼이 생긴다.

남편이 직장에서 퇴근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과연 어떤 주부가, 남편에게 ‘틈과 쉼’을 줄까?


‘여보, 오늘 회사에서 일 잘 했어?’

‘응, 열심히 했는데, 잘 안 돼!’

 

‘이리 갖고 와 봐, 내가 도와줄께!’

-이러면 절대 안 된다.


남편이 직장에서 하루 종일 시달리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이제 집에서 좀 쉬려고 하는데,

또 회사 일을 들먹이면서 뭔가를 재촉하는 것은... 쉴 수 있는 틈을 없애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아내가

남편이 바깥에서 뭘 하는지, 전혀 모르는 편이 더 낫다.

거기에 대해 지식이 전혀 없으니까, 뭘 물어볼 수도 없고,

그러니까 남편이 집에 와서는, 회사 일을 다 잊고, 그 밤에 쉴 수 있는 것이다.


그럴 때, 다음 날 아침에, 다시 회사로 출근하고 싶은 활력이 생기게 된다.

밤에 집에서 충분히 쉬었으니까.

그래서 어쩌면 무식하게 살림만 하는 아내가.. 남편 내조를 더 잘하는 게 된다.


남편이 밖에서 사는 세계와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사는 여자..

그래서 남편 직장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여자..

어쩌면 이런 아내가, 남편에게 더 푸근한 쉼과 틈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남편의 직장생활의 고리를.. 집에서 (좋은 의미로) 끊어주는 것이다.


가정에서 아내가, 직장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 남편의 마음을 빨아들인다.

그래서 남편이, 가정에서만큼은, 직장 일을 잊고서, 쉼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어떤 아내는, 남편 내조를 잘 하기 위해서

(과거에 ‘내조의 여왕’이라는 인기 연속극도 있었다.)

하루에 남편에게 전화를 대여섯 번씩 하면서, 

일일이 코치하고, 조언하는 아내가 실제로 있는지는 .. 잘 모르겠다.

- 그런 것은 내조가 아니다. 도리어 남편을 망친다.


아내가, 남편과 전혀 다른 세계를 살면서,

가정에 돌아온 남편에게, 전혀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그래서 남편의 마음에 ‘쉼과 틈’을 주는 것이.. 정말 고차원적인 내조이다.



◑3. 자살의 이유가 '돈'이라면..

 

뭔가 자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너무 커서, 감당을 못해서.. 자살한다.

그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은.. 경제(돈)문제라고 한다.

돈을 신god으로 섬기던 사람은, 돈 문제가 생기면.. 절망하고, 자살한다.


‘자살이 지옥 갈 죄인가?’에 대해서.. 신학자끼리 서로 생각을 달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도 물론 큰 죄지만,

그 보다 그 ‘동기’가 더 큰 죄라고 본다.


만약 ‘돈’을 신으로 섬기다가, 낙망하고 자살한 것이라면.. 구원받지 못한다.

만약 ‘자아’를 신으로 섬기다가, 낙심하고 자살한 것이라면.. 구원받지 못한다.

각종 ‘우상’을 자기 신으로 섬기다가, 절망하고 자살한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자살’이라는 외적 행위 이전에,

자기 마음속에 하나님 말고, 다른 우상을 섬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자살자가 구원받기 매우 어려운 이유이다.

 

 

◑4. 장애우로서 자살 충동을 이긴 닉 부이치치 

 

닉 부이치치 Nick Vujicic는 호주 브리즈번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테트라 아멜리아 신드롬’이란 질병으로 양팔과 양다리 없이

발가락 두 개가 달린 작은 왼발 하나만 있었던 그는

남다른 자기 몸에 절망하여 8살 어린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습니다.


삶의 이유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팔 다리가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계획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적 상황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세계에 꿈과 희망을 전하고 다닙니다.

우리나라에도 찾아온 부이치치는 말합니다.

"저는 팔다리가 없지만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자랑스런 피조물이니까요.

여러분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그는 자살 충동에 시달릴 때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시각장애인을 고치신 예수 이야기를 읽고

자신이 소중한 사람이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기쁨보다 좌절과 고통을 먼저 배운 그였지만

거듭나는 체험을 통해 수영, 줄넘기, 골프, 농구를 해냈습니다.

대학에서 회계학과 재무학도 복수 전공하였습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수족 없는 삶(Life Without Limbs)' 이란 장애인 단체를

만든 후부터, 전 세계를 다니며 희망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한 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절망했을 때 자살했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겠습니까?

그러니 조금만, 아주 조금만 참고 깜박깜박 꺼져 가는 불꽃을 부여잡고

예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그 분은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넘치는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장애는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며

하나님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것이 곧 인생의 성공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미래를 알 수 없기에 항상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 그의 행복론입니다.


"사람들은 돈과 섹스 마약 같은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일시적인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깨어진 가정을 회복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사랑과 행복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희망은 전염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나를 보고 단 한사람이라도 삶에 용기를 얻는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5. 너무 유약하게 키우면.. 어른이 되어서 쉽게 포기한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자녀들의 문제가 뭐냐고요?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는 유약한 문화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집집마다 자녀가 하나, 둘이니까 다 왕자같이, 공주같이 길러냅니다.

고난을 못 이깁니다. 아무것도 못합니다.

뭐든지 필요를 부모가 다 들어줘 버립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자기 힘으로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여러분, 군대 들어갈 때 20대 초반이 얼마나 강인한 나이입니까?

인생 중에서 가장 강인한 힘과 에너지를 소유하고 있을 때 군대 나가잖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군대 자살률이 얼마나 높은지 아십니까? 왜 그래요?

유약한 문화에서 왕자같이 살아왔기 때문에, 군대 훈련을 이겨내지 못해서 입니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자살률 1위로 매우 높은 것도,

벌써 어릴 적/청소년 때부터 너무 편하게 자라나서 입니다.

부모들은 자식이 돈이 필요하다고만 하면.. “그래, 그래!” 다 들어줍니다.

자기가 사회 나가서 피땀 흘려 노동을 하고

시간당 돈 몇 천원을 받아 들었을 때 “와! 돈이 이렇게 귀중한 거였나?”

그때 비로소 인생을 알게 되잖아요?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1학년쯤 되면, 나가서 그렇게 (알바) 경험을 다 하게 합니다.

‘부모가 주었던 돈의 귀중함이 이런 거였구나!’



◑자살자 중에 유독 기독교인이 많은 이유


(먼저 과거에 자살하신 분과, 슬픔을 당한 그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의로를 표합니다.)


자살자들 중에 유독 기독교인이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면 그들 중에 왜 유독 기독교인들이 많을까요?

한 번 이렇게 생각을 해 봅니다.


①기독교가 현세적 성공 가치관을 너무 강조해서 전파하고,

거기에 혹해서 기독교에 들어온 사람들이

아무리 하나님께 빌고 기도해도,

자기 현실이.. 자기 기대에 너무 미치지 못하니까

좌절감 속에서 오래 동안 방황하다가..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봅니다.

 

②바꾸어 말하면, 기독교가 내세적 가치관을 별로 심어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현세적 가치관도.. 올바르지 못한 것을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 믿으면 누구든지 성공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지 않거든요.

 

현실이 아무리 고달프고 어려워도

신자는 본향을 향하여, 현실의 괴로움을 인내하며 나아가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인데,


꼭 이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서 축복받아 성공하는 것이 신앙의 본질이며,

현실에서 잘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뭔가 자기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라는 식으로 기독교 메시지가 계속 전파된다면

‘자살=기독교인’이라는 공식은 당분간 계속될 것입니다...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자기 삶을 지탱할 어떤 고상한 (신앙적)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니까,

극단적인 길을 선택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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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고백하며 사는 삶이 필요합니다.

 

▲자기 고백, 자기 표현이.. 정신을 건강하게 합니다.

다윗의 생애 중에 가장 힘들었던 때는,

밧세바를 취하려고 그 남편 우리야를 죽게 한 후에

나단 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들었을 때일 겁니다.


그때까지 다윗은 모든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왔던 훌륭한 왕이었어요.

그런 그가 무고한 자기 부하를, 특히 온갖 충성을 다했던 우리야를 죽게 했을 때

그는 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그 일을 저질렀어요.


나중에 1년이란 세월이 지난 후에, 나단 선지자가 그 일을 심하게 책망합니다.

그때 뒤늦게야 다윗은, 자기 죄를 들여다보면서 하나님 앞에 꼬꾸라집니다.


다윗이 괴로워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무고한 생명을 죽이고도, 1년이 넘도록,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던 거예요.

그런 자기 심성에 경악한 겁니다.

양심이 무뎌질 대로 무뎌졌다는 그 사실에 전율한 거예요.

 

어쩔 수 없이 범죄하고 마는 자기 내면의 죄성에 대해 절망한 거예요

그 마음을 그대로 내놓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고백했던 글이

오늘 우리가 읽었던 시편 51 편입니다.

여러분! 한 번 이 시편 51편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낭독해 보십시오.

다윗의 마음이 전해져 올 것입니다. (낭독)


벌써 1년이 넘었군요. (이 설교문은 2006년 4월경)

작년 이맘 때, 제가 좋아했던 영화배우 이은주 씨가 자살을 했습니다.

그의 죽음을 접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죽음으로 몰고 갔던 그 상황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만큼은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그렇게 죽겠으면, 좀 누구한테 얘기라도 하지,

왜 그걸 혼자 갖고 있었느냐 하는 겁니다.

사람은 자기 속내를 털어놓을 대상이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쉽게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고백이 습관이었고, 그의 고백들이 모두 작품이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다윗의 삶과 시편을 연구해 보면, 그는 고백이 습관화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 그의 생활의 일부였다는 거예요.

그게 그의 시로, 음악으로, 건축으로, 예술로 활짝 꽃을 피운 거지요.


▲로마인의 부부싸움 해결법

시오노 나나미의「로마인 이야기 1권」에 보면

부부싸움의 여신 비리프라카 얘기가 나옵니다.

로마인들은 부부싸움이 일어나면 부부싸움을 중재해 주는

비리프라카 여신의 신전으로 찾아 갑니다.

물론 신전 안엔 아무도 없지요.

그래도 거기서, 그 여신에게, 부부는 서로 자기의 입장을 주장합니다.


그런데 거기엔 한 가지 룰이 있는데

그 여신에게 얘기할 때, 한 번에 한 사람씩만 얘기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끝나야.. 이어서 다른 사람이 여신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인이 얘기할 때, 남편은 그 얘기를 고스란히 들어야 하는 겁니다.

그런 후에 다시 남편이 얘기하면, 또 부인이 다 듣습니다.


그렇게 신한테 이르는(고자질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어떤 부분은 ‘그래 그건 일리가 있는 얘기네’

‘아! 또 집사람 입장은 그런 거였구먼!’ 하면서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신전을 나올 때는, 손을 잡고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얘길까요?

사실은 자기 마음을 배우자에게 다 고백하는 것입니다.

고백을 하니까 그 자리에서 카타르시스가 되는 것입니다.


보통 부부싸움은 어때요?

누가 더 총알처럼 빠르게, 대포처럼 크게 떠들어서 기선을 잡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래가지고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반드시 고백의 대상을 정해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카운슬러같은 하나님, 친구 같은 하나님,

그 하나님이 여러분의 고백을 받으시고 위로하실 것입니다. 

                                            *이 단락 출처 : http://blog.daum.net/rfcdrfcd/15972673

 

 

◑58세에 거듭난 여의사 이야기


▲눈에 띄게 생기발랄한 여의사

대개 병원에 가서 의사들을 접해보면, (의사 선생님들은 이해하고 들어 주세요.)

병원 일이 워낙 바쁘게 움직이고,

또 늘 아파서 얼굴 찌푸린 사람, 병으로 힘든 사람,

이런 사람들을 하루 종일 대하다 보니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을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면,

방긋 방긋 웃고 얼굴이 생기발랄하고 활기가 넘치는 의사를 보기 드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병원에 갔다가, 눈에 띄는 여의사 선생님 한 분을 보았습니다.

그는 60대 여자 의사였는데 보기에 너무 달랐습니다.

그냥 옆에서 보기에 벌써 ‘아니 어떻게 저런 사람이 다 있나!’할 정도로

얼굴에 생기가 가득하고,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른 의사였다고 합니다.

 

‘세상에 저런 의사도 있구나, 저 사람은 어떻게 해서 저런 밝은 얼굴 표정으로

사람을 대하나? 어찌 저런 표정이 가능한가?’ 하며 속으로 감탄하고 있는데,

이분 이 더 놀란 것은, 그 여자 의사가 책상에 앉아 있다가 옆으로 나오는데

두 다리가 모두 없더라는 것입니다.


▲남편 사별 후 자살 기도, 그 후 8년간 목숨만 연명하며 지내다

사실 이 여자 의사에게는 남다르게 많은 사연이 있었습니다.

이분이 의사로 활동하다가, 나이 50세에 갑자기 남편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부부간 금슬이 남달랐던지라, 남편이 죽자 상실감이 너무 커서

그는 자살하기로 결심 하고,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었답니다.

그런데 두 다리만 잃고 목숨은 건졌습니다.


목숨은 건졌지만, 이분은 인생을 완전히 포기했다고 합니다.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었던 사람이니, 그때 이미 인생을 포기했었지만,

이젠 두 다리까지 없는 불구자가 되었으니, 무슨 소망이 더 있었겠습니까?


결국 이분은 노인 병원으로 환자로 보내졌답니다.

당시 50세였으니, 노인 환자들에 비하면 그 병원에서 제일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년 동안 침대에서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모든 의욕이 상실되고 그저 죽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지만

죽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8년 동안 침대에 누워 있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목숨만 연명만 한 상태에서.. 세월만 보낸 겁니다.


▲58세에 어느 날, 전도를 받다.

그런데 이분이 8년째 누워있던 58세가 된 해였습니다.

병원에 가끔씩 와서 환자들에게 책도 읽어주고, 얘기도 해주고,

전도도 하는 팀이 있었습니다.


그 팀의 한 일원(이하 팀원)이, 이 부인(여의사) 앞에 와서 섰습니다.

그 팀원은 이미 간호사로부터, 부인에 대한 얘기를 들고 마음이 몹시 아팠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럴 수가 있을까. 남편을 잃은 것도 큰 고통이고,

죽기로 작정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지금 두 다리를 잃고 살아남아서

8년을 침대에서 한 번도 내려오지 않고 세월을 보내다니...’


그 팀원은, 침대에 누워 있던 부인을 보고

자기도 주체할 수 없는 마음으로 그 부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접근을 했습니다.


‘얼마나 힘드십니까?’

그리고는 서로 눈을 마주 치면서 대화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팀원은 보기 흉하게 잘린 다리를 만져주면서

‘얼마나 힘드시냐, 얼마나 힘들면 당신이 이런 고통을 스스로 취했겠느냐’면서

잘린 다리를 자꾸 만져주고 마사지를 해주었습니다.

아마 그래야 신경도 통하고 피도 통하는 모양입니다.

 

▲마음이 열리고, 얼굴에 광채가 비치다.   

누구도 인생을 포기한 자기를 찾아와서

이렇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 팀원의 위로에 누워 있던 이 부인도 놀란 겁니다.


그 팀원은 ‘하나님이 당신의 고통을 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그 끔찍한 고통을 당하신 것은

당신의 이 고통을 면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이 부인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팀원이 복음을 전하면서 맨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답니다.

‘당신이 남다른 고통을 당했지만, 당신이 이 고통을 극복하고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아가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섬길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보낸 천사가 틀림없습니다.

천사는 두 다리가 없어도 하늘을 날 수 있습니다!’
        

이 부인이 8년을 병석에 누워 있다가, 이 전도를 받으면서

자기 마음에 한 줄기 빛이 비추어지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전도하는 팀원이 보기에도,

이 부인이 30여분 함께 대화를 하는 동안에

얼굴이 밝아지고 광채가 나기 시작하는 것이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 부인은, 마치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다시 의사로 활동을 재개하다.

얘기(전도)를 마치고, 기도가 끝나고 나니,

이 부인은 간호사한테 휠체어를 갖다 달라고 하면서

8년 만에 처음으로 침상에서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 부인은 자기에게 메시지를 전해준 그 팀원의 말대로,

아니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다리 없는 천사의 삶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의사로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속에 새로운 소망이 생겼으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목표를 제대로 잡은 것입니다.        1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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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식한 전도가 자살자를 살리다

 

제가 어떤 신학생을 군대에서 만났는데, 그는 성경지식이 너무 형편없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정신이 나가서 미친다’로 오해하고 있었다.

좀 무식한 친구였다.

그래서 자기는 ‘그리스도께 돌아버리기/미치기 원한다’는 것이다. 위 구절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그의 잘못된 성경지식을 교정해 주는, 나를 통해서는, 사람들이 예수를 안 믿는데,

그 무식한 신학생(전인덕)을 통해서는, 전도가 막 되는 것을 보았다.


그 친구의 간증 한 토막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가 하루는 성경을 읽다가, 이 구절이 자기 마음에 뜨겁게 와 닿았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눅10:5

 

      그래서 그는, 그가 방학동에 살 때인데,

자기 동네 통 반의 모든 집을 찾아가서, 집집마다 대문을 두드리면서

‘평안하십시오!’ 라고 자기가 먼저 평안을 빌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어떤 사람이 막 자살하려고 하다가

그 친구의 방문을 받고, ‘평안하십시오!’ 라는 말을 듣고는

깜짝 놀라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보낸 사람인줄 알고, 자살을 포기했다고 한다.


이 간증을 말씀드린 것은,

지식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순종의 삶이라는 것이다.

(물론 어떤 비정상적인 행동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의 강권하심이 강하게 올 때는.. 비정상적인 행동이라도 안 할 수 없다.)       ▣ 크리스천 리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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