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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신혼여행 2627

LNCK 2010. 9. 1. 19:11

◈태초의 신혼여행                              창1:31-2:3                           -스크랩, 출처-

 


◑하나님께 정말 쉼이 필요하실까요?


창세기 1장 마지막 절과 2장 첫 부분에서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여

그 의미의 중요성이 계속 확인되는 하나의 아주 중요한 개념이 하나 등장합니다.

‘안식’이라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 선택 받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안식 개념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으로서의 정체성identity 의 핵심입니다.


주님께서도 복음서에서 보면 끊임없이 이러한 안식의 문제를 언급하고 계십니다.

전파하시는 천국 복음을 받아들이는 일과,

안식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그만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이제 그러한 단어 ‘안식’이 성경에서 창세기 서두부터 등장합니다.


▶창2장에서 ‘안식’의 의미

우리는 창세기 서두에 나오는 이 하나님의 ‘안식’에 관한 말씀을,

별 생각 없이 곧바로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하는 습성이 생겨 버렸습니다.

그래서 안식에 대해 언급할 때면, 예외 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쉬는 것이 안식'이야.

하나님께서 일주일 동안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 쉬었기 때문이지’

 

우리는 안식일하면 의례히 그렇게 '쉼'으로 생각하고 이해합니다.

안식일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샤바트' 역시 '쉰다 rest'는 뜻입니다.

 

그래서 ‘안식’이란,

일주일 동안의 수고로운 노동이나 활동의 과정 뒤에 따라오는 '쉼'이란 이해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첫 번째 인간 아담이 맞이한 첫 번째의 안식은

그러한 당연해 보이는 안식 이해와 전혀 맞지 않습니다.

아담의 안식은, 노동과 삶의 수고와 활동이 끝난 뒤에 뒤따라 온 것이 아닙니다.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아담의 안식은,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었습니다.

아담이 6일째 창조되었고, 7일째 하나님이 안식하셨으니까,

아담이 태어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안식이었고, 그것은 하나님과 교제였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의 개념은 ‘수고와 노동 뒤의 쉼’보다는,

애당초 ‘하나님과 교제’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수고와 노동 하기 '전에'요..


▶하나님은 안식(휴식을 의미)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에 걸쳐서 온 세상을 다 창조하시고 난 뒤

칠 일째 안식하셨다는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 말씀을 그대로를 받아들이면서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생각도 한 번 가볍게 해봅니다.

 

하나님께서 그 엄청난 천지창조의 대 역사를 오직 말씀 만으로만 이루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마치 저 같이 형편없는 사람이 설교하듯이

그렇게 낑낑 대시며 힘들게 준비하시고,

목에 힘을 주어 에너지를 불태우면서 웅변적으로 말씀하여 창조하셨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광경을 상상하면 ‘빛이 생겨라’ ‘땅이 생겨라’, ‘바다가 생겨라’, ‘땅위의 모든 짐승이 생겨라’

이렇게 말씀 한마디 가볍게 하실 때마다 딱! 딱! 딱! 창조가 됐을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뭐 그다지 ‘쉼’(안식)을 필요로 하실 만큼

힘이 드셨겠나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만약 제가, 6일 주일 동안 부흥회에 초대받아 설교 말씀을 전했다면

그야말로 7일째 안식이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피곤을 모르실 하나님께서 뭐가 그리 힘드셨기에,

많이 움직이신 것도 아니고, 말씀만으로 세상을 지으신 뒤에

쉼(안식)의 시간을 뭐하러 가지신다는 말입니까?


즉 태초의 하나님의 안식에는, 당신 자신의 쉼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뭔가 모를, 사람들을 위한, 특정한 의도와 뜻이 들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태초의 신혼여행


▶아담의 생애 ‘첫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혹은 그 다음 날

6째 날에,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서 의식을 갖고 처음으로 맞이한 날은,

바로 안식일이었습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안식일은, '그 날 저녁'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다음 날'이라고 해도 크게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아담은 태어나자마자 '안식'부터 가졌습니다.)


이제 이렇게 놓고 보면, 뭔가 좀 묘한 느낌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엿새 동안 일을 하시다가, 일 끝에 안식을 맞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서 맞이한 첫째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안식하고 계신 그 날에

사람은 비로소 태어나서, 안식일부터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어떤 뜻입니까? 사람은 일을 하고 나서 안식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안식을 먼저 경험하고, 이제부터 삶이 진행될 참이었습니다.

좀 이상하지만 어쨌건 일하고 쉰 것이 아니라, 먼저 쉬기부터 했다는 겁니다.


▶인간 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사전 배려

다시 한 번 창조의 역사가 진행되던 태초의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일을 하셨고, 그 일의 과정 중에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다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한 사람을 위한 완벽한 준비의 총 집산지가 바로

‘기쁨’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에덴동산 아닙니까?


그 다음에, 즉 인간을 위해 이루신 에덴의 형성 후에, 하나님은 안식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 놓으신 뒤에,

그리고 하나님 당신 자신이 안식하시기 직전에, 비로소 사람이 태어나게 하신 것입니다.


참 괜히 마음에 눈물이 나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이 깊은 사랑과 배려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보자면,

내가 이제부터 열심히 일을 해서 갈고 경작한 뒤에야

무언가 작든 크든 결과를 손에 쥘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날마다 무언가를 스스로 갖추어야 되고 준비해야 하는

그런 조건 안에서 태어난 피조물이 아닙니다.


그와는 정반대로,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는 상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세상에서 첫 번째 한 일은, 바로 ‘안식’이었다는 겁니다.


▶순서를 눈여겨보세요.

‘안식’이라는 말을 대할 때면

늘 우리는 자동적으로 열심히 일하고 활동한 끝에 오는 쉼의 날로서만 이해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지금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정반대입니다.

안식의 개념은 인간의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처럼 끝이 아니라, 시작에 안식이 자리하는 삶의 리듬!


이것 역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라고 하는 히브리식 시간 패턴과 마찬가지입니다.

‘저녁에 쉬고, 아침에 일한다’는 말이지요. 안식부터 취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듯이 ‘아침부터 일하고 나서, 저녁에 쉰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가 늘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쉬게 되는 저녁을

오히려 하루의 시작으로 보는 시간의 패턴 안에서 하나님은 천지를 조성하셨고,

그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아담과 하와의 생애 첫 번째 날(혹은 바로 그 다음 날)

바로 하나님이 안식하시던 날이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의 맥은,

     일하기 전에 먼저 쉬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 쉼이란.. 먹고 자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만남’을 위해 선택된 시간이었습니다.

자, 그러면 사람이 생애의 첫째 날로 맞이하게 된 이 ‘안식’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만남, 교제’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이 인격체와 최초의 만남을 위한 세팅으로, 에덴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만남을 위한 타이밍으로 안식의 날을 정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조금은 긴장하셨을 수도 있었을 것 같은 상상이 들지 않습니까?

이 상황에서는, 몇 년 동안을 펜팔로만 사귀던 외국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는 공항으로 향하는, 한 청년의 마음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시지만, 조금이나마 긴장하시는 것은 혹시 아닐까요? (물론 아니지만)

어쨌든, 긴장되고 기대되는 첫 사람 아담과의 처음 만남을 위한

최적의 타이밍을 안식일로 잡으신 것이지요.


그래서 안식일의 만남은, 마치 신혼여행과 같다고 비유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의 만남의 사건이, 마치 신혼여행 같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신혼여행이라는 게 대체 무엇입니까?

치열한 세상 속에서 새로이 가정을 꾸리고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전에 신혼여행을 통해, 신랑 신부가 서로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거지요.


그러기 위해 모든 다른 관심거리들로부터, 가능한 멀리 떨어져 떠나갑니다.

심리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신랑 신부 이외의 대상 일체를 의식의 저편에 넘겨버립니다.

기존의 가족도 직장도 동료도 또한 어떤 종류이든지 과제와 책임도

모두 다 뒤로 한 채 떠나는 것입니다.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 떠나 먼 곳으로 가서는

오로지 마음을 다 쏟아 상대방에게만 집중하는 겁니다.

이렇게 할 때, 신랑 신부가 서로서로에게 꿀처럼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신혼여행을 허니문honeymoon이라 하고요,

서로를 향해 허니honey 혹은 스위티sweetie 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상대방만을 위한 마음의 집중! 이것이 바로 신혼여행의 이유입니다.


예를 들어 신부를 앞에 두고 하는 신랑의 직장 염려!

적어도 이 신혼여행 기간 동안은 절대로 용납이 안 됩니다.

아무리 그것이 중대한 것일지라도 말입니다.


     이 대목에서 ‘안식일’을 연상하셔야 합니다.

     물론 신약을 사는 우리들은, 구약의 안식일 규례를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의 정신’을, 주일Sunday을 통해서 지키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태초의 첫 번째 안식은, 하나님에 의해 계획된 최초의 인간과의 신혼여행이었습니다.

이 첫 번째 안식일을 통해, 하나님은 첫 번째 인격인 아담이

하나님께만 마음을 집중하고, 하나님 자신을 꿀처럼 달게 느끼기를 바라셨습니다.

아담의 허니 honey가 되시기를 원하셨던 것이지요.

 

보통 쉼과 연관 되는 안식의 첫째 날은

사실 하나님의 피곤을 푸시려고 계획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담과의 친밀한 만남과 교제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과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이 소원을 따라 인간이 하나님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여건 조성을

안식일 전에 마치신 것이었습니다. (마치 신혼부부가 살림과 집을 장만하는 것처럼요)

그리고 바로 이것이 창조 활동의 핵심적인 의미였습니다.


“에덴까지 만들면서 이쯤 준비해놓았으면

이제 인간이 자기 삶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나만을 향해 마음을 쏟아 부을 수 있겠지. 그래 이제야 좀 안심이 되네!

이제 너희는 나에게 마음을 온전히 쏟아 부어 주겠니?”

 

창조활동을 끝내시던 하나님의 마음에 바로 이런 안도감과, 소원이 생기지 않았겠나

하는 추측이 듭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만남과 교제가

(그냥 말 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온전히 실제가 될 때면

내 삶의 에덴이 완성되어 진다는 사실입니다...                                                     ▣ 기독교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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