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0

설교자의 금, 은, 동, 철 2630

LNCK 2010. 9. 3. 20:37

◈설교자의 금, 은, 동, 철             -칼럼 스크랩, 출처-

 

*원제목 : 설교,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김명혁 강변교회 원로목사

 

“설교는 이고, 신학은 이고, 은사는 이다. 주님 닮으려는 삶이 이다.”

 

 

◑설교는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평생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방지일 목사님의 설교는 90여 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고,

정진경 목사님의 설교는 80여 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설교를 잘하려고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

주님 만남과, 사람 만남의 경험들이 쌓여야 한다.

 

은혜 체험도, 사랑 실천도 필요하고,

고난과, 아픔과, 슬픔과, 실패의 과정을 거치는 경험도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설교를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설교를 너무 잘하면 설교자가 드러나고 

십자가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전1:17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헬라의 지혜와 로마의 웅변술을 포기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했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십자가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기의 모습은

약하고, 두려워하며, 떠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고전2:1~3).

 

    요사이 목회자들이 설교를 잘 하기 위해서 방송국의 유명한 PD를 초청해서

    강연술을 배우기도 하고,

    청중을 사로잡는 설교자가 되기 위해 은사와 능력을 추구하기도 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설교는 조용조용히 소박하게 하는 것이 좋다

 

이동원 목사가 최근에 이런 고백을 했다.

 

“여러 유형의 ‘설교 세미나’에 강사로 불려 다녔습니다.

문득 이런 세미나에 참석하는 목회자들의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아마 상당수의 목회자들이

‘나도 유명한 설교자가 되어 유명한 설교를 하고 유명한 교회를 키우고 싶다’는

열망에 자극받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설교가 교회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수단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늘의 목회 현장에 떠오르는 또 하나의 극렬한 관심은

‘능력 목회’에 대한 것입니다.

이러한 능력 신드롬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성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하는 능력의 출처가 어딘지,

그 방법이 타당한지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암묵적으로 합의했는지 모릅니다...”

 

설교를 잘 하려고 동분서주하며 애쓰는 목회자들을 향한

무서운 경고의 메시지이다.

 

옥한흠 목사도 최근에 설교자가 범하기 쉬운 실수와 죄를

신랄하게 지적한 일이 있다.

 

“여러분 교회 안에 가만히 보세요.

목회자로서 할 말 다합니까? 말씀대로 가르칩니까?

죄를 죄라고 똑똑하게, 정말 가슴을 치면서 설교할 수 있습니까?

 

무슨 설교하려고 하면 앞에 앉아 계신 어느 장로님 걸려 못하고,

무슨 설교하려고 하면 어느 분이 걸려서 못하고,

무슨 설교하려고 하면 또 교인들이 마음 상해서 교인 줄어들까 봐 못하고….

 

이리 저리 못하다 보니까,

우리는 성경의 반 토막은 잘라 내고 설교하는 사람이라고

자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세속주의에 물들어가는 교회의 현실이라는 것이거든요.”

 

오늘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범하고 있는

간교한 실수와 잘못을 진솔하게 고백한 말이다.

 

설교를 너무 잘해서 성공하려고 하는 것도 문제이고,

설교를 너무 감동적으로 해서 청중을 사로잡으려고 해도 문제이다.

청중들이 듣기 좋아하는, 귀에 솔깃한 달콤한 설교를 하려고 해도 문제이다.

 

최근에 김삼환 목사가 어느 모임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에게 설교를 가르쳐 주신 두 분의 스승은

한경직 목사님과 방지일 목사님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어떤 모습과 스타일로 설교를 하셨을까 생각해 보곤 하는데,

조용조용한 모습으로 소박한 설교를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평소에 '말씀에 대해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그렇게 크게 소리쳐서 말 하지 않아도, 엄청난 파워가, 마음의 진정성이 그대로 전달 됩니다.

 

물론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셔서, 자기 목소리가 커질 때는, 크게 외쳐야 합니다.

 

그리고 물론, 영적인 힘을 잃어버려서 소곤소곤하게 설교하는 것을 두고서

'잘 한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진솔한 고백이다. 존경하는 신앙의 선배들의 삶과 설교를 본 받고,

주님의 삶과 가르침의 모습을 묵상하면서

있는 그대로 조용조용히 소박하게 설교하면 좋을 것이다.

 

 

내 멋대로 자유롭게

 

나는 오랫동안 설교와 신학과 은사를 너무 귀하게 여기며 사모하고 추구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말을 혼자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설교는 은이고, 신학은 동이고, 은사는 철이다. 주님 닮으려는 삶이 금이다.”

 

나는 목회 초기에 설교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설교 준비하는 데 너무 많은 신경을 썼다.

설교 준비할 때, 주석 책을 몇 권은 반드시 읽어야만 했고,

설교 내용도 신학적으로나 성경적으로 충실해야만 했다.

 

그런데 십여 년 전부터 나는 설교를 ‘내 멋대로’ ‘자유롭게’ 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무질서하게 되는 대로 했다는 말은 아니다.

성경의 중요한 가르침을 정한 다음,

이를.. 나의 삶과, 성도들의 삶과, 한국교회와 사회의 현실에 연계시키면서

내 멋대로 자유롭게 전개해 나갔다.

 

설교의 도입 부분은 물론, 설교의 내용을

내가 최근에 개인적으로 부딪힌 국내외적 사건들이나 성도들의 삶의 이야기들

또는 여러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을 소개하는 것으로 채우곤 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오늘의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일방적으로 주입식으로, 지식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설교자와 성도들이 경험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과 친밀하게 연결시키면서

생생하게 전달하려고 했다.

 

그런 설교가 나에게 은혜와 즐거움이 되었고

대부분의 성도들에게도 은혜와 감동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경우, 설교하는 것이 좋고 즐거웠다.

그리고 설교하고 싶은 의욕을 가지고 설교했다.  주1)

 

▶나는 한동안 주일마다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시리즈 설교를 70번이나 했다.

성경은 ‘신학책’이나 ‘도덕책’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이야기책’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벨의 순교 이야기’로부터 시작한 이야기 설교는

‘에녹의 동행 이야기’, ‘노아의 방주 이야기’, ‘아브라함의 축복 이야기’,

‘사라의 웃음 이야기’,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임종 이야기’, ‘모세의 건짐 이야기’에 이어

‘기생 라합의 놀람 이야기’, ‘기드온의 이김 이야기’, ‘삼손의 못 말리는 이야기’,

‘사무엘의 끝내주는 이야기’, ‘다윗의 눈물 이야기’ ‘솔로몬의 헛됨 이야기’ 등으로 이어졌다.

 

나의 부족한 ‘이야기 시리즈’ 설교를 듣고 감동과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한

강변교회 신자 두 사람의 글을 여기 줄여서 옮긴다.

 

 

“‘이야기’라는 독특한 형식이 주는 편안함과 설렘 때문에

매주일 기대와 호기심으로 설교를 기다리게 되었다.

한편의 이야기는 먼저 하나님께서 목사님에게 이야기를 해 주셨고,

목사님의 깊은 통찰력과 묵상을 통해 진솔하고 담백한 이야기로 완성되었다.

 

믿음의 인물 하나하나의 인생 전체를 기발한 제목과 새로운 시각,

재치 있는 단어를 통해 쉽지만 깊은 메시지를 전해 주셨다.

모든 말씀 앞에서 자신이 먼저 회개와 아픔, 눈물로 반응하셨고,

성도들의 잘됨을 위해 진심으로 간절히 권면하시고 축복하시는

아비의 심정을 가슴 뭉클하게 느낄 수 있었다” (백혜란 권사).

 

“나는 이야기 시리즈 설교 중, 노아와 에녹 이야기에서 많은 도전을 받고 울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 인상적인 것은 다윗의 눈물 이야기 설교였다.

목사님은, 과장해서 말하면 ‘눈물의 예찬자’라고도 할 수 있다.

약함을 예찬하고 정직함을 예찬하고 착함을 예찬하고 고난을 예찬하는데,

이 모든 것의 표징을 눈물로 보시는 것 같다.

 

우리에게 눈물의 사람이 되라고 누누이 강조하실 뿐 아니라

목사님 자신이 흘린 눈물의 고백도 즐겨 하신다. 목사님은 말씀하시기를,

다윗은 자기의 죄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바라보며 울었으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글로 옮길 수조차 없는, 또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통에서 오는 눈물,

분노가 아닌 긍휼의 눈물을, 울 기력이 없도록 울 수 있기를 원한다고 하신다.

다윗처럼, 목사님의 소원처럼 나도 그렇게 울고 싶다”(허영숙 권사).

 

.......................................

 

주1)

이런 설교는,

사실 설교자가 예수님 닮은 삶을 바탕으로 해서

설교자의 매일 말씀에 순종/실천하는 삶에서 우러나오는 .. 가장 감화력이 깊은 설교입니다.

가만가만 조용히 말하지만, 훨씬 더 회중의 심금을, 깊이/오래도록 울리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설교가, 설교자의 삶과 실천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설교 본문과 제목은 매 주일마다 계속 바뀌지만,

설교 주제와 내용은 매 주일마다 항상 동일한 설교(설교자의 자기 생각)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처음 배우는 신학도나 목회 초년병은

삶의 경험이나 경륜이 높은 경지에 올라갈 때까지

열심히 독서와 공부를 하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겠습니다.

위에서 말씀하는 ‘자유롭게’의 뜻을 오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이 단락 편집자 글                           ▣ 말 씀  

 

 

'분류 없음 > 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 되는 기적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2634  (0) 2010.09.06
설교 준비 2631  (0) 2010.09.04
태초의 신혼여행 2627  (0) 2010.09.01
자살 충동은 잠깐의 착각 2625  (0) 2010.09.01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0) 2010.08.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