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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통 트기 2641

LNCK 2010. 9. 10. 14:26

◈숨통 트기                                   창세기2:4~17                                        -출처, 정리-


 

▲도입 언제인가부터 한국문화를 풀이하는 키워드로

‘신바람’이라는 단어가 빈번히 사용되었습니다.

매우 기분이 좋아진 상태를 일컫습니다.


그러나 이규태 씨는 ‘신바람’을, 신(神)과 연결해서 풀이했던 적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진짜 신바람은 神바람이 불 때, 정말 가능합니다.


그런데 창세기를 보면, 진짜 ‘神바람’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神바람)를 후~ 하고 불어넣으십니다.

이때 비로소 그 흙덩이가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도 호흡’ 하시나요?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것은, 하나님도 호흡 하신다는 뜻이 아닙니까!



◑숨통이 틔다


제가 군에 입대할 당시, 저희 집이 굉장히 가난해서 달동네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은 전혀 앞이 안 보이고,

형님들도 뿔뿔이 군대에 가 계시거나,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 계셨어요.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할머니는 중풍으로 인해 반신불수가 되셔서 누워계시니

삶의 형편이 참으로 암울한 상태였지요.

바로 그런 어두운 형편에 제가 군대를 가게 됩니다.


입대하는 날 어머니가, 논산 훈련소로 가는 제게 김밥을 싸서 건네주시려고

집합장소인 성북(기차)역까지 오셨어요.

그런데 그 장소가 너무 인파로 복잡해서,

그만 저와 만나지를 못하고, 그 김밥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시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집 문에 들어서자마자 그 김밥 보따리를 집어 던졌다고 하시는 거예요.

저희 어머니가 그렇게 우악스러운 분이 아니시거든요.

그런데 왜 그러셨느냐 하면요,

아들이 가난한 살림에, 너무 고생만 하다가 군대를 갔거든요.


고생한 예를 들자면, 하루에도 일곱 번씩 멀고 먼 비탈길을 내려가

아래 마을에 가서 물지게로 물을 길어가지고 와야 됐었습니다.

그럴 때면 숨이 턱에 닿고 꼭 죽을 것 같았습니다.

또 몇 개월씩 오이냉국에 국수만 먹고 살아야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중풍으로 할머니가 앓아누워 계시고, 

또 제가 재수 삼수해서도 대학도 못 들어 간 마음고생에,

제 인생의 형편이 그야말로 바닥을 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렇게 아들이 마음으로 육체적으로 고생 고생하다 군대를 가게 되었으니

아들을 군대로 보내시는 어머니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너무너무 당신 마음에 아들이 불쌍해서

그래서 혹시 김밥이라도 건네줄 수 있을까 해서

없는 돈에 재료 사셔서 김밥을 말아 갔는데, 그만 만나지도 못하고 돌아오신 겁니다.

너무 속이 상하셔서 김밥 보따리를 확 집어 던지셨던 거지요.


이제 제가 논산에서 신병 훈련이 끝나고, 

기적적으로 미군부대 카투사로 배치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이 소식을 몇 다리 건너 듣게 되시고

얼마 안 있어 미군부대로 면회를 오셨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면회 오셔서 하셨던 말씀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너 때문에 그 동안 너무 마음이 아프고 걱정을 많이 했다.

고생만 시키다 군으로 보내는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정말 부모로서 미안했다.

그러다가 네가 미군부대로 배치되어 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그 은혜 때문에 혼자 방안을 수십 바퀴를 돌며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춤을 추었다.

이제까지 집안 형편 때문에 질식할 것 같다가, 숨통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여기서 무엇보다 ‘숨통이 열렸다’는 이 말이 참 중요하지요.

막내아들이 그나마 좀 윤택한 환경에서 군대생활을 하게 됨으로 인해

비로소 그동안 막혀있던 숨통이 열리면서 호흡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하나님도 숨통이 트이면서 숨을 쉬실 때가 있지 않겠습니까?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을 때 너무 기뻐하시면서 하셨던 말씀이

“네가 네 아들 독자까지라도 아까워하지 않고…”였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아들보다 하나님의 뜻과 소원을 더 아까워했고

그것이 바로, 불순종으로 가득 찬 당시 세상에서,

하나님의 숨통을 트게 했고, 너무 너무 기쁘게 해드렸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순종하신 성육신과 십자가도,

하나님의 숨통을 트게 했고, 하나님을 너무 너무 기쁘게 해드렸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3:16~17


하나님의 호흡하심이 막 느껴지지 않으세요?

저희 어머니가 저를 호흡하시듯이,

예수님을 호흡하시는 그 하나님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너무너무 아름답고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우신 아들 예수님 아니셨겠습니까?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산소이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내려오신 뒤에도 역시 그러하셨습니다.

지구 위의 모든 인간을 보시며 숨이 막혀 하셨던

아버지 하나님의 숨통을 열어드리는 유일한 인간이셨습니다.


그러면 이미 언급한대로 예수님은 무엇으로 숨통을 여는 이유로 삼고 사셨습니까?

당연히 아버지 하나님 아니셨겠습니까?

그렇게 아버지 하나님을 극진하게 생각하시고 사랑하셔서

십자가에 달리실 만큼 철저하게 복종하셨습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아까워하셨고

또 그 아버지 하나님이 있으셨기 때문에 숨통을 틔시고 사셨습니다.

특별히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두드러진 믿음을 표현하는 사람을 만나시면

“네 믿음이 크도다” 하시면서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이시면서 공생애를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로 숨을 쉬셨고

그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믿음으로 숨을 쉬셨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아들인 제게 잘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시며 마음의 숨통이 트이시듯이 말입니다.



◑하나님도 호흡 하신다


사람의 육체는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시면서 산소를 호흡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호흡하실까요?


요한복음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세상으로 보내노라”

하시고 난 다음에 “저희를 향해 숨을 내시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요20:22


“얘들아 얼마 안 있어 너희는 성령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 아니? 내 호흡이시다.

나는 그 분이 없으시면 숨을 쉴 수가 없단다.

자 이제 내가 호흡하는 성령을 너희도 받아라. 후~.

앞으로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본격적으로 보내 주실 것이다.”

 

성경으로 성경을 풀어보면, 위 구절에 의거,

하나님이 아담에게 불어넣으신 생기는 산소 호흡이 아니라 성령입니다.


    정리하면, 오늘날 우리는 산소로 호흡하듯이,

    예수님과 하나님은, 성령으로 호흡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창세기의 아담에게,

    또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성령의 호흡을 불어넣어주신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간혹 영화에 보면, 수중에서 다이버가 자기 산호호흡기를,

     물에 빠진 사람에게 건네줘서 호흡시키는 장면이 연상됩니다.)



◑하나님의 숨을 틔어 드리는 사람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사11:2~3


이사야 11장의 유명한 메시아 예언 중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즐거움을 삼다’라는 말은 ‘루아흐’라는 히브리 단어입니다.

즉,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호흡을 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 앞에 나오는 ‘여호와의 영’도 ‘루아흐’입니다.


즉, ‘여호와의 영(루아흐)’이 강림하시면,

자연적으로 호흡(루아흐, 즐거움을 삼는다)이 가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도 호흡(루아흐)을 주셨고,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숨(루아흐, 프뉴마)을 주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성령으로 호흡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것은, 나에게 즐거움이 됩니다.


그것은 내 영의 숨통을 트게 할 뿐만 아니라,

그래서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즐거움’을 누릴 뿐만 아니라,

그것은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숨통도 트이게 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함 이 자체가 여호와를 호흡하는 것입니다.

‘경외’란 두려울 만큼 사랑하는 것이니까요.

많이 사랑하다보면 너무 귀하고 아까워서 다칠세라 망가질세라, 두려운 것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참된 경외의 마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그 분의 뜻을

자식 대신에, 돈 대신에, 내 건강 대신에, 두려울/경외할 정도로 좋아하다 보면

마음 깊이 하나님을 들이마시게 됩니다.

이 때 들이마신 하나님이 마음에 닿으면서 나타나는 반응이

바로 즐거움이라는 말씀이지요.


하늘을 쐰 마음. 하늘의 공기로 신선하게 된 마음.

이 마음의 상태에 동해 바닷가에 서서 심호흡을 할 때의 마음이 비교가 되겠습니까?

설악산 정상에 서서 심호흡을 할 때의 마음이 견줄 수 있겠습니까?



◑유쾌함이 호흡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행3:19


여기서 “유쾌하게 된다”anapsuxis/refreshing는 말이 좀 특별한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헬라어 두 단어의 합성어인데,

즉 ‘위를 향함’이라는 접두어와 ‘호흡한다’는 동사가 조합 된 것입니다.


정리하면 ‘위를 향해 호흡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이제부터 호흡을 위를 향해 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위엣 것을 흡입하여 들이마신다는 겁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드디어 생령으로 회복되는 것이라는 말씀이지요.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하늘을 흡입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쾌해진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정말 이렇게 신비로운 호흡을 단 한 번이라도 해 보셨습니까?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고 나서 회복된 상태가

이처럼 위를 향하여 하늘을 들이마시는 상태이고,

타락 이전 죄가 없을 때 아담이 하나님의 호흡을 받아들여 생령이 되었을 때의 상태가

바로 이런 상태라는 것입니다.

(개역/영어성경에는 ‘유쾌하게 된다/refreshing’고 번역했습니다만)                     ▣ 성령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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