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0

사람의 의리, 하나님의 의리

LNCK 2010. 9. 11. 23:55

 

◈사람의 의리, 하나님의 의리        룻2:10~12                -출처-

 

※'의리'는 곧 '의'입니다. '의'로 바꾸어 이해하세요!

 

◑사람(룻)의 의리

 

▲룻기의 키워드는 의리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룻기는 한 가지 평범한 진리를 말해줍니다.

“신앙인은 밥 없이는 살아도, 의리 없이는 못산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리’는 삼류 드라마에서 나오는,

말 그대로 아무렇게나 툭툭 내던지는 그런 가벼운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의리’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만이 사용하는,

일종의 속된 말로도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의리’라는 말이야말로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 우리 기독교는, ‘의리’라는 말을

세상에서 다시 가져와야하는 성서적인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는 의리가 실종된 시대

룻기는 ‘인간의 의리’, 그리고 ‘하나님의 의리’를 보여줍니다.

룻기는 이 세상에서 ‘의리’가 실종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룻기는 정말 치밀하게 그것을 보여줍니다.

사사시대가 바로 ‘의리’의 실종 시대입니다.

 

①여러분 중에 조금이라도 성서를 열심히 읽은 분이 있다면,

여호수아서가 보여주는 탄탄대로의 신앙인의 모습과 180도로 대조되는 시대가

다름 아닌 사사기의 시대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떠오를 수 있을 것입니다.

삿2: 16~1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②사실 룻과 보아스를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들은 ‘의리의 실종’을 반영합니다.

큰 며느리가 선택한 길이 바로 ‘의리의 실종’입니다.

사실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큰 며느리에게 돌을 던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시 히브리어를 생각해보면,

‘오르바’라는 이름의 뜻이 ‘목을 뒤로 돌리다’ ‘돌이키다’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룻기 자체가 의도하고 있는 분명한 목적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③오르바가 1:장에 나온다면, 4:장엔 ‘이름 없는 남자’(가까운 친족)가 나옵니다.

이 사람은 보아스보다 룻을 책임져야할 사회적 책임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의리’보다 ‘손익’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4:6).

 

이렇게 룻기는 1:장과 4:장, 처음과 끝에 ‘의리가 실종’된 세상을 설정해 놓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룻기가 볼 때, 이 세상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세상에 ‘의리가 실종’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제 룻기는 ‘의리가 실종’된 세계에서 ‘의리의 회복’을 보여줍니다.

    말 그대로 흑암 속에서 작은 빛을 비추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룻의 의리에, ‘하나님의 의리’로 보답하시다.

 

진짜 ‘의리’있는 사람은..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의리’라는 빛을 비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돈 많은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힘도 세고 지혜도 뛰어난 남자여야 하지 않을까?

혈통이 좋은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스라엘이라는 특수한 세계를 배경으로 본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의리’있는 사람은

‘이스라엘의 순수혈통을 가진 남자’여야만 했습니다.

이게 바로 완벽한 조건입니다.

 

여러분, 이건 매우 중요한 기준입니다. 순수한 혈통의 남자,

이것이 바로 영웅의 조건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가, 바로 이것이어야만 합니다.

 

‘순수한 혈통의 남자’ 바로 이것이 당시에,

혹은 지금도 그토록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상식’이었으며, ‘전통’이었으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뜻’ 즉 ‘신학’이었던 것입니다.

 

보통의 사회적 상식과 통념을 박살냅니다.

그러나 룻기는 그러한 통념을 완전히 박살냅니다. 룻기의 ‘의리’는 모압 여인입니다.

순수한 혈통이 아닌 모압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구약에서 모압이 의미하는 것을 잘 모르실 것입니다.

 

모압은 롯Lot이 딸과 근친상간을 통해 생겨난 민족입니다.

이 구절은 민족적으로 완전히 '개' 취급하는 조롱입니다.

이 모압은 영원히 이스라엘의 모임에 들지 못하는, 영구 제명된 민족이기도 합니다. 신23 :3

 

더구나 남자도 아닌 여자가, ‘의리’를 대표한다는 것은..

(오해하지 말고 들으신다면, 당시엔 여자는 사람의 축에도 끼지 못했습니다.)

이중으로 충격을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마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룻기를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겁니다.

 

비교하자면, 우리가 땅을 사서 새집을 샀는데, 그 땅이 공동묘지이고,

더군다나 지독한 병에 걸린 사람들만 묻힌 그런 곳이라고 말할 충격입니다.

 

여러분 그 집에 계속 사시겠습니까? 여러분이 만약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이스라엘의 순수한 혈통의 남자라면, 룻기를 계속 읽으시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룻기는 우리의 통념을 박살냅니다.

그러나 룻기는 일방적으로 모압 여인을 편들지 않습니다.

모압 여인 룻이 ‘의리’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역시 그에게 ‘의리’를 베풀 수밖에 없었다고 솔직한 평가를 내린 것입니다.

 

룻의 의리와 더불어, 하나님의 의리도 주목해 봅시다.

오늘의 본문 룻기2: 10~12을 다시 읽어봅시다.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주시기 원하노라 하는지라. 

 

 

그렇습니다. 룻기는 사람의 의리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비록 룻기 자체에는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등장해서 활동하지 않지만,

오묘하게 행동하시는 하나님의 의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12절, “하나님의 보답, 하나님이 베푸시는 온전한 상”이 나와 있습니다.

10절에 룻은 놀랍니다: “왜 저에게 은혜를 베푸시나요?”

바로 하나님의 의리 때문입니다.

 

앞서 2:2에 룻은 소원합니다.

“누군가가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제 하나님의 섬세한 보답이,

하나님의 의리가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3절과 4절에 우리는 놀라운 단어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연히’ ‘마침’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2:3~4

 

이 두 단어는

룻기의 에피소드가 완전히 우연히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모든 일이 룻의 의리에 대한 하나님의 의리였다는 진리가

바로 룻기의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이, 노부모와 자녀 관계에서, 또는 사회적 약자와의 관계에서

     (룻기의 룻처럼) 의리를 지키고 있습니까?

     그러면 의리의 하나님이 반드시, 보답하시고, 은총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룻기의 룻처럼 말입니다.

 

     내게도 '우연히', '때 마침'의 사건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의리로 갚아주심 입니다.

 

하나님의 궁극적 보답 - 다윗의 탄생

이렇게 처음부터 활동하신 하나님은 끝까지 역사하십니다.

그 결과가 바로 다윗입니다.

물론 ‘우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윗이 룻을 통해서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리의 결과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단순한 메시지입니다.

“신앙인은 밥 없이는 살아도, 의리 없이는 못산다.”

 

그리스도의 구원은, 하나님의 의리

사실 우리 하나님이 '의리'의 하나님이지 않습니까?

우리와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시겠다는 약속을, 하나님은 결국 지키셨습니다.

독자 예수까지도 우리에게 내어주시면서 까지, 그분은 '의리'를 지키셨던 겁니다.

 

그래서 많은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의리를 배우고, 그 의리로 살아갈 것을 선언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 8: 38~39

 

이러한 확신으로 이 세상에서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의리’라는 것입니다.                                             

 

'분류 없음 > 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한탄  (0) 2010.09.13
심판하시는 하나님  (0) 2010.09.13
숨통 트기 2641  (0) 2010.09.10
성경 필사원 수도사들의 노고  (0) 2010.09.09
광야 40년은 예배 훈련 2637  (0) 2010.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