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0

하나님의 한탄

LNCK 2010. 9. 13. 13:04

◈하나님의 한탄         창6:1~7         10.01.25.설교스크랩

 

 

※5~7절 부분에 나오는, <회개> 부분은,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회개’를 설명한 설교 중에, 제가 들어 본 설명 중에 가장 훌륭한 설명입니다. /편.

 

 

▲창6:1-2, 사람이 땅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기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해서는 “셋의 자손” 또는 “천사들” 견해가 엇갈리는데,  주1)

그게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 본문의 주된 메시지가 아닙니다.

본문의 주된 메시지는 타락한 자들이 하나님의 명령인 '생육하고 번성하라'를

이러한 식으로 변질시켜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까지도 여자의 아름다움을 보고 거기에 반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 기괴한 일이 있었습니다.

성적 문란이라든지 성적 범죄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고, 온 세상에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원래 성(性)은 혐오스러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인데,

인간이 타락하고 난 다음에, 성이 타락하고 부패하고 사람들에게 미혹된 것입니다.

 

성뿐만이 아닙니다. 그 자체로는 하나님의 선물이고 그 자체로는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어떤 선물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면

그것이 우리를 망가뜨리고 멸망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보다 무엇을 더 사랑하면 그것은 우상이고 우상을 숭배하면 멸망합니다.

부모나 형제나 자매나 자식이나 배우자보다도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께 합당하지 않다.”(마10:37)고 말씀했습니다.

 

성뿐만 아니라 돈도 그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물질축복도, 부요도 좋은 것입니다.

권세도, 지혜도, 능력도 좋은 것이고 교회가 성장하는 것도 다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버리고, 그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버리면,

그것은 더 이상 좋은 것이 아니고, 더 이상 축복이 아니고

우리를 미혹하고 우리를 파괴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의 삶은 간단하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정욕으로 사느냐, 사랑으로 사느냐?”

이것으로 우리의 영원한 미래를 결정짓게 됩니다.

 

내가 정욕에 빠져서 사느냐?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강권을 받아가면서

사랑의 동기로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랑을 위해서 사느냐?

 

정욕이라는 단어는, 욕심이라는 말로 바꿔 말할 수 있습니다.

“내가 욕심으로 사느냐, 사랑으로 사느냐?”

욕심이 나를 지배하느냐, 사랑이 나를 지배하느냐?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경배합니다. 아버지 채워주소서. 당신의 사랑으로”

이 찬양을 부를 때마다 이것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주님,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셔서, 정욕, 욕심이 나를 지배하는 인간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지배하는 인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2:16~17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한 마디로 정욕(욕심)으로 요약했습니다.

(그 정욕도 지나가되...)

 

이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가장 큰 계명, 새 계명에 나타나는 것처럼 사랑입니다.

결국 그 말씀은 정욕, 욕심을 따라 살면.. 영원히 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욕심, 정욕대로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결단해야 합니다.

-내가 정욕, 욕심으로 살 것인가?

  꼭 성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돈이든 명예든 권세든 내가 욕심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고 사랑으로 이 세상을 살 것인가?

 

결국 교회 안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옥에 가리라고 보는데

그들이 지옥에 가는 이유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 정욕, 욕심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다른 우상을 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신자이면서도 우상숭배자는.. 하늘나라에 가기 힘들 것입니다.

예수께 왔던 부자관원청년의 예를 보십시오.

 

한국교회는 욕심으로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고, 사랑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사는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됩니다.

 

수많은 직분자들이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정욕, 욕심으로 살고 사랑으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사랑으로 사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창6: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노아홍수 이전에는 사람이 나무처럼 오래 살다가

노아홍수 이후에 갑자기 수명이 확 줄어들었습니다.

 

“사람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인데”  시90:10

노아홍수 이전에는 700~900년을 살다가

노아홍수 이후에는 1/10 수준으로 확 떨어졌습니다.

 

“그들의 날은 120년이 되리라.” 창6:3

여기서 120년은 사람의 수명을 말하는 게 아니라,

노아홍수까지, 심판 때까지 하나님이 참고 기다리는 시간이 그 정도 남았다는 것입니다.

 

 

▲6:5-7,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을 보시고”

이것 참 심각한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도 미국도 캐나다도 예외인 나라가 없습니다.

아주 죄악이 관영해 있습니다. 그만큼 심판, 멸망이 임박해 있습니다.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마음을 불꽃같은 눈으로 꿰뚫어 보시고,

항상 우리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 이러면 누구든지 멸망 받습니다.

“(항상 악하지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이것으로 밀고 나갈 문제가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짜 믿는 자들은 생각이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증거와 훼방이니” 마15:18-19

마음에서 나오는 이러한 악한 생각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에이든 토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 사람이 실제로 섬기는 신을 어떻게 아느냐?

그것은 그 사람이 가만히 소파에 몸을 편안히 기대고 있으면

몸은 가만히 있지만, 생각이 날개를 쫙 펴고 무의식적으로 어디론가 날아간다.

그 뒤를 쫓아가서 생각이 머무는 곳에 가보면, 그 사람이 섬기는 신이 있다.”

 

가만히 있는데 생각이 아름다운 여자에게로 날아가면,

늘 여자 생각이나 성(性)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으면 그 사람의 신은.. 음란입니다.

지옥 가는 자입니다.

 

가만히 있는데 생각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서 돈 버는 것, 통장 잔액, 이번 달 소득,

‘어떻게 하면 돈을 버나?’... 이러면 그 사람의 신은 맘몬입니다.

 

내가 가만히 있을 때.. 내가 생각하는 게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묵상 되고, 예수님이 묵상 되고, 하나님 나라 일이 생각나는 것이.. 정상입니다.

 

회개의 원어는 “메타노이아”인데 그 뜻은 “생각을 바꾸다. 마음을 바꾸다”입니다.

그냥 “잘못했습니다.” 이걸로 회개가 성립되는 게 아닙니다.

‘죄지으면 지옥 가니까 이를 악물고 죄를 안 짓는다.’ .. 죄를 안 짓는다고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단순히 행위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 중심을 보십니다.

바리새인들은 몸으로 짓는 죄는 안 지었잖아요.

세리와 같지 않고, 창기와 같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질타하셨습니다.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는데 속은 깨끗이 하지 않다. 너희는 외식하는 자다.

회칠한 담이다. 평토장한 무덤이다. 너희 속을 깨끗이 하라.” 마23:, 눅17:

 

그러니까 우리가 속이 깨끗해야 됩니다.

회개는 생각, 속마음을 바꾸는 겁니다. 그리고 새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회개는 내가 개과천선(토저의 말대로 마음이 바뀌는 것)해서 새사람이 되는 겁니다.

“뭘 잘못했습니다.” 이것도 아니고, 단순히 죄를 억지로 끊는 것도 아닙니다.

 

회개는 새사람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개입이 없이는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99%)와

인간의 자유의지(1%)가 만나서 회개가 되는 겁니다.

 

은혜는 돕는 것이지, 은혜가 대신해주는 일은 없습니다.

성경에 ‘돕는 은혜’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은혜는 인격체가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께로부터, 성령님께로부터 은혜가 임하는데

예수님께로부터, 성령님께로부터 오는 영향력, 그 감화감동, 소원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인격체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령님은 인격체지만.

그래서 의지를 가진 인간이 그것을 받아들여서, 그것에 반응해야.. 효력이 나타납니다.

 

회개는 생각을, 마음을 바꾸는 겁니다.

예레미야서에 “네 마음의 악을 언제까지 씻어버리지 않겠느냐?”(4:14)

마음의 악을 씻어버리는 겁니다. 생각을 바꾸는 겁니다.

 

이제 관심사가, 내 마음이 바뀌는 것입니다.

내 마음의 사랑하는 바가, 내 마음의 추구하는 바가,

내 마음의 섬기는 바가 바뀌는 것입니다. 그게 회개입니다.

 

이런 회개가 일어났을 때,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맺혀지는데

그게 바로 죄를 떠나서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근본적 변화)

그냥 죄를 떠나서 다른 삶을 사는 것이 회개가 아닙니다. (피상적 변화)

 

그 사람이 바뀌지 않았는데, 지옥 가는 게 무서워서

억지로 죄를 의지적으로 중단하고 참고 있다고 해서

하나님이 “너는 내 백성이다.”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회개는 율법적인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겁니다.

성령의 역사로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회개함을 주사” 딤후2:25

회개는 우리가 해야 되는 것이지만 또 하늘이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행11:18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회개를 주기 원하십니다. 그걸 사람들이 안 받는 거지.

“나는 회개하려해도 안 주시던데요?” 받는 것도 원하는 자가 받는 겁니다.

 

목마른 자가 받는 겁니다. 피상적으로 그러니까 못 받는 것입니다.

정말 원하는 자가 되면, 정말 갈망하는 자가 되어서 주님께 매달리면

주님은 반드시 주십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마5:6)라고 말한 것처럼

정말 우리가 원해야 되는 겁니다.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마23:37)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한 마음으로 원해야 합니다.

지식적으로 알고 ‘나는 회개해야 되니까, 회개하기 원합니다.’

이런 지적인 차원의 원함을 가지고 기도하니까, 회개의 은혜가 안 임합니다.

 

그러나 지적인 차원이 아니라, 회개의 필요성이 나의 영으로 내려가서

나의 영에서부터 정말 회개하기 원하고

변화되기 원하는 갈망과 원함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면

그리고 인내를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주님이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반드시 부어주십니다. 그런 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머리로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닙니다. 영으로 믿는 겁니다.

회개도 머리로 하는 게 아닙니다.

회개가 필요하다는 지식과, 그걸 입으로 죄를 분다고 회개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의지적으로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회개는 그런 혼적인 영역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영적인 영역에서 이뤄지는 겁니다.

회개에 대한 말씀과, 진리가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통해서

우리의 겸손과 온유함과 그런 옥토밭 같은 마음을 통해서

우리의 영에 내려가 가지고,

 

그것이 혼적인 소원이 아니라

영적인 소원, 영적인 원함이 되고,

혼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주님 앞에 기도하고,

혼적으로 주님 앞에 나가는 게 아니라, 영적으로 주님 앞에 나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진실로 부어주십니다.

그때 회개할 수 있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회개란.. 죄의 삶을 떠나는 것  /관련글

 

물 흐르는 한탄강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모두가 즐거운 시간이었다.

흐르는 강물은 쉼없이 계속하여 흐르고 있었다.

그 위에 우리가 탄 보트도 계속하여 떠내려가고 있다.

(우리 삶도, 이렇게 무작정 떠내려 가는 것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한 여인이 끌려왔다.

그녀는 간음을 하다가 잡혀 온 것이다.

그는 얼마나 겁나고 무서울까?

 

수많은 사람들은 이 여인을 비난했을 것이다

그는 죽어 마땅하고, 율법에 따라 처형을 받아야 한다! 라고...

조금도 살아 있어야 할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고...

 

그러나 예수님의 반응은 전혀 많은 사람들과는 달랐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향하여 '나도 너를 비난하지 않는다!' 요8:11 

 

비록 죽을 죄를 지었지만, 그를 향하여 비난하지 않는 예수님의 사랑을 보면서,

오늘날, 나를 통하여, 예수님이 바라보기 원하시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여인처럼) 너의 죄의 삶을 떠나라고 말씀하신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8:11)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은, 이전의 죄의 삶을 떠나길

예수님은 바라고 계시는 것이다.

 

(한탄 강)물 흐르듯이 죄의 삶을 계속하여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곳에서 떠나서 의로운 삶을 살고

참된 삶을 살라고 하신다.

 

1)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2)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죄의 삶에서 떠나길 기다리고 계신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회개는 진정으로 죄의 삶을 떠나는 것이다.. 샬롬!   

 

 

.........................................


주1) 

창6:2절의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인가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습니다.

1) 첫 번째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들이라는 학설입니다. 
실제로 구약에 천사들이 하나님의 아들들로 표기가 된 곳이 있지요?

(욥1:6)  6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보시다시피 천사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부르지요?

(욥38:6‐7)  6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이 돌은 누가 놓았었느냐   
7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

하나님의 천지 창조 전에 이미 창조된 자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보고 기쁘게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이겠습니까? 천사들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2장의 하나님의 아들들도 천사들일 것이라고 여러 학자들이 주장을 했습니다. 
philo나 josephus, Martin Luther등이 그러한 주장을 한 분들입니다.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런 말씀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나요?

(마22:29‐30)  29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예수님은 분명 천사들은 시집도 안 가고 장가도 안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육신이 있는 존재들이 아니고 영적인 존재들이라 
그들에게는 결혼이라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이 땅에 내려와서 사람의 딸들과 결혼을 합니까?

뿐만 아니라 만일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들이라면 
최후의 심판의 모형으로 주어진 노아의 홍수 심판이 
천사들의 타락에 의한 것이 되지요? 

여러분,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천사들의 타락 때문에 주어지는 것인가요? 
아니죠?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은 인간들의 타락에 기인한 것입니다. 

그래서 최후의 심판의 모형인 노아의 홍수 때 ‘땅에 기식하는 모든 것들’을 죽이시는 
것입니다. 만일 천사들의 타락 때문이라면 천사들만 모조리 죽이시면 되지 않아요?

2) 두 번째 학설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경건한 셋의 후손들이라는 학설입니다. 
Augustine이나 Jerome 그리고 John Calvin이 그러한 학설을 지지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기라성 같은 신학자들이 주장했던 학설이기에 
오늘날 가장 널리 지지를 받고 있는 학설입니다.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인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혹해서 
그들과 마구잡이로 결혼을 함으로 해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는 주장이지요. 

거의 대부분의 주석서들과 강해 서들이 이 관점에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학설에도 동의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그렇다면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타락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거듭 말씀드리지만 노아의 홍수 심판은, 최후의 심판의 모형이란 말입니다. 
그렇다면 최후의 심판이, 창세 전에 택해진 하나님의 백성들의 타락에 의한 것이라는 
말이 되지 않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성도의 견인 교리가 완전히 무너지게 되며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에도 크게 금이 가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래서 저는 2절의 ‘하나님의 아들들’을 이 땅에서 세상 것들을 의지하며 
그것들을 힘으로 삼아 살아가는 자들을 대표했던 이 땅의 왕들이라고 봅니다.

성경에는 이 땅의 왕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자주 표현을 합니다.
신정(神政)국가였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왕은 하나님이 세우신 자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왕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표현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엘로힘’이라는 단어를 재판장(출21:6)이라고 번역을 하기도 하고 
왕들을 가리키는 단어로 쓰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편 2편을, 이스라엘 왕의 대관식 때 불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공부한 것처럼 시편 2편은 예수님을, 그리고 있는 메시아 시편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시편 2편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의 명칭을 
왕에게도 스스럼없이 갖다 붙였습니다. 

(시2:6‐7)  6 "내가 거룩한 산 시온 위에 '나의 왕'을 세웠다" 하신다.
7 "나 이제 주께서 내리신 칙령을 선포한다. 주께서 나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이렇게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왕이 대관을 하는 것을 
하나님이 아들을 낳은 것으로 표현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갖고 있는 왕의 개념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 자신이 스스로 자기 삶의 왕이 되어 살겠다고 하는 자들의 
모든 악한 꿈이 집약된 자리가 왕 아닙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인간의 악한 의도가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 바로 인간 세상의 왕입니다. 

따라서 저는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것은 세상의 것들을 힘으로 삼아 기고만장하고 
살아가는 모든 타락한 인간들의 대표요 상징인 세상 왕들이라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최후의 심판의 근거가 딱 들어맞게 됩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은 이 세상 것들을 힘으로 삼아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 불순종의 죄를 짓는 모든 죄인들을 향해 
쏟아 부어지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것은 사실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분류 없음 > 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삶 2649  (0) 2010.09.15
영생을 취하라   (0) 2010.09.14
심판하시는 하나님  (0) 2010.09.13
사람의 의리, 하나님의 의리  (0) 2010.09.11
숨통 트기 2641  (0) 2010.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