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0

말씀사역과 성령사역은 같이 간다 2677

LNCK 2010. 10. 5. 23:23

◈말씀사역과 성령사역은 같이 간다.          롬15:18~19           10.09.05.설교일부녹취


동전에 앞면과 뒷면이 있듯이, 말씀사역과 성령사역은 하나이다.

둘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다.

예수님의 사역, 사도행전의 사역, 사도바울의 사역을 볼 때.. 그것은 하나였다.


오늘날, 말씀사역에 치중한다고 하면서, 성령사역에 대해 문외한이거나

성령사역의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재고reconsideration를 요한다.



◑1. 예수님은 말씀사역과 성령사역을 동반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말씀만 잘 전하면, 교회도 부흥되고, 다 잘 된다고...

맞는 말이다.

말씀만 잘 전하면, 그 속에 성령의 권세가 동반하므로.. 그렇게 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말씀을 잘 전하면서도

거기에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으니까... 우려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결국 그 말씀사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그러므로 ‘말씀의 권세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거기에 반드시 ‘성령의 역사’가 동반되어 증거로 나타나야 한다.

‘말씀의 권세 있다’는 말은.. ‘동전/지폐의 앞면만 있다’는 말과 같다.

그것은 결국, ‘말씀의 권세’도 없다는 뜻이 된다.


▶그 누구보다 말씀사역의 대가이셨던 예수님

그런데 누구보다 말씀사역을 잘 하시고, 누구보다 말씀을 잘 아셨던 예수님의

삶과 사역 속에는, 성령사역이 같이 나타났다.

 

이것을 여러분이 성경에서 유심히 보셔야 한다.

 

그저 ‘말씀, 말씀’만 강조하지 말고,

복음서에, 예수님의 말씀사역에 동반되었던 성령사역을 함께 보셔야 한다.

일부러 ‘나는 그런 거 안 보기로 굳게 결심’할 필요 없다.


▶누가복음/ 가버나움에서

눅4장에,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동안 시험 받으시고 나서,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서를 읽으시고 설교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가버나움에서, 안식일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눅4:31~33


위에서, 32절은 말씀의 권위, 즉 말씀사역을 하셨다는 말이고,

33~36절까지, 귀신을 꾸짖어 내쫓는 기록이 나온다. 성령사역이다.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의 공생애가 가버나움에서 시작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님의 사역은, 시작부터, 말씀사역과 성령사역이 동전의 앞뒷면처럼 동반되었다.


   말씀을 능력 있게 전하면, 거기에 귀신도 쫓겨 나가게 된다.

   (소리 지르고 나갈 수도 있지만) 꼭 소리 지르고 나가지 않더라도,

   성도들도 세상의 여러 악한 영향을 받고서 살아갈 수 있는데,

   그 악한 영적 영향력들이, 말씀이 능력 있게 전파되는 시간에 다 떨어져 나간다.

   일부 민감한 성도는, 자기 스스로 그것을 느낄 것이다.


▶마가복음의 서두에도

예수께서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시고,

해가 졌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각처에서 병든 자를 데리고 왔다.

예수께서는 밤새도록 그들을 치유하시고,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셨다.    성령사역


그리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preach하리니      말씀사역

내가 이를 위해서 왔노라 하시고..'   주1)                막1:38

 

마가복음도, 예수께서 사역 초기부터,

말씀사역과 성령사역을 병행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둘이 하나인 것을, 오늘날 우리는 굳이 나누어 구분하려고 하는데, 그럴 필요 없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된다.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preach하시고,  말씀사역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니라.' 막1:39               성령사역


마가복음은 예수님이 감당하신 성령사역을, 주로 귀신 쫓아내는 것으로 요약하고 있다.

마가복음 전체가 그렇다.

 

여기 보시면, 전도(말씀선포 preach)만 해도, 다른 하나(성령사역)는 저절로 따라왔다.

손이란, 안과 밖을 다 포함하듯이, 손등, 손바닥을 구분해서 말할 필요 없다. 둘 다 포함한다.

그처럼 예수님의 삶속에서는 말씀사역과 성령사역이 같이 갔다.

둘이 온전한 결합처럼 하나이었다.

 

▶마태복음에서도

마11장에 세례요한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묻는다.

‘당신이 오실 그분이십니까,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그랬더니 예수님 대답이, 요한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말해라.’  마11:4


예수님의 사역이 2가지였다. 듣고 보는 것이었다.

들은 것은 메시지/말씀사역을 뜻하고, 보는 것은 성령사역을 가리킨다.

 

이어지는 마11:5절에서도 이 2가지 사역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성령사역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11:5                        말씀사역



◑1. 사도행전의 사도들도, 말씀사역과 성령사역을 동반

  

▶사도행전 서두부터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행1:1~2


위 본문은, 예수께서 공생애 시작 때부터 하신 일을 2가지로 말한다.

행하심가르치심이다.  Jesus began both to do and teach / KJV

행하신 것은, 다름 아닌 성령사역을 가리킨다.

즉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일들이다.


위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서신의 중요한 부분인, 뭔가를 암시하는 서두에서 

예수께서 2가지를 특별히 “시작하셨다 began”라고 표현한 것은, (하셨다 do가 아니라)

사도들의 행적이 진행되는 것이 특징인 사도행전에서

그 2가지 사역이 사도들에 의해 “계속되어질 것”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이다.

 

즉, 예수께서 "시작하신" 2가지 사역을

승천 후에 남겨진 제자들도  "계속 진행했다"는 기록이.. 사도행전이다.


사도행전 29장은, 오늘날에도 계속 씌어져야 한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오늘날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역 역시,

예수님이 행하시고, 가르치신 일들을 바통을 이어 계속해 나가야 한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누가가 행1:1~2절에 ‘시작하셨다’라고 표현한 것으로 본다.)


 

 

◑3. 사도바울도 말씀사역과 성령사역을 동반하셨다.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이어서, 이제는 서신서를 살펴보려고 한다.

사도바울은 똑같이 말한다.


롬15: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행위


롬15: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18절에서, 그 일은 행위로 되어졌다고 했다.

by what I have said and done... 말씀사역과 성령사역이 동반되었다.


:19절에서도, 말씀사역과 성령사역이 동반된 것을 보게 된다.

19절은, 18절의 부연설명인 셈이다.

18절의 ‘행위’가 무엇인지, 19절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까지 복음이 편만하게 증거된 것도

말씀사역과 성령사역의 조화를 통해서였다.

바울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말씀사역의 대가였던 사도바울이...

예수님이 말씀을 가장 잘 전하신 분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에 예수님 다음으로 신약시대 사람 중에서

가장 성경을 깊이 알고, 가장 말씀을 깊이 알았던 사람이 바울이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한 것은 물론이고,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계시를 받은 사람이었다.


한 마디로 그의 서신서를 보면,

그는 학적인 사람이었고,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성경박사가, 말씀사역만 수행한 아니라,

성령사역을 동반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따로 둘로 쪼개어 보면 안 되고,

진정한 말씀이 전파되는 그곳에는

따르는 표적인 성령사역도 반드시 동반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굳이 성령사역을 따로 할 필요가 없이

말씀 사역을 잘 하면, 성령사역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마치는 말

말씀을 전할 때, 엄청난 성령의 역사와 변화와 능력이 함께 나타났던 분이

먼저는 예수님이시고, 그 다음은 바울이었다.


오늘날 우리의 도전은,

말씀을 깊이 알고, 단순히 이론적으로 지식적으로 알뿐만 아니라,

그것이 삶의 실제로 .. 말씀의 권세가 뒷받침되어서

말씀사역성령사역이 자연스럽게 동반되는 것이다.


이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말씀, 말씀’ 하면서, 허무하게 끝나버리면

자신도 속고, 남도 속이는 것이다.

성령사역이 같이 가지 않는 말씀사역은, 반쪽진리라는 뜻이다...


뭘 억지로 애를 써서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면서 진정한 제자도의 삶을 살 때,

말씀사역과 그것에 동반되는 성령사역이

내 삶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둘 다 나타날 것이다.


................


주1) 막1:35절의 ‘전도하리니’는

evangelism(흔히 말하는 전도)이 아니라, proclaim(말씀 선포, 케리그마)이다.                              ▣ 성령론        


'분류 없음 > 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가가 설명하는 십자가  (0) 2010.10.08
위임권위와 회중권위의 조화  (0) 2010.10.06
베드로가 물 위를 걷는 것처럼 2675  (0) 2010.10.04
하나님의 형상의 영광 2673  (0) 2010.10.02
아버지께로! 2670  (0) 2010.0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