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복을 얻는 법 시1:1~4 08.02.03.설교녹취
복을 찾아서, 복을 받으려고, 이리 저리 쫓기듯이 돌아다니며 살지 마시라.
천국의 복은 이미 내 곁에 와 있다.
다만 내 눈이 열려서,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어릴 적 일화
벤자민 프랭클린은 피뢰침을 발명하고, 여러 저술을 남겼으며, (오늘날 성공학의 조상격)
정치 활동도 하였다.
그 벤자민이 어렸을 때, 산딸기를 따러, 여러 친구들과 함께 산에 올라갔다.
원래 산딸기는 군집해서 서식하기 때문에, 사방 도처에 널려있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이쪽에서 소리친다.
“얘들아, 여기에 산딸기가 많아!”
그러면 애들이 거기로 우르르 몰려간다.
그때 다른 아이가 저쪽에서 소리친다.
“여기 있는 산딸기가 더 잘 익었고, 더 많아!”
그러면 아이들이, 산딸기를 따다말고, 또 거기로 우르르 몰려간다.
그러면서 모두들 정신없이 산딸기를 따고 있다.
거기서 벤자민은 혼자서,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산딸기를 따고 있었다.
이리 저리 몰려다니거나, 휩쓸려 다니지 않았다.
산딸기를 따러 가기 전에, 아버지는 벤자민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고 한다.
“아들아, 네가 산딸기를 딸 때는, 자꾸 이 곳, 저 곳 돌아다니지 말고,
일단 한 곳에 갔으면, 그곳의 산딸기를 다 딸 때까지, 계속 거기에 머물러라.
그리고 그곳의 딸기를 다 따거든, 딴 곳으로 옮겨서, 거기서 또 산딸기를 따거라!”
그래서 친구들이 모두 우르르 몰려다니는데도,
벤자민은 몰려다니지 않고,
친구들이 아무리 여기에 산딸기가 많다고 고함을 질러도,
그는 자기 자리에 혼자 남아서, 자기 눈앞에 보이는 산딸기만을 땄다.
나중에 아이들이 집에 돌아가기 전에,
자기들 중에 누가 산딸기를 제일 많이 땄는지.. 서로 비교해 보았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딴 산딸기가 제일 많았다고 한다.
이 작은 에피소드가 그에게 일평생 교훈으로 각인되어서
벤자민 프랭클린은, 자기 남은 삶을 그렇게 살았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소문만 듣고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언제나 지금 여기서 here and now 자기 앞에 놓여진 일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복있는 사람은..
▶1.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인생이 아니다. 1:4
본문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고 했고,
주야로 율법을 묵상하는 자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라고 했다. 1:4
악인이란.. 도둑이나 강도, 이런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데,
그들의 특징은, 바람에 겨가 날듯이, 이리 저리 뒹굴어 다닌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어느 지역에 부동산이 계발된다는 소문이 떠돌면,
밤을 새워서 그 앞에 기다렸다가 청약신청을 하고,
주식이나 펀드가 올라간다는 소문이 나면, 또 거기로 우르르 몰려가고..
대학도 무슨 과가 좋다고 하면, 거기로 우르르 몰려가고,
꼭 바람에 겨가 날아다니듯이, 이리 저리로 시류를 따라 몰려다닌다.
(그러다가 꼭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그런데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복 있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 딱 멈춰 서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멈춰진 나무가 시절(계절)을 따라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1:3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1:2
제가 여러분께 돈을 많이 벌게는 못 해 드려도,
돈 걱정 안 하고 살도록 도와 드릴 수는 있다.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 왜 복일까? ←문제 제기
그것 해 봐야, 떡이 생기거나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뭐가 복인가?
시편이 말하는 복이, 고작해서 ‘말씀을 묵상하는 것’인가? (그저 줘도 안 받겠다.)
그런데 묵상이.. 아무리 시간이 많아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그들은 복이 없는 사람이요, 복을 못 받은 사람이다.
설교자인 제가. ‘말씀을 듣자, 기도드리자.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자’
귀찮을 정도로 자꾸 반복해서 여러분께 말씀드린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그것이 힘들다고 말한다.
다른 것은 시간을 엄청나게 투자하면서, 피곤해서 지칠 정도로 열심을 내는데,
십자가와 말씀 묵상과 기도.. 이런 것들은 너무 자기 시간과 관심을 안 낸다.
그러면서 제가 깨닫는다.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그 자체가 복이로구나!’
무슨 얘긴가 하면,
이게 사람마다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 많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시간이 많으면, 사람들은 다른 오락, 취미에 열중한다.
제가 ‘말씀 듣고, 기도하고, 십자가를 묵상하면서 살아갑시다.’ 설교하는데,
아무리 그 권면을 들어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된다.
복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서, 복된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다.
다윗이 목사였나, 수도사였나?
그는 왕이었다. 시간이 없고, 일과가 매우 바쁘다는 의미다.
나라를 다스리는 왕인데, 무슨 시간이 많아서,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했을까?
그가 시간이 많이 남아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가 ‘복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서로 이렇게들 말한다.
한 시간 내서 기도하기가 힘들다.
한 시간 내서 성경읽기가 힘들다.
일주일에 30분 시간 내서 기도한 사람은, 자랑을 하고 다닐 정도가 되었다.
왜 그런 줄 아시는가?
복 받은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다.
복 받은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게 되어 있다.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그 자체가.. 이미 복이다.
묵상은, 아침에 시간을 내어서, 30분 말씀을 읽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날 하루 종일, 읽은 말씀을 마음에 담고서, 되새김질 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니까 다윗이 뭐 하고 살았을까? 그 바쁜 와중에서도
주야로(하루 종일) 하나님 말씀을 묵상/되새김질 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그 역사의 최전성기가 다윗 왕 시절에 이루어진다...
▶3. 묵상을 통해 천국을 보게 되니까.. 묵상이 복이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마음에 품는다는 것은,
무엇 때문에 내게 복이 되는가?
→사람들 눈에 못 보는 천국이, 내 눈 앞에 열리기 때문이다.
사도요한이 노령에 밧모 섬에 유배를 당한다.
그 노인이 거기서 천국의 환상을 보게 되는데,
하나님이 앉아 계신 보좌가 보인다.
무지개가 펼쳐져 있는 것 같고,
녹보석(에머럴드) 홍보석(루비)같고 벽옥(푸른 옥)같다고 했다.
이 말은, 하나님이 무슨 보석으로 칠갑을 하고 계신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가 하나님을 뵈었는데,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할 방법이 딱하게 없는데,
억지로 자기 경험과 자기 언어로 표현을 하려고 하다 보니까
‘보석 같다’고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이 진짜 보석은 아니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천국은 밧모 섬에 있었다. 바로 사도요한의 곁에 있었다.
평소에는 눈이 감겨서 잘 보지 못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영안靈眼이 열리면서, 요한이 천국과 하나님을 뵈었을 때,
그 요한의 심정이 기절할 것 같았다...
쉽게 얘기하면, 썬팅한 차유리를 생각해 보자.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서는 안이 안 보인다.
천국은 실재한다. 실제로 있다.
다만 우리 눈에 가려져 있다. 그래서 우리가 못 볼 뿐이다.
마치 썬팅처럼, 천국에서는 우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천국을 평소에 못 본다.
‘썬팅’ 예를 드는 이유는, 천국은 실제로 우리 곁에 있다는 뜻이다. 다만 내가 못 볼 뿐이지..
그런데 사람들이 복을 찾고 얻기 위해서,
마치 산딸기를 따는 아이들처럼
이쪽으로 우르르 몰려다니고, 저쪽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더라는 것이다.
자기 눈에 아직 천국이 안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국은 실재한다.)
돈을 많이 벌면, 거기가 천국인가 보다 하여,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가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그것이 천국인가 하여, 그쪽으로 몰려다닌다.
천국을 다른 곳에서 헤매며 찾지 마시고,
지금 내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천국을 찾으시기 바란다.
그것이 사도요한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다. 계1장을 통해서!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눅17:21
사람들은 말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천국이다. 복이다.
저 문제가 해결되어야 천국이다. 복이다.
이런 우리의 현실적 필요들도 다 중요하지만, 그게 정말 영생의 복은 아니다.
사실 우리가 원하는 것들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다.
자기 애가 일류대학에 가기 원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생의 자랑일 수도 있다.
(할 수만 있으면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좋지만,
못 들어간다고 지옥은 아니다. 못 들어가도 얼마든지 천국을 살 수 있다.)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고, 십자가 붙잡고 사는 것이 참된 복이 되는 이유는,
그의 눈에, (안 보이던) 천국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천국이 보이게 된다.
그래서 자기 인생의 가치관을, 천국에 초점 맞추게 된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아니라...
그리고 사실 사람들이 원하는 복(오복)은.. 따지고 보면
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들이다. (천국을 못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 받고 망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마치는 말
우리가 어떻게 천국의 복을 누리며 살 수 있는가?
그것은 주님이 이미 이루어 놓으신 십자가 사건을 내가 늘 묵상하며 사는 것이다.
혹은 구약적 표현으로 하면, 여호와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다.
(십자가 묵상은, 모든 구약의 말씀의 총 요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커튼veil 또는 썬팅에 가려졌던 천국이,
마치 밧모섬의 요한에게 일어난 일처럼,
내 눈 앞에서 그 커튼이 벗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천국의 환희와 영광을 보고서, 경탄하고 감탄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자기 뜻을 이루기 위해서 살지 않고,
일류대를 나왔든지, 고등학교밖에 못 나왔든지,
그 천국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의 살게 된다.
그러면 자기 삶에 대한 시각, 가치관이 바뀐다.
복, 복 하면서 실제로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던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으로 일대 방향전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게 진짜 복이요, 회개요, 이게 영원한 영생의 복이다.
세상 복은, 뭐가 꼭 잘 되는 것이 복이지만,
참된 복은,
요셉처럼 애굽의 종으로 팔려가더라도, 주님이 함께 하심으로 형통하고,
요한처럼, 밧모섬에 유배되더라도, 천국이 열림으로써 영광을 누리는 것이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모두 복 받은 사람인데,
그들의 평생에 꼭 좋은 일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불행한 일도 일어났지만, 그 불행 때문에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행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이 자기 삶에 이루어지기를 바랬다.
그것이 바로 복이다.
말씀의 완성인 십자가 사건을 내 마음에 늘 주야로 묵상하면서,
내 눈 앞에서, 천국의 베일이 벗겨지기를 바란다.
※계시록(아포칼립스)이란 말 뜻은, 베일을 걷고 (천국의 속을) 보여준다는 뜻.
▶너무 깊이 사색, 고민에 빠지지 마시라.
제/설교자가 어느 대학에서 <기독교와 철학의 접목>이란 과목으로
강의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특별히 철학자들에 대해 연구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철학자들의 생애를 보노라면, 행복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왜 그런가 하면, 철학자의 직업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문제든지
내가 (내)생각을 하고 골똘히 하고 있는 동안에는.. 행복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자기 궁리, 자기 생각에서
결국 나오는 것은, 염세주의 또는 허무주의다.
자기 몸도 망치고, 인생도 다 망친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동안..
내 속에 잠재해 있는 타락한 본성에서 (신학 용어로 ‘전적 타락’이라고 말한다.)
깊이 연구해 낸 결과란 것이, 결국은 염세주의, 허무주의, 절망, 좌절 등이다.
그러므로 자기 생각을 골똘히 할 필요 없다.
성도는 하나님의 생각을 쫓아가야 한다. 즉, 성경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그러면 하늘의 기운이 내게 온다.(전적 타락한 본성이 아니라)
물론 우리 삶에 문제는 늘 생기게 마련이다.
사업이 안 되고, 몸도 건강하지 않고,
그런데 사실 그건 아무 문제가 아니다.
말씀 묵상을 통해, 하늘의 기운이 내게 임하면,
내 모든 실패, 좌절, 고민을 딛고 일어설, 이기고 힘차게 일어설,
하늘의 소망, 천국의 새 힘이 생긴다.
소년이라도 넘어지고, 장정이라도 자빠지되, ▣ 말 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8순 노인이라도, 독수리 날개침같이 치솟는다. 사40:3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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