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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8

무엇을 어떻게 기다리시나요? 2689

LNCK 2010. 10. 13. 11:51

◈무엇을 어떻게 기다리시나요?                     마3:1-10               08.12.14.설교스크랩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본문 중에서


첫 번째, 기다림의 중요성 입니다.


‘조급증’ 에 대해 미국 유펜 대학 연구팀에서 재미있는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사람이 주차장에서 차를 뺄 때, 보통 아무도 없을 때는 약 26초가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차가 주차하려고 뒤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는,

사람의 마음이 조급해져서 약 31초가 걸리고,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차가 경적을 울리면서 서두를 때는,

마음이 더 불안해 결국 주차하는 시간이 약43초나 걸린다고 하는

조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주1)


이처럼 사람들은 마음이 조급해지면 많은 사람이 함께

손해를 보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 바로 조급증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서양 속담에 "서두르면 일을 망친다" (Haste makes Waste)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잘 보세요.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기다림’ 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노아는 120년간 방주를 준비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은 후 25년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400년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승천이후 성령님의 오심을 기다렸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져야 할 성품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다림 입니다.


영어에서 인내(Patience)와 열정(passion)이라는 두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라틴어의 한 단어인 '파시오'(pasio)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다고 합니다.

바로 이 ‘Pasio’ 란 말의 뜻은 '견디다' 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인내는 견디는 것입니다. 그리고 ‘열정’도 사실은 ‘ 잘 견디는 것’ 입니다.


그래서 ‘영성 깊은 그리스도인’ 이란 책을 쓴 ‘마이클 몰리노스’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오늘날 많은 분들이,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지 못하고, 주중에 기도하지 못하는

    그 주된 요인이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마음의 감동, 내적 음성...

    이런 것들은 아주 천천히 옵니다.

    5분이나 10분 만에 팍 오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그러니까 기도해도, 말씀 묵상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겁니다.

    그러면 ‘아, 이런 거 해도 별로 소용없구나.’ 하면서 그만두게 됩니다.

    아닙니다. 더 오래 기다리셔야 합니다.

    오늘 내적 음성을 못 들으면, 내일을 기다리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잘못하고 또 실수하고 잘못된 길을 걸어가도

하나님은 사랑과 열정으로 오래 동안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이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가라지를 뽑아야 된다’면서, 악인이 나타나는 족족 처단하셨더라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도 무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생각대로, 자기 경험대로만 일을 하다가

스스로 일을 그르치고 실수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기다림이라는 것은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는 아주 귀중한 조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도 모든 일에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둘째로, 기다림의 대상 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기다려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세례 요한은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성경에서는 ‘하늘 나라’ 를 ‘천국’ 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 입니다.   ←요점


자, 그렇다면 천국. 하늘나라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이 하나님 나라는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관계적 개념이요, 통치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죽은 다음에 간다는 그 어떤 장소보다는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 주어지는 주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합니까?” 라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주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아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눅17:20-21


물론, 우리가 소망하는 하늘나라, 천국은,

우리가 다 죽은 후에 가게 되는 공간적으로 존재하는 곳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 뿐만이 아닙니다.

주님의 다스림이 있는 곳,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지 다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롬14:17절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 나라’ 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하나님 나라’ 는 다른 사람들보다 잘 먹고 잘사는 곳이 아니라,

성령님과의 관계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곳,

그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며,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가정에 예수님이 계시면, 그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모시고 생활하는 직장이 바로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고백한 자들이 모인 곳에는

항상 천국이 임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간절히 기다려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높은 산이 거친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  (찬495)


여러분, 그래서 성탄절에는 어떤 선물을 받을까?를 기다리며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평강과 사랑을 경험하는 때입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일년에 한 번만이 성탄절이 아니라,

일년 365일이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며, 그 분이 주시는

은혜와 평화를 누리는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08.12.14.설교스크랩


비록 우리 삶이 힘들어,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곤고할지라도,

이 성탄의 계절에 우리 주님이 우리 삶 가운데 찾아오시면

그 속에 주님이 주시는 진정한 위로와 평강의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년 내내가 그렇지만, 특별히 성탄절의 기다림은

바로 예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 가 우리 가운데 임하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시즌인 입니다.


저는 이번 성탄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간구가 이렇게 되길 기도합니다.

“주님! 나의 삶과 가정, 그리고 우리 교회와 민족 위에

진정한 하나님 통치와 다스림을 통하여

주님의 기쁨과 평화가 넘치게 하소서”


 

셋째로, 기다림의 자세 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기다려야 할까요?)


정답부터 말씀드리면, ‘회개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2절,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6절,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며,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8절,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 라고 말합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행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는것’ 이라 말합니다.


여러분, 회개가 무엇입니까?

반면 ‘회개’는 후회를 포함하지만, 결코 거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미래를 바라보며 결단하고 그 자리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걸어오던 죄악의 길에서 발길을 돌려,

이제 앞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새롭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대한 정확한 표현은 ‘돌아서는 것’ 입니다.


후회는 죄책감과 멸망을 가져오지만

회개는 새 생명을 얻게 하고 또 새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후회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8절에 세례요한이 이렇게 외칩니다.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

그렇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무엇이겠습니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본문과 동일한 기사를 다루고 있는,

눅3:11-14절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에 보면 ‘회개에 알맞는 열매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세례요한은

“입을 것과 먹을 것이 남는 자들이 부족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정한 세금 외에는 더 받지 말아라”

“남의 것을 강탈하거나 고발하지 말고, 너희 봉급에 만족하여라.” 라고 대답합니다.


자, 어떻습니까?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사실 이런 회개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아주 평범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흔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 라고 하면,

꼭 무엇인가 거창하게 생각하는 습성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세례 요한의 대답은 매우 단순하고도 평범한 행동들

즉, 우리의 직업과 일상 생활에 있어서 원칙과 정도를 지키는 것이

바로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의 이런 가르침은

뒤를 이어 오신 예수님과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과 사도 바울도 역시,

무슨 대단한 비밀이나 그 어떠한 신비한 종교 의식을 강조하신 것이 아니라,

생활과 직업에 있어서 당연히 지켜야 할 원칙들을 항상 가르치시고 강조하셨습니다.


언제가 한국에 유명한 설교가인 죤 스토트 목사님이 방문을 하신 적이 있는데,

그 때 한국 교회를 향해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한국 교회에는 미숙한 크리스천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들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기본적인 원칙들을 잘 지키지 않는다.”


여러분, 얼마나 솔직한 지적입니까?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듣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무엇인가 꼭 거창한 어떤 종교 이론이나, 신비로운 체험만이

진짜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강조하기 이전에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 생활이나, 직장 생활이나, 지극히 작은 개인생활에도,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부터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알맞는 열매를 맺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마치는 말

신앙생활은, 다른 말로 ‘기다림’입니다.

잘 기다리는 사람이, 신앙이 진실된 사람입니다.


그럼 무엇을 기다릴 것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다스림)가,

내 삶에, 내 가정에, 내 직장에, 내 공동체에 임하는 것을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기다릴 것입니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살피시사, 어둡고 그릇된 것들을 늘 청소(회개)하면서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우리의 삶속에 찾아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만난 그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만남 속에 주님이 주시는 주님의 참된 기쁨과 평강을

우리 가정에, 그리고 우리 교회와, 이 민족 위에 나누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


주1)

흔히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를 부르는 말이 있습니다.

‘초스피드 시대’ ‘인스턴트 시대’ ‘광속의 시대’ 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무척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느린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무엇인가를 입력하면 곧 바로 출력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보니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 하는 것,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모습입니다.


   얼마 전 한국의 어느 식당에는 이런 광고 현수막을 내 걸었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15분이 경과하면 음식 값이 무료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고객들은 테이블 위에 타이머를 틀어놓고 기다립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이 식당을 찾는 대부분의 고객들의 심리는

   주문한 음식이 빨리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음식이 아주 늦게 나오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늦게 나오면 공짜니까요.)


또, 어떤 피자 가게에서는 주문 후 30분이 지나면 ‘피자가 무료’ 라고 합니다.

사진현상도 이제 10분이면 완성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티커 사진’ 이 있는데,

이것은 ‘즉석사진’ 입니다. 그러니까 찍으면 바로 ‘Print Out’ 이 됩니다.


이젠 따로 시간을 내어서 사진을 찾으러 갈 필요도 없습니다.

바로 인간의 조급증 즉 참지 못하는 요즘 세대의 마음을 이용한 세일즈가

돈을 버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동물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동물 중에서 ‘장수’의 대표적인 동물이 ‘거북이’입니다.

   거북이는 매우 느립니다. 그렇지만 아주 오래 삽니다.


   반면에 호랑이는 매우 빠릅니다. 그런데 이 호랑이는 거북이보다 빨리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느린 동물인 거북이가 호랑이보다 장수하는 것처럼,

   잘 기다리고 급하지 않는 사람이 조급해하는 사람이

   성질 급한 사람보다는 오래 산다는 확률이 통계적으로 매우 높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대체로 기다림에 미숙합니다.

(빨리 빨리..)


그러나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다 채워야,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빨리 나오면 미숙아가 됩니다.


이처럼 기다림은 곧 성숙입니다.

기다림은 마치 우리의 삶을 숙성시키는 누룩과 같습니다.

그래서 오래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입니다.


제가 목회 중에 있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습니다.

한번은 심방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초대를 하신 분이 갑자기 식사 대접을 하시겠다고 “목사님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금방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라고 하도 부탁을 하셔서

결국 한 1시간가량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반찬을 다 차리고 밥을 막 먹으려는데, 갑자기 집사님이 어쩔 줄 모르십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아유 목사님 어떡하죠? 너무 긴장하다 보니 제가 전기밥솥의 전원을 안 눌렀네요.

목사님! 딱 15분, 15분만 기다리시면 안돼요?”


“아, 괜찮습니다. 저는 원래 기다리는 것이 취미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잠깐이면 된다던 시간이 아주 한참을 지난 후에야

겨우 아주 늦게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에게는 이렇게 후하지만, 집에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래서 조금만 밥이 늦어도 “도대체 당신은 밥을 주는 거야, 안주는 거야.

식탁에 앉은 지가 언젠데, 왜 여태 밥을 안주는 거야.

그렇게도 남편에게 관심이 없어?”

하면서 기다리지 못하는 성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