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퇴장 신34:1~12 07.12.30.설교스크랩, 출처
신명기의 마지막 단락이다. 책은 반드시 끝난다.
신명기도 한 권의 책으로서 시작을 하고 종결을 한다.
신명기는 모세가 약속의 땅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다는 내용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모세가 죽었다는 내용으로 끝난다.
모세의 죽음은 많은 것을 교훈한다.
모세의 죽음이 교훈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인간의 사라짐
▶아무리 위대해도.. 사람은 결국에는 사라진다.
모세의 죽음이 가장 먼저 교훈하는 것은,
사람은 능력자라도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모세는 대단한 능력자였다. 모세는 살아있는 동안 엄청난 능력을 발휘했다.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이더라” 신34:11~12
모세가 행한 능력은 얼마나 놀라운 것이었는지 4가지 말로 묘사된다.
이적, 기사, 권능, 위엄.
애굽의 10가지 재앙을 비롯해서, 홍해를 가른 것과,
반석에서 물이 난 것, 아말렉을 이긴 것 등등
모세를 통해 시행된 능력은 굉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능력자도 사라진다.
인간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은 언제나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능력을 자랑할 것이 없다.
신자는 자신이 행한 모든 능력이 그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할 뿐이다.
▶아직 건강한데도 불구하고.. 퇴장한 모세
이런 간단한 교훈과 더불어, 모세의 죽음은,
건전한 퇴장에 관해서 커다란 교훈을 준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120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7
*신31:2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 나이 백이십 세라 내가 더 이상 출입하지 못하겠고' 참조
여기서 '출입하지 못하겠고'는, 기력이 과거처럼 왕성하지는 않았다는 뜻, 그러나 건강했다.
힘이 있을 때 물러나는 것이 아름답다.
노쇠하여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도
끝끝내 자리를 내놓지 않는 것은 매우 추한 모습이다.
모세의 멋진 퇴장에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생명연장을 간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모세는 아직 눈이 밝고 힘이 떨어지지 않았으니,
하나님께 생명연장을 간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또한 약속의 땅을 눈앞에 보면서 사명연장을 떼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무대에서 퇴장을 했다.
신자는 자신의 사명을 다하면 깨끗하게 물러나는 것이다. 그래야 아름답다.
▶나를 기억하지도 말라!
이 때문에 모세는 그의 무덤을 알리지 않았다.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6
사실 귀한 인물을 기억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도 30일 동안 애곡하는 것 허락받았다. :8
그러나 아무리 귀한 인물이라도, 사후에 경배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람이 사후에 종교화되면 안 된다.
인간의 마음은 경배 받고 싶어 한다. 경배의 대상이 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또한 인간은 경배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악한 것이다.
모세는 자신의 기념비를 세우고 싶은 이런 악한 마음을 떨쳐버리고
깨끗하게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우리는 자신의 기념비를 세우려는 마음과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죽기 전에 뭐 건물 같은 것 남기려 하지 말고, 신앙유산만 남기면 된다.)
▶구속 역사는 사람(모세)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모세의 죽음은 구속의 역사가 개인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 아님을 교훈한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4
그는 묵묵히 받아들였다.
약속의 땅에 진입하는 것은 모세의 사명이 아니다.
모세는 장구한 구속사의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약속의 땅에 들어갈 사람들은 따로 있고, 그들이 구속사를 이어갈 것이다.
그 사명은 모세의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스스럼없이 그 사명을 이양했다.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9
▶모세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를 버렸다.
그 대신에 모세는 과감하게 여호수아에게 일을 맡겼다.
모세는 자신의 몫만 챙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에게만 치부하는 것은 신자의 모습이 아니다.
신자는 아낌없는 이양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과거를 넘어 미래를 여는 귀중한 손길이다.
신자는 구속역사가 개인적인 성취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개인은 구속사에서 한 점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구속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되
과욕을 부릴 필요가 없다.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처럼 번성할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졌지만.. 그것은 아브라함에게서 성취되지 않았다.
다윗에게 보좌가 영원할 것이라는 약속이 주어졌지만..
그것은 다윗에게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브라함과 다윗이 받은 은혜이다.
왜냐하면 약속의 성취는 비록 멀리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사명을 다했기 때문이다.
신자는 개인적인 성취를 야망하지 않는다.
신자는 오직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래서 신자는 오늘을 최선으로 산다.
▶모세는 죽음으로써 인간은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교훈했다.
모세의 진정한 영광은 사라지는 것이다.
만일에 모세가 적절한 시기에 사라지지 않았더라면, 도리어 추하게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라지는 것이 모세의 영광이었다.
◑2. 하나님의 드러남
모세의 죽음이 주는 최대의 교훈은,
인간은 사라지지만 하나님은 남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영원토록 계시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1. 대면하시는 하나님 :10
무엇보다도 본문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대면하신 분으로 묘사된다.
하나님은 모세가 살아있는 동안 대면하여 아셨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10
모세는 이적과 기사와 권능과 위엄을 베풀었다.
그 까닭은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11
하나님 모세를 보내셨기 때문에 모세는 이런 모든 능력을 행했다.
모세의 능력의 원천은 하나님이시다.
그뿐 아니라 모세의 말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9
모세는 오직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입을 도구로 사용하셨다.
모세의 행위와 언어는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모세의 삶은 하나님으로부터 의미를 얻었다.
하나님은 모세의 일과 말에 의미를 부여하셨다.
하나님이 주시지 않았다면 모세의 삶과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의미를 주셨고, 그래서 모세는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이 모세와 대면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하나님이 모세와 대면하지 않았다면 그의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세와 대면하셨다는 사실 때문에
모세에게는 삶도 의미가 있지만, 죽음도 의미가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될 때 삶 뿐 아니라 죽음도 의미가 있다.
모세에게 의미를 부여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의미를 부여하신다.
하나님이 모세와 대면하신 것이 중요한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주시는 것도 중요하다.
옛날에는 모세와 같은 이에게만 하나님이 대면하여 알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이후에는 우리에게도 그런 은혜를 주신다.
물론 하나님을 실제적으로 대면하는 일은, 종말에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고전13:12
▶2. 보이시는 하나님
본문의 초두에는 3번 하나님이 보이셨다는 말이 나온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1
“소알까지 보이시고” :3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4
하나님은 모세에게 약속의 땅을 보이신 것으로 그쳤다.
므리바 반석의 물 사건이 이에 대한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모세에게 한계를 주신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제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한계를 두신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모든 것을 다 주지 않는다.
사탄은 하나님과 달리 모든 것을 줄 수 있다고 허세를 부린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4:9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에게 제한을 두신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의 제한은 모세와 같은 신실한 종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제한에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제한은 은총이며 행복이다.
사실상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고 해서
하나님께 더 이상 영광이 될 것이 없다.
혹시 모세가 떼를 썼다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조금이라도 밟는 은혜를 베푸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이 되거나
모세에게 유익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히스기야 왕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히스기야는 중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해서 15년을 더 살았다. 왕하 20:1-11
그러나 히스기야가 15년을 더 살아서 특별히 한 일이 없다.
오히려 그 결과는 부정적인 것이었다.
역대하 기자는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대하32:25
차라리 히스기야에게 생명이 연장되지 않았던 것이 훨씬 유익했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제한을 두심으로써, 제한이 인간의 행복임을 깨닫게 하신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인간이 인간일 뿐임을 깨닫게 하셨다.
그 때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가장 행복한 것이다.
▶3. 약속하시는 하나님 :4
하나님이 죽음을 앞에 둔 모세에게 확인시켜 준 놀라운 사실이 있다.
그것은 가나안 땅이 족장들에게 약속한 땅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4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어쩌다가 보니 그냥 아무렇게나 주신 땅이 아니다.
이것은 오래 전에 족장들에게 약속하신 땅이다.
하나님은 죽음을 앞에 둔 모세에게, 족장들에 주셨던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땅을 족장들의 후손에게 줄 것임을 상기시켰다.
족장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후손들에게서 성취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분이며 또한 성취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약속하시면 반드시 성취하신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죽음으로 교훈하시고자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약속과 성취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죽음으로 주신 약속과 성취의 교훈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모세의 죽음으로 가나안 땅과 관련된 약속과 성취를 교훈하심으로써
그보다도 더 큰 것을 교훈하셨다.
그것은 모세 자신과 관련된 약속과 성취에 대한 교훈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메시아를 내다보게 하셨다.
신명기는 책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이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10
라고 결론을 맺는다.
신명기는 왜 마지막 단락에서 이런 결론에 도달했을까?
여기에는 특별한 목적이 들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바라보게 하기 위함이었다.
모세는 이미 앞에서 장차 자신과 같은 선지자가 올 것이라는 예언을 하였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신18:15
하나님께서도 모세의 예언을 확증하셨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신18:18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메시아를 바라보게 하셨다.
따라서 모세의 죽음은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대망하게 하는 교훈을 지닌다.
놀랍게도 모세의 죽음과 관련하여
메시아에 대한 약속과 성취가 어울려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세의 죽음으로 알려주시고자 한 것은
바로 하나님이 약속과 성취의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며 또한 성취의 하나님이시다.
▶마치는 말
모세의 죽음은 두 가지를 교훈한다.
①인간은 사라지고, 하나님은 남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사라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는다.
이 교훈 앞에서 우리는 자신을 비롯해서 인간에게 연연하지 말 것을 배워야 한다.
②인간은 사라져도,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모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미 창세기의 끝에서 요셉이 했던 말을, 모세가 빌려 말한다.
신34: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모세는 자신의 신앙을 요셉의 입을 빌려 말한 것이다.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창50:24, 창48:21참조
신명기의 마지막 단락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인간은 사라지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계신다!
모세 같은 대가도 때가되면 사라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영원히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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