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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0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은 비성경적인가?

LNCK 2010. 10. 28. 13:29

www.youtube.com/watch?v=dPQ6EOGw540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삶은 비성경적인가?        엡6:18             10.09.26.설교일부녹취

 

 

 

◑서론 : ‘하나님 음성’을 들은 성경의 예

 

▲행8장 빌립 집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

빌립은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아서, 이성과 정반대의 행동을 취했습니다.

전혀 사람들이 살지 않는 엉뚱한 곳, 광야로 나갔다가,

거기서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나서 전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 후에 에티오피아는, 성경에는 안 나오지만,

역사책에 보면, 초대교회 당시에 놀라운 기독교 부흥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행10장, 베드로와 고넬료

베드로가 환상을 봤는데,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보자기에 부정한 짐승들이 있는데, 잡아먹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니까,

‘부정unclean한 짐승을 내가 먹을 수 없습니다.’ 라고 거부했습니다.

 

내용인즉, 성경만 알아서, 이성만 의지해서는,

우리가 올바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도 알아야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음성도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이런 예는 성경에 셀 수없이 많이 나옵니다.

바울의 마게도냐의 환상이라든지..

요셉의 꿈 해석 등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예는.. 성경에 셀 수없이 많이 나옵니다.

 

내적 음성이든지, 직접 음성이든지,

예언을 통해서든지, 방언 통역을 통해서든지,

꿈과 환상을 통해서든지, 성경말씀을 읽는 중에든지,

신앙의 조상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 그 인도함을 받아서 신앙생활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예언’을 하는 것은,

   다 잘못된 것일까요?

   오히려 그런 것들을 일절 무시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성경만 읽는 것으로.. ‘하나님 음성’ 듣는 것이 충분한가요?

 

▲성경이 불충분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만약에 내가 복음사역을 위해 목회자로, 선교사로 내 삶을 드리려는데,

‘너는 목회자가 되어라/또는 되지 말아라’ 라고

성경에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게 써 있는가요?

아무리 성경을 읽어봐도, ‘너는 목사가 될지니라/말라’ 이런 말씀은 안 나옵니다.

 

제가 목회할 때,

‘너는 교회를 어느 도시에서 개척해서, 어느 도시로 옮겨라’

이런 지시는, 성경에 절대 안 나옵니다.

이런 구체적인 지시는, 오직 ‘성령의 인도함,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서만 옵니다.

 

그게 성경에 써 있다면, 성경을 읽고 정확히 지시를 받을 터인데, (그러면 좋겠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만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건, 그 음성을 들어야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성경을 더하는 것이 아니고

성경에 나와 있는 진리를 내 삶속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예언도 끝나고, 하나님의 음성이 끝났다는 것은

그 말 자체가 가지는 어떤 신학적 의미가 있지만

그렇다고 오늘날에 모든 예언, 모든 하나님의 음성이 끝났다는 말은 - 틀렸습니다.

그 주장과 ‘하나님의 음성/예언’을 듣는 것은, 별개의 차원입니다.)

 

사실 우리 신앙의 기준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신학의 기준이고, 사역과 삶의 기준은 성경입니다.

성경은 한 권으로 충분합니다. (구원의 교리, 도덕적 명령이 충분하다는 뜻)

우리는 성경에, 예언이나 다른 것으로 더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경험하는, 많은 일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필요로 합니다. 성경만으로 안 됩니다.

 

예를 들면, 대학에 어느 학과에 지원해야 하는가요?

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직업을 택할 것인가요?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

성경을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성경 아무데도 안 나와 있습니다.

 

나는 목사가 될 것인지, 직장인이 될 것인지, 교수가 될 것인지

어디에도 안 나와 있습니다.

목사가 된 다음에도, 선교사가 될 것인지, 목회를 할 것인지 .. 성경에 안 나와 있습니다.

 

선교사가 된 다음에도

중국에서 할 것인지, 중앙아시아로 갈 것인지, 남미로 갈 것인지.. 안 나와 있습니다.

 

중국에 가더라도

개척목회를 할 것인지, 신학교 사역을 할 것인지, 대학교 전도를 할 것인지.. 안 나와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만 믿는다면,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일절 다 무시한다면,

(예언이나 ‘하나님 음성’은 성경을 더하는 것이니까, 다 가짜라서 무시한다면)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굉장히 당황하거나 방황하게 될 것입니다.

 

▲성경적 원리만으로 가능하다지만... (따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필요 없다는데...)

그래서 성경을 열심히 연구해서,

성경적 원리 안에서, 위에서 제기한 여러 선택을, 잘 결정할 수 있다고 보는데...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성경이 우리 삶의 표준이 되므로,

성경적 원리 Biblical principle / Bible standard에 의해서

직장을 구하고, 배우자와 만나서 결혼하고, 사역자가 사역 방향을 정해 나갑니다.

 

이런 입장이, 정통 신학에서 주장해온,

전통적 기독교의 흐름이었습니다.

 

▲성경은 바르지만, 성경을 해석하는 우리 이성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적 원리와 표준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지만,

(사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이것이 자꾸 무너져 내리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런데 사55:11절에,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생각은, 하늘이 땅에서 높은 것처럼 다르다고 했습니다.

성경적 원리와 표준은

종종 우리 이성reason에 의해 판단되어지고, 적용되어집니다.

 

그런데 성경적 원리와 표준은 올바르지만,

그것을 내 결혼/직장/가정/목회에 적용하는 수단인 내 이성이 불완전하므로

쉽게 말해서 종종 내 생각대로, 내 판단대로 성경을 적용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 생각은, 하늘이 땅에서 높은 것처럼 다르게’ 결판납니다.

그래서 성경은 옳지만, 내 삶의 결과는 전혀 엉뚱하게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종종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적 표준도 받아들이고, 성령의 인도함도 받아야 합니다. (둘 다 필요. 이 설교의 주제) 

    그것은 내 이성적 판단, 내 경험적 판단.. 이런 것들을 다 포기하고,

    말 그대로 성령의 판단,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과 아울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은.. 오늘날에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진리의 표준인 성경을 올바로 믿고, 올바로 내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입니다.

 

▲기도할 때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기도만 해도,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면 응답하신다’고 했는데, 요일5:14

그런데 문제는 ‘너희는 마땅히 구할 바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롬8:26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내가 완전히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너희가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기도 하나만 보더라도,

우리 이성/말씀으로만 하지 말고, 성령 안에서, 성령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엡6:18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이 말씀은 ‘성경을 몰라야 된다’는 말이 아니고, ‘성경을 무시하라’는 말도 아니고,

제 얘기는, 성경만 잘 안다고 하면서,

성령의 인도함을 무시하다가는,

우리가 제대로 하나님의 뜻을, 일상생활에서 분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충분성

‘성경의 충분성’이란 얘기는

하나님의 모든 뜻이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으니까,

우리는 성경 이외에 어떤 하나님의 인도하심도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바가 아닙니다.

 

‘성경의 충분성’이란

성경에는, 우리의 구원과 옳은 교리와,

하나님의 뜻을 아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성경이 충분히 다 담고 있다는 뜻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어떤 새로운 교리적/도덕적인 명령을 더하면 잘못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의 충분성’ 과 ‘예언, 하나님의 음성’ 듣는 일은

상호 보완적인 명제이지,

상호 대립적 명제가 아닙니다.

 

이 ‘성경의 충분성’의 토대 위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길을 잘 따라가려면,

성령의 인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직전에

성경을 한 권 주시면서

‘너희가 이 성경책을 잘 연구해서, 열심히 신앙생활 해라!’ 하지 않으시고,

‘내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겠다’ 요14:16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지식, 이성만 갖고는 안 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요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성경박사들이었는데,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가 없으니까

그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들이 잔치의 상석을 앉기 원했고, 늘 가르치기 원했지만,

낙타는 삼키면서 하루살이를 뱉어내는 외식적인 삶을 살았었습니다.

성경은 알았지만, 성령의 빛을 비춤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예루살렘 멸망이 코앞에 닥쳐와 있었는데도,

그들은 (구약)성경을 그렇게 열심히 탐독하면서도, 그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말씀, 말씀!' 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음성.. 이런 것들을 일절 무시하다가는

    우리가 그 길을 답습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일부는 성경을 아주 외울 정도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스스로 신앙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듣지도 못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예언/하나님의 음성은,

성경에 다른 계시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내 삶에 적용하는 차원입니다. ←이 설교문의 주제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로 동행하는 삶을 살려면

우리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의 토대위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성령이 둘 다 같이 가야지,

어느 한 쪽만 갖고는,

바리새주의가 되든지, 신비주의가 되든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예언을 포함해서,

성경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예언에 대한 정통 신학적 입장

초대교회 표적과 기사, 기적적 은사들이 끝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이 '예언이 오늘날에도 계속된다'고 주장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만약 오늘날에도 예언이 계속된다면, (예언의 주 목적이 성경을 쓰기 위한 것이었는데)

그것은 성경이 계속 씌어지고 있다는 얘긴데.. 그러니까 잘못된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정통 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신약성경의 예언(성경)은 참되고, 오류가 없고, 믿을 만한 하나님의 진정한 음성이기 때문에,

 

성경은 이미 완성되었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예언/하나님의 음성 듣기' 운운 하는 것은 잘못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예언=성경’이며

‘예언=설교’(성경의 해석)로 보며

성경과 설교 이외의 어떤 예언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예언, 성경’은 정경 완성 이후로, 모두 끝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도

‘예언, 하나님의 음성’ 운운하는 것은.. 다 가짜고 이단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완성되었는데, 무슨 예언이 또 필요하느냐는 논리입니다.

 

▲답변, 모든 예언은 다 성경을 쓰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예언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것은 성경적입니다.

 

①성경은 예언계시라고 부릅니다.

 

고전14:29~30절에 보면,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만일 곁에 앉은 다른 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찌니라.’

 

여기 보시면 예언은, 계시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말하는 예언/계시는, 성경을 쓰기 위한 목적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에 자기가 예언을 한다고, 하나님 음성을 들었다고,

성경을 고쳐 쓰거나, 새로 뭘 더하는 사람은, 이단 말고는 없습니다.

 

성경을 더하기 위한 예언/계시는 끝났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한 예언/계시는.. 오늘날에도 계속됩니다.

 

②예언과 계시는.. 성경을 쓰기위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고전14: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예언)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여기서 계시(예언)=말씀=방언=통역을 가리킵니다.

원래 ‘계시’는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것인데, 그래서 성경을 쓰기 위한 것인데,

그러나 ‘계시’의 범위는 광범위합니다.

성경을 쓰기위한 것도 있겠지만, (위 구절에서 보듯이) 다른 목적도 많습니다.

 

▲예언이나 계시가, 성경을 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쓰인 예

 

①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 계시로 되어진다고 말합니다.

 

마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 reveal'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셔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께서 하나님을 예수님을 우리에게 계시해(가르쳐) 주셔야 합니다.

 

몇 가지 예수님에 관한 이론을 지식적으로 동의한다고 구원 받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셔야, 사람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보시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통해 하나님 자신과 예수님을

알게 하셔서 예수 믿도록 하는 것이.. 계시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예언/계시는 필요하다. (정경 완성과 함께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 올바로 알고, 발견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래의 예를 좀 더 읽어보십시오.

 

②하나님의 진노, 심판도 하나님의 계시로 통해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롬1:18

 

‘나타나나니 revealed ’ - ‘계시되나니’란 뜻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계시가 임해야

하나님의 진노, 심판의 두려움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계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경이 기록되었다고, 계시 등이 다 끝나버린 것은 아닙니다.

 

③죄를 깨닫는 것도 계시로 인해서입니다.

 

빌3: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성숙한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찌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reveal

 

‘나타내시리라 reveal ’ - '계시하시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성령의 계시, 예언’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경이 기록되었다고, 계시 등이 다 끝나버린 것은 아닙니다.

위에서 계시=예언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도..

성령께서 빛을 비춰져야(계시해 주셔야) 돌이킵니다.

오늘날에도 계시=예언은 반드시 필요하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④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체험하는 것도.. 계시로 통해서입니다.

 

엡1: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에베소 외곽에 아데미 신전이 있었는데,

도시 전체가 우상 숭배로 먹고 살았을 정도였습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부어주셔서, 아데미가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아는 것이 - 계시입니다.

 

오늘날에도 계시=예언은 반드시 필요하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우리는

예언과 하나님의 음성, 다시 말해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으며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이 절대 아니며,

    성경의 충분성을 훼손하는 것이 절대 아니며,

    그 성경의 권위, 성경의 완전성, 성경의 충분성을

    내 삶에 적용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예언, 계시, 하나님의 음성 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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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하나님 음성’ 듣고, ‘예언 사역’ 이런 것을 반대하는 실제적 이유

너무 부작용이 많기 때문이다.

직통 계시, 개인적 신비주의, 그리스도의 몸(교회)의 분열 등을

가져오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금하는 것이다.

 

또한 교회지도자들이, 이런 성령의 사역에 대해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몇 년 등 오랜 시일이 걸리더라도 배워야 한다.                                  ▣ 선지자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