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의 온전함 마5장43-48 07.10.07.설교스크랩, 출처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마5:48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풍성해서.. 그 가치를 모릅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지만
그럼에도 하나님 사랑에 대해서 시큰둥하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차피 나 말고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데,
사랑은 독점적일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보편적이고 흔한 사랑이 뭐가 그렇게 대단할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연예인이 무대에서 ‘여러분,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별로 큰 의미가 없지요.
개개인에게, 개인적으로 알고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관계에서 귀중하게 여기는 사랑은
독점적이고 배타적이고 유일할 때 입니다.
배우자 간에는 물론이고, 자식도 부모의 사랑을 독점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형제들끼리 서로 질투심을 느끼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쟁탈하기 위한 것입니다.
부모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식이 다른 어른을 자기보다 더 의지하고 신뢰한다면
부모가 얼마나 그것을 언짢아하겠습니까.
만약 제 아이가, 제 말고 다른 남자를 보고 ‘아버지’ 라고 부른다면
제 마음이 얼마나 언짢겠습니까?
목사와 교인 관계도 사실은 비슷합니다.
교인들도.. 목회자가 자기에게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져준다고 생각할 때.. 좋아하죠.
목사도.. 교인이 다른 교회를 찾아가고, 다른 목사님 찾아가는 것을
좋아할 목사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랑은.. 독점적인 것이고 특별할 때 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은혜를 받았다’고 표현하는 것은,
예전부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데,
그 사랑을,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남들과 똑같이 느끼다가..
이제는 남들과 달리, 독점적으로, 개인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예가 적당할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물이 흔하니까, 귀한 줄 모릅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같은 건조한 지역에 가면, 물 한 동이가 귀합니다.
물 한 동이 길으러, 몇 킬로씩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흔하니까, 그게 귀한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핍박을 당하거나 고난을 당하면서,
그것이 고갈되는 환경이나 형편에 놓이게 되면,
그제야 우리는 그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그것을 독점적, 개인적으로 느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나만 사랑해주시지 않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니,
그런 사랑은 있으나 마나하다..’ 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그 사랑이 가치가 없고, 정말 형편없는 것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너무 풍성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마5:45
▶적용하면,
오늘날 보통 사람의 사랑은, 악인과 선인을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마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우리가 이같이, 내가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처럼, 그 사랑이 풍성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으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처럼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우리가 하나님처럼 온전한 사랑을 가질 수 있으며,
그래서 원수나, 내가 싫어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속에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갈등하고 싸우는데,
성령의 소욕이 나를 지배할 때는, 나도 원수를 사랑하고, 온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소외된 것처럼 느껴지지만..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차피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다 사랑하시는데..
반대로, 어떤 때, 우리는
하나님은 좀 인색하시고, 좀 엄하시고,
타협이 없으시고, 심지어 냉정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나에게 ‘엄하시다, 국물도 없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남이 크게 잘못해도 작게 때리시고, 나는 조금만 잘못해도 크게 때리신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엄하시다는 것은 좋은 소식입니다.
나를 자식대우 하신다는 얘기입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엄합니다. 잘 되기를 바랄수록 엄하게 키웁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자식 대우하실 때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엄하게 대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아셔야 됩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길게 줄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미 앞줄을 선점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기도 많이 하는 사람, 은혜 많이 받은 사람,
주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미 앞자리에 선점하고 있고, 나는 뒤에 쳐져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제가 중학생으로 인생 처음으로 참석했던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그 수련회를 가봤더니 사람들이 울면서 기도하는 것을 보고 무서웠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손을 들고 찬양하는데 호기심도 느껴지고
동시에 ‘아, 저 사람은 어떻게 믿길래 저렇게 찬양하면서 손을 들까?’
이상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목사가 되고
이제는 교인들에게 손을 들고 찬양하라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으니
사람 일은 두고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목사가 되어서도 여전히, 저보다 더 믿음도 좋고,
고난도 더 많이 받아보고, 더 많은 것을 터득한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이 앞줄에 서있는 것 같고, 저는 뒤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증거 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입니까?
맨 뒷줄에 있던 삭게오를 부르신 분이에요.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삭개오는 지리적으로 맨 뒤에 있는 사람입니다.
심리적으로도 맨 뒤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지리적으로 뒤에 있는 이유는 늦게 왔기 때문이고, 키가 작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남들의 어깨 너머로 예수님이 보이지 않아요.
그러나 심리적인 이유가 더 큰 것입니다.
그는 세리에요.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비판받는 죄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인 자리에 왔을 때.. 주눅이 드는 것이고
자격지심을 느끼는 것이고,
여기는 내가 낄 곳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고
사람들 얼굴 마주치기가 힘들고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보고 싶기는 하지만
사람들이 있는 곳에 끼어들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뒤에, 사람들 없는 뒷자리에서 나무에 올라가서.. 예수님을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앞자리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다 제쳐놓고
맨 뒤에 있는 삭개오를 부르지 않습니까?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아셨어요.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예수님이 우리를 만나 주실 때는
맨 뒷자리에 있어도, 만나주십니다.
심리적으로 소외되어 있어도, 더 만나주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상한 갈대, 꺼져가는 심지’를 더 사랑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어디 모임에 가면,
거기에는 상석과 하석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고,
신분이나 직급이 낮은 사람은, 모임에 가도 소외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그들의 영혼의 가치와 무게는 동일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상하고 낮은 사람을 더 가까이 하십니다.
다시 본문을 봅니다.
마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예수님은, 앞줄에 서 있는 사람만 만나시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자, 형제에게만’ 문안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십니다.
▶적용
마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구원을 받은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이같이 하는데’ ↑
그것은 사람을 가려서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수나, 악인에게까지도
똑같이 해를 비치며, 똑같이 비를 내리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도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외된 자들도 사랑하시므로,
하나님의 자녀들도.. 소외된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때로는 내가 소외되었다는 느낌을 가질 때,
그것은 ‘너가 느끼는 것처럼.. 소외된 다른 자를 돌보라’는
하나님의 신호일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온전하라’ .. 의 뜻
그냥 들으면
‘어휴,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것을 요구하실까?
나는 교회도 겨우 나오는데,
어떻게 나에게 하나님처럼 온전하라고 말씀하실 수가 있을까?
아, 이건 정말 믿음이 좋고 헌신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고, 나에게는 해당 안 돼.’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어떻게 불완전하고 죄많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온전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온전하라’
예수님 말씀대로 온전하려면,
하나님이 온전하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해야 돼요.
▶1.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처럼..의 뜻 주1)
본문에, 하나님의 온전함을 예수님은 어떻게 표현하셨느냐?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그러니까 ‘하나님이 온전하시다’는 얘기는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하다’는 뜻입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도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불의한 자에게도 햇빛을 비추고 비를 내려 주신다는 뜻입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다행입니까.
저는 이 설교준비를 하다가
햇볕 정책의 성경적인 근거가 여기에 있구나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정말 그 이전에는 그냥 이솝우화에서만 따온 얘기인 줄 알았는데
아마 그 정책을 만든 분들도 그 사실을 몰랐을지 몰라요.
그러나 이 구절을 읽으니까, ‘하나님이 불의한 자에게도 해를 비춰 주신다’
아,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입니다. 이것은 복음이에요.
적어도 우리가 불의한 사람이라면 복음입니다.
우리와 같은 불의한 사람을 하나님이 배척하지 않고
우리에게도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신다는 얘기니까.. 이건 복음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랑의 최대 수혜자가 누구입니까? 우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한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나도, 하나님이 용서하시고 사랑하시고
햇빛과 비와 같은,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2. ‘너희도 온전하라’
아마 여러분 중에는 '하나님의 온전함처럼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함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
그런데 ‘나보고 하나님처럼 온전하라!’고?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온전함이나, 그리스도인의 온전함은
어떤 나쁜 일을 하거나/안 하기 때문에 온전하신 분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하기 때문에.. 온전하신 분이시고,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뭐를 하거나/안하기 때문에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고
결국은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처럼, 긍휼을 베풀고
용서하고 또 자비를 베풀고 사랑을 행하면서 사는 것이
그 사람을 온전한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은 결코 어려운 일도 아니고 막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먼저 그런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햇빛과 비를 내리시듯,
우리 크리스천들이 원수도 이웃과 똑같이 사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AA가 믿는 하나님은 용서가 많은 하나님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AA란 Alcoholics Anonymous - 미국의 알코올 중독자 갱생 모임입니다.
그런데 왜 AA가 믿는 하나님이, 용서하심이 많은 하나님이라고 할까요?
저는 처음에 이해가 안 됐어요.
술 마시는 게 뭐가 그렇게 큰 죄라고 AA의 하나님이 용서심이 많다고 할까?
그러다가 깨달았습니다.
AA 모임은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모이는 모임입니다마는
그러나 누군가 의지가 약해서 술을 끊으려고 애쓰다가 다시 술을 마시더라도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6개월 동안 술을 안 마시다가 지난 주일에 다시 술을 마셨습니다.’
라고 누가 고백을 하면,
결코 그 사람을 blame 한다든가 나무란다든가 그에게 설교하지 않고
‘솔직하게 고백해 줘서 고맙습니다.’ 이렇게 그 사람을 받아줍니다.
그 사람이 열 번, 스무 번 그런 고백을 해도 늘 한결같이 받아줍니다.
여기에서 ‘AA의 하나님은 용서심이 많은 하나님이다.’ 라는 말이 나온 것인데
저는 AA가 믿는 하나님이야말로 진짜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정말로 하나님의 참된 속성을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가 술을 끊겠습니다.’하고
의지가 약해서 또 술을 다시 마시면
‘너는 망조 들었다. 너는 소망이 없다.’ 이런 식으로 책망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
주1)
칼 바르트가 <로마서 강해집>에서 강조하려고 한 것은
하나님은 인간과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게 중요했느냐면..
유럽의 자유주의 신학이, 하나님을 인간과 같은 분으로 만들어 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인간과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같은 메시지를 전하는 분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럽의 신학자들이 설명하는 것을 듣다보면
하나님은 공산주의자 같기도 하고,
여성해방 운동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인권운동가처럼 보이기도 하고,
환경운동가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공산주의자가 전하는 하나님은 공산주의자처럼 보이고
환경운동가가 전하는 하나님은 환경운동가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서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반대로 미국의 자본주의자가 전하는 하나님은.. 자본주의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칼 바르트는 강조하기를 ‘하나님은 사람과 절대적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닌 것, 거기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하나님의 타자성’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면, 거기에 하나님이 있다는 것인데
그런 맥락에서 오늘의 본문을 읽어야 됩니다.
그러지 않고 본문을 읽으면, 오늘 본문처럼 부담스러운 구절이 없지요.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온전하라’ ▣ 사 랑
'분류 없음 > 2007'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적인 먹거리 2876 (0) | 2011.02.16 |
---|---|
온전함에 관한 야고보서의 교훈 (0) | 2011.01.10 |
하나님이 잠적하신 것같은 세상? 2790 (0) | 2010.12.13 |
모세의 퇴장 (0) | 2010.10.29 |
열병을 멈추고 평강으로 2702 (0) | 2010.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