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심에서 구원받아야 한다 딤후2:8~15 2010.10.10.설교스크랩
*원제목 : 주님과 함께 죽었으면
※ 하나님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나타나니까, 여호수아가 물어보았습니다.
우리 편입니까? 적의 편입니까?
근데 난 아무 편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군대장관이 나오면
당연히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여호수아 편이라고 그럴 텐데
아무 편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크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내편이다’ 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 일방적으로 편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고, 그분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내 교회만 편들고, 우리 교회를 대적하는 자들을 심판하고..
그런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를 대적 하고 공격하는 자들도 회복시키고 구원하기를 원하는 분이지,
우리를 들어 사용하셔서 다 구원하기를 원하는 분이지,
하나님은 언제나 내편만 되시는 게 아닙니다. (이 단락 펀글)
◑믿음이 지나쳐서 ‘싸움닭’이 되면 안 되죠.
▶운동선수들 중에 유난히 승부근성이 강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어떻게든지 기어이 이기려고 하다 보니까, 심한 반칙도 하게 되고
운동선수로서는 해서는 안 될 비신사적인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비열한 말과 행동을 해서 상대방을 자극하고 흥분시킨다든지 하는 일도 있습니다.
운동경기를 하려면 어느 정도는 승부욕도 있어야 하고,
때로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격한 플레이를 하는 것도 필요할 때가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스포츠의 정신을 왜곡할 정도로 심하게 승부욕을 부리다가는,
이겨 놓고도.. 질 수 있습니다. 페어플레이가 아니었으니까요!
더 문제는, 승부욕이 너무 지나쳐서, 절대로 자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자기가 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대방이 나보다 강하다,
혹은 상대방이 적어도 이번에는 나보다 잘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할 때 말썽이 생기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게 안 되는 사람이 있단 말이지요.
논쟁을 하거나, 경쟁이 붙거나 하면, 아무튼 무조건 이겨야 되는 사람이 있어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어쩌면 더 심한 지도 모릅니다.
교회 대항 체육대회 같은 걸 하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말썽이 생깁니다.
심판의 판정을 놓고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고,
아무튼 꼭 이기고 지는 것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고 말썽이 생겨서,
애당초 시작은 서로 친해지자고 한 건데, 나중에는 싸워서 원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오히려 더 서먹서먹해지고 불편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걸 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기독교인들이 더 지기 싫어하는 것 같이 보일 때가 있어요.
승부욕이 강해서 그런지, 아무튼 지기 싫어하는 것 같아요.
한번 싸움이 시작되면 끝나지를 않습니다.
누구도 절대로 자기가 졌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아무리 자기가 잘못했어도 사과하지 않아요.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하고, 끝까지 자기가 이겨야 하고,
그래서 교회에서는 한번 싸우면 죽을 때까지 원수가 된다는 말까지도 있단 말이지요.
지금까지 교회 분쟁이 많이 있었지만,
서로 사과하고 화해하거나, 누가 자기가 잘못했다고 인정하거나
자기가 졌다고 수긍해서 좋게 끝나는 경우가 잘 없습니다.
끝까지 싸우거나 원수가 되어서 헤어집니다.
교회 재판도 소용없고, 법원의 판결도 인정하지 않아요.
세속 법원의 판결은 공권력으로 집행을 하니까 할 수 없이 따르기는 하지만,
속으로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면, 그게 믿음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옳다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니까 내가 틀렸을 리가 없다,
하나님이 내 편이니까 내가 질 수가 없다.., 이런 믿음이에요.
하지만 이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지요.
내가 옳으니까 상대방은 틀렸다,
내가 이겨야 하니까 상대방은 져야 한다.., 그런 거지요.
하지만, 문제는 상대방 역시 똑같이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단 말이지요.
그러니 끝이 나지를 않습니다.
이게 교회 안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도 똑같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마찰이 생기거나 분쟁이 생기면, 교회는 기어이 이겨야 합니다.
항상 교회는 진리이고 정의이기 때문에 져서는 안 되고, 질 수도 없다고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억지라고 해도,
교회는 항상 자기가 진리라고 믿기 때문에, 절대로 양보 안 해요.
그리고 그걸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근본주의 신앙’이라 그럽니다.
여기서는 부정적 의미의 근본주의 입니다.
회교 근본주의가 자신들만 옳다고 믿고 테러를 자행하듯이,
자칫 잘못하면, 기독교도 근본주의 신앙(나만 옳다)으로 밀어부칠 때가 있습니다.
◑본문 설명, 지면서 승리한 예수님과 바울
▶1. 오늘 말씀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딤후2:8, 나의(내가 전한)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왕/왕이 될 신분이라는 말입니다. 아무튼 왕입니다.
그런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것은, 죽으셨다는 거잖아요.
예수님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는 다들 잘 아시지요?
예수님은 세상 기준으로 보면 패배자입니다.
당시 권력을 잡은 사람들에게 잡혀서 죽었단 말이지요.
뜻을 채 펴지도 못한 채, 33세의 나이에 비참하게 죽었단 말이에요.
예수님이 잡히실 때, 제자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온 사람들을 가로막으려고 하니까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나의 아버지께, 당장에 12군단 이상의 천사들을
내 곁에 세워 주시기를 청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런 일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고 한 성경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마26:53~54
예수님이 세상의 권력과 싸워서 이길 힘이 없어서 잡히신 게 아니었습니다.
그들과 얼마든지 맞설 수 있었고, 그랬으면 이길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이런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지는 방식/죽는 방식으로써 이기신 예수님’이십니다.
▶2. 계속해서 성경은 바울의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은 대단히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절대로 지려고 하지 않는, 승부욕이 대단히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자기의 은인인 바나바와 의견 대립이 벌어졌는데,
자기보다 나이도 많고, 교회에서의 위치도 자기보다 높고,
무엇보다 오늘의 바울이 있게 해 준 장본인인 바나바와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결별하고 맙니다.
바울은 실력도 있었지요. 학식이나 학벌로 보면 당대 제일이었습니다.
논쟁에서 누구에게 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지금은 감옥에 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가지 않으려고 마음만 먹었으면
얼마든지 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감옥에 갇혀야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바울은 자기에 대한 모함을 피하지 않았고, 도망가지 않았고,
오히려 자진해서 로마로 갑니다. 거기서도 전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로마로 가는 가장 빠르고 안전한 방법인 죄수 신분으로 로마에 가서,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디모데후서를 쓸 당시)
하지만, 그래도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죄수요, 다른 기독교인들이 봐도 그랬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간 것을 바울의 실패요 패배라고 보는 시각이 교회 안에서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떠나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그 길을 택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 복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며, 죄수처럼 매여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여 있지 않습니다.” 딤후2:9
바울의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도 갇힌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도 갇힌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가 감옥에 갇힌 것,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과의 싸움에서 패배해서 감옥에 갇히고 죄수가 된 것이 하나도
속상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지요.
만약 자기가 감옥에 갇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장애가 된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자기가 갇혔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여 있지 않은데,
자기가 이기고 지는 것, 성공하고 실패하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하는 겁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신 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참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도 또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딤후2:10
이기고 지는 건 중요하지 않다는 겁니다.
바울은 자기의 사명,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는 일,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그 사람들을 위해서 모든 것을 참는다고 합니다.
패배도, 실패도, 감옥에 가는 일도, 사람들에게 모욕당하는 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서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면,
자기가 당하는 모욕이나 고통은 오히려 기쁜 일이라는 거지요.
만약에 바울이 참지 못한다면, 그건 자기 자신 때문일 겁니다.
바울이 참지 않고 싸우려고 들거나 이기려고 한다면,
그건 하나님을 위해서, 또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자존심과 자기의 명예와 자기의 자유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굳이 싸우고자 하면, 또 굳이 이기려고 하면, 이길 수는 있겠지요.
참지 않아도 될 겁니다. 감옥에서 나갈 수도 있을 것이고,
이런 고난당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바울은 이길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뜻은 멈추고 맙니다.
복음은 갇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예수님처럼,
‘자기가 지면서, 복음이 이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게 성경적인 원리입니다.
‘내가 이기면, 패배자가 기분 나빠서.. 누가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겠습니까?’
▶기독교의 원리는 십자가이고, 다른 말로, 지면서(십자가에 죽으면서) 이기는 원리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우리들끼리 서로 다투고 경쟁하고 이기려고 하거나,
혹은 교회가 세상과 맞서 싸워서 굳이 이기려고 하면, 이길 수 있을 겁니다.
우리 믿음으로 끝내 이기게 될 테지요. 적어도 지지는 않을 수 있을 겁니다.
내가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물러서지 않으면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하는 그 순간, 복음은 패배하고 예수님은 실패하고 맙니다.
나는 이겼을지 몰라도, 복음은 지는 겁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멈추고 마는 겁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밑에서 버티고
자기를 십자가에 달려고 하는 사람들과 맞서서 싸우셨다면.., 이기셨겠지요.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내려와서 예수님의 편을 들어 싸웠을 테니까
로마 군대쯤은 상대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러셨다면, 우리의 구원은 없습니다. 십자가도 없고, 부활도 없으니 말입니다.
◑적용 및 생각해 볼 문제
▶2010년 11월에 새로 개통되는 KTX 역에,
‘OO사’라는 사찰 이름을 부기하는 문제를 놓고, 그동안 교회가 계속 싸워왔습니다.
사찰 이름을 넣으면 안 된다는 거지요.
결국 역사 건물 외벽에 부착된 역 이름 현판에, 사찰 명칭이 빠진 채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계에서는 싸워서 이겼다고 축하하는 분위기인 모양인데요..,
저/설교자는 그 기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얻은 게 뭘까요?
만약 통도사라는 이름을 넣는 것을 교회가 앞장서서 찬성했다면 어땠을까요?
과연 그 싸움에서 누가 이기고 누가 진 것일까요?
사찰 명칭을 넣으면 불교계가 왕성하게 발전하고, 교회가 위축될까요?
저는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로 인해서, 교회에 대한 인식이 다시 한 번 나빠졌을 거라고 봅니다.
시작부터가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보지만,
중간에라도 포기했으면 좋았을 텐데,
끝까지 싸워서 이기고야 말겠다고 하다 보니까,
오히려 공격을 당할 빌미를 제공한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겁니다.
교회는 이겼을지 몰라도,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복음은 장애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포기하거나 양보하라는 게 아니지요.
선교를 중단해야 한다는 것도 아닙니다. 싸우지 말라는 겁니다.
싸워서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겁니다.
이기는 건 나일지 몰라도, 지는 건 상대방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좀 깨달으라는 겁니다.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나서 서로 치고 박고 싸우고,
용역회사가 동원돼서 까만 양복 입은 사람이 교회 문지기를 하고,
그런 모습을 주변에서 보면, 결국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겁니까?
교회가 세상 사람들하고 싸우면서 끝까지 이기고야 말겠다고 하면,
결국은 누가 이기고 누가 지게 되는 걸까요?
▶우리가 흔히 하게 되기 쉬운 착각이.. 내가 복음을/하나님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투철한 사명감으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지키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착각입니다.
복음/하나님 나라/교회는.. 내가 지키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키십니다.
내가 복음을 지키는 게 아니라, 복음이 나를 지키는 겁니다.
싸워서 이기는 게 목적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양보하면, 우리가 져주면, 하나님이 이기십니다.
우리가 끝까지 싸워서 이기겠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손을 떼십니다.
우리가 싸움에서는 이길지 몰라도, 결국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마는 겁니다.
우리는 참 지기 싫어합니다. 어떻게든 이기고야 말리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회의를 할 때도, 내 의견을 끝까지 관철하고야 말리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 생각이 다르고 입장이 다를 때, 누구도 양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대립할 때도, 끝내 이기고 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러지 말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육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에서 시기와 싸움이 있으니,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고,
인간의 방식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고전3:3
“무엇 때문에 여러분 가운데 싸움이나 분쟁이 일어납니까?
여러분의 지체들 안에서 싸우고 있는 육신의 욕심에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까?” 약4:1
“신자들에게 이것을 일깨우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그들에게 엄숙히 명해서 말다툼을 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것은 아무 유익이 없고, 듣는 사람들을 파멸에 이르게 할 뿐입니다.” 딤후2:14
▶마치는 말
본문 딤후2:11~1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씀은 믿을 만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었으면, 우리도 또한 그분과 함께 살 것이요,
우리가 참고 견디면, 우리도 또한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요,
우리가 그 분을 부인하면, 그분도 또한 우리를 부인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참고, 져주면, 주님과 함께 죽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죽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살게 됩니다.
우리가 참고 견디면, 우리도 또한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싸우려고 하고, 이기려고 하면,
그것은 우리를 위해 져주신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고,
그렇게 우리가 그분을 부인하면 그분도 또한 우리를 부인하실 것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참는 게 지는 게 아닙니다. 진다고 해서 지는 게 아닙니다.
내 욕심, 내 자존심은 상할지 몰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있다면
결국 우리는 주님과 함께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더라도, 그분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딤후2:13
(그래서 지는 자가 이기도록.. 판정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인정받는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지 않으면 헛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해주시지 않으면.. 내 완력으로 이겨도.. 헛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생각하기에 내가 이겼다고 해도,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나보고 이겼다고 말해주어도,
하나님이 인정해주시지 않으면.. 헛것입니다.
사람과 싸워서 이기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기 위해서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부끄러움 없는 일꾼이 되면 됩니다.
이런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경쟁에서 구원받아야한다.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났다. ←설교제목
하나님이 우리 곁에 사람을 붙여주신 것은 경쟁하라고 붙여주신 것이 아니다.
사랑하라고 붙여주셨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대인관계의 기본원칙이다"
우리는 너무 세상을 경쟁적으로 살려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도 부자로 살아야 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야 하고, 학교도 좋은 학교 들어가야 하고,
성공하고 잘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쟁에서 무조건 이겨야 하나님께 복 받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도 무조건 경쟁에서 이기라고 합니다. 이기는 법만을 가르치려고 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과, 혹은 성도들에게 싸워서 이기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런 모든 경쟁과 다툼과 승부욕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거기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싸워서 이기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이기는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시고, 사랑하는 사람을 인정하십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 때문에 지듯이, 우리도 사랑 때문에 지라고 하십니다.
경쟁에서 낙오된다고 겁내지 말고, 오히려 경쟁에서 벗어나라고 하나님은 우리를 이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