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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시는 이유 2757

LNCK 2010. 11. 23. 15:36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시는 이유                계3:17~22              08.11.01.설교녹취

https://www.youtube.com/watch?v=1_K-u9ihN5s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고.. 두드리신다.

 

마지막 때의 교회 모습은, 종종 라오디게아 교회에 비유되는데...

그 교회의 모습은 이렇다.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마지막 때의 교회는,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때의 교회 모습은, 그 가치관이, 세상과 동일하다고, 위 구절에서 말한다.

실제로 세상적인 것들이 다 갖춰져 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그러나 주님은 신앙적/성경적 가치관으로 그들을 대하신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사랑하시는 자에게 - 문을 두드리신다.

오늘날의 전도지에 가장 많이 나오는 구절은 이렇다.

계3: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서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그런데 주님은, 누구에게/왜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는가?

그 이유는 바로 앞 절에 나와 있다.

 

①회개하라고 문을 두드리신다.

계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주님이 우리 가운데 문을 두드리시는 자는,

‘열심을 내어 회개하는 자’이다.

 

②주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 문을 두드리신다.

 

그런데 이 사람이 열심을 내어 회개하는 이유는

주님의 사랑을 받아서.. 책망을 듣고,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네가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

 

 

◑주님의 책망을 듣는 일은.. 참 좋은 일이다.

 

성경에 대해서 사도바울은, 자기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한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책망

바르게 함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함

이 4가지가 모두,

오늘날 우리가 듣기에 다 기분 좋은 말이 아니다.

가급적 회피하고 싶은 말들이다.

 

여러분, 이 4가지 -책망, 교훈,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함-가

성경을 볼 때마다, 우리의 영혼을 깨우는 역사가 있게 되기 바란다.

 

바울이,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교훈, 책망을 언급했듯이,

주님이, 사랑하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책망하고 징계하셨듯이, 계3:19

 

그 주님의 문 두드리는 방문이, 오늘 내게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모두 주님의 방문을 사모하고, 기다리지만,

그게 그렇게 세상적으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주님의 방문은, 임재는,

우리를 사랑으로 책망하시고, 징계하시는 방문이시다.

 

그러나 그런 책망의 주님을 만나야, 찾아오셔야, 이 역사가 일어난다.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책망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대 교인들

오늘날 참으로 교회가 잃어버린 영혼들이 회심하고 돌아오는 일이 정말 적다.

회심이 없다면 자칫 잘못하면, 종교적인 예식이 되고 만다.

열매가 없고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은, 주님이 저주하셨던, 그런 나무와 같을 수 있다.

 

우리는 열심을 내어 회개해야 하는데,

주님은 그 열심을 내어 회개하도록 도와주시기 위해서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시고, 징계하신다.

 

여러분, 주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책망하며, 징계하는 것을 듣고,

열심을 내어 회개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축원 드린다.

 

그러한 자의 문을 두드리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주님이 책망하고, 징계한다’는 3:19절 말씀은 싹 빼 버리고,

20절,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린다’는 말씀만 강조하는데,

 

오늘 우리는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나를 책망하시고, 징계하시는 주님이시다.

성경을 통해 교훈책망바르게 함의로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주님이 문밖에 서 계신 이유

오늘날 만약, 내 삶에, 내 공동체에 이게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함 빠져 있다면,

우리가 주님을 계속 문밖에 세워 두는 이유가 된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회개케 하기 위하여, 우리의 문밖에 서서 두드리신다.

 

라오디게아 교회란, 라오스(민중)과 디케아(교훈)가 합쳐진 말인데,

마지막 때의 교회는 ‘사람들의 교훈’ 또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교훈’으로 가득 찬 교회를 말한다.

그래서 주님을 계속 문밖에 세워 두는 것이다.

 

 

◑신앙의 전래에는 ‘피’가 필요했다.

 

북한에 돌아가서 순교한 어느 여전도사님(탈북자)의 시를 인터넷에서 보았다.

그는 몇 해 전에, 탈북해서 예수를 믿고, 전도사님이 되었는데,

그 분이 이 시를 써 놓고,

북한으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셨다.

 

그 분의 시는 이렇게 시작된다.

 

에스더가 잠잠할 때, 구원은 다른 사람으로 말미암아 나지만,

너는 죽으리라!

북한에 대하여 우리가 잠잠하다면,

그 구원은 다른 길로 나지만, 나는 죽으리라!

 

그는 남한에 가서, 그 축복을 누리기보다는,

복음이 없어서 죽어가는 동포들을 사랑해서,

‘북한에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들의 구원은 다른 길로 나겠지만,

나는 죽으리라’ .. 그런 시를 써 놓고 북으로 돌아가서 순교했다.

 

그러한 분과 같은 시대를, 같은 민족으로서, 내가 살고 있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지..

 

▲신앙은 ‘피’로 통해서, 전래되었다.

구원의 놀라운 은총과 축복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었다.

 

초대교회 이후에 세상에 복음전파도,

결코 안일한 신앙생활을 통해서가 아니라,

‘피흘림’의 순교 역사를 통해, 유럽과 신대륙과 아시아로 전파되었다.

 

특별히 이 성경말씀은,

이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성도들의 ‘피값’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성경을 번역하고, 전파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피’를 흘렸다.

 

성경말씀을 오늘날 우리 손에 전해준 사람들은,

성경말씀을 전하기 때문에, 즐겁고 안정된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니라,

이 진리를 우리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그들은 피를 기꺼이 흘려야만 했었다. 

 

초대교회, 중세시대.. 다 그랬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성도들의 피흘림을 인하여 우리의 손에 이 귀한 진리의 말씀이 도착해 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이 소중한 성경말씀과 진리의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피흘림’과 ‘희생’을 필요로 한다.

 

‘즐겁고 안정된 삶을 사는 것’ - 이것이 기독교의 최고 목표가 아니다.

오늘도 이 말씀을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피흘림’과 ‘희생’을 감당하고 있는데...

‘내가 즐겁고 안정된 삶을 사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결코 안 된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과,

성도들의 피흘림을 기억하며,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생명이 되기 축원드린다.

 

그렇게 하라고,

주님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며 징계하신다.

 

▲마치는 말

느헤미야는 퇴락한 예루살렘의 성과 그곳에서 고난당하는 동족 얘기를 들었을 때,

눈물을 흘리며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했다.

 

또한 퇴락한 주님의/교회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나의 성공이나 나의 실패를 염려하는 것보다도,

주님의 몸된 교회의 영광이 회복되는 것을 애통하며 기도해야 하겠다.

기도가 시작이니까!

 

느헤미야가 그렇게 예루살렘이 퇴락할 수밖에 없었던

조상의 죄를 자기 문제로 여기고 회개하며 눈물로 기도한 것처럼

이 마지막 때에 우리가 속해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로 인하여

우리가 겸손히 나의 죄부터 회개하며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어야 하겠다.                ▣ 죄, 복된 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