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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가 막히는 이유 2788

LNCK 2010. 12. 12. 23:00

 

◈기도가 막히는 이유                        마5:44                     10.08.29.설교스크랩, 출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5:44



◑서론.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변화된 삶


본문 말씀은, 넓게는 마5장부터 7장까지 이르는 산상수훈에 속해 있고,

좁게는 팔복 이후에 전개되는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삶에 대한 첫 번째 강론 부분에 실려 있는 말씀입니다.


특히 이 마5장은 이신칭의의 교리를 주장하는 개신교도들에게

적잖은 시험거리가 되어왔습니다. 왜냐하면 5장뿐만 아니라 6, 7장 여러 곳에서

마치 행위로써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 같은 암시들이 제공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마5장은 ‘천국백성들의 정체성과 그들의 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강론하고 있습니다.


팔복으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의 정체성은

내면의 세계가 변화된 사람들이고,

그렇게 변화된 사람들은 곧 빛이요, 소금이며,

그러므로 그들은 마땅히 이 세상 속에서 이러저러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와 화해하고 용서하는 문제도 나오고,

음욕을 품은 자마다 마음으로 이미 간음하였다는

새로운 율법의 제시들도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당신이 구원을 이루신 이후에 신약 시대에 전개될 율법의 시현은

구약 시대나 혹은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지키던 그 율법과는 다른 종류의

새로운 것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즉, 외적으로 이런저런 율법을 지킴으로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이 율법의 성취가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영적인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한 자가 될 때


그는 심령이 가난한 자이고,

그는 자신의 죄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애통하는 자이며,

심지어 자기의 원수를 향해서라도 마음에 온유함을 유지하는 사람,

또 이 세상에서 먹고 입을 것과 세상의 지위가 주어져도

그것으로 배부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면이 변화된 결과, 그의 인격에 영향을 미치고,

그의 인격에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삶이

바로 예수님이 천국 시민의 생활이 이러해야 된다고..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당신이 이 세상에 새로운 율법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오셨는데

그 새 율법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변화된 삶의 질로부터 흘러나오는 착한 그리스도인의 생활 때문에

믿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까지도 유익을 누리게 되어서 그의 선행에 참여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이 영향이 미치게 됨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5장의 내용입니다.


이와 같이 산상수훈에서, 천국 시민의 생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는 중에

본문에서 예수님은 특별히 기도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셨습니다...



◑삶과 기도는 불가분의 관계


기도가 잘 되려면.. 삶이 올발라야 합니다.

(기도해야 한다고 결심하면서도) 기도가 잘 되지 않으면.. 삶을 점검해야 되는데요,

특별히 ‘원수를 미워하면..’ 내 기도가 점점 막히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이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너희 원수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말씀은 문학적인 구조로서 ‘병행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편이나 잠언에 많이 쓰인 문학적인 기법입니다.)

원수가 A, 핍박하는 자는 A'이고

사랑하라가 B, 기도하라는 B'가 됩니다.


즉, 원수란.. 나를 핍박하는 자요,

사랑하는 것이란.. 원수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도로 살아간다는 것, 천국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1. 기도는 마음의 활동

예수님께서는 왜 기도와 짝을 이루어 원수를 사랑하라는 간곡한 권면을 하고 계실까요?

그것은 기도가 마음의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미움과 사랑, 분노와 감동과 같은 모든 정신작용은, 마음을 자리로 해서 깃들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올리는 활동입니다.


그런데 어쩐지 우리의 기도는, 항상 매우 힘들게 이어질 때가 많습니다.

(기도는 마음의 활동인데, 마음이 메마르니까.. 기도가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말씀 묵상이나 경건서적 읽기, 은혜로운 찬양,

혹은 성도의 교제를 통해.. 마음을 하나님 사랑의 정서로 따뜻하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제야 우리의 기도는 훨씬 순발력이 있고, 간절해지게 됩니다.


그러나 더불어 생각할 것은

무엇이 우리의 마음에서 기도의 은혜를 빼앗아 가버리는지 찾고,

그것을 마음에서 물리치는 일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이 정화되어 흘러가야 합니다.

그런데 미움 같은 장애물이 생겨서 기도할 수 없게 되면,

그것들이 우리 마음에 걸리게 됩니다.


전에는 기도를 안 해서 능력이 모자랐는데,

이제는 (미움 등으로) 기도를 할 수 없게 되니까,

내 마음에 각종 악과 욕망들이 더욱 더 솟아나서

그 자체가 커다란 힘이 되어, 내 마음과 삶 자체를 점령하기 시작합니다.


교회에서 이 일 저 일로 열심히 봉사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주저앉을 때,

어떤 사람들은 갑자기 그런다고 하지만, 그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이미 마음 안에서 기도가 사라지면서

‘육의 소욕’이 ‘성령의 소욕’을 점점 밀어내고, 붕괴시킨 것입니다.

(마음의 미움과, 기도의 감소가.. 서로 자극을 주어서, 서로 악순환으로 확산된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기도를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그것들을 치우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가 마음의 활동이라면

마음 지킴이 우리의 기도생활을 풍성하게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지침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마음은 누가 지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우리입니까?

성경은 이상하게도 이것을 둘 다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네 마음을 지켜라.”고 명령합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기도를 해야 한다는 선택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실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힘이 필요합니다.



▶2. 기도는 사랑의 흐름

(기도가 마음의 활동이라면) 기도는 또한 사랑의 흐름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들의 기도가 오를 때, 가장 활발하고 아름답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참되고 진실하게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참되고 진실하게 사랑하는 그 뜨거운 마음속에서 기도는 날개를 달게 됩니다.


우리의 마음(영혼)은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맞닿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육체와 이 물질 세계에 맞닿아 있습니다.


내 마음은 내 영혼과 맞닿아 있습니다.

내 마음이 느끼는 분노, 사랑, 기쁨, 미움, 비참함, 죄의 유혹 등은

결국 내 영혼에까지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런데 내 영혼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경향을 가지고 있을 때

성경과 찬양, 봉사를 통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면서,

기도도 점점 더 잘 됩니다.


반대로 내가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좋은 줄 알고 자꾸 쫓고, 영향을 받게 되면

내 영혼은 악한 성향을 띄게 됩니다. 내 영혼에 ‘하나님 사랑’이 고갈됩니다.

그러면서 점점 기도가 막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기도가 막혀 있다면,

뭔가 막힌 이유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죄입니다.

미움이든지, 교만이든지, 악한 생각, 더러운 것들, 그게 뭐든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흐름을 가로막는 장애(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치워내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과 기도하는 마음은 일체입니다.

기도의 영은 신자가 하나님 사랑의 영으로 가득 차 있을 때에

가장 풍부하게 역사합니다.


성령은 곧 사랑의 영이요, 그리스도의 영도 사랑의 영입니다.

내 영에 사랑이 가득할 때, 영과 영이 통하는 것입니다. 교제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에

    ‘사랑하라’, ‘아가파테’라는 명령이 ‘기도하라’는 명령보다 앞에 나옵니다.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여기서 ‘사랑하라’(아가파테)는 여러분이 잘 아는 아가페의 동사입니다.

인간들 사이에 흐르는 육욕적인 사랑이 아니라

순수한 아가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것입니다.


‘원수’는 ‘에크도로스’로 되어 있는데 ‘원수들’이라는 복수입니다.

나를 미워하는 원수가, 여럿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홍수 때 무너지는 다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삶이 다리bridge이고, 

물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복과 은혜들로서, 다리 아래로 흘러내려 갑니다.


맑은 물이 하류로 내려가면서 고기들을 살게 하고, 생태계를 살리게 되는데,

그런데 홍수가 나면,

쓰레기(미움, 분노, 교만, 탐욕 등)들이 떠내려 오게 됩니다.


그게 교각에 걸리고, 다리에 누적되면서

결국은 다리가 붕괴될 수도 있습니다.


맑은 물이 흘러내리면.. 고기가 살고, 마을 주민들이 살지만,

쓰레기가 떠내려 와서 교각과 다리에 걸리게 되면.. 그게 누적되어 쌓이다가

결국 다리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은 그의 저서에서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한 사람이 이웃에 대해서 악을 행할 때

악을 행하는 행악자는, 악을 당하는 이웃보다 더 나쁜 것을,

이미 자기 마음속에 당했습니다.” (자기 마음에 쓰레기더미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누군가를 폭행하거나, 누군가에게 폭언을 퍼붓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속이거나,

이웃에게 이웃의 행복을 짓밟는 어떤 일을 했을 때

최대의 피해자는 그것을 행한 자기 자신입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그의 영혼과 마음이 부서지고 짓이겨지는 피해를 이미 본 것입니다.

(기도가 막히고, 그게 누적되면 '다리'가 붕괴됩니다.) 


똑같은 원리로, 어떤 사람이 이웃에게 선을 행할 때

그 선의 최고의 수혜자는, 선한 행실을 제공받은 이웃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마음이 정화되면서, 기도가 잘 되는 것입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악을 행하고 큰 고통을 준 사람(원수)을 내가 용서합니다.

어느 날 내가 그를 찾아가서

“내가 나를 괴롭히던 너를 미워했던 것, 잘못됐다는 것을 고백한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너에게 용서를 빌고, 나도 너를 용서한다.”


이 용서의 최대 수혜자는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 안에서 끊임없이 미워하던 동안.. 망가진 많은 것들을

치유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적의를 품은 사람들을 용서하라는 것도 아니고,

차원을 더 뛰어넘어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용서는 사랑이 흐르게 하고,

사랑은 기도가 흘러가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마치는 말


우리는 결국 삶과 기도가 함께 묶여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삶이 잘 되야.. 기도가 잘 되고,

삶이 안 되면.. 기도도 막힌다는 것입니다.(위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에 있는 미움, 그리고 마음속에 있는 원수 된 감정들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원수를 미워할 때 우리의 마음 안에 일어날 그 재앙을 아시는 주님이

우리가 그렇게 미움 속에서 우리의 기도의 영이 마르고,

은혜의 영이 소멸될 것을 아셨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본문에서 그렇게 충고하셨던 것입니다.


저는 언젠가 마음으로 깊이 미워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아주 표독스럽게 항의하던 것들이 이런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은혜는 조금 주시고, 왜 나보고만 죽으라고 하십니까?’


내 원수를, 주님이, 나보다 더 사랑하신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나중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고 나서, 저는 참 많이 울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나의 원수를 더 사랑해서가 아니라

나를 훨씬 더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의 속을 행복하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나더러 ‘져라.’고 명령하시고,

‘꺾으라.’ 고 명령하시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이구나.’ (어거스틴의 말과 관련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방식이 어떤 방식입니까?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복음을 듣고 자신의 죄인 됨을 고백하고 펑펑 울면서 회개했더니

하나님이 ‘용서’라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용서를 했다가 미워했다가 그러신 분이시겠습니까?

엄밀히 말하면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택되었을 때

이미 하나님은 영원 전에 우리가 하나님을 등질 것도,

용서할 것도 주님이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구체적으로 펼쳐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사랑하고 계셨음에도.. 그 사랑을 모르다가

우리가 회개를 하게 되니까 비로소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사실,

예전부터 사랑했다는 것이 커다란 감격으로 경험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감격적인 복음의 사실을 로마서 5장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고 말입니다.  롬5:8


우리가 이런 사랑을 받았다면, 그래서 용서 받았음을 정녕 믿는다면,

우리도 ‘그가 내게 와서 용서를 구하기 이전에’ 이미 그를 용서해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내가 회개하기 이전에, 이미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음으로 깊이 용서하고 사랑해 주십시오. 그때 우리의 기도는 흐르게 됩니다.

사랑의 통로가 막힐 때 기도도 함께 막힙니다.

이런 것을 해결하지 않고 아무리 기도하려고 몸부림쳐도

기도는 허공을 치는 것 같고,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버린 것 같은

차가운 거절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서가 하나님 사랑의 통로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또 그래서 우리의 삶이 기도와 나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

혹은 우리가 옳은데도 우리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먼저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가 불가능해 보이는 우리의 원수들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그 큰 사랑을 경험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 기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