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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받은 자의 감격 2789

LNCK 2010. 12. 13. 14:11

◈구원 받은 자의 감격            창9:1~3           10.11.14.설교녹취


 

아래에서 '칠레 광부 이야기'는 꼭 보세요!

 

 

◑본문 설명 및 해석


▲절망의 환경 속에서, 희망을 바라 본 노아

사람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훨씬 더 강하다.

‘이제 잘 안 될 거야, 완전 끝장이야, 어려울 것 같아, 도저히 힘들 것 같아!’

이렇게 생각하기가 너무 쉽다.


40일간의 긴 홍수가 끝나고,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

방주 속의 노아와 식구들이 모두 밖으로 나왔다. 눈에 보이는 경치가 모두 물뿐이었다.

그리고 죽은 사체가 눈에 여기 저기 띄었다.


비참한 모습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웃들의 모습도 간 곳이 없 다 사라졌다.

홍수 후 세상은, 온통 뒤죽박죽 되어 있었다. 살 집도 없었고, 외롭고, 불편했다.


그러나 노아는, 그런 상황을 보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서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이 자기를 구원해 주셨다는 은혜로 그 마음이 가득 찼다.

여러분 이것이 참 중요하다.

‘내가 구원을 받았다.. 이 상황에서 내가 살아남았구나..’

 

이것이 오늘 본문 창9:1~3절이다.

그 생각은.. 모든 것을 다 뒤집어 놓는다.


크리스천이 세상 사람과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현실 상황이나, 주변 여건만 바라본다.

그러나 크리스천은 현실 상황보다,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는 존재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다. 여기까지 나를 살게 하셨다’는 감격을 늘 가진다.


노아처럼, 살아남은 자의 기쁨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바로 성도이다.

그래서 이렇게 노래한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요,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노아가 보았던 비슷한 광경을 볼 수도 있다.

희망이 없어 보인다. 사체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비관적으로 보인다.

내 환경이 황량하고 뒤죽박죽이다.

내가 바라는 것보다, 바라지 않는 상황들이.. 훨씬 더 우리 옆에 많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고개를 조금만 들어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대번에 의미가 달라진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은,

구원 받은 자들/살아남은 자들의 땅이다.


죄악가운데서 구원 받고, 여러 어려움 가운데서

(노아처럼) 구출 받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밟아나갈 소망의 땅이다.


이렇게 ‘살아남은 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은 훨씬 더 아름다워 보인다.

점점 더 소망스런 땅으로 내 앞에 펼쳐질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감격과 노래

2010년에, 칠레 북부 광산에서 33명이 살아 구조되었던 기적이 있었다.

칠레 광부들, 오랜 날들이 지나고, 마침내 구조되어, 한 사람씩 밖으로 나왔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 구조되는 광경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저는, 과거에 제가 칠레 선교사시절에, 그 지역에 가서 설교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더 남다른 감회를 갖고서, 그 구조장면을 TV를 통해 지켜보았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성경을 들고, 구출되어 올라왔는데, 그가 그 그룹의 영적 지도자였다.

그들이 모두 지상으로 올라왔다. 다 구출되었다.


제가 거기 가 봐서 아는데, 그곳은 모두 사막 지역이다.

보통 사람을 거기에 데려다 놓으면.. 도저히 살 수 없는 황량한 곳이다.


그런데 지하 갱도에 오래 동안 갇혀 있다가,

그들이 올라와서 밟은 그 사막 땅은.. 그들에게 절대로 사막이 아니었다.

소망의 땅이었다.

그들은 그 땅을 밟으면서 ‘야~ 드디어 살았구나!’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그전에 가졌던 불평과 근심은 하나도 없었다.

살아남은 자의 기쁨과 감격이 그들에게 충만했다.

집으로 가서 그들은 잔치하고, 가족들과 얼싸안고 즐거워했다.


여러분, 이것이 '살아남은 자의 감격'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구원의 감격이다. 살아남은 감격이다. 노아의 감격이다. 

우리는 사망가운데 구원받은, 보혈의 공로로 살아남은 자이다.


옛날에만 구원을 받은 게 아니라, 지금도/오늘도 계속 구원을 받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구원을 받을 것이다.

모든 상황가운데 우리를 지키시고, 건져주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면, 영원한 구원을 받게 될 줄 믿는다.


노아가 홍수 후에 살아남은 그 감격,

칠레 광부들이 구출된 그 감격,

그 감격보다 더 큰 감격이.. 영벌에서 구출된 나의 구원의 감격이다.

이 감격이 날마다 우리에게, 감사와 감격으로 흘러 넘치게 되시기 바란다.



◑적용1. ‘나는 복 받은 자’ 임을 확신하시라.


▲일단 설교의 주제를 다시 강조하면,

우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살아남은 자들이다.

구원받은 자, 살아남은 자의 눈으로.. 모든 사물을 보시고, 상황을 보시고,

사건을 보시기 바란다. 사람을 보시기 바란다.

그러면 불평할 게 없고, 원망할 게 없다. 다 좋은 것밖에 없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하면서, 복을 받은 노아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더욱 복된 것을 준비해 놓으셨다.


노아를 구원하신 후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창9:1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홍수가 지나간, 황량한 들판에 서 있는 노아는,

자기가 구원의 땅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황무지가 아니라!

자기를 구원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알았다.


이제 (홍수 후의)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이 미리 복을 보장해 주신다고 하는 사실을 그가 알았다.

자기 미래가 밝음을 알았다.


여러분, 우리 크리스천의 삶은 이런 특징을 갖고 있다.

미리 복을 보장 받고 시작한 인생!

이미 하나님께서 축복을 보장해 놓으신 인생을.. 우리는 살고 있다.

구원해 주실뿐만 아니라, 복도 약속해 주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을 때도, 그가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하나님은 미리 복을 약속해 주셨다.


창12:2~3,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우리는 구원 받은 백성이기 때문에, 우리 앞길은 반드시 소망이 있다.

하나님은 미리 복을 약속해 주셨다.

 

하란으로 떠나던 야곱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은 미리 복을 그에게 약속해 주셨고(창28:12~15), 그의 인생은 그 축복대로 되었다.


▲그러므로 절망과 부정적인 내 생각을 ‘기절시키시라!’

크리스천이 특별히 좋아하는 영화 <벤허>에 보면,

거기에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로마 장군과 벤허가 같은 뗏목에 타고 있다.

벤허가, 기절하여 물에 떠다니던 그 장군을 구출한 터였다.


장군은 패전했다고 느끼고, 칼을 빼서 자결하려 한다.

그때 벤허는 그 장군을, 노로 쳐서, 기절시켜버린다.

얼마 후에 장군이 정신 차리고 보니, 배 한척이 다가왔다. 로마의 배였다.

결국 장군(아리어스)과 벤허는 영광을 얻게 된다.


여러분, 우리 속에는 이 2가지가 항상 있다.

하나는 비관적으로 보고, ‘패했구나, 망했구나, 죽자’ 하는 아리어스의 절망이 있고,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소망의 벤허들이다.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여러분, 아리어스의 머리통(내 부정적 생각)을 가격하셔서 기절시키시기 바란다.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벤허처럼, 쥐어박아야 한다.

우리 속에는 소망이 충만해야 한다. 지금 다가오고 있는 저 배는,

승리의 배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만이, 내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적용2. 두려워하지 마시라.


▲모든 피조물이 구원받은 사람을 두려워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특별히 구원해 주셨다.

그래서 우리 속에는 구원의 DNA, 축복의 DNA가 있다.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성령의 놀라운 임재가 있다.


우리는 가끔 이 놀라운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많다.

그러나 기억하시라.

우리의 원수들은 절대로 잊지 않고, 우리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라


창9: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여기서는 노아에게 새, 짐승, 물고기만 너희 손에 붙였다고 나오지만,

여호수아서에 가면, 이방족속도 이스라엘 손에 붙였다고 나온다. (아래에 나옴) 

 

▲출애굽 백성들에게 두려움이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돌 때, 사실 두려워해야 할 백성은 이스라엘이었다.

왜? 자기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여리고 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을 보았더니, 이스라엘보다,

성 안에 있던 강한 여리고 성 백성들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수2:11

 

여러분, 이게 정상이다. 크리스천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귀와 대적들이 두려워서 부들부들 떨게 되어 있다.


미디안 족속이 훨씬 더 두려워했다.

가나안 7족속이 이스라엘을 훨씬 더 두려워했다. 수9:9~10


가끔 밖에 나가면 개들이 지나가는데,

저는 어릴 적에 송아지만한 개에게 물린 기억이 있어서, 아직도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개에게 인터뷰를 해 보면,

개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다름 아닌 사람이다.

그래서 개가 으르릉 거리는 이유는.. 사실은 자기가 무서워서 그러는 것이다.

개가 자기방어 수단으로 심하게 짓고, 공격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우리 원수 사탄도 마찬가지다.

그도 우리를 향하여 겁을 먹고, 두려워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인 권세, 구원 받은 자의 권위authority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 성령이 내주하시기 때문이다.


권투선수들은, 시합하기 전에 보면, 먼저 서로 눈싸움을 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보통 시합은, 그때 눈싸움에서 이미 끝난다고 한다.

선수들은 링 위에서 상대를 한번 척 보면 안다고 한다.

‘내가 이길 사람인지, 질 사람인지..’


원수들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한 번 척 보면, 벌써 다 안다.

그래서 질 것 같으니까, 부들부들 떨면서, 오히려 개처럼 자기를 방어하려고 공격하는 것이다.


‘청도 소싸움’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소들도 자기들끼리 서로 척 보면 안다고 하다.

몇 번 밀어보다가 대번에 알고는, 소가 꽁무니를 빼고 도망간다.


원수 마귀는 우리의 권세, 신분, 하나님의 자녀 됨을 잘 안다. (혹시 나는 모를 수 있어도) 

그리고 성도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이 우리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라.

우리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존재들이다. 성도가 원수를 두려워하는 것은 비정상이다. 


만약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 철저히 회개하고,

죄로 인해 공격하는 불법적 사탄의 역사를 모두 물리쳐야 한다.


▲두려워하지 않게 된 오프라 윈프리

지금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여자 중 한 사람은 오프라 윈프리다.

이 여자에게는 일생동안 두려워할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자기 가까운 가족, 친척, 아버지의 친구, 이런 사람들이 자기에게 피해와 상처를 주었다.


또한 흑인사회에서 인종차별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가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참된 소망을 갖기 시작했다.

하나님 안에서 자기 존재의 존엄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가 교회에서나 다른 모임에서 자주 낭송하는 시詩가 있다.


제목은 인빅터스 인데 ‘굴복하지 않으리!’ 란 뜻이다.


나를 감싸고 있는 밤은, 온통 칠흑 같은 밤,

신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라도 나는 감사한다.

억누를 수 없는 나의 영혼에..


여러분, 우리는 절대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란다.

우리는 승리자 이상의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넉넉히 이길 것이다. 롬8:37

오히려 원수들이 우리 성도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우리 손에 붙여주시는 하나님


수10:8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


이스라엘이 싸우나마나 대적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여주셨기 때문이다.


내가 뭘 붙잡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내 손에 붙여주시기 않는 것이.. 우리 인생의 문제이다.

내가 주님의 손에 단단히 붙들리지 않는 것이.. 문제의 핵심 해결과제이다.


그러므로 ‘주님 제 손에, 뭣을, 뭣을 붙여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기 전에,

‘주님 제가 주님 손에 붙잡히기 원합니다.’ 라고 기도하시기 바란다.


건강이 없는 것, 물질이 부족한 것, 사랑이 없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라.

오히려 내가 주님께 강하게 속하지 못한 것/붙잡히지 못한 것을 두려워하시라.


‘붙여짐’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 글을 클릭해서 보세요! → 붙여주시는 하나님


출19: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



▲(도입 일화) 7백가지 고통보다 더 심각한 질병은 ‘절망의 병’

최근에 행복전도사로 이름을 떨치던 최윤희 씨가 자살한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그를 좋아하던 많은 사람들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TV <아침마당>에 자주 나와서 자신을 ‘슈렉’같은 여자라고 말하면서

늘 사람들에게 행복을 선사해 주었던 분이었다.


그런데 ‘자기가 가진 7백가지 이상의 고통이 너무나 힘겨워서,

이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노라’는 유서를 남기고, 

남편과 함께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알고 보니 그의 질병 ‘루퍼스 병’이라는데,

7백군데 이상의 엄청난 고통을 그가 견디었다고 진술했지만,

그러나 우리가 가만히 보면, 그는 몸의 고통보다 더 심각한 마음의 병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절망이라는 병이었다.


그는 절망 병을 이기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앞으로 남은 인생 가운데는,

더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결론을.. 그는 섣부르게 내렸다.

그러니까 빨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가 너무나 섣부른 결론을 내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좀 더 기다리고 생명과 행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더라면,

그는 63세, 아직 이른 나이,

그때부터 다시 시작해도 충분할 수 있는 행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 것인데...

(어쨌든 삼가 고인께 애도를 표합니다.)                                                                       ▣ 복음 관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