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자세 눅3:3~6 10.12.05.설교스크랩
▶성탄절이 다가올 때,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성탄절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교회력으로 보면, 이 크리스마스로부터 전에 4주간을
대림절(대강절, 강림절, the Advent)로 지킵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주님 오심을 마음으로 준비하고 고대하며 기다리는 기간인 것입니다.
‘예수님, 내 마음 가운데 오시옵소서. 내 삶의 중심에 오시옵소서.
주님을 사모합니다. 주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이렇게 사모하고 기다리며, 성탄을 예비하는 기간인 것입니다.
▶침례 요한의 예수님 맞이 준비
예수님이 오심을 예비한 침례 요한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그는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주님의 오시는 길을 예비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눅3:4
성탄절이 되면, 우리가 여러 가지 준비를 합니다.
카드를 써서 보내고, 선물을 준비하기도 하고..
트리를 준비하기도 하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는 일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꼭 잊지 말아야 하는 준비 한 가지는,
주님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마음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 준비의 핵심은 ‘회개’였습니다. 눅3:3 참조.
◑1. 미움과 상처의 골짜기를 메우고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눅3:5
성탄절에, 예수님을 내 마음 가운데 모셔 드리기 위해서
십자가를 깊이 체험하는 신앙으로, 미움과 상처의 골짜기를 다 메워야 합니다.
▶옛날에 왕이 어느 곳으로 행차하러 나갈 때
전위대가 미리 앞서서 나가서, 길을 평탄하게 합니다.
마차를 타던 시절이니까, 도로 상태가 중요했습니다.
큰 돌멩이들을 치우고, 움푹 파인 곳은 메우고,
거친 땅들은 골라서 평지가 되게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군대가 진군해가기 위해서 공병대가 앞에 가서,
끊어진 다리를 잇고, 그리고 장애물을 폭파해서 없애버리고
그래서 군대와 전차부대들이 진격할 수 있게 길을 만드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이 여기서 말한 것은, 왕이 행차하시도록,
내 마음에 있는 깊은 골짜기들이 메워져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심령이 미움의 죄로 인해서 움푹 파였습니다.
또한 우리 심령이 말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으로 움푹 파였습니다.
그래서 누가 나를 툭 건드리기만 해도, 내가 싸울 듯이 맹렬하게 반응합니다.
이런 마음에 주님이 찾아오실 수 없습니다.
우리 집은 건너뛰시고, 다른 집으로 가실 것입니다.
내 마음의 골짜기가 메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 미움의 골짜기가 메워져야
당시 종교지도자들 가운데 사두개인들이 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이와 같이 골짜기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권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당시 유대는 정교일치 사회)
하나님의 이름을 이야기해도,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지 않습니다.
자기 권력만 유지하면 되는 것입니다.
당시 사두개인들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평판과 권력,
이것에만 관심이 있었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까?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중요한 가?’
이런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어요.
당시 사두개인들은, ‘성전 관리’를 맡고 있었습니다.
신앙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 기득권유지에만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자기들보다 더 인기 있는 예수님이 나타나니까,
자기들의 기반 유지를 위해서, 예수님을 미워하고,
결국 제거하기로 결정했던 것이지요...
▶2. 상처의 골짜기가 메워져야
말할 수 없는 많은 상처들이 우리 마음가운데 웅덩이를 팠어요.
자라나면서 아버지에게 야단맞은 것, 선생님에게 야단맞은 것,
친구에게 배신당한 것,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은 것,
이것들이 그 때마다 움푹 움푹 내 마음을 파헤쳐서 골짜기를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에, 아픔의 골짜기, 미움의 골짜기가 깊게 패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정신병원에 심방 간 적이 있어요.
저는 그 도시 한복판에 대로변 뒤에 큰 수풀 속에,
그 앞을 늘 지나다니면서도, 그렇게 큰 정신병원이 있는 걸 몰랐어요.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까 미국 전체 병원의 일반 환자수를 합쳐놓을 만큼
정신병원에 환자가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일반 병원에 300만 명이 입원해 있다고 하면
300만 명의 정신병자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들 대부분이 과거의 상처에 묶여 살던 사람들이에요.
매일 시간마다 자기 상처를 쳐다보고, 또 절망하고, 또 분노하고,
또 그 상처가운데 괴로워하고. 허구한 날 과거만 들여다보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정신병, 우울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요.
마음의 상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니까, 점점 골짜기가 더 깊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번 성탄절에, 미움의 골짜기, 상처의 골짜기를 메우고,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세요!
어떻게 이 상처의 골짜기, 이 미움의 골짜기에서 우리가 벗어날 수가 있겠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만이
우리의 모든 과거의 상처를 치료하고,
우리의 마음을 주의 사랑으로 메울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주여,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체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평범한 말이, 내 마음속에 꽉 못이 박히면서,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십자가 사랑을 통하여서, 내 마음 속에 참된 용서가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2. 교만의 산이 낮아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눅3:5
여기서 ‘모든 산, 작은 산’은 우리에 마음에 갖고 있는 교만을 말합니다.
산이 높으면, 임금님이 행차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낮아진 평지로 임하실 것입니다.
▶사람치고 교만하지 않은 사람 한 사람도 없어요.
교만이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위치를 더 높이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인간은 겸손해야 되는 것입니다. 낮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교만하니까
자기보다 가지지 못한 사람, 또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무시하고 짓밟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의 특징은 무례한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비와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의 특징은 자기중심으로 살아가고, 자기 혼자만 옳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그래도, 자기 혼자만 의로워서 자기주장만 되풀이합니다.
▶이 당시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매우 교만했습니다. 왜요?
자기들만 하나님을 잘 가장 잘 섬긴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합니다. 철저하게 십일조 생활 합니다.
율법을 다 지켜 행합니다. 우리가 가장 하나님을 잘 섬깁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우리를 존경해야 됩니다.”
그리고 세리들을 멸시합니다. ‘저 사람들은 남의 돈이나 착취하고 못된 사람들.’
스스로 교만해져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교만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실 때,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가니까
자기들이 받을 존경과 사랑을 예수님이 받는다고 예수님을 미워해갖고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잖아요.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는 저희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경고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긴다고 하면서 알게 모르게 교만하고
우리가 남보다 높아져서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멸시하고 깔보고 상처를 주고 있지 않은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철저하게 깨어지고 낮아져서 회개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여, 우리에 교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야고보서 4:6절에,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제가 옛날 얘기를 자주해서 죄송합니다만,
미국에서 목회할 때, 저를 가장 힘들게 훈련을 많이 시키신 분들이
그 교회를 처음 세웠다는 분들입니다.
20여명이 그 교회를 시작을 했는데, 그중에 몇몇 사람들이 늘 자기주장만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시는 목사님들마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제 전임 목사님도 그래서 떠나시고,
제가 떠난 이후에 제 후임, 그 후임 목사님도 다 떠나셨어요.
얼마나 그들은 목사님을 훈련시키는 은사를 받았는지..
제가 거기서 훈련을 많이 받아서 참 감사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 본인이 교만한 걸 모르는 거예요.
늘 본인 뜻대로만 돼야 되요.
본인 뜻이 지켜 그대로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평하고 원망하고
그 문제를 일으키고 성도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다가왔는지 모릅니다.
▶관련글 : 김익명 장로의 겸손
'헌금을 많이 하든지, 발언을 많이 하든지, 둘 중 하나만 해야지,
둘 다 하면 못 쓴다' .. 는 내용 주1)
우리가 갖고 있는 교만에 산이 무엇입니까? 돈이 좀 있다고 우리가 교만합니까?
그 교만에 산을 깨트려서 낮춰야 되는 것입니다.
좀 더 배웠다고 교만합니까? 그 깨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낮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 높은 위치에 있다고 교만합니까? 깨어지고 낮아져야 되는 것입니다.
침례 요한이 고백합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자기를 스스로 높여서, 존경받는 사람은.. 세상 방식으로 높아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스스로 낮춰서, 높아지고 존경받는 사람은.. 성경 방식입니다.
높은 산이 스스로 낮아지지 않으면, 주님의 임하실 때, 그를 까부술 것입니다.
주님은 임하셔야 되겠고, 산이 떡 버티고 있으면.. 할 수 없이 주님이 심판하십니다.
스스로 낮아지면.. 은혜를 받지만,
강제로 낮아지면.. (낮아진 것은 똑같지만) 수치를 받습니다.
◑3. 굽은 것이 곧아지는 절대 긍정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굽은 것이 곧아지고..’ 녹3:5
굽어져있는 길들이 바로 될 때, 왕이신 주님이 그 길로 잘 오실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굽어져 있으면, 우리가 모든 것을 삐딱하게 보는 것입니다.
바로 보지 못하고 늘 비판적으로, 부정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마음이 바로 펴지지 않으면 평생 동안 마음고생하고
남을 상처 입히고, 자기도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렘17:9
마음이 굽어있는 사람들은, 남이 잘 되는걸 보면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어요.
어떡하던지 끌어내려야 되요.
거짓말도 밥 먹듯이 하고, 입만 열면 불평 원망하고, 남을 비판하고 참소하고..
왜요? 자기 마음이 굽어져 있으니까, 뭐든 다 삐뚤게 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의 불로 그 굽어진 걸 태워서 바로 펴야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구부러진 사람은 가정에도 불화를 일으키고, 사회에 나가도 문제를 일으키고,
범사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당시 굽어진 인생을 살던 사람들은 세리들이에요.
이 사람들은 로마의 앞잡이가 되가지고 세금을 더 많이 받아가지고
일부는 자기가 착복하고 일부만 로마 정부에 바쳤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 세리라 그러면 손가락질하고 고개를 돌렸습니다.
굽어진 인생을 살았어요.
그러면서도 자기는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나서 우리의 인생이 바로 펴져야 되는 것입니다.
구부러진 인생이 바로 펴져야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모습이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뀌어야 되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하던 모습이 감사하는 모습으로 바뀌어야 되는 것입니다.
‘주여 함께하여 주옵소서. 굽어진 마음이 바로 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야곱도 조금 굽어진 사람이었어요.
자기가 잘 되기 위해서는 형도 속이고 자기 외삼촌도 속였잖아요.
그런데 얍복강 나루터에서 바싹 깨어진 다음
그는 그 이후로 겸손하고 낮아지고 바른 인생을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삭개오도 돈밖에 몰랐는데 예수님 앞에서 깨어지고 낮아진 다음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주님 앞에서 거짓과 위선과 부정적인 생각,
부정적인 삶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주님 앞에 바로서서
우리 주위의 소외되고 병들고 문제 있는 사람들을
주의 사랑으로 돌보는 주님에 일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남궁정부 씨가 <꿈꾸는 구두 5만 켤레> 라고 하는 책을 썼어요.
이 분들은 소아마비, 기형, 그 당뇨 고관절로 인해서 발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특수한 구두를 손으로 만들어 주는데, 지금까지 5만 켤레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분은 원래 구두를 만드는 분인데,
55세였던 1995년 11월 신도림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다가
사람이 너무 많아서 떠밀려갖고 떨어졌어요.
원래 신도림역이 환승역이기 때문에 사람이 너무 많아요.
떠밀려갖고 정신을 잃었는데 깨보니까, 오른쪽 팔이 다 없어졌어요.
팔에 의수를 달려고 하니까, 남은 팔이 너무 짧아서 의수를 달수 없다는 겁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절망했을 것입니다. 인생을 굽게 보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한 평생 한탄하고 아마 밤마다 술로 지새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긍정적인 믿음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래, 나는 왼팔이 있지 않은가. 오른팔이 없는 게 아니라 오른팔만 없는 거다.’
그렇게 마음을 바꿨어요. 그러니까 보조기구 만드는 사장이 한마디 툭 던졌습니다.
“이제는 장애인들을 위한 구두를 만들어보는 게 어때요?” 거기서 감동을 받았어요.
그래서 팔 하나 가지고 구두를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몰라요.
두 손을 갖고 구두를 만들기도 힘든데, 한 팔로 디자인을 하고 구두를 만드는데,
그 구두 가죽을 자르다가 비뚤어 잘못 나가가지고 발을 찔러서 피가 나기도 하고,
그래가면서 한 사람 한 사람.. 장애인들에게 구두를 만들어 주는데
결혼식 때 제대로 구두 신고 걸어 들어가서 웨딩마치를 올리고 싶은
소아마비 자매 구두를 만들어 줘가지고.. 그가 구두 신고 식장에 들어가게 하고요.
또 기형적으로 발이 커가지고 단 한 번도 구두를 신어본적이 없는 사람에게
구두를 딱 맞춰 줘가지고,
그 사람(장애우)도 이제 구두닦이에게 가서 “내 구두 닦아 주세요.” 하며
당당히 발을 내밀 수 있게 되고요.
이렇게 만들어서 만든 구두가 5만 켤레에요.
그리고 그는 이를 통해서 상도 받고, MBC, SBS, KBS 뉴스에도 보도되고 했습니다.
평생 굽은 인생을 살 수 있었던 사람이 긍정적으로 변화되니까
이렇게 복 받은 삶을 살게 되었어요.
남을 도우고 남에게 사랑을 실천하며 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와 같은 절대 긍정에 사람이 되기를 주님에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험한 길 같은 인생도 온유하고 정결한 삶을 살아야 됩니다.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눅3:5
험한 길이라는 것은 거친 길이라는 것입니다.
거친 길이 평탄해져야.. 왕이신 주님이 편하게 길을 오시게 됩니다.
▶1. 마음이 거친 사람들이 있어요. 아주 험한 인생을 살아와서 성격이 거칠어 졌어요.
아무것도 아닌데 걸핏하면 소리 지르고 화를 냅니다. 욕을 합니다.
어떻게 사람 입에서 저렇게 악한 말을 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막 악한 말을 쏟아냅니다.
이러한 험한 모습들이 예수의 사랑으로 변화돼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보혈로 치료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2. ‘험한 길’은 우리가 누구나 갖고 있는 죄의 습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죄의 습관이 있어요. 죄를 짓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데
또 죄를 짓고 또 죄를 짓고 또 죄를 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회개하고 예수의 보혈의 능력에 의지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험한 모습이 무엇입니까? 고쳐야 될 모습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함부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또 아무것도 아닌데 하루에 몇 번씩 화를 내고 소리치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또 걸핏하면 주먹을 휘두르고 문제를 일으키며 살아온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이와 같은 모든 모습들이 다 다듬어져서
정결하고 온유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이여, 이 거친 모습들이 예수의 보혈로 다 사라져버리고
정결하게 변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인정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저희들의 마음을 치료하고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마치는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상처의 골짜기들이 메워지게 하여 주옵시고,
우리가 갖고 있는 크고 작은 교만의 산들이 낮아지게 하여 주옵시고,
부정적으로 굽어졌던 것들이 바로 되어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되게 하여 주옵시고,
거칠고 험했던 것들이 변화되어 정결하고 온유한 모습으로 변화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주님 오실 준비하고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
주1) ▲김익명 장로의 겸손
제(김동호 목사님)가 청량리중앙교회 유년부 교육전도사 때, 당회에 건의할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내용을 특별히 김익명 장로님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 분이 그 교회의 유년부 부장이기도 했지만
그 당시 김 장로님이 교회에서 가장 헌금을 많이 하시는 분이셔서
당회에서 발언권이 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직접 들었었는데
당시 김장로님은, 그 교회 재정의 1/3 정도를 혼자 연보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 때 김 장로님께서 잊을 수 없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전도사님이, 알다시피 내가 헌금을 좀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당회에서 가급적 발언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 그러시냐고 묻는 저에게 김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평생 잊을 수 없는 명언을 해 주셨습니다.
“연보를 많이 하든지, 말을 많이 하든지.. 둘 중에 하나만 해야 해요.
둘 다 다 하면 못써요.”
▶더 읽으실 분 / ‘용서’관련 일화 (위 ◑1. 중에서)
영화 <회복>을 만든 분이 <용서>라는 영화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 <용서>는 팔레스타인 저격수 ‘타스 사다’가 변화 받고
복음 전도자가 된 것을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지금 전 세계에 중동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이스라엘.
서로 폭탄테러하고 죽이고 공격합니다.
거기는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하고 와서 새로 정착한 유태인들 이스라엘 사람들하고,
그곳에 원래 살고 있던 팔레스타인 원주민들하고 끊임없이 대립하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타스 사다’(이후부터 타스)는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의 저격수입니다.
그는 수류탄을 던져서 유대인들을 죽이고, 또 저격수가 되어서
그냥 민간인이고 군인이고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을 쏴 죽였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이 ‘야자르’ 즉 도살자였습니다.
아주 그는 테러리스트로서 악명을 떨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미국에 갔다가 가까운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찰리 샤프’라고 하는 친구인데, 아주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이 찰리 샤프가, 자기 친구 타스를 전도한 것입니다.
“자네 그렇게 살지 마라. 용서하고 살아야 된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우리를 위해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복음을 전할 때 어느 날 성령이 임했어요. 그 마음 가운데 생명의 빛이 비춰 들어왔습니다.
타스는 그 날을 고백하면서 이와 같이 간증합니다.
“거의 의식을 잃었는데, 한줄기 빛이 다가왔어요.
빛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라는 말씀으로 변했어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예수님 제 삶에 들어오세요.’ 라는 말이 튀어나왔어요.”
(중동에서 예수를 믿으려면, 이런 기적적 역사가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런 기적적 역사를 통해서, 회심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를 만난 다음 그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저격수로서, 테러리스트로서 지은 죄를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그의 마음에 파였던 미움과 분노와 그 말할 수 없는 원한의 골짜기가
십자가의 사랑으로 메워지고 유태인들을 용서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유태인들을 돕는 기독교인들을 용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랍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부모에게 복음을 전하니까 부모들이
“너 그러면 우리 자식이 아니고, 너는 버림받은 자식이다. 널 죽여 버리겠다.”
막 죽음의 위협까지 받으면서, 가족들에게 이웃에게 친척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리고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다시 그 분쟁 터인 가자지구로 들어가서
그곳에 가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이 복음을 전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잘못 잡히면 테러를 당해서 죽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집을 찾아다니면서 예수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지금도 총격전이 벌이고 있는 그 곳에 하루도 빠짐없이 집집을 방문하여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영화로 만들 때 영화 제목을 <용서>라고 한 것은
촬영 중에 만난 팔레스타인 크리스천들이 한결같이
자기들을 죽이고 핍박한 이스라엘 군인들을 용서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입만 열면 용서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용서>라고 하는 영화를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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