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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이하며 회개 2812

LNCK 2011. 1. 3. 13:49

 

◈새해를 맞이하며 회개                 마4:16~17         가톨릭 글 스크랩



◑성공한 새해는?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그늘진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었다. 마4:16  

 

새해를 맞이하며 신앙인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공한 인생’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남들은 자다 깨어나도 못 오를 최정상에 서는 것일까?

꿈에 그리던 백만장자가 되는 것일까?

아니면 평생을 동경했던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일까?

많은 실적을 쌓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일까?’


사실 이런 것들 대부분 지나가는 것들이더군요.

마치 물을 손으로 움켜쥔 것 같습니다. 잡았다 했는데 순식간에 사라져버립니다.


결국 진정한 성공은..

내가 하나님께로 점점 더 다가서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통해서 인간에게로 나아가는 일이 아닐까요?

내가, 내 인생이, 내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그 누군가에게 별빛이 되어 주는 일이 아닐까요?


그 누군가가 캄캄한 암흑 속을 헤매다가 나를 통해, 내 삶을 통해,

내 존재를 통해 다시금 힘을 얻고 열심히 제 갈 길을 걸어가게 되었다면

내 인생은 분명 성공한 인생이리라 확신합니다.

 

지금 내 눈 앞에는,

     어둠에 앉아 있는 사람들..

     그늘진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이.. 보이고 있습니까?


오늘날도 상황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에’ 멍하니 앉아있습니다. 


외관상으로는 분명히 살아있지만 사실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들의 인생에는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고 없습니다. 신앙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없습니다. 결국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풍기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를 바라보기만 해도 예수님을 떠오르게 하는 사람입니다.

결국 어둠 속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던져주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삶이 빛을 잃을 때 마다, 그들 인생의 그림이 퇴색될 때 마다,

‘다시 꺼내보고 싶은 한권의 책’ 같은 사람으로서, 그렇게 살아가야겠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단12:3

  

 

◑회개하는 한 해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 마4:16

고 한 다음, 예수님의 공생활 제 일성을 소개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4:17

 

새해 벽두에 뽑은 성구가 ‘회개하라!’이니, (마4:17)

축복이나, 긍정적 희망에 익숙한 교인들에게는 생뚱맞게 들립니다.


그런데 이 구절이 신년 묵상에 알맞은 이유는,

예수님이 공생애를 제일 처음 시작하시면서 외치신 말씀이 ‘회개하라’였다면,


우리가 새해(또는 어떤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일 처음 시작하면서

들어야 할 마땅한 말씀이 ‘회개하라’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예수님은 처음 시작할 때만 ‘회개하라!’ 하시고,

용두사미 식으로 ‘회개하라’를 감추신 것이 아니라,

공생애 내내 ‘회개하라’를 외치셨는데요.. 살펴보면요..


예수님이 공생애를 마치시면서,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따지고 보면, 십자가는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러니까 애당초 시작부터 예수님은 ‘회개하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시작을 ‘죄의 회개’를 외치신 주님께서,

외침으로만 끝나지 않으시고,

실제로 몸소 죄를 용서하는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만큼 인생에게 있어서, 죄 문제가 심각하고/중대한 현안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 중요한 순간에) 말씀하시기를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유대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 눅24:47

의 증인이 될 것을, 제자들에게 당부/ 명령하셨습니다.


그 직전 구절에 이렇게 나옵니다.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눅24:45


우리가 성경을 깨닫기 위해서 늘 상고합니다. 특별히 연말연시에 더하죠.

그런데 우리는 나에게 주시는 특별한 ‘축복의 말씀’을 받고자 성경을 묵상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신 내용은

눅24:46~47절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내게 ‘축복/위로/비전의 말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46

-그리고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이었습니다. :47


중간 정리하면,

예수님은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시면서

흑암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회개하라’고 외치시고,

또 공생애를 마치시고 죽으실 때, 그 ‘죄의 용서’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이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메시지였습니다.


이 ‘회개-죄 사함’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요한복음 끝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20: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동안에, 장차 성령이 오실 것을 예고하셨는데,

그 성령이 오시면 하시는 일이 ‘사람들이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요16: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여기서 ‘책망하신다 convict’는 뜻은

‘죄책감이 들게 한다.’ ‘죄/의/심판의 심각성을 깨닫게 한다.’

더 나아가 그래서 회개로 인도한다..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사도행전에서 성령이 임하신 후에,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행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예수님의 사역은

공생애 시작부터, 가르치심에서부터,

실제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몸소 실천하시고,

부활하셔서.. 또한 성령을 보내신 후에도..

‘회개’로 시작하시고, ‘회개’로 마치시고,

계속적으로 지금도 성령을 통해 사람들을 ‘회개’로 인도하는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새해가 시작하는 날이라든지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에 비추어)

    또는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는 날부터

    우리 관심과 사역의 시작-과정-마침의 맥을 <회개>에 맞추는 것이

    성경적 관점이라는 뜻입니다.         

 

결론은 아래 영어로 나와 있습니다.
Prayer: Father, may this be the year of repentance.

아버지여, 금년 내내 회개하는 한 해가 되게 하소서.



▶이상, 아래 글을 읽고서 대강 정리했습니다.


THE YEAR OF REPENTANCE          http://www.presentationministries.com/

 

"A people living in darkness has seen a great light." Matthew 4:16

 

Jesus begins this new year as He begins almost everything else.

He proclaims: "Repent! The kingdom of God is at hand!" (Mt 4:17, our transl.)

It's difficult for us to understand Jesus' preoccupation with repentance

unless we put ourselves in His place, that is, on the cross.

Jesus died on Calvary to take away our sins.

He greatly desires that we repent and accept this supreme act of love.

Therefore, on the first evening of His resurrection,

He commissioned His apostles to forgive sins in His name (Jn 20:23).

Before His Ascension, he sent out the apostles and all of us to preach repentance

to all the nations (Lk 24:47).

At Pentecost, He and the Father even sent God the Spirit, the third Person of the Trinity.

The Spirit convicts us of our sins and leads us to repent (Jn 16:8).

Begin the year right. Apply to your sins the blood Jesus shed on Calvary.

Repent, celebrate the Sacrament of Reconciliation, rejoice!

There's great joy in heaven over one sinner who repents (Lk 15:7).

 

Prayer: Father, may this be the year of repentance.


※복음을, 성경에서 ‘신비mystery’라고 그러는데,

이성으로 알기 어렵고, 어떤 하늘의 깨달음이 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비입니다.


복음의 한 축인 ‘회개’역시 그러합니다.

이것은 이성적 설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비적으로 깨달음이 와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20:22~23절에 먼저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나요?


그러나 이런 질문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구도(제)자가 될 때,

회개가 무엇인지.. 그 깊이와 넓이를 점점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시대에 회개는?

 

 

▸회개 하나. 훌륭해 지려고 애쓰지 마라!

이미 하나님 품에 안기신 권정생 선생께서

2천년 대를 시작하는 해의 정월에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너보다 더 훌륭해 지려고 애쓰지 마라.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로 더 훌륭해 지려고 하다 보니 이리 강퍅한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는 말씀을 듣고 얼마나 감동했는지!


"회개하여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느낌을

지금 이 시대에는 권정생 선생의 '훌륭해지려고 애쓰지 마라.'는 말로 알아듣고 싶습니다. 주1)


▸회개 둘. 함께 기뻐하고 싶습니다.

일단 밤새 울고, 아침에 누가 죽었는지 묻는답니다. 이렇게 슬픔에는 잘 동참하는데,

그런데 사돈이 논 사면 배 아프답니다. 이렇게 기쁨에는 잘 동참하지 못합니다.


함께 슬퍼하는 일은 쉬이 하는데, 함께 기뻐하는 일은 그렇지 않은가 봅니다.

저는 함께 기뻐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여기에 우리 회개의 또 다른 내용이 있다고 여깁니다.  주2)


▸회개 셋. 나는 너와 다릅니다.

세상에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다 다릅니다.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비슷할 뿐 다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발견합니다.


그런데 "같아요? 달라요?"라고 여쭈면.. "틀려요."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오답입니다.)

창의성이 뛰어나긴 하지만.. 세상에 틀린 존재는 없습니다,

서로 다를 뿐. 세상을 사는 방법도 틀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을 뿐. 틀리는 때는 시험 답안지에만 있습니다.


‘아, 나는 너와 다르구나!’ 이 사실을 인정하면

너를 대하는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이 얼마나 많이 달라질까 상상해 봅니다.

최고만을 인정하고 원하는 이 시대에

회개를 사는 또 하나의 삶이 여기에 있다고 여깁니다.


................................



주1)

    ◑하늘로 부터 오는 권위


    지금 우리 집 앞뜰에는 갖가지 장미꽃들이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향기롭게 피어있고

    느티나무는 늠름하고 푸른 자태를 자랑하며 큰 그늘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저는 장미꽃에게 시비 조로 물어봅니다.

    “너는 누구의 권한으로 그렇게 아름답게 꽃을 피우느냐?

    누가 너에게 권한을 주어서 그토록 향기로우냐?”

 

    장미는 아무 대답이 없고, 그냥 향기로울 뿐입니다.

 

    또 느티나무에게도, 질투 조로 물어 봅니다.

    “너는 누구의 권한으로 이렇게 늠름하고 푸르냐?

    누구의 권한으로 이토록 큰 그늘을 드리우느냐?”

 

    느티나무도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그냥 하늘 향해 푸른 가지를 펼치고 서있을 뿐입니다.

 

    (1. 참된 권위는 자연스럽게 하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며, 그것은 아름답습니다.

     2. 참된 권위는 스스로 자기 증명을 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자기를 나타내 보입니다.)



주2)

언젠가 어떤 연출자가 쓴 책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거기에 캐스팅에 대한 비화를 밝혀 놨더군요.


그 분 얘기가, 연출자들이 늘 고심하는 것은 악역이 아니라,

선한 역을 맡길 사람이라는 겁니다.

의외로 선한 배역 찾기가 쉽지 않다는 거예요.


악역은 웬만하면 다들 한답니다.

눈 크게 보이도록 분장하고 눈꼬리와 주름 몇 개를 그려 놓은 후에

우악스럽게 연기하면 다 된다는 겁니다. (평소 삶을 그대로 반영하면 됩니다.)


그런데 선한 역할은.. 좀처럼 연기로서 커버가 되질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뽑느냐 하면, 평소에도 훌륭한 인품과 삶으로서

동료 배우들에게 존경받는 사람들 중에 고른다는 겁니다.


진짜 선한 역은.. 그의 삶 자체가 그렇게 살아온 사람만이

제대로 소화할 수 있다는 겁니다.                                                     ▣ 죄, 복된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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