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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 참 복을 - 기업 2818

LNCK 2011. 1. 6. 16:54

◈새해에는 참 복을 - 기업                    마5:5                       11.01.05.설교녹취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5:5

 



◑1. 땅을 기업으로 받으리라


▲위 구절의 키워드 - 기업

연구서나 주석사들을 보니까, ‘온유한 자’의 해석에 대해 많이 할애하고 있었다.

정작 복의 내용인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너무 빈약하게 설명되어 있었다.


‘땅’이 무엇일까?

예수님이 시37:11절을 인용하신 것인데,

그래서 ‘가나안 땅’ 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석한다.


매튜 헨리는, ‘땅’을 기독교가 갖게 되는 어떤 문화적인 영향력.. 으로 해석한다.

혹자는 ‘잃어버린 에덴 땅을 다시 회복한다.’ 이렇게 해석한 책도 훑어보았다.


여기서 ‘땅’(헬라어 ‘게’)는 부동산으로서의 땅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세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온유한 사람이 세상을 얻게 된다는 뜻이다.


온유하신 예수님께서

살아생전 이 땅에서는 단 한 평의 땅을 소유하신 적이 없으셨지만,

2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온 세상을 얻으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온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는 뜻이다.


저/설교자는 이것이, 아주 탁월하고 타당한 해석임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본문의 핵심에 좀 더 가까이 나아가려면,

이 구절에서 ‘온유, ’보다 더 중요한 개념이 ‘기업’이라고 저는 보기 때문에,

'기업'이 무슨 의미인지.. 반드시 설명해 주어야 한다. 본문의 진의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은, 유산을 ‘상속’받는다는 뜻인데,

안타까운 것은, 어떤 한글번역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다 없애버리고,

그저 ‘땅을 차지한다’고 번역했는데, 그 점을 저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본문의 키워드는 ‘상속’이므로, ‘상속/기업’이란 말이 분명히 들어가야 한다.


※기업(크레이로노메노, 이 말 몰라도 됨)은

- ‘내가 땅을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 ‘땅을 유산으로 받는다’는 뜻이다.

둘은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뜻이다.


‘기업/상속’이란 단어를 풀지 않으면,

이 마5:5절의 핵심을 터치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업/상속’이란, 과연 무슨 의미인가?


▲예수님의 말씀과 사역은 ‘상속’된 것

상속은 아버지가 일구어서 내 명의로 넘겨주는 것

하나님 아버지가 일구어서, 내 명의로 넘겨주셨다.


하루는 빌립이 하나님이 보여 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이 발립에게

‘너는 나랑 3년 동안 함께 다니면서 내가 하는 일을 다 보고서도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느냐?’ 하시면서 계속해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그의 일을 하신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 가르치신 말씀, 그 모든 것은

전부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하신 일이지만,

그 공로와 칭송은.. 전부 예수님 명의로 돌려진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모든 것을 ‘기업으로 상속’ 받으셨기 때문이다.

-이 대화가 바로 상속의 의미를 잘 설명해 준다고 본다.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시고, 천국복음을 전하시고,

가르치시고, 구속 사역을 완수 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 안에 아버지께서 계셔서, 그 분이 하신 일이다.’

이 말씀은, 내가 아버지의 모든 이루신 일을 상속받았을 뿐이다... 이런 뜻이 된다.

예수님 자신이 이루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재벌의 후손이 부친 창업주에게 ‘나는 물려받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지상 사역이 ‘아버지께 물려받았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세의 사역은 ‘상속’된 것

예를 들어 모세가 출애굽의 대 역사를 이루어낸다.

이것은 세속 역사적으로도 사실로 인정된 fact이다.


그래서 백과사전 등을 찾아보면,

전부 모세의 명의(이름)로 출애굽의 대 사건이 기록되어 있고,

모세가 광야의 죽음의 땅을 통과해서

히브리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영도한 인도자로 소개 되고 있다.

전부 모세의 이름으로, 공로로 되어 있다. (하나님이 아니라)


그런데 정작 모세가 한 일은, 그 8순 할아버지 노인이

지팡이 들고 왔다 갔다 한 일밖에는 한 것이 없다.

그리고 모세의 영도력이 광야를 통과하게 한 것도 아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하나님이 40년을 인도해 주셨다.


모세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냥 하나님이 다 하시고, 모세의 명의로 상속시켜(기업) 주신 것뿐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모세의 명의로 출애굽과 40년 광야의 삶을 이해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본문이 말하는 대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는 말씀의 핵심이다.


이 세상에서 아버지들이 기업체를 일구어서 자식에게 상속시켜 주듯이,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로서 일구시고, 아버지가 직접 하신 일들을 내 명의로 주시기 위해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행동하신다는 것이다.


그 행동하셔서 나타난 결과를 곧바로 내 명의로 넘겨주셔서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마치 내가 그 모든 일을 이룬 것처럼 보인다. - 이것이 '기업/상속'이란 의미라고, 저는 해석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 상속의 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정OO씨는 정주영 씨를 아버지로 두어서 '현대'를 물려받았는데,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두어서,

하나님이 내 속에서 행하시는 모든 말과 행동과 사역을 다 물려 받았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과연 그 모든 땅(영향력)의 상속의 복을 누리고 있는가?


실상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과 딸로서,

이 유산상속의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온유한 자가 되지 못했기 때문인데...  



◑‘온유한 자’란?

 

▲마5:5절은, 하나님과 관계에서 온유를 뜻한다.

본문의 ‘온유’를 사람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외유내강, 온순함,

-부드러운 혀가 단단한 이빨을 이긴다.

-사나운 맹수보다 온유한 짐승이 세상에 널리 퍼진다...

그래서 온유한 사람이 결국 승리한다.

이렇게 ‘사람과 관계에 있어서 온유’로 본다.


그러나 저는 약간 다른 각도로 보고 싶다.

본문의 온유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유’로 본다.

이것이 더욱 근본적인 ‘온유’이다.


예수님께서 본문을 말씀하실 때의 온유는

아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유’, ‘사람과 관계에서 온유’

아마 둘 다 포괄적으로 말씀하셨을 것이다...

(별다른 언급이 없으신 것은, 둘 다 포괄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저는 본문에서 ‘온유’는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온유’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온유’라고 보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본문 마5:5절은, 시편37:11절을 인용하신 것인데,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거기 시37편 문맥을 살펴보면, 이런 구절들이 나온다.


1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을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11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위에서 보면 ‘하나님께 불평하지 말라’는 말씀이 3번이나 나온 후에.

‘온유한 자는..’ 하고 나온다.

그래서 시37:11절의 온유는.. 문맥상 ‘하나님께 대한 온유’인 것이다.

(물론 그것이 광의적으로, 세상 사람들에 대한 온유를 포함한다 하더라도)


그래서 마5:5절의 온유가 무엇인지,

시37편에 의거해서 해석하면

‘하나님께 불평하지 않는 것’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온유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신앙이 어릴 때는, 어떤 의미에서 큰 탈이 없는데,

우리의 신앙연조가 늘어나고, 제법 성경을 많이 알게 되었을 때는,

자꾸 내가 하나님께 ‘시비’를 걸 수 있다.


내 판단, 내 뜻, 내 의지가 생기면서..

하나님의 섭리에 내가 자꾸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유함’이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일절 감사/찬양할 뿐이지.. 일언반구 대들지 않는 것이다.


    여러분, 성경에 모친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을 했다.

    그 젊은 여자가 임신을 했으니.. 하나님께 ‘억울하다’며 따질 수도 있었겠다.

    대놓고 따지지 않아도, 속으로 억울하다고 울 수도 있었겠다.

    그런데 ‘마리아의 찬가’에 보면, 그런 따짐이 전혀 없다. 오히려 찬양한다. 눅1:46~55


    여러분, 만약 내가 졸지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몸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고 치자.

    그때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겠는가? 그 섭리에 ‘아멘(옳소이다)’ 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과 관계에서 온유란.. 그때 ‘아멘(옳소이다)’ 하는 것이다.


보통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온유’하지 못하게 반응한다.

내 자아가 쇠처럼 강하고, 내 의지가 뼈처럼 단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섭리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 반발/불평/대든다.

 

내가 바라는 게 있는데, 하나님이 그대로 안 해 주시는 때가 다반사니까, 시험에 들고 대든다.

 

그래서 온유하지 못하니까, 우리가 땅을 기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땅을 기업으로 받은 모세의 예는,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된다. ↙


▲모세의 (하나님을 향한) 온유함의 예

모세가 온유함이 모든 지면에서 승하다고 했는데,

구름기둥이 떠서 움직이면 행진했고, 움직이지 않으면 멈춰있어야 했는데,

여러분,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시는가?

그건 걷는 것보다 더 힘들다.


민9장에 보면, 구름기둥이 이틀이건, 한 달이건, 일 년이건 머물러 있으면,

행진하지 아니하였다고 했다.

‘구름이 장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을 지켜 진행치 아니하였으며’ 민9:17


저 같으면, 한 1년 머물러 있으면, 정말 답답해서 가슴을 쥐어뜯었을 것이다.

2주간이면 족히 갈 수 있는 거리다.

거기(가나안)를 안 들여보내 주시고, 하나님은 계속 뺑뺑이 돌리시는가 하면,

또 어떤 때는 1년 동안이나 가만히, 아무 할 일도 안 주시고 기다리게 하신다.


여기서 모세가 묵묵히 이러쿵저러쿵 하지 않고 가만히 순종하는 것

- 이것이 바로 모세의 온유함이다.


우리 같으면, 광야에서 그런 하나님의 처사에 대해

‘온유’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께 참견하고, 불평하고, 심한 경우 ‘날 죽이소서.’하고 협박까지 했을 것이다.


아니 그 좋다는 가나안 땅이 바로 저긴데,

뭣하러 덥고 메마른 광야에서 죽치고 기다리게 하시고,

거기로 속히 들여보내 주시지 않느냐는 것이다.


모세가 온유하다는 것은.. ‘그냥 죽치고 기다리는 것’이다.

40년을 그냥 그렇게 할 일 없는 벌거숭이 땅 광야에서 죽치고 기다렸다... 그게 온유다.

하나님께 절대 불평하지 않는 것이다.

정말 바보 같은 무골호인(온유함이 승한 자)이었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은 '땅을 차지하게 하신다.'                                             ▣ 크리스천 리빙  

정말 모세는, 영원한 영적인 지도자로서 그 영향력을 대대로, 영원히 행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