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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의 전조 - 폴 워셔 (How Revival Comes) - YouTube
◈경건보다 은혜다 시51:17 출처보기
폴 워셔 Paul Washer 목사님 설교 녹취, 정리 How Revival Comes
▶1. 부흥은, 완벽한 여건에, 위대한 사람에 의해, 오지 않습니다.
부흥이 오기 전에,
먼저 우리가 완전perfect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제 생각에는, 그런 식의 부흥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완전해지는 날은.. 결코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이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든 부흥의 길을 제대로 다 닦고 준비한 후에,
그제야 부흥이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그런 부흥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모든 것이 제대로 정비되는 날은.. 결코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어떤 ‘위대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제야 부흥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아직 우리 사회에 부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그런 ‘위대한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저는 믿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약하고, 죄 많고, 깨어졌으며, 깨어지기 쉬운 연약한..
때로는 하나님도 의심하는 그런 연약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믿고 의지한 그들에 의해..
과거 역사에 부흥은 일어났고, 앞으로도 그렇습니다.’
There has never been, nor will there ever be a great man of God.
There has always been weak, sinful, broken, frail, unbelieving man of great merciful God.
▶2. 부흥은 저와 여러분같이 연약하지만, 그러나 십자가를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도, 비록 연약한 사람들이지만,
갈보리 십자가의 긍휼을 의지하고, 부흥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갈보리 십자가를 의지하는 삶을 지난 25년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직접 경험해 보았습니다. 제 같이 연약한 사람도,
갈보리 십자가의 대속과 용서를 의지하고, 하나님의 일을 수행해 나아갔을 때,
거기에 몇몇 승리를 맛보았고, 제 속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변화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은
(제가 지금까지 여러 나라에서, 여러 번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다니는 것은)
제가 위대하고 잘 나서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가 제게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은혜의 공로이지, 제 공로가 아닙니다. 제 경건도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하신 크고 많은 일들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일들을 끝마치고, 다시 제 숙소 호텔방으로 돌아가서
마치 아기처럼 웅크려 저는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 제게서 떠나소서. 저는 죄인입니다.”
마치 그 일들을.. 저를 통해 이루시지 말았어야 했다는 식으로 말입니다.
(보충설명) 차라리 제가 부흥회, 집회에서 말씀을 전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제가 더 마음이 편했을 런지도 모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정말 연약하고 볼 품 없는 죄인 가운데 한 사람인 제가,
많은 청중들 앞에서 위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나니까,
호텔 방에 돌아와서 (아무 것도 아닌) 제가 느끼는 그 부담감은.. 얼마나 무겁겠습니까.
이런 맥락에서 제가 ‘부흥을 위해’ 계속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깨어짐brokenness입니다.
저는 제가 약하고, 깨어지기 잘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겸손하고 humility, 깨어진 사람은 brokenness,
그래서 회개하게 되고,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게 되고,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위에서 임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람이 아닙니다.
명백한 것은, 상하고 깨어진 심령을 하나님께서 멸시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51:17
우리는 성경말씀, 주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무슨 뜻인가 하면,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은,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에 자신을 비추어보고
자신의 모든 도덕적 결함을 본 뒤에
하나님이 나를 그분의 말씀처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포자기하지 않고 벌떡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 믿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부흥은 위대한 사람, 잘 정비된 위대한 여건 가운데 오는 것이 아니라,
연약하고 깨어지기 쉬운 사람이지만,
갈보리 십자가의 공로(용서)를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벌떡 일어난 사람에 의해서.. 오는 것입니다.
▶3. 경건한 삶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초점은 은혜에 맞추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저희 집에 오셔서
약 1주일 동안 저랑 같이 생활을 해 보시면,
여러분 대부분은 저에 대해 크게 실망하실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저를 보고
‘폴 워셔는 외식하는 사람이다’ - 이런 평가를 내릴까봐 두렵습니다.
제가 많은 청중들 앞에서는 멋지게 설교하는 사람이지만,
제 집에서 생활은, 제 멋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여러분이 보시게 될까봐 겁납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집에서도 참된 크리스천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그러나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클 수 있습니다.
세상에 완벽하게 사는 사람은 없다는 뜻입니다.
제 말의 뜻은, 그래서 ‘인간은 어쩔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그저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가정에 돌아가서도, 참된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열심히 자기를 고치고, 옳게 만들면..
그제야 하나님이 나에게 역사하실 것이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자신의 무능함, 깨어짐, 연약함을 그대로 가지고,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님은 임재하시고, 친히 들어서 사용하실 것입니다.
(저를 보십시오, 이것이 제 폴 워셔 이야기입니다.)
경건한 삶pious life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는 이것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참된 성도는 반드시 경건하게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주님의 은혜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제 설교가, 저의 경건한 삶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저는 강대상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경건한 삶도 필요하지만, 그 보다 더 필요한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찰스 스펄전이 말한 것처럼 '그것은 모두 은혜의 역사입니다. It is all of grace!'
▲관련 예화. 풀벌레 소리가 전체 밀림을 변화시킨다.
여러분, 아프리카 밀림에서,
쩌렁쩌렁하는 사자 울음소리와 삐릭삐릭 하는 풀벌레 울음소리..
이 둘 중에 누구 소리가 더 클까?
풀벌레 울음소리가 더 크다는 ‘이야기’가 있다.
내용은 이렇다.
사자 울음소리가 울리는 반경은.. 어림잡아 1킬로라고 하자.
그런데 삐릭삐릭 하는 풀벌레 울음소리가 미치는 범위는.. 반경 10 미터도 안 된다.
그런데 풀벌레들의 특징은, 한 벌레가 울면, 다른 벌레가 따라서 우는 것이다.
그래서 한 풀벌레만 울면, 여기저기서 풀벌레들이 따라 운다.
밤새도록, 그래서 풀벌레 울음소리는, 전체 밀림을 가득 뒤덮는다.
한 마리 풀벌레 울음소리가.. 전체 밀림의 풀벌레 울음소리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물론 그 풀벌레가 이제 그만 울고 쉬려고 해도,
그 때는 다른 풀벌레가 우니까, 또 따라서 울게 된다.
이렇게 풀벌레는, 매우 작은 곤충이지만, 전체 밀림을 밤새 일깨운다는 것이다.
.................더 읽으실 분...............
한 설교자가 말하길, ‘성령님이 오순절날 내려오신 것은
다락방에서 그들이 큰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며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들이 괴로워하며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확신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처한 형편은,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크게 괴로워할agony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리스도가 성령님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이루실 그 약속을 기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약속하신 성령을 받았습니다.
위에서 제가 ‘깨어짐brokenness’이란 단어를 쓰니까,
혹자는 그것이 ‘자해적인, 자기를 괴롭게 하는 기도’라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깨어짐이란, 그저 자기 자신의 강퍅함, 육의 옛사람을 깨는 것이지,
그것이 자해적인, 늘 침울한, 늘 탄식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란 뜻입니다.
우리는 늘 침울하게, 늘 우울하게 탄식하는 가운데.. 성령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120문도가 그랬듯이
우리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쁘게 기다려야 합니다.
약속에 따라 <은혜>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지, 침울하고 괴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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