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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 심기운 나무 2833

LNCK 2011. 1. 17. 21:18

 

물가에 심기운 나무                     렘17:5~8                    10.12.12.설교녹취 



◑옥토도 사막 된다.


▲사막도 바다 되고, 바다도 사막 된다.

미국 LA근교에 모하비 사막이 있다.

굉장히 건조한 사막이다.


제가 모하비 사막을 가로질러 가던 중에,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막이지만, 오랜 과거에는 그곳이 바다였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 땅바닥에서 광범위하게 소금결정체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세계에 이런 곳이 많다고 한다.

내륙 지역 곳곳에, 소금 채취장이 있는데,

아주 먼 과거에 바다이었던 곳들인데, 물이 증발되고 암염이 남게 되었다.


제가 그 곳을 걸어서 지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아하,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막도, 과거에는 한 때 바다였고,

바다도 변하여 사막이 될 수 있고, 사막도 변하여 바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상당히 많은 사막들이, 과거에 거의 다 바다였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주변 환경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는다.


우리 하나님을 언제든지 사막을 바다로 만드실 수 있고,

바다를 사막으로 만드실 수 있으시다.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롯이 거했던 소돔 성, 그곳은 아주 비옥하고 땅이 기름진 곳이었다.

그래서 롯이 아브라함을 떠나서, 그곳으로 이사 갔던 것이다.

그러나 그곳이 변해서 지금은, 죽음의 바다, 사해의 한 부분을 자리 잡고 있다.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화려한 곳에 있어도, 이게 앞으로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서 사막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아무리 메마르고 황량하고 힘든 곳에 살고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만 하면, 그 모든 장소는 다 옥토로 변하며,

기름지고 젖이 흐르는 땅으로 변할 것이다.


▲문제는 사람이다. 환경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은 사막을 강으로, 강을 사막으로 만드실 수 있기에, 환경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가운데 사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사느냐.. 그것이 중요하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이 있느냐... 그것이 우리 인생을 결정짓는다.


원래 이스라엘 민족은 사막에 익숙한 백성들이었다.

아무리 메마른 사막, 광야를 가로질러가도 문제가 없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모든 것을 먹게, 마시게, 입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만나, 메추라기, 반석에서 샘물을, 그 외 필요한 모든 것들을 베풀어 주셨다.


그러니까 광야/사막에서 살았지만, 그들은 별 불편함이 없었을 것이다.

언제나 하나님이 그들의 필요를 공급해 주셨기에, 사막을 걸어가도 그곳은 사막이 아니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다음에 문제가 생겼다.

젖과 꿀이 흐르는 옥토 같은 곳에 살았지만, 그들의 눈은 점점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졌다.


하나님을 보는 것보다, 가나안 땅에 거민을 쳐다보았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가나안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겼다.

바알(풍요와 다산)과 아세라(쾌락)였다.


그들의 마음은 점점 세상으로 옮겨갔다. 

그들의 눈은, 점점 이 땅에 있는 화려한 것들로 바뀌어서 고정되기 시작했다.

광야에서는 모든 것이 참 단순했는데..


그들의 마음이 문제였다.

아무리 젖과 꿀이 흐르는 곳에 있어도, 그곳은 사막처럼 변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여러분, 지금 온 세계에는 사막화 현상이 아주 굉장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 바로 위쪽에는 중국의 거대한 땅들이

해마다 사막으로 변하는 땅의 면적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보통 연간 강수량이 230mm이하 지역을 사막으로 분류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지구의 사막화보다 더 위험한 것은, 내 영혼의 사막화이다.

내 눈에 축축한 물기가 맺혔던 적은, 언제였는가?

웬 일인지, 자꾸만 자꾸만 우리의 눈에 눈물이 사라지고 있다.


내 가슴속에 감격과 감사가 가득차서 예배를 드렸던 기억이 언제인가?

감사가 사라져가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 마음속에 통회하는 심령이 사라지는 것이 문제이다.


어떤 교회에 설교하러 갔는데, 참 좋은 표어가 걸려있었다.

젖은 눈, 깨어진 가슴, 꿇은 무릎  참 좋은 표어였다.

저는 그 교회의 영적인 성숙도를 가늠할 수 있었다.


젖은 눈.. 하나님 앞에 언제나 감사와 감격의 눈물로 호소하며 나가기 원하는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깨어진 가슴.. 통회하는 심령으로 주 앞에 나가고,

무릎 꿇고 주님 앞에 나가서 은혜를 받고,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그 귀한 은총 속에

축축한 옥토 같은 상태를 유지하기 원하는 교회영성을 느낄 수 있었다.



◑광야의 떨기나무         렘17:5~6


모하비 사막을 둘러보니, 아주 처량하게 서 있는 떨기나무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옥토가 변하여 사막이 되고, 광야가 되면,

거기에 자라는 나무는 떨기나무뿐이다.

 

 

 

 

이 그림은 바로 사막의 떨기나무이다. 떨기나무는 가지만 앙상하다.

쓸데없는 관목이다.

이것은 불에 태우기도 별로 신통치 않은, 볼품도 없고, 열매도 없다.


사막에서 생존하려니.. 거의 선인장 수준의,

생명만 유지하고 있는, 바짝 말라있는 나무이다.

살아있는 나무지만, 말라죽은 나무나, 별로 차이가 없어 보인다.


지금 내 모습이 이렇게 황폐하고 메마른 사막 같은 곳에 서 있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은 존재가 아닌지를 확인해 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란다.


사람을 의지하면, 광야의 떨기나무처럼 된다.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잘 모르시겠거든,

오늘의 말씀으로 자신의 마음을 비춰보시기 바란다.


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6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모세의 떨기나무는 그래도 같은 떨기나무라도 긍정적 의미로 쓰였으나,

여기 본문 사막의 떨기나무는.. 메마르고 앙상한.. 특히 ‘물가에 심기운 나무↓’와 대비된다.)


사람은 믿을 대상이 못 된다. 의지할 대상이 아니다.

사람을 의심할 필요는 없지만,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사람을 믿지 마시라..

그렇게 주님은 말씀하고 계신다.(:5) 오직 사람은 사랑하고 섬겨야할 대상이다.


여러분, 살아가면서 사람에게 실망하셨는가?

괜찮다. 실망은 빠를수록 좋다. 원래 그런 것이다. 너무 낙심 마시라.

누가 너무 믿음직하고, 의지가 되시는가? 빨리 실망하게 되시기 바란다.


저는 여러분들이 다 자식에게 빨리 배반을 당하시기 바란다. (아멘이 안 나오시는 군요)

여러분,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의지하지는 마시라.

자식을 너무 의지하는 부모가, 결국 자녀에게 배반, 상처 당한다.


친구도 그렇다. 너무 친구를 좋아하지 마시고,

친구를 빨리 실망하게 되시기 바란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의지 하지 마시고, 사랑해 주시기 바란다.

사람이 의지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는 것을 우리는 고백해야 한다.


여러분, 사람은 결코 우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

아무리 믿음직한 사람도, 아무리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만족을 줄 수 없다.


▲우리는 ‘사막의 떨기나무’로 평가 받지 말아야

혹시 자신의 명예나, 물질, 배경, 자신의 능력을

하나님보다 더 믿고 있지는 않는가?


아무리 내 스스로 보기에, 내가 무성하고 탐스런 나무처럼 보여도,

지위도, 물질도, 자신의 능력도.. 내 삶을 채워주는 충분한 재원이 될 수는 없다.

주님은 그런 우리를 향해 말씀하신다. ‘너는 마치 사막의 떨기나무 같구나!’  :5~6


우리가 하나님 말고 다른 그 어떤 것,

나의 물질, 배경, 학식, 연줄.. 이런 것들을 의지하다가는

우리를 향해 주님은 평가하신다. ‘너는 사막의 떨기나무로다!’


▲이 단락, 정리하면

자기가 거목巨木이라고 스스로 자랑하고 자고하는 자는..

얼마 안 있어 자기가 ‘사막의 떨기나무’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인생의 당연한 결과이다.


혹시 자기의 가진 것을 자랑하는 사람을 보시거든

여러분 속으로 조용히 되뇌시기 바란다. ‘사막의 떨기나무로다!’


여러분 스스로 ‘나는 큰 거목이로다!’ 이런 생각이 드시는 분이 계신가?

거목은 거목인데, '떨기나무 거목'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스스로 교만하여,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진 인생은

‘사막화’가 점점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사막의 떨기나무’처럼 변하게 될 것이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           렘17:7~8

 

▲물가에 심기운 나무란

운이 좋아서 부잣집에 태어나서, 공부 잘 하고, 취직도 잘하고, 결혼도 잘한,

그래서 돈도 잘 버는.. 세상 복을 타고난.. 그런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러분, 한 번 듣고 잊어버리시라. ‘자식을 출세시키는 3가지 원리’가 있다고 한다.

    ①아버지의 무관심, ②어머니의 정보력, ③할아버지의 재정력.. (물론 세속적 원리다.)

    요즘 부모들은 돈이 많이 없어서, 할아버지 세대의 재정력을 의지한다고 한다.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좋은 가문에 태어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모가 확확 밀어줘서 잘 되는 그런 삶을 뜻하지 않는다.


뭘 뜻하는가 하면.. 7~8절이 그 답이다.

7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8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뿌리내리고, 하나님만 소망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공급만을 받고 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사람도 동시에 의지한다면 역시 ‘사막의 떨기나무’ 된다.


▲환경은 열악하나 ‘물가에 심기운 나무’

사도 요한은 복음을 전하다가, 밧모라는 황량한 섬으로 귀향 갔다.

그러나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가 아니었다.

그 외로운 섬에 있었지만, 하나님과 더불어 늘 교제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비전을 보았다.


그는 '사막'에 있어도, 물가에 심기운 나무였다.

하나님이 그에게 모든 은혜를 다 공급해 주셨기 때문이다.


여러분, 자꾸 여러분이 처한 환경을 보면서

나는 ‘광야, 사막’ 가운데 있다고 한탄하지 마시라.

만약 여러분이 ‘광야, 사막’ 가운데서도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아니라면,

좋은 환경에서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되기 더욱 어렵다.


여러분, 멧돼지가 땅을 파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는가?

땅에 도토리가 떨어져 있는데, 그것을 다 먹고 나서, 더 먹고 싶으니까,

아둔한 멧돼지 머리로는, 그 도토리가 땅에서 나오는 줄 알고, 땅을 후벼 판다.

그 멧돼지는 도토리가 위에서 떨어진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모든 것이 밑에서부터 올라올 것이라고 생각하면,

아둔한 멧돼지와도 같은 존재이다. 더 이상 땅을 파지 마시라.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아야 한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혜, 공급, 위로, 소망을 믿고 구하면..

그가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될 것이다.


더위, 가뭄, 추위를 걱정하지 마시라

물가에 심기운 나무는.. 늘 그 잎에 청청하며, 열매를 풍성히 맺을 것이다.

 

나는 ‘사막의 떨기나무’인가, ‘물가에 심기운 나무’인가?


▲‘사막의 떨기나무’도 살 길은 있다.

모하비 사막을 지나면서, 거기에 떨기나무(키가 1미터도 안 되는 가시나무)가 있었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과거 오랜 세월 전에 해초였는데, 그게 변하여 떨기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떨기나무는, 사막에서 살기 위해서, 뿌리를 무려 30미터나 길게 내린다고 한다.


여러분, 서부영화를 보면, 또는 광야에 가서 직접 보면,

둥근 큰 공 같은 것이 바람에 밀려가거나, 지나가는 차에게 달려오기도 하는데,

멀리서 보면 바위덩이가 굴러 오는 것 같아서 깜짝 놀라지만,

사실은 관목 가시나무 덩어리다.


이 사막에 떨기나무들이 30미터나 뿌리를 뻗치고 있는데,

물이 없어서 도저히 그곳에 살 수 없다고 판단되면,

지혜롭게도 그 뿌리를 끊어버리고, 그때부터 바람에 구르기 시작한다고 한다.

물을 만날 때까지 굴러다닌다고 한다.


그러다가 물을 만나면, 거기서 다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것이.. 사막의 떨기나무이다.


여러분, 이 땅에 30m, 아니라 3백m 깊은 뿌리를 내려도.. 생수는 발견할 수 없다.

우리가 깊이 세상에 내린 뿌리.. 끊어버리시기 바란다.

주님을 향하여, 물가로 나가시기 바란다.

그리고 주님께 뿌리를 내리시기 바란다.


▲초대교회 때는 사람의 이름 앞에 ‘티테디오스’라는 말을 즐겨 붙였다.

‘티테디오스 요한’, ‘티테디오스 마가’.. 이렇게 불렀다.

‘티테디오스’는 ‘근심하지 않는 사람’이란 뜻이다.

여러분 각자 이름 앞에도 붙여보시기 바란다. ‘티테디오스 OOO’


이번주간에 여러분은, ‘근심하지 않는 OOO’임을 기억하고 사시기 바란다.

성도는 근심하지 말아야 한다. 근심은 그 원어의 뜻이 마음이 ‘나눠진다’는 뜻이다.


주님께만 향해있던 마음이 돈에게, 사람에게,

다른 여러 가지 걱정 근심이나 쾌락으로 마음이 나눠지게 되면,

그때 마음이 황폐하게 되고, 결국 사막의 떨기나무로 변하고 말 것이다.


여러분, 우리 마음은 주님께만 붙어있어야 한다.

그 어떤 것에라도 마음을 빼앗기는 사람은.. 사막의 떨기나무로 변하는 사람이다.

                                                                              ▣ 크리스천 리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