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는 하나님의 역사, 되어지는 것 렘20:9 10.12.05.설교일부녹취
◑지금은 선교의 본질을 다질 시기다.
▲‘우는 사람들을’ 지금 하나님이 찾고 계신다.
예레미야의 그 눈물을 가진 사람들,
다니엘의 눈물을 가진 사람들,
에스겔의 그 가슴을 찢는 그 파수꾼의 심령을 갖고 부르짖는 사람들,
이 시대에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사람들이다.
한국선교.. 지금 겉으로는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2만 명이나 선교사를 보냈다.
그러나 한국선교의 문제점들이 지금 드러나고 있는데,
‘울지 않고’ 선교하기 때문이다.
부요한 마음으로, 부요한 물질의 힘으로 선교하려 하기 때문이다.
과거에 저도 그런 사람이었다.
제가 과거에 이슬람 지역에서 선교할 때,
‘열매가 없으면, 선교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교회가 개척되지 않으면, 그게 무슨 선교사냐?’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신 것은,
그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우리를 메마르게 하고, 허황된 것인지를
주님이 제게 깨닫게 하셨다.
그래서 나의 삶에, 사역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싶고,
정말 하나님이 일하시는 역사를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아래에서 이란, 중국, 중앙아시아의 예 참조)
그래서 요새는 자꾸 포기하게 된다. 내가 하면, 해 낼 수도 있다.
내가 열심히 뛰어서, 그럴듯한 결과를 만들어서 보여주고도 싶다.
그런데 과연 그것(물량주의, 성과주의 선교)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이것이 진짜 하나님 뜻에 합당할까?
이런 고민이 자꾸 생긴다. 그래서 이제는 자꾸 포기하게 된다.
저는 선교회 대표로서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있다.
나는 과거에 선교사들을 파송하면서,
그들을 통해서 그 민족, 나라, 족속, 방언이 변화될 것을 기대하면서 보냈다.
요즘도 그것을 기대하면서 보내지만, 요즘은 이것을 더 많이 기대하고 기도한다.
‘그들이 광야와 같은 그 최전방에서,
주님 앞에서 더 연단 받고, 더 깨어지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더 어린아이 마음을 갖는 자가 되게 해 주세요.
그 어린아이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그 땅에 임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 민족을 만져 주십시오.
이란에서 중국에서 나타났던 역사처럼 말입니다. ↓
주님, 그 땅에, 마지막 시대에 주님의 대추수가
그들의 눈물의 기도를 통하여, 그들의 어린아이와 같은 심령을 통하여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주도적으로 이루시는 (거대한) 선교의 역사가,
그들의 (작고 보잘것 없는) 눈물과 수고를 통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저 땅끝 미전도 종족 가운데,
하나님의 주도하시는 교회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 주십시오.
강퍅한 이스라엘 민족들 가운데, 저들이 시기나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주님께 울며 돌아오게 해 주십시오.’
여러분, 그러므로 열심히 선교지에 나가서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일도 대단히 중요하다.
그 눈물의 기도가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선교는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역사’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온전한 열매가 결실된다. 그래서 제가 요즘 자꾸 뭘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도 이 위대한 선교의 역사는,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
-울며 씨를 뿌리는 자들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다.
▲선교전략이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 가치이다.
그것 없이, 우리가 비전으로만 달려갈 때, 그 수고의 열매는 하나님이 받으시겠지만
그러나 그 일을 하는 우리에게는,
‘나는 네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 내 책에 네 이름이 희미하다.’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자아가 완전히 죽어야 한다. 죽은 척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주님을 대면해서 만나지 않으면, '죽은 척'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영광과 그 거룩 앞에서 완전히 깨어진 자로, 주님 자신만을 구한다면,
자기 자아가 완전히 죽게 되고.. 그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이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실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이곳에 불러서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을까?
그것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이다.
오직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을 통해서, 선교가 이루어져야 한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가치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그저 확장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 자신에 얽매여서 안 된다. 우리 연민으로 울고만 있으면 안 된다.
우리는 열방의 죄악과 시대의 아픔과 저들의 고통소리를 듣고,
우리는 가슴을 찢고 탄식하며 새벽을 깨워야 한다.
불행히도 한국교회에 새벽기도도 계속되고, 금요철야도 계속되지만,
열방을 향한 기도소리는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우는 자.. 그가 하나님의 군사이다. 주님이 그를 찾고 계신다.
그들을 통해서 세계선교는 완성될 것이다.
▲하나님이 저를 이기셨습니다.
여러분, 저는 선교사이고, 선교사인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
제가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또 선교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과거에는, 우주가 제 중심으로 도는 것으로 믿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제가 주님을 영접하고 나니까,
제 주위에 잃어버린 영혼들이 점점 보이는 것이었다.
그들의 슬픔과 아픔이 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도하기 시작했다.
제가 버스타고 가다가 주님께서 ‘일어나서 전도해라’ 그러면.. 저는 버텼다.
‘주님, 그것은 남부끄러운 일입니다.’
‘글쎄, 전도하라니까’
‘그것은 수치스럽고, 나는 내 얼굴과 체면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저를 이기셨다. 내가 거절하면 예레미야의 고백처럼
‘그 불이 나를 이기셨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렘20:9
성령의 불이 나를 태우기 때문에.. 나는 견딜 수 없어서 일어나서
버스에서 전도하고, 기차에서 전도했다.
우리가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면.. 울며 기도하게 되고,
자아가 깨어지면서, 선교를 안 할 수 없다. 주님이 속에서 자꾸 강권하시기 때문이다.
그런 강권하시는 역사가 만약 없다면
오늘 내 믿음이 식은 것이므로.. 점검이 필요하다. 무작정 뛰어드는 것이 아니다.
▲또한 선교는 주님을 아는 자들에 의해서 되어지는 역사이다.
해내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되어지는 역사이다.
그것이 본질적으로 가장 정답이다.
‘주님 제가 주님을 더 구하게 해 주십시오,
더 엎드리게 해 주십시오, 더 깨어지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주님의 손길이 주관하시는 선교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선교가 되어지게 하소서.’
이 마지막 때에, 우리나라와 세계도처에서
주님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선교사들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해서 그 깨어진 심령과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그 사랑의 표현 때문에,
그것이 선교인지도 모르고 했던 그 섬김으로.. 세계선교는 완성되어질 것이다.
◑선교는 관심이다.
▲무관심은 (살인)죄이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믿음으로 기도하며 나아가야 하는데..
지금 이 시대는 무관심한 시대다. 무관심은 살인이다.
제가 선교지에 있을 때, 우리 팀이 모두 지방에 선교여행을 갔던 적이 있었다.
갔다 와보니, 집안에 화초가 모두 다 죽어 있었다.
일부러 죽인 것도 아니요, 집에 가만 놔뒀는데.., 다 죽은 것이다.
나는 여기서 깨달았다. ‘무관심은 살인 방치’라는 것을!
겔33장에, 하나님은 ‘그 피값을 나는 너희에게서 찾으시겠다’고 하셨다.
우리가 미전도종족에 대해 무관심하고,
그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멸망당하는 것을 방치한다면..
그들의 피값을 우리 손에서 찾으시겠다는 뜻이다.
▲관심과 마음에서 시작한다.
여러분 선교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이 관심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다.
이 마음이 있으면 선교를 하고, 이 마음이 없으면 선교할 수 없다.
이슬람의 80%가 기독교인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
하나님을 자기 마음에 초청하고 싶은데,
두 세 사람이 있는 곳에 나도 너와 함께 있겠다고 하셨는데,
그런데 무슬림들은, 두 사람이 만나기가 힘들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그들의 '두 세 사람 모임의 파트너'가 되어주어야 한다.
회교 지역은 너무 어렵기 때문에 '두 세 사람 모이는 것도 대단하다.'
그 모인 곳에서, 내가 저들과 더불어 같이 주님의 임재를 구하고,
주님이 그 땅에 오시기를 위하여 무릎을 꿇고 울고 탄식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직접 가지는 못하면,
나 대신 직접 가서 그렇게 하는 선교사들을, 중보하고 후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왜 들지 않는가?
지금은 무관심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것은.. 이런 영적 무관심에서 깨어나기 위해서이다.
◑선교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
▲이란
1979년에 이란의 호메이니에 의해 이슬람 원리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팔레비 정권이 무너지고,
(과거에 볼세비키 혁명 때 소련이 엄청나게 자본주의자들을 많이 살해한 것처럼)
이란에서도 굉장히 많은 학살이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예수를 믿던 많은 분들이 불려갔고, 조사를 받고,
많은 환란과 고난 속에서 죽어갔다.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이 계속적으로 순교를 당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총회장만 되면, 반드시 잡혀가서 죽었는데,
그래도 계속 총회장들이 담대하게 일어났다. 그리고 순교했다. 국내에도 계속 보도되었다.
지금도 이란에는 많은 성도들이 탄압을 받고 있다.
큰 교회보다도 지금은 아주 작은 지하교회 성도들까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이란에 성도들이 몇 명인지 아시는가?
여러분, 이란에는 미국선교사, 구라파 선교사도 없다.
그저 한국선교사 소수와 최근에 들어간 중국사역자들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란에 최소 1백만 ~ 최대 3백만 명의 크리스천이 존재한다.
제가 5~6년 전에 이란 ‘밤시’에 지진이 나서,
3일 만에 그 현장에 들어가서 캠프를 차리고 ‘급식사역’으로 섬긴 적이 있다.
하루에 난민 2천명 씩에게 식사를 제공했다.
그런데 그때 만난 한 지하교회 지도자를 만났는데,
거기서 약간 떨어진 OOO지역에 1~2천 명 정도의 지역교회 성도가 있다는 말을
제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그 지진이 났던 ‘밤시’에서도, 그때가 12월25일 성탄절이었는데,
거기서도 기독교인들이 크리스마스 캠프를 하다가
마침 발생한 지진으로 24명이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곳에서도 크리스천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이란 당국이, 회교 원리주의(=근본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자국 내 기독교인들을 노골적으로 핍박했지만
더욱이 선교사들이 크게 활동한 지역도 아닌데도
지금 이란에는 성도들이 꿋꿋하게 신앙생활 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누가 이루신 역사인가?
-전적으로 하나님이 이루신 역사이다.
이 말은, 우리가 선교를 게을리 해도
‘하나님이 다 하신다’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러나 사실이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선교를 이루어 가신다.’
이 사실을 깨달은 우리는, 더욱 겸손하게,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선교에.. 더 열심히 보조를 맞춰야 할 것이다.
▲중국
1945년도에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문이 닫혔다.
그 혼란의 와중에서 선교사와 그 자녀들 200명이 순교하는 희생을 당하면서,
나머지 선교사들은 다 그곳을 탈출하고 떠났다.
그때 중국 선교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완전히 말살한 것처럼 보였다. 표면적으로는.
그런데 40년 후에, 1980년 경에, 뚜껑을 열어보니,
중국에 무려 8천만 명의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지금은 1억2천만 명이다.
그동안의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십자가의 도를 짊어지고 사는
그런 믿는 자들이 중국에 생겨났다.
선교사도 다 추방되었는데, 누가 하셨는가? - 주님께서 하셨다.
오늘도 선교는 하나님이 주도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안 해도 된다’는 것도 아니요,
아무리 낙심되더라도 ‘주님의 선교역사는 이루어지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나 주도적 선교’를 내려놓아야 한다.
▲중앙아시아가 갈급해진 이유
과거에 구 공산권이, 중앙아시아 지역을 공산화 하면서, 신은 죽었다고 주입했다.
그 결과 무슬림도 자신들의 알라를 섬기지 못했고,
기독교인들도 핍박과 고난 가운데 흩어졌다.
아주 지하교회에서 비밀리에 모여서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제 소련 공산권USSR에서 기독교는 끝났구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보니까
그곳에는 복음에 배고프고, 목마르고, 굶주리고,
복음에 대해서 너무나 흡입력이 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중앙아시아 이슬람 지역에, 그리고 몽골 지역에, 또 시베리아 지역에
사역자들이 들어가면서, 그들이 오랜 세월동안 영적인 그 배고픔으로 기다렸던..
그곳에 추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지금 여전히 약간의 핍박과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곳은 지금 추수지역이다.
다른 골수 회교지역과 비교해 볼 때, 그곳은 그래도 ‘추수지역’으로 분류된다.
만일에 공산화가 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어떻게 이렇게 그들이 ‘간절한 마음’이 되었을까?
하나님이 이루신 선교의 역사였다.
70년간의 공산화는.. 사람들 마음에 ‘복음에 대한 간절함’을 심어준 기간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아프간에 탈레반에 의해서 선교의 문이 닫혔다.
제가 911이후에 아프간에 들어가서, 사람들과 만나서 복음을 전했다.
그때 어떤 아프간 인들은, 자기는 천국에 가기 싫다고 했다.
왜냐하면 그곳에 무슬림 탈레반들이 있을거니까..
그만큼 이슬람에 대한 쓴뿌리와 적대심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짧은, 약 10년이 안 되는 이 기간 동안에,
약 2만 명의 믿는 자들이 아프간에 존재한다. (라고 그곳 사역자들이 말한다.)
모두 다 하나님이 하신 역사들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선교를 계속 하신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과 너무 많이 다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뜻과 너무 많이 다르다.
하늘이 땅과 비교할 수 없이 높은 것처럼,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선교의 역사가.. 우리 생각과는 한참 다르고 높다.. 참으로 놀랍다.
지금은 세계선교의 완성의 때가 굉장히 가까이 다가온 시점이다.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깨어있어야 한다. 지금은 깨어있을 때이다.
우리는 복음으로 깨어있어야 하고,
우리는 세계선교 환경을 보면서,
참으로 그들의 고통과 아픔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야 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 유명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에 보면
‘조선인의 마음을 알 수 없다’고, 그가 탄식하고 있다.
만약 정말 인간의 역사였다면, 지난 125년 동안 한국개신교 선교는
지금까지도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적어도 언더우드 선교사의 기도문만 읽어보면.. 반드시 그렇다.
당시에 조선 선교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125년만에 한국 기독교의 부흥 역사를 보면..
‘이건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이런 고백 말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지금 해외 선교사들도, 이런 희망을 가져야 한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오늘날의 결실을 전혀 1/100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셨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선교 현장
▲미전도종족 숫자가 급속히 감소하고 있다. (=선교가 빠르게 확장되고 있다.)
여러분 지금 이 시대의 흐름을 크게 두 단어로 규정한다면
‘속도’와 ‘변화’이다. 그래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
이 단어가 이 시대의 흐름을 단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데,
그런데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것처럼,
세계선교의 속도도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전 세계에 2만4천개의 미전도 종족이 있는데,
그런데 이 종족집단들이
1975년에 조사해 보니, 7천개가 이미 복음화 되어 있었다.
그래서 17,000개의 ‘미전도종족’이 남아있었다. *unreached people
|
전세계24,000종족중 전도 종족 |
남은 미전도 종족 unreached people |
1975년 |
7,000 |
17,000 |
25년경과후 1999년 |
14,000 |
10,000 |
5년경과 후 2004년 |
18,000 |
6,000 |
5년경과 후 지금 |
(조사 중) |
(조사 중) |
1975년부터 1999년까지, 25년사이에, 대대적인 선교운동이 일어나서
그 기간 중에 약 7,000개의 미전도종족이 새로 복음화 되었다.
과거 1975년동안이나 걸렸던 그 선교적 열매들이
지난 25년동안에 일어난 결과와 (어떤 의미에서) 같다는 것이다.
그 단기간 동안에 7천개의 미전도unreached종족이 → 전도reached종족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2000~2004년까지 또한 4,000개의 미전도종족이 복음화되었다.
세계선교의 변화속도가 이렇게 초 광속으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지금 (2005년 이후~)
전 세계에 미전도종족이 몇 개 남았는가?
약 6천개 정도만 남아있다.
최근 30년 동안에 11,000개의 미전도종족이 복음화 되었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이다.
그렇다면 남은 6천개는 기간이 얼마나 걸릴까?
20년? 30년? 적어도 2030대 말에는,
전 세계에 미전도전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지금 이런 시대에 살고 있다.
사실은 한국의 목회자와 성도라든지,
또는 선교지에서 한 부족에, 한 마을에 들어가서
소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경우에는,
사실 이런 ‘빠른 변화’가 실감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자기 선교 환경에 변화가 조금 있다 하더라도,
이렇게 큰 변화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다.
컴퓨터나 휴대폰이 진화하는 속도만 빠른 것이 아니라,
세계선교환경도 이렇게 급격하게 변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깨어있지 않으면,
잠자다가.. 예수님과 보조를 맞추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속력이 이미 붙었다.
여러분 라면을 끓일 때 보면, 물이 좀처럼 안 끓을 것 같다가,
나중에 갑자기 급하게 끓어오른다.
물 온도가 90도가 되어도 김만 약간 날 뿐, 겉으로 별 표시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거의 비등점(100도)이 되면서, 물은 갑자기 확 끓어오른다.
지금은 과거와 거의 비슷해 보이지만,
지금 세계선교가 비등점에 굉장히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도 굉장히 빠르게 달려오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가 느껴야 한다.
잠에서 깰 때인 것이다.
▲마지막은 혼돈의 시기
지금 세계선교도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고, 주님이 이렇게 빠르게 오신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 복음화의 속도도 이렇게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때 주님이 오시리라고 하셨으므로(마24:14) 지금이 시대의 끝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있어야 된다.
여러분 '끝'은 참 모호한 시기다. 분별이 잘 안 된다.
무엇이 정clean하고, 무엇이 부정unclean하고,
무엇이 거룩하고, 무엇이 세속인지 분별하기 어렵다.
특별히 이 시대 끝의 교회들이 이것을 분별해줘야 되는데,
사실 교회들은 일(확장)하는데만 관심이 많고,
회개하거나, 주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에 그렇게 관심이 없다.
이것이 이 시대의 아픔이요, 문제다.
그러다보니까 이 시대 끝에는
하나님의 것(복음)과 세상의 것(축복)이 너무나 흡사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정말 분별력이 있지 않으면, 어떻게 이것을 분별할지 몰라서,
속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우리가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누가 선교사 Global Operation 대표 ▣ 해외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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