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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나를 믿으라 2841

LNCK 2011. 1. 22. 20:38

◈또 나를 믿으라                 요14:1~6                 인터넷설교스크랩, 출처



톨스토이의 작품 가운데 <인간이 무엇으로 사느냐> 하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책은, 3가지 질문을 하고, 또 3가지 해답을 주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우리가 다 아는 너무나 상식적이면서도,

그리고 심각한 그런 질문이 여기에 있습니다. 


미하엘이라는 천사가 하나님의 명을 어긴 죄로서 지상으로 내어 쫓깁니다.

그래서 한 거지가 되어가지고, 추운 겨울날

시골 조그마한 교회에서 엎드려 기도를 하게 됩니다.


자기와 아무 인연도 없는, 가난하게 사는 그 마을의 구두직공이

이 사람을 보고 그에게 사랑을 베풉니다.

갈 데가 없다고 해서, 자기 집에 데려다가 구두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서

이 천사가 이 구두 만드는 직공이 됩니다.


어느 날 잘 생긴 신사 한 사람이 찾아와서, 자기 구두를 맡깁니다.

맡기면서 하는 말이 "내가 타국에 갈 일이 있는 데 일 년 동안 신을 신입니다. 

튼튼하게 최상으로 좋은 구두를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하고 돈을 주고 구두를 맡기고 갑니다.


그 때에 천사 미하엘이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 바로 앞에 지금 죽음의 천사가 지키고 있었어요.

이 사람은 곧 죽을 사람이에요.

그런데 자기 죽을 건 모르고, '제가 앞으로 1년 동안 신을 신을 맡깁니다!'

하는 그 말이 너무나도 안쓰럽고 불쌍한 거예요.


①그 때 그는 깨닫습니다. "아 사람들은 자기 죽을 날을 모르는구나..."

그래요. 자기 죽을 날을 몰라요.

그리고 그는 여기서 중대한 문제를 생각합니다.


②사람은 자기 죽을 날을 모르고요, 또 하나 모르는 게 있습니다.

세상에는 없는 거 같으나,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이 있어서, 이 세상은 버티어 나가는  것이올시다.

없는 것 같으나 있는 것이 사랑이요. 구두직공이 천사를 도와준 사랑.


때때로 우리는 "사랑 없다" 하지만은 아니올시다.

이 만큼도 세상이 아직도 지탱해 나가는 것은,

그 속에 깊은 곳에 사랑들이 있어요.

아직 사랑이 많습니다. 그걸 알아야 돼요.

사랑이 있어서 오늘 내가 있고 세상이 있다. 사랑의 힘으로 사는 것입니다.

 

③또 하나는 사람들의 능력, 사람들의 재간, 사람들의 지식, 

이런 것을 통해서, 사람이 살아가는 것 같아도.. 알고 보면 그게 아니에요.

사람들의 수고라는 건 아무 것도 아니고, 오직 주님의 은총으로 사는 것이에요. 


내 지식, 내 경험, 내 노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오늘 우리가 사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요만큼이라도 붙들어주셔서,

다시 말해서 하나님 은혜로 사는 것이지요.


그래서 꼭 망할 것 같은데 망하지 않아요.

꼭 잘못돼서 이거는 저주받을 수밖에 없고,

상식적으로 이렇게 되면 세상 끝나는 건데..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하엘은 깨닫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세상은 존재한다.. 이것이 해답입니다.

 

    오늘 설교 주제가 '하나님을 믿으라' 인데요,

    나를 향하시고, 우리를 향하신,

    그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우리가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불안한 이유


그러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속에

많은 걱정 근심이 늘 떠나지 않고 있는데.. 그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때로 우리는 뭐 물질이다, 혹은 가정 관계다, 혹은 아이들이 다 멀리 가버렸다...

뭐 어째든 스스로 걱정 근심이 많은데..


▶1. 근심의 뿌리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에 있는 것이고,

확실한 보장이 없어서 걱정하는 것이예요.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있더라도, 미래만 보장받을 수 있다면 걱정할 것 없어요.

모든 근심은 미래에 대한 것이에요.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에요.


철학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합니다.

"현대의 문제는 불확실성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다"라고 말합니다만

사실 그것도 알고 보면 웃기는 얘기예요. 언제는 확실했나요?


뭘 새삼스럽게 뭐 오늘 와서 불확실한 것처럼 말하지만..

역사는 원래 그랬어요. 누구도 미래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불확실한 가운데서 우리가 살아가는 겁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확실한 것까지만 확실하면 돼요.

그 이상 모든 것이 우리 지식의 확실할 수는 없는 것이에요.

 

▶2. 또한 자기 지식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내가 뭘 좀 아는데...' 

알긴 뭘 알아요? 뭘 아는 줄 알았는데 세월 가면서 보니까

정말 내가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나는 정말 멍청했구나. 형편없이 멍청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아는 게 아무 것도 없어요.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자기가 자기에게 기만당한 것이죠.

이제 와서 그걸 알고 있습니다. 

내 지식을 내가 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불안한 것이에요.


▶3. 또 하나는 자기 능력을 믿을 수가 없어요.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속수무책이에요.

들어도 소용없고, 알아도 소용없고, 빤히 보면서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능력이 없어요.


▶4. 내 의지도 믿지 못하겠이요. 불확실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좀 더 세계를 좁혀서 생각하면

나 하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기 의지를 내가 믿을 수가 없어요.

내가 내 의지를 믿지 못해요.


성경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 앞에 장담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너희들이 다 나를 모른다고 할 때가 올 것이다." 

그 때 베드로가 선뜻 나서면서 "다른 사람들은 다 부인할지라도 나는 아닙니다.

나는 죽을지언정 죽는데 까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큰 소리 쳤지요.

맹세까지 했지요.


그런데 하루도 아니요 불과 몇 시간 후에 보기 좋게

그가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합니다. 아주 비참해요.

아마 그 뒤에 베드로가 가슴을 치며 울었을 겁니다.

'이 내가 이게 이렇게 형편이 없나..?'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의지, 그거 믿을 수 있는 겁니까?

맹세하고 결심하고 혈서를 쓴다고 한들 그거 믿을 수 있는 겁니까?

나 자신을 내 의지를 내가 믿을 수 없기에 이제서 불안한 것이에요.

 


불안을 없애려면, 하나님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럼 뭘 믿어야 됩니까?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중요한 말씀을 합니다.

"너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더 줄이면,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주님을 믿으라!" 입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어요. 근심의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근심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믿음뿐이에요.


이 믿음은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귀중한  선물입니다.

오늘도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행복합니다.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이런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사람도 믿을 수 있습니다. 어쨌든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니까요..


전 그런 생각을 해요. 어떤 사람이 생각하기를

"세상에 믿을 사람 어디 있나. 아무 것도 못 믿는다" 그 사람 불쌍한 사람이에요.


그래도 믿을 사람 많지요. 그래도 좋은 사람이 더 많지요. 

이 믿음! 어딘가 모르게 계속적으로 믿어지고 든든하게 믿음을 가지게 된다면

그 사람, 모든 것을 가진 것보다 더 귀한 보물을 가진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이다, 의지다.. 하지만 이것이 불안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공부 많이 했다고 해서 확신이 생깁니까?

공부 많이 했다고 믿음이 생깁니까? 그거 아니에요.

많이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비겁한 사람이 돼요. 걱정은 더 많고...


여러분 소유도 그렇습니다. 뭘 가졌다 하면, 거기에 믿음이 있는 겁니까?

안 그렇습니다. 소유는 나를 점점 더 근심의 수렁에 빠뜨리고 맙니다. 


여러분 흔히 우리가 말하는 대로 스트레스라는 말을 하죠. 

스트레스는, 알고 보면, 잘못된 자기 지식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에요.

또 믿음이 없어서 오는 고통을, 그 괴로움을.. 스트레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가 하면 해결할 수 없는 죄책이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는 자기가 옳다고 하지요. 남보다 더 옳다고 하지요. 

항상 옳다고 자기를 정당화하고 있지만.. 자기가 죄인됨을 자기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감기만 걸려도 이게 죄 때문인가 보다,

애들이 집을 나가도.. 내가 잘못한 거고, 계속 내 양심이 나를 정죄하고 있어요.

내 마음에 있는 율법이 나를 심판하고 있어요. 

그런고로 근심에서 헤어나질 못한 것이에요. 다 주님께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성공이 우리를 근심에 빠뜨립니다. 여러분 그런 일 있잖아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만이고, 소원이 이루어지면 불안하고 그렇지 않습디까?


미스코리아에 당선되려고 몸부림을 치고 얼마나 애를 써서 당선이 됐다 말이에요.

아 이제 면류관을 쓰고 축하를 받으면서 그러면

"나는 소원 이루었습니다. 행복합니다." 그래야겠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하나도 없어요.


당장 그 다음날부터 불안합니다. 불안하죠.

왕관을 쓰기가 쉬운 게 아니에요 왕관을 지켜가기가 어렵지. 불안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거 안 쓰는 게 훨씬 났지요. 이걸 아셔야 됩니다.

역시 미래에 대한 보장 믿음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 오늘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확실하게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을 때 나는 피조물이 됩니다.

그는 창조주요 나는 피조물이요, 그는 아버지요 고로 우린 자녀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경륜(경영, 섭리)하시고, 우리는 그의 경륜에 따라가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정직하십시다. 인간이 뭡니까?

아무 것도 아닌 주제에, 뭘 또 걱정은 하고 있어요?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는 일입니까?

언제 당신의 능력으로 살았습니까? 언제 당신의 지혜로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언제 내 의지로 한 일이 한 가지인들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렇다면 두 손을 들고 항복하세요. 그리고 하나님을 믿어요. 

그는 창조주요, 그는 능력이시고,

그는 지혜로우시고, 그는 긍휼히 여기시고, 또 그 속에 사랑이 있어요.


그런데 이제 보세요. 하나님의 능력, 지혜, 긍휼, 사랑,

확실하나.. 그걸 내가 확실히 믿을 수가 있어야죠.


여기에 대한 해답이 오늘 본문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또 나를 믿으라." 



◑십자가의 에수를 믿으라! 십자가의 사랑을 믿으라!


여기에 깊은 뜻이 있습니다. 엄청난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것이올시다.

예수 안에서 예수를 통하여 오로지 예수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또 나 예수님 를 믿으라." 


무궁무진한 진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걱정이 있고 근심이 있습니까? 잠깐 멈추시고 이 말씀의 깊은 뜻을 생각하세요.

"하나님을 믿으라. 또 나를 믿으라." 


그 속에 해답이 있습니다.

예수님 제자들에게 "나를 믿으라."하고 말씀하시는데

나를 믿으라 하고 하시는 예수님 얼굴을 쳐다보세요.

이제 몇 시간 후에 십자가를 지실 분입니다.


그래서 눅12:32절 같은 데 보면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적은 무리여 두려워하지 말라."

적은 무리지요. 열두제자와 예수님, 초라하게. 옷이 변변합니까, 인물이 잘났습니까? 

이거 초라하게 모인 상황에서 지금 하시는 말씀이요.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좀 더 심각하게 말씀드리면,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어디로 가십니까? (십자가로 가십니다.)

지금 예수님 손에 돈이 있습니까, 권세가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으라' 이거예요.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십자가 지실 말씀을 하십니다.

십자가로 향해 가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를 믿으라" 나를 따르라,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

이 십자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압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폭군적 능력이 아닙니다. 때려 부수는 파괴적 능력이 아닙니다.

이것은 천지를 개벽하는, 그런 진동케 하는 능력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한 사람을 구원하시는 생명적 능력입니다.

조용히 겨자씨 하나가 땅에 들어가서, 싹이 나는 거와 같은 그러한 능력입니다.


우리는 홍수가 나고 벼락이 칠 때 아 이거 굉장한 능력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큰 능력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하며 돌아오는,

돌아오게 하는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십자가 안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구원하시고 나를 구원하시는 영적 생명의 깊은 근원이 십자가 안에 있어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또한 이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를 바른 길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매를 많이 맞았어요. 

우리 아버지는 좀, 내가 지금 생각해 봐도 조금 지나쳤어요.

언제 한 번도 칭찬 할 줄을 모르고 그저 조금만 잘못하면, 삐꺽하면 저를 때렸어요.

거기서 말대답을 한 마디라도 했다가는 큰일 납니다. 그냥 맞아야지.


그런데 아무리 아버지가 저를 때렸지만, 저는 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정말로 무서워하는 것은 저의 어머니입니다.

저는 어머니로부터 한 번도 맞은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잘못했을 때 손을 딱 붙들고

"내가 너를 위하여 얼마나 기도하는데, 네가 그래서 되겠냐?"

그러면 제가 살살 빌어야 됩니다. 꼼짝을 못합니다.


어느 쪽이 능력이고, 어느 쪽이 지혜입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십자가 안에 계시되어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입니다.

여기 확증되어 있습니다. 간혹 젊은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해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면, 내 소원을 이루어 주셔야죠",

"내가 결혼하고 싶은 저 여자와 결혼하게 해 주셔야죠",

"내가 갖고 싶은 무엇 무엇을 가지게 해 주셔야죠"


그래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지,,,

내가 그렇게도 갖고 싶은 것은 주지 않고, 되지도 않고,

그리고는 엉뚱하게 갈보리 언덕에 십자가 하나 세워놓고

'내가 너를 사랑한다!' 이게 말이 안 된다는 거죠.


그렇습니까? 바로 여기에 신비가 있는 거예요.

오늘도 하나님은 이 방법밖에 다른 방법을 취하지 않습니다.


갈보리 언덕에 십자가를 세우고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노라." 

이 십자가를 통해서 사랑을 보여줍니다. 이것만이 사랑이니까요.


여러분 자녀들이 뭘 달란다고 달라는 대로 줄 수 있습니까?

줄 것도 없지만 줘서는 안 되잖아요.

'그리고 내가 늘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걸 잊지 마라.

이것을 믿어라.'


내가 못 주는 것도 사랑하기 때문이고

때로는 너를 어려운 시련에 버려두는 것도 사랑하기 때문이고

그리고 십자가를 높이 들고 그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제자들이 벌벌 떨고 있어요.

이 제자들을 놓고 떠나면 어떡합니까?

이 철없는 제자들을 놓고 십자가를 지면 어쩌자는 얘기입니까?


그러나 예수는 그 길을 택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먼저 간다. 

고난의 길도 십자가의 길도 내가 먼저 가노라." 


또 하나 "가서 예비하리라." 그 다음에는 "다시  너희에게로 오리라. 

그리고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영원히 함께 하리라."


철없는 제자들에게 간곡하게 말씀하십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 아무 걱정도 없습니다.


이제 이 믿음을 가진 확실한 믿음의 사람, 대표적인 사람을 소개합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4세기에 교부로 있다가 로마에 왕, 시이저가 주가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라고 강력히 주장한 죄로

그는 왕 앞에서 처형을 당합니다. 순교했습니다.


그 전에 아르카디우스가 그를 심문하는 내용, 너무나 귀합니다.

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집에서 추방해 버리겠다."

"왕이여, 그거는 불가합니다. 온 세상이 다 아버지 집이기 때문에

어디로 추방해도 그건 다 내 집입니다. 그런고로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네 전 재산을 다 몰수해 버리겠다."

"그것도 폐하여 불가능합니다. 내 재산은 다 하늘나라에 쌓아 두었기 때문에

내 재산을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너를 감옥에 넣어서 아주 고독하게 아무도 못 만나게

평생 동안 고생하다 죽게 만들겠다."

그러자 그는 조용히 웃으시면서 말했습니다.

"그것도 불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친구가 되어서

항상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을 누가 괴롭힐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에게 무슨 근심이 있겠습니까?

이 믿음에 무슨 절망이 있다는 얘기입니까?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1931년, 85세로 세상을 떠납니다.

한평생 천 가지 이상의 훌륭한 물건을 발명한 발명왕이 아닙니까?

그에게 기자들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노인이 되어서도 왕성한 정력으로 일 하실 수 있는 겁니까?" 


그 노인이 대답합니다. 

"믿음입니다. 영원에 대한 믿음이

저로 하여금 이렇게 현재의 삶을 더 충실하고 만족하게 만듭니다.

사람에게 영원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나는 믿고 있습니다.

죽음은 현재에서의 출구요, 영원으로 향한 입구입니다"


여러분, 영원을 소유한 사람이래야, 현재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영원을 믿는 사람이 되어야, 오늘을 승리 생활할 수 있는 것이올시다.


미래가 없는 사람은 현재는 더욱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이 귀한 사실을 알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영원한 세계를 지향하는 사람에게는 낙심도 없고 속박도 없습니다.

무한히 자유합니다. 그리고 엄청난 여유가 있습니다.

다시 주님의 음성을 들어보십시다.

"하나님을 믿으라. 그리고 또 나를 믿으라."                    ▣ 믿음론 (순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