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결혼생활 고전 7:1-16 스크랩, 출처보기
◑결혼하면 오히려 자유한 사람이 있고.. (독신이 오히려 자유한 사람은 아래에 나옴)
▲1. 결혼하는 것이 항상 욕망으로 인해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잘못된 욕망이 결혼으로 잇달아서는 안되고, 건강한 가운데서 되어져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야기를 잠깐 보면 결혼은 욕망의 자유를 위해서 하라는 것이다.
자유,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타난 내용이다.
그래서 음행한 연고로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 남편도 아내를 두라. 7:2
자유를 위해서 두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혼하지 아니하면 정욕에 노예가 되어 버린다.
결혼하지 아니하면 그 욕망이 쌓여서 마침내는 큰 범죄로 가게 된단 말이다.
자기 정욕의 노예가 된다. 그러나 결혼함으로 해서 욕망의 노예가 되지 않고
욕망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기 때문에 오늘 성경말씀은 말씀한다.
육체적 욕망, 혹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그 욕망,
그것은 억제되어서는 안 된다. 그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것이니까.
그래서 그릇된 욕망으로 자유하기 위해서, 그래서 결혼을 하라는 것이다.
▲2. 두 번째는 방종으로부터의 자유다.
결혼하지 아니한 사람들 가운데,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부분에서는 방종해요. 오히려 건전치 못해요. 요사이 보면 비혼 시대라 말한다.
이제 아주 생활을 방종하게 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게 정말 세계적으로 큰 문제다. 비혼율이 미국이 약 30%, 일본이 40%다.
결혼한 연령인데도 결혼하지 않아요. 이제 머지않아 60%에 육박할 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결혼에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다.
얼마 전에 어느 통계에 보니까,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결혼한 사람에게 물어 보았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내가 젊었더라도 결혼하지 않겠습니다' 했다.
이런 식으로 인터뷰가 나왔다.
그러니까 점점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다. 그것은 큰 타락이다.
사회적인 큰 타락이다. 그건 곧 방종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이런 방종함이 없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생활이 바로 되어야 사회가 밝아지는 것이다.
방종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방종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이다.
▲3. 또한 허무로부터 자유하기 위해서 결혼하는 것이다.
여러분, 결혼생활 하면서 아마 바삐 돌아갈 것이다.
뭐, 남편 뒤치다꺼, 아이들 뒤치다꺼리해야 되지요 바쁘다. 바삐 돌아가는데,
그런데 반대로 그런 것 안 하는 사람은 어떤가?
이건 또 한가하니까 정신병원에 다녀요. 그걸 알아야 되요.
그래서 이 정신병원에 가는 것을 보아도
어린아이가 딸려 있는 주부가 정신병원에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바빠서.
그런데 누가 가느냐? 독신이 간다. 독신이 정신병자가 된다.
상당한 부분에서 너무 한가하거든요.
이 결혼이라고 하는 것이 남자고 여자고 간에 상당한 의무를 만들어 준다.
일거리를 만든다.
그런 가운데 허무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4. 남는 것은 자식뿐이라는 말이 있는데..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왜 여러분, 가끔 그런 일이 있잖아요.
뭐, 돈도 벌다가 못 벌었고.. 또 무엇을 하다가 안 되었고.., 다 안 되었다.
이제 나이가 많아 가지고 앉아서 생각해 보면, 제대로 된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남은 것은 자식 밖에 없어요.
그래서 유명한 맥아더 장군의 기도문에 보면, 맨 끝 부분에서 이런 말을 한다.
'내게 이런 아들을 주시옵소서.' 내 아들이 이런 이런 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는 말을 하고
맨 끝의 말이 무엇이냐 하면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헛된 세상을 살지 아니하였다 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있다.
그 한 마디가 얼마나 충격적인 줄 몰라요.
뭐, 맥아더 장군이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다 해 보았지만,
그거 다 그냥 어떻게 보면 허무하기도 하고, 자기 당대에 끝나고 말아요.
그러나 마지막에 남는 게 뭐냐?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자식 때문에, 자식으로 인해서 생각하기를
나는 헛된 세월을 살지 아니하였다 라고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5. 마찬가지로 가정이 생의 의미를 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거 우리 때때로 보면 무엇이 다 뜻대로 안되더라도, '나는 너희들 밖에 없다'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여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가정이 없고 자녀가 없으면.. 생이 허무해진다.
그러기에 오늘 여기 주신 말씀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왜 결혼해야 되느냐?
이 결혼을 함으로써 매이는 것도 많고, 어려운 일도 많다.
그러나 생의 의미를 더하게 하기 위해 결혼한다.
▲6. 동반자 관계
*그리고 오늘 성경은 가정을 이렇게 정의한다.
가정은 하나의 동반자 관계라고, 이건 노예 관계가 아니다.
욕망에 대한 수단이 아니다. 향락의 도구도 아니다. 이것은 동반자 관계다.
그런고로 여기 보니까 서로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 상당한 권리가 주어지지만 또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 의무에 매이는 것이다.
*또 그리고 자기가 자기를 주장하지 못한다고 그랬다. 자기주장을 양보해야 된다.
이걸 잊지 말아야 된다. 이게 동반자 관계이기 때문에 반은 얻고 반은 내어주어야 한다.
어떤 남자고 여자고 간에 50%의 양보할 마음이 없으면 결혼하지 말아야 된다.
가만히 보면.. 결혼해 가지고도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사람이 있어요.
그건 잘못된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결혼하지 말아야 될 사람이었다.
최소한 모든 면에서 절반은 내어놓아야 한다.
모든 면에서 자기 의견의 절반은 내어놓아야(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 그래서 의무에 매이고 주장함에 매인다 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여기 특별히 기독교 가정에 대해서 말씀한다.
그것은 서로 분방하지 말라. 분방하지 말라, 대단히 중요한 말씀이다.
문자 그대로 지켜야 한다. 아무리 보기 싫어도 별거생활 해서는 안 된다.
함께 있어야 된다. 그러면서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원수도 한 방에 있으면 정이 든단다.
이거 함께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특별히 사도 바울은 아주 중요한 말씀까지 하셨다.
기도할 때에만 하되 그것도 합의상 하라고 그랬다.
가령 아내가 나 산에 기도하러 가겠다고 그럴 때, 남편이 안돼 하면 그건 못 가는 것이다.
이건 기도하는 것이니까 가야 된다고 할지라도.. 그건 안 된다.
나 선교사로 갈란다. 결혼한 사람이 선교사로 가겠다고 할 때
아내가 안됩니다 하면, 그건 못 가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았다면 갈 수 있지만, 결혼한 사람이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하나님의 일을 하러 가는데 누가 말릴 것이냐.., 그러나 이게 안 된다는 것이다.
합의상 하라고 그랬다. 몇 일을 두고라도, 몇 년을 두고라도 아내가 설득되어야 된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된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하라.
생각해 보라. 한쪽에서 반대하고 있는데, 한쪽에서 가서 기도한다고 엎드려서
그거 기도 응답이 되겠는가? 합의상 하라. 이 얼마나 중요한 말인가?
기도하는 이 시간외에는 절대로 분방하지 말라.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너희 절제 못함을 인함이라. 분방하는 동안에 시험에 빠진다.
분방하는 동안에 문제가 생긴단 말이다. 시험에 빠져요.
그런고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여기서 좀 더 구체적인 말을 하고 있다. 결혼은 서로 매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매이는 것에서 자유를 얻어야 되고, 결혼은 서로 봉사하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주장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이 합해서, 둘이 합해서 자유를 얻고 둘이 합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야 되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이것은 철저한 동반자 관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부가 서로 동방one room해서, 하나를 이루어서 둘이 한 몸이 되어서
하나님의 일도 이루고, 세상일도 이루고, 뭐든지 이루어 나가야 된다.
어느 하나가 어느 쪽에 예속되고, 어느 하나는 온전한 자유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서로서로 매이는 관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철저하게 매이는 것이다.
매이는 그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어야.. 그것이 바로 바로 된 가정이다 하는 것이다.
◑결혼/독신보다 더 근본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
▲사도바울이 애매하게 말하는 이유가 있다.
- 결혼/비혼이 근본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뭘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이 근본적 목적이다.
고전7:8-16절을 보면,
혼인, 독신에 대한 문제를, 바울은 좀 애매하게 설명한다.
즉, 웬만하면 결혼하지 말라. 그러나 결혼하려거든 해라.
뭐, 그저 좋아하거든 다시 살아라. 싫어하거든 버려라.
도대체 애매하기 짝이 없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 애매한 말속에, 그 근본 의도를 한번 생각해 보라.
바울이 왜 이렇게 말하고 있는가? 더 한 계단 높이 올라가 생각해 보면
이 말씀이야말로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이것은 가정생활에 있어서, 아주 원리적이고 원칙적인 것을 말해주고 있다.
결혼이든지 독신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 보면,
▲1. 결혼이라고 하는 것은 중요하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은 기본원리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질서요 축복의 과정이다. 결혼은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은, 이 가정을 통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게 사실이다.
깨끗하게 거룩하고 경건한 가정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결혼을 최선의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고,
또 사람이 결혼하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난 것도 아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
결혼이 중요하되, 결혼이 생의 목적이 될 수 없고
자녀가 중요하되, 자녀를 낳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난 사람은 없다.
자녀 낳아서 그것 하나 키우기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결혼이 정답이다/아니다가 아니라,
결혼이든지, 독신이든지 '하나님께 영광'이 정답이다.
그러므로 결혼에 대해.. 바울은 좀 애매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주 하나님께서 내게 향하신 뜻이나, 혹은 내게 주신 역사를 잘 진단해서
하나님이 나를 어느 쪽(결혼, 독신)으로 인도하시나 하는 것을 생각해야 된다.
그래서 분명히 성도는, 사람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 하나 섬기기 위해서,
한 마디로 말하면 세상에 남편만 섬기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 어디 있는가?
아무리 결혼이 중요하지만 남편이나 자녀 뒤치다꺼리하다가 세상을 끝낸다면..
이 꼴이 무엇인가?
또한 아내 하나 섬기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이래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사람은 철저하게 원칙적으로 하나님께 속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사람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결혼이 중요한 것은 백 번 말해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자녀가, 결혼의 노예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원리이다.
▲2. 하나님의 영광과 아울러, 믿음의 문제도 고려한 바울 주1)
▲3. 결혼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사람이 있다. (더 잘 믿는 사람이 있다.)
그 다음에 오늘 여기 가만히 보면 결혼을 한다.
그러면 결혼을 하는 이유가 어디 있느냐?
결혼하는 것이, 결혼 안 하는 것 보다 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더 효과적이란 말이다.
더 내가 주님을 잘 섬길 수 있단 말이다.
그럴 때에 결혼하라는 것이다.
결혼은 분명 매이는 것이다. 속박이다.
결혼하면서부터 아내는 남편에게 매이고, 남편은 아내에게 매이는 것이다.
매이는 건 틀림이 없는데,
그러나 이렇게 매이는 것이 더 자유로운 사람이 있다. (위에서 설명했다.)
오히려 결혼하지 아니해서 방종에 매이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다.
그럴 때는 결혼해야 된다.
그래서 칼빈 선생은 그런 말을 했다.
칼빈은 원래 총각으로서, 어린애까지 있는 과부하고 결혼했다.
그렇게 결혼하면서.. 그때는 결혼하지 않는 사람도 많았거든요.
성직자 가운데서는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성직자가 자유롭게 결혼하기도 하고, 안 하기도 하는 그런 시대였는데,
이분은 결혼을 미루다가 결국 했다.
결혼할 때 친구들이 물었다. 왜 결혼을 하느냐?
그때 그는 아주 명답을 했는데, (여자들은 대개 이런 말을 좋아 안 한다.)
"사사로운 일에 매이지 아니하고 효과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칼빈은, 주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해서.. 결혼했다는 것이다.
그 '사사로운 일'이 뭔지 애매하지만.. 밥 해주는 일도 아마 포함되었을 것이다.
어느 쪽이 자유하냐 하는 것이다.
결혼해서 자유하고 하나님의 일을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느냐?
아니면 결혼해서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면서 그 뒤치닥거리한다고 정신이 없느냐?
(이런 후자의 경우는 독신이 낫다는 것이다.)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은 결혼함으로 인하여 마음도, 몸도, 생각도, 생활도,
보다 더 자유로울 수 있을 때에,
보다 하나님의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때에 결혼할 것이다.
▲4. 결혼해서 가정에 속박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예를 들면 결혼한다, 이것과 함께 그냥 꽉 붙들리고 마는 사람이 있다.
특별히 지금 제일 큰 문제가, 말하기 참 어려운 이야기(이견이 있을 수 있음)가 하나 있다.
그게 뭐냐 하면 선교사의 경우다.
선교사가 지금 나가서 수고를 많이 하는데, 수고 많이 하고 마지막에 돌아오잖아요.
그런데 실패하는 이유의 95%가 가정 때문이다.
그러니까 선교사가 선교하는 일까지는 좋은데
가정이 있어 아이 셋과 아내를 데리고 갔으니까 말이다.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은가?
선교비는 얼마 안 되는데, 더구나 아이들 교육비 내야지요, 뭐 해야지요 하니까
어떤 분 보니까 1200불 선교비 받아 가지고 1000불을 자녀교육비에 쓴다.
나머지 200불 가지고 먹고 살고, 전도해요. 이거 어떻게 된 건가?
그러니 이런 사람은 선교사로 가지 말았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선교사 가운데 성공하는 선교사란 것은 65%가 여자다.
여자 쪽은 좋아요. 혼자 가거든요.
그런데 어쩐지 남자들은 멍청해 가지고 혼자 가서는 못사는데,
여자들은 혼자서도 잘 산다.
여자 선교사가 성공적이다. 왜? 독신이거든요.
가서 그야말로 헌신적으로 전적으로 받드니까요. 아무 생각 없이 선교만 하니까요.
그러니 되는데..
남자들은 아내에다 자녀다 뭐, 이러니까 되는 일이 없다.
그러니깐 간단하잖아요. 선교사로 가려면 장가가지 말든지,
장가를 가고, 자녀가 많거든 가지 말든지.. 그랬으면 되잖아요.
그런데 자녀를 데리고 간다. 결국은 자녀 있는 사람이 가 놓고는
그 자녀에게다가 그 마음 쓰느라고, 우선 시간적으로 빼앗긴다.
그러니 선교할 틈이 있는가?
선교하려면 열심히 공부도 하고, 거기에 전심전력해야 되겠는데
자녀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 그렇지 않는가?
그런데 공부(유학)도 그렇더라고요.
공부도 보니까 아내와 함께 가야 공부가 잘 되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 여자가 꼭 옆에 있어야만 살 수 있는 체질이지요.
그러니 그런 사람은 아내와 함께 가야 공부가 되니까, 부부동반으로 가야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반대로 아내와 아이들이 옆에 있으면 그것 뒤치닥거리한다고 바빠요.
이러면 공부가 안되거든요. 그러니까 혼자 가는 게 좋지요.
그러면 공부만 하게 되니까, 다른 생각은 할 것 없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혼자 가는 것이 좋다.
그걸 누가 아내와 함께 가야 된다, 또는 함께 가지 말아야 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까 바울이 결혼에 대해서 애매하게 말하는 것이다.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것이다.
해서 더 잘 할 사람은.. 결혼 하고
독신으로 더 잘 섬길 사람은.. 독신으로 섬기라는 것이다.
혼자 있어서 자유 할 사람은, 혼자 있을 것이고
혼자 있어서 오히려 부자유한 사람은.. 그 사람은 결혼해야 될 것이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이는 인생 전부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그래서 오늘 성경 말씀은 그런 원리를 두고 말씀하는 것이다.
신앙이 먼저고, 하나님의 일이 먼저고, 자유함이 먼저고,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먼저다.
그런 가운데 결혼하는 것이 좋거든 결혼하라는 그런 이야기다.
아니면 독신이 더 좋은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독신이 주님 섬기는데 자유로운 사람은.. 독신으로 지내시라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아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고전7:20
▲또 한 가지 오늘 본문에서 혼인하지 아니한 자, 아마도 혼기가 이상하게 지났어요.
이럭저럭 하다가 혼기가 지났다.
그런데 뭐, 이제 굳이 와서 결혼 그것을.. 꼭 해야만 인간이 되는 것처럼,
안 하면 큰 일 나는 것처럼..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는 그런 내용이다.
이미 혼자가 되었든지, 또 홀로 살았든지, 아니면 과부든지
한번 결혼했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났든지...
바울이 말하는데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게 순리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결혼이 인생의 최종 목적이 아닌데, 굳이 그렇게(독신) 되었는데
여기서 또 결혼을 하면서 또 매이려고 할 것이 무엇 있느냐?
어떤 이유로 인해서 이렇게 되었든지
지금은 자유 해졌으니까, 이제 그냥 지내라는 말이다.
결혼이 인생의 최종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최종 목적이니까,
그런 관점에서 바울이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혼자서 지내는 분들 너무 어려워서 (외로워서)
가끔 저에게 찾아와서 고충을 토로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은 자유 하다는 것과 고독하다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외롭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유하다고 생각해 보라고.
그렇잖아요. 외로운 게 별것인가? 자유죠.
'자유로움'으로 만족하라.
그러기 때문에 오늘 여기 주신 말씀과 같이
혼인하지 아니한 자나, 혹은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자, 여기까지 왔는데 굳이 다시 매일 것이 없지 않느냐.
이제는 이것이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유인줄 알고
이제 여기에서 좀더 활발하게 하나님의 일을 새롭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그런 이야기다.
▲8절, 내가 혼인하지 아니한 자들과 및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나와 같이...
만약 바울이 자녀들을 데리고 다니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가 아내가 있었다면 그 많은 여행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는가?
만약 그런 여행을 한다면 아내에게는 못할 짓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나와 같이 지내는 것이 좋지 않느냐 하고 권면한다.
그러나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뭐라고 그러는가?
나는 이렇게 지내기 어려운 처지다.
꼭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남편이 있어야만 되고
아내가 없으면 못사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렇다면, 그렇게 절제할 수가 없거든 방종에 매이기보다는
차라리 결혼하는 것이 좋다, 다시 결혼하라는 말씀이다.
▲10~12절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아라. 아내에게서 갈리지 말아라... 이혼하지 말라는 것이다.
결혼할 때의 마음이 어떻게 되어서 이제 와서 이혼하느냐는 것이다.
할 때의 그 마음으로 일관해야죠. 결혼할 때 결혼해야 되겠다고 했으면
이제 그 의무를 다해야지, 중간에 마음이 변해 가지고 갈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분명한 말씀이다.
특별히 다른 사람이 더 좋아서 이혼한다는 것은 절대 용납지 않는다.
있을 수가 없다. 그런 점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되겠다.
▲13절,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그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않는 남편이 있고 믿지 않는 아내가 있다.
여기에는 대전제가 하나 있다.
좋아하거든,
자기는 믿지 아니하면서도, 믿는 아내를 좋아해요. 그러면 같이 살라 그랬다.
절대 헤어지지 말라.
또 믿지 않는 남편이 있다. 그런데 믿는 아내를 좋아해요.
믿지 않는 아내가 있다. 믿는 남편을 좋아해요.
그러거든 같이 살아라. 그건 헤어져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고 있다.
왜요? 그럴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느니라.
믿지 않는 남편이 믿는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느니라. 이게 첫째 이유다.
▲16절, 아내 된 자여 네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구원하게 될 거니까, 그러나 반드시는 되지 않는다고 했다.
구원하게 될는지 모른다. 이 구원이라는 것 우리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거든요.
그런고로 오늘은 아니지만 어느 때, 10년 후, 20년 후에라도
그 남편을 구원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런 날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 날을 바라보고 같이 살라고 명령하고 있다.
▲15절,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신앙이 먼저고 거룩함이 먼저 중요한 것이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당신이 예수를 믿는 한 나는 당신하고 살 수 없다.
이것이 전제라고 하거든 갈리라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꼭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은 오직 신앙의 이유다.
신앙을 위해서 순교도 하는데
신앙을 위해서는 가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겠다.
다른 사람이 더 좋아서 이혼하는 것은 절대 허락지 않는다. 그건 아니다.
오직 철저한 순교적 신앙이 이유가 될 때 말이다.
그래서 한 마디로 말하면 신앙을 버려야만 한다,
내가 신앙을 버려야만 저 사람과 살 수 있다,
그런 관계에서까지 살아라, 그건 아니다. 신앙이 먼저니까.
그러나 여기 주신 말씀을 보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5b
끝까지 화평하라. 참고 기다려서 어찌하든지 화평하라.
그러니 이 모든 중에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게 첫째다.
▲마치는 말
우리가 가정이라는 것을 매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고
섬겨야 되고, 매여야 된다. 매이지 않으면 파트너십이 잘못된 것이다.
그런고로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매여야 한다.
그 매이는 중에서 자유함을 찾아야 한다. 그 자유가 더 큰 것이어야 한다.
독신으로 지내는 것보다 더 큰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가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 보다 우선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요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사역이요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자유요 신앙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이런 신앙적 가정을 이루도록 힘써 나가는 것이 본문의 깊은 뜻이라고 생각한다.
....................................
주1) ▲2. 하나님의 영광과 아울러, 믿음의 문제도 고려한 바울
이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요,
또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그것은 구원의 문제요 믿음의 문제다.
가령 이 결혼 때문에 믿음을 버려야 한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신앙을 위해서는 순교도 하고 목숨도 버리는데,
그래 신앙을 버리면서까지 결혼 생활할 필요는 없다 이거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중요한 말씀이다.
그래서 여기 그런 말씀을 하잖아요.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믿지 아니하는 자가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나는 너 하고 살 수 없다.
또 이쪽에서는 믿지 않는 남편이지만 가진 굴욕과 수고와 희생을 다 지불해 가면서도
끝까지 희생해서 살리고 싶고 또 그래서 그를 구원해야 되겠고
또 어느 때 구원하게 될는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오늘 성경에 그 말씀이 있잖아요. 어느 때에 구원하게 될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오늘은 저렇게 완악하지만 앞으로는 언젠가는 달라질 수도 있다.
이렇게 믿고 기다린다.
그러나 내가 믿음을 버려야만 살아주겠다.
그래야만 같이 살아주겠다고 한다면 그런 경우에는 갈리게 하라.
신앙이 먼저니까. 갈린다는 문제에 상관하지 말라.
이혼을 조장했다 생각하지 말고 중요한 것은
결혼보다 중요한 것은 신앙이단 말이다.
신앙을 버려 가면서까지 결혼생활 하겠다고 그럴 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신앙이 먼저라는 것이다. 그걸 우리가 생각해야 되겠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사람이 처음에 가졌던 마음이 있잖아요.
그것이 변해서 이야기가 되는 것 아닌가?
그런고로 오늘의 결정도 다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무슨 말을 할 때 오늘 사랑한다고 해서 이게 다가 아니다.
오늘날 사랑은 현대적이어야 된다고 말하잖아요.
오늘 아침은 오늘 아침대로, 저녁은 저녁대로 지금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말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부터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이건 두고 봐야 안다. ▣ 행복한 가정
그와 마찬가지로 굳게 맹세하고 결혼했는데 그런데 오늘 와서 사랑이 변했거든요.
그렇다고 한다면 변한 이것이 이 변한 대로 평생 갈 것이냐? 아니다.
또 다시 변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가변적이고 변할 수 있는 사건들 속에서
이것은 결정적인 문제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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