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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중심적 신앙은 안 됩니다 2861

LNCK 2011. 2. 5. 15:59

 

◈자기중심적 신앙은 안 됩니다!         렘43:1~13         10.12.14.설교스크랩, 출처



학교에 불이 났으면 좋겠다! 는 못된 심리


이런 자기중심적인 못된 심리를, 우리 인간들이 가질 수 있는데요...


여러분 혹시 학창시절에 이러한 경험들이 있으셨나요?

심한 몸살이 났든지, 아니면 밤새 놀았든지,

오늘 시험 보는 날인데.. 시험공부를 하나도 안했습니다.


아침 등교시간에 맞춰 어머니가 “야! 일어나라 학교에 가야지” 재촉하십니다.

그러면 그 소리를 들으면서 이부자리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에 아! 학교에 불이라도 났으면 정말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전날 시험공부를 하나도 안 했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학교가 휴교할 만큼, 태풍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진다든지

폭설이 내려서 학교가 임시 휴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기가 공부할 시간을 벌고 싶은 거지요.


이게 자기중심적 사고방식이라는 것이지요.

자기 시험망칠 것이 두려워서, 자기가 처한 상황 전체를 바꾸기 원하는,

사람의 못된 심리입니다.


요즘 군대는 많이 달라졌겠지만,

과거에 70~80년대에 군대생활 하던 군인들은

휴가를 나갔다가, 군대 복귀하기가 너무 싫어집니다. 복귀 안 할 수는 없고요.


그러면 서울 마장동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전방으로 가는데,

그 군인들의 공통적 심리가 ‘지금 이 시외버스가 좀 북한강으로 미끄러졌으면 좋겠다..’

이런 심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도로도 구불구불하고 위험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진짜 현실로 벌어지기도 합니다.

아프리카 같은 저개발국가에 가면, 일부 권력자들이,

자기 아들이 입대하게 되는 나이가 되면, 군 입대 방법을 바꿔버립니다.


자기의 상대편 정적과 보좌관들이 가득타고 가는 전세버스를

강물로 쳐 넣어버리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 버스에, 무차별 총격을 가한 일도 보고 되고 있습니다.


또한 영화 속 얘기겠지만, 자기들의 구미에 따라, 공작을 해서,

아프리카나 남미의 한 나라의 정부를 뒤집어엎어 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것을 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학교에 불이 났으면 좋겠다’ 라는, 지극히 자기중심적 심리라는 것입니다.


누구를 비판하자는 뜻이 아니라,

여러분, 사람의 본성이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회개하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


내게 그럴만한 힘이 있고,

학교에 불을 내고도, 그것을 수위아저씨의 탓으로 돌릴 만큼 힘이 있으면,

그리고 남이 보지 않는다면, (들키지 않는다면).. 학교에 불을 냅니다.

우리 인간의 본성은 그렇게 ‘자기중심적’입니다.


물론 그 뒤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따라오지만,

그 심판이란게 당장 자기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까... 불을 지르고 만단 말입니다.

이게 사람입니다.



◑본문 설명


본문 렘43장의 내용은, 요하난이 우여곡절 끝에

유다 잔류민을 거느리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을 설득시켜서 한 마음이 되어서 애굽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런 요하난에게서 학교에 불이 났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요하난과 유다 잔류민들은 생각합니다.

애굽에 피난가면.. 거기는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다,

기근이 없이 잘 먹었으면 좋겠다, 생활이 안정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자기 마음에 다 결정을 내려놓고,

그리고 예레미야에게 나와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달라고 부탁합니다.


내 마음에 좋게 여겨지든지 나쁘게 여겨지든지,    렘42:6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음성을 그대로 따라 순종하겠다라고 말합니다.


이제 예레미야가 기도하고 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아 대언합니다.

너희는 애굽에 가지마라. 애굽에 가면 반드시 망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애굽에 가지 말고, 바벨론 왕을 무서워하지 말고

유다 땅에 남아서 살고 있으면 하나님이 지켜 줄 것이다.’  렘42:11


이에 대해서 그들이 말합니다.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는 애굽으로 살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렘43:2


요하난과 모든 교만한 자들은,

자신들이 마음에 내린 결정을 맹신하고는,

도리어 예레미야의 예언이 거짓이라고.., 몰아부칩니다.


이게 바로 자기중심적 심리요, ‘학교에 불나기 원하는 심리’와 비슷합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자기들의 뜻에 맞지 않으니까,

예레미야의 예언 자체를 불로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그건 가짜라고! 


그 다음이 더 재미있습니다. 예레미야가 그렇게 말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너를 부추겨서 우리를 대적하여

갈대아 사람의 손에 넘겨 죽이며, 바벨론으로 붙잡아가게 하려 함이라’ 렘43:3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사주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룩은 예레미야의 서기(비서) 역할을 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 생각에는, 예레미야의 측근 중에서

예레미야의 사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가 바로 바룩이라고 보고

바룩의 영향을 받고 바룩이 사주하는 내용을 가지고 와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라고... 날조합니다.

(과거 군사정권 때, 우리나라도 이렇게 날조해서 간첩 혐의를 덮어씌우기도 했습니다.)


    이게 바로 인간입니다. 그런데 사실 모든 사람은..

    요하난과 그의 주변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적용

 

 

▲힘이 있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힘 없는 사람은, 크게 유혹이 없습니다. 불을 낼 힘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내게 권력이 있습니다. 행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내게 돈이 있습니다. 사람을 사서 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면 학교에 불을 냅니다.

이게 인간에게서 보여지는 뿌리 깊은 죄악적 습성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쉽게 말하면 자기중심성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늘 (공평)를 강조합니다.

그게 없으면, 자기가 무너지니까요.

하나님은 반드시 공의로 심판하시니까요...


critical thinking community 라는 웹사이트 상의 어떤 단체가 있습니다.

critical thinking 즉, 건전한 비판적 사고를 하자는 그런 커뮤니티입니다.

거기서 <자기중심성의 9가지 경향성>을 얘기하는데,

 

첫 번째가, 내가 선호하는 것을 지지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오래 기억하고,

내가 선호하는 것들을 지지하지 않는 증거나 사실들에 대해서는 금방 잊어버린다.


일곱 번째는, 그런 자기중심성의 맹목성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지지하지 않는 사실들이나 증언들에 대해서는

아예 무시한다.


무슨 얘긴고 하니, 설교를 예로 들면,

자기가 좋아하는 내용이 나오면, 오래 기억하고 따라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동의하지 않는 설교가 나오면.. 아예 신경을 꺼 버립니다.

아예 딴 생각을 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인간 본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큐티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는 부자 되게 해주는 종교가 아닙니다. 병 고치는 종교도 아닙니다.

부자되는 것이 나쁘다는 얘기도 아니고, 병 고침의 역사가 없다는 얘기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의 핵심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누구시며, 복음이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종교이지

내가 이 세상에서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소원들을 이루어주는 종교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을 읽고, 큐티를 할 때도,

본문의 요하난과 오만한 자들’처럼, 성경을 액면가 그대로 읽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의 예언들을, 자기 구미대로 다 바꾸어버립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자녀에게 오복 주시기 원하신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설교를 들을 때,

반드시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듣는’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그렇게 말씀하신 것도, 내가 바꾸어 이해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

내 귀에 도저히 듣기 싫은 내용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때는, 주의를 두 배로 집중해야 합니다. (회피하지 말고요)


왜냐하면, 사람이 발전할 때는, 자기가 듣기 싫은 말을 귀담아 들을 때입니다.

언제나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듣는 사람은.. 10년이 지나도 발전이 없습니다.


▲자기중심적은.. 결국 손해입니다.

자연인은, 매우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바뀌지 않고, 자기 환경만 바뀌기 원합니다. 자기중심적으로요.


그리고 하나님과 성경마저도 자기를 위해 마음대로 바꿉니다.

물론 하나님과 성경이 바꾸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가 나름대로 바꾸어서 이해를 하고, 바꾸어서 믿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으로요.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것은.. 결국 자기 손해라는 말입니다.


애굽에 내려갔던 요하난과 잔류민들도.. 거기서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바벨론 군대가, 애굽까지 정벌해 버렸던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예언 그대로, 칼이 애굽까지 따라왔던 것입니다.


나 중심성이 어떻게 바뀝니까? 내 가족 중심성으로 확대됩니다.

또한 내 회사 중심성, 내 소속 중심성, 내 나라 중심성으로 확대됩니다.


내 가족, 내 회사, 내 나라 중심성이 좋을 것 같지만,

여러분,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아무리 내 가족, 내 회사, 내 나라 중심적으로 판결하더라도,

하나님은 결국 바로잡으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러므로 아예 처음부터 공평fair과 공의justice로 행하는 것이,

시간을 줄이는 길이요, 돌아가지 않고 직진하는 길이요,

훌륭한 지도자가 되는 길입니다.



................................... 더 읽으실 분 ..............................



▲폴 워셔 목사 인터뷰

폴 워셔 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갑자기 모든 조명이 꺼지고, (내 인기가 떨어지고)

더 이상 누구도 내 설교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그것이 아닙니다.


저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바로 그럴 때, 나의 진정한 마음이 드러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혹시 제 마음이 교만했었다면.., 그때 저는 크게 낙심할 것입니다.

제 인기가 떨어지고, 사람들이 더 이상 저를 따르지 않는 날이 올 때

(여러분, 사람은 늙든지, 기타 이유로 충분히 인기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제 교만으로 인해.. 저는 심히 낙심할 날이 올 것입니다.


지금은 제가 잘나가고 있으므로.. 제가 제 자신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거절당하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당하게 되는 날이 올 때,

그 때 제 속마음이 어떠할지..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제가 만약 여전히 겸손한 마음으로 사역에 임했다면,

저는 그때도 여전히 기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설교했기 때문입니다. 인기와 호응에 관계없이요! 


저는, 제 설교를 누가 좋아하든지, 좋아하지 않든지,

많은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면 소수의 사람들만 듣든지..

저는 거기에 휩쓸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설교를, 사람 앞에서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말 혹시 무대의 불이 꺼지고,

사람들이 아무도 제 설교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하나님이 전하라는 메시지를 전했으므로,

제 스스로 만족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제가 전하는 메시지를.. 사람들이 듣기를 원치 않고,

도리어 거부할 때,

바로 그때도, 저는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은 이렇게 하지만

그때가 올 때, 혹시 제가 흔들릴까봐.. 지금 제가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 설교를 좋아하지 않는 날이 오더라도.. 저는 기뻐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주님께 순종했고,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설교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환호에도, 반대로 거절에도.., 사람의 평가는 신경 쓰지 않겠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만 전하는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폴 워셔 목사님 인터뷰 중에서 발췌



▲법정스님 일화

그래서 법정스님은

우리들이 소위 이해라고 하는 것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오해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이해했다는 것도.. 결국에 알고 보면 오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기중심성을 지적한 말입니다.

 

법정스님이 한 번은, 불교종단에서 만드는 무슨 기관지가 있는데

거기서 글을 하나 써 달라고 부탁해서.. 글을 써 주었답니다.


그랬더니 그 담당승려가, 얼굴 신경이 뛸 정도로 할렐루야! 하더라는 겁니다.

(법정이 써 준 글 내용이 마음에 든다는 뜻이지요.

참고로 할렐루야는 법정스님이 쓴 단어임)


그때 법정은 속으로, 이 칭찬이 얼마나 가겠냐. 넌 나를 오해하고 있다.

그래서 그 칭찬을 믿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달에, 또 한 번 글을 써 주었답니다.

그랬더니 아닌 게 아니라 게거품을 물고 난리를 치면서,

그 기관지 담당승려가 법정을 잡아 죽이려고 하더라는 겁니다.

(게거품 역시 법정스님이 쓴 단어임).


무슨 말입니까?

사람들의 자기중심성을 말하는 것이지요.            영적성장